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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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3:23–24 NKRV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① 도입 — 잔치 한가운데서
사랑하는 여러분, 바쁘신데 딱 1분만 내어 주시겠습니까?
지난주에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으신 분이 멀리 계시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얼마 전, 저희 가족에게 좋은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다 같이 외식을 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시키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고, 정말 좋은 저녁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는 이상하게 허전했습니다. 부족한 게 없는 하루였는데,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었습니다. 잔치는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모자란 것은 저였습니다.
이건 한 집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좋은 날인데 허전한 저녁. 다 가진 것 같은데 비어 있는 마음. 혼자 사시든, 곁에 누가 있든, 우리에게는 그런 밤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에서 딱 한 문장을 읽으려 합니다. 그 한 문장이 — 그 허전함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끊지 않고 한 호흡에 말해 줍니다.
### ② 본문 — 바닥났다, 그런데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로마서 3장입니다. 천천히 읽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먼저 한 가지를 보십시오. 이 말씀에는 **중간에 마침표가 없습니다.** "이르지 못하더니"에서 끝나지 않고, 같은 숨으로 "값 없이"까지 흘러갑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 이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앞부분에서 두 마디만 짚겠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 입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종교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말은 누구를 콕 집어 손가락질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여기 선 누구도 다른 누구를 내려다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둘째, **"이르지 못하더니"** 입니다. 성경이 여기 쓴 말은 본래 *'모자라다, 바닥나다'* 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다른 곳에서 이 말을 이렇게 씁니다. 어느 혼인 잔치에서 — 잔치가 한창인데 —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바로 이 말을 썼습니다. 잔치가 끝나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한창일 때 바닥난 겁니다.
그리고 이 말은 과거형이 아닙니다. 옛날에 한 번 바닥나고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모자라다*는 현재형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을 비추는 빛나는 모습으로 지어졌는데 — 그 빛을 잃어버린 채로,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 좋은 저녁을 보내고도 허전했던 제 마음이, 바로 이 현재형이었습니다.
### ③ 복음 한 점 — 상을 더 차려도 채워지지 않는 이유
그럼 왜 바닥이 납니까. 성경이 '죄'라고 부르는 것 때문인데 —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죄는 도둑질이나 거짓말의 목록이기 전에, *등을 돌린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 없이 살아가게 된 것. 그 *끊어진 관계*가 모든 바닥남의 시작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처럼 — 상이 모자란 게 아니라, 흘러들어오던 것이 끊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상을 더 차리는* 쪽으로만 갑니다. 더 벌면 채워질 줄 알았습니다. 그 사람만 바뀌면, 이 시험만 지나가면, 이 일만 풀리면 — 채워질 줄 알았습니다. 채워집니다, 잠깐은. 그리고 다시 바닥이 드러납니다. 상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끊긴 곳이 거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부터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에도 저는 속으로 '다음엔 더 좋은 데를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상을 탓하고 있었던 겁니다. 손가락은 저를 향해 있습니다. *저부터 이 말씀 앞에 섭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로 바깥에서 온 아픔도 있습니다. 내가 만들지 않은 상처, 내 탓이 아닌 눈물이 있습니다. 그 아픔까지 당신 탓이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 아픔을 안고 견딜 힘조차, 흘러들어오던 자리가 끊기면 함께 마르더라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보십시오. 이 문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침표 없이, 같은 숨으로 이어집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어려운 말이 둘 있으니 바로 풀겠습니다.
**"속량"** — 값을 치르고 묶인 사람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빚에 묶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값 없이"는 *값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안 냈다*는 말입니다. 누가 냈습니까? 바로 다음 절이 말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내셨다고.
**"의롭다 하심"** —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 너는 이제 내 편이다" 하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끊어졌던 그 관계가, 그분의 선언 한 마디로 다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죄를 지은 "모든 사람"과, 값없이 받아들여지는 "그 사람"이 — *같은 사람*입니다. 한 문장 안에 있습니다. 바닥난 바로 그 자리로, 은혜가 흘러듭니다.
### ④ 초청 — 잔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가리키는 분은 결국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까 그 잔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포도주가 바닥난 그 잔치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닥난 잔치를 — 가장 좋은 것으로 다시 채우셨습니다. 그분은 그런 분입니다. 바닥난 자리를 찾아오시는 분.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끊어진 우리 자리를 이으시려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누군가는 물으실 겁니다.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 어떻게 믿느냐." 만약 이것이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였다면, 설명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두 눈으로 본 사람들이, 그 증언 때문에 매 맞고 갇히고 목숨까지 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으면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렸던 본래의 당신 — 하나님을 비추던 그 빛나는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당신을 위해서만 빛나지 않습니다. 당신을 지으신 그분이, 당신을 통해 다시 빛나십니다.
멀리 계시던 그분이, 지금 당신 앞에 와 계십니다.
오늘, 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마음으로 말해 보십시오 — *"예수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 이 문장이 진단에서 멈추지 않았듯이, 오늘 당신의 허전함도, 거기서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찬송 **387장 「멀리 멀리 갔더니」**로 닫습니다.
### 〔축도〕
이제, 바닥난 우리 자리를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려 친히 내려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끊어진 우리를 "내 편이다" 선언하여 받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지금도 우리 곁에 함께 계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 자리에 선 여러분과, 각자 돌아가는 그 길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 ※ **예화 사용 메모**: ①의 '가족 외식 후 허전함' 예화는 박사님 가정의 결에 맞춰 쓴 *전형적 장면*입니다. W1의 게임기 사건처럼 실제 있었던 일(실제 날짜·장소·돌아오던 길의 디테일)로 교체·확인하고 강단에 올리시기를 권합니다. 실제 경험과 다르면 '좋은 날인데 허전했던' 박사님 자신의 실제 기억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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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묵상용 큐티 (소그룹·전도팀 배포용)
# 📖 롬 3:23-24 큐티 — 잔치 한가운데서 바닥나는 것
> 레벨: 간단 | 본문: 개역개정 | 거리 전도 시리즈 W3(연구재작성판) 배포용
> *본 큐티는 외부 자료 검색 없이 동 폴더 연구 자료(01·04·07)에 근거해 작성되었습니다.*
### 1. 오늘의 말씀 (롬 3:23-24)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2. 원문 핵심 단어
- **원문**: ὑστεροῦνται (23절)
- **음역(영어)**: hysterountai
- **발음(한글)**: 휘스테룬타이
- **품사·뜻**: 동사, 현재 중간/수동 — '모자라다, 못 미치다, 바닥나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지라"(요 2:3)와 같은 동사이며, 탕자가 "궁핍한지라"(눅 15:14)에도 같은 동사가 쓰였다. 앞의 ἥμαρτον(헤마르톤, 아오리스트 '죄를 지었다')과 짝을 이뤄 *과거의 사실 + 지금도 계속되는 바닥남*을 그린다.
### 3. 오늘의 묵상 포인트 3가지
1. 내 허전함은 잔칫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흘러들어오던 자리 — 하나님과의 관계 — 가 끊겨서다 (23절).
2. **(원문에서)** 그 바닥남은 옛날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ὑστεροῦνται, 현재형) 상태다 — 상을 더 차리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3. 바닥난 바로 그 "모든 사람"이,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같은 문장 안에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24절) — 값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 낸 것이다(25절 "그의 피").
### 4. 적용
오늘 나는 어떤 상을 더 차리고 있습니까. 더 벌면, 그 사람만 바뀌면, 이 시험만 지나가면 — 채웠다가 다시 바닥나는 그 허기를, 오늘은 한 번 *신호*로 읽읍시다. 끊긴 자리를 이으시려고 먼저 내려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당신 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우리 다 같은 자리에 있고, 값은 이미 치러져 있다"는 이 좋은 소식을 한마디로 전할 용기를 구합시다.
### 5.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잔치 한가운데서도 허전한 사람입니다. 평생 상만 더 차리며 살았고, 정작 끊어진 자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갚을 수 없는 값을 주님이 피로 치르시고, "너는 내 편이다" 받아 주심을 믿습니다. 바닥난 제 자리에 주님의 은혜가 흘러들게 하시고, 길에서 만나는 한 영혼에게도 정죄가 아닌 이 좋은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인용에 미세한 토씨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개역개정판 본문을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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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 설교 연결표 (이 판이 연구에서 가져온 것)
| 설교 요소 | 연구 근거 |
|---|---|
| "마침표가 없습니다" 후크 | 01·07 — δικαιούμενοι(현재 수동 분사)가 23절 πάντες를 그대로 받음, 헬라어 한 문장 |
| 중심 그림 "잔치 한가운데 바닥남" | 04 — ὑστερέω 용례: 요 2: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눅 15:14(탕자 '궁핍'), 막 10:21('한 가지 부족') |
| "지금도 모자라다" 현재형 강조 | 01·05·07 — ἥμαρτον(아오리스트)+ὑστεροῦνται(현재) 시제 대비; 모든 한국어 번역이 약화 → 설교자가 살림 |
| "빛나는 모습을 잃어버림" | 01·04·05 — δόξα 해석 (b)(형상의 영광 상실, Cranfield·Moo·Schreiner) + 공동번역의 그림 언어 |
| "내려다볼 수 없다" 평준화 | 01·03 — γάρ(차별 없음의 근거) + 1세기 명예-수치 문화에서 '전원 미달'=경쟁 무효화 |
| "값 없이 = 내가 안 냈다" | 04 — δωρεάν과 25절 '그의 피'의 한 단락; 값싼 은혜 차단 |
| "속량 = 빚 대신 갚아 풀어줌" | 03·04·06 — 1세기 노예 해방(manumission)의 일상 그림 + 델피 해방 비문군 |
| "너는 내 편이다" 선언 | 04 — δικαιόω의 법정적 선언 + 신적 수동 |
| 설교자 자기 고백 포스처 | 08 — 1903 원산(하디)·1907 평양(길선주): 부흥은 지도자의 자기 진단에서 |
| "바깥에서 온 아픔" 안전장치 | 11 — 통제 소재 연구(자책 결 청중 보호) + 욥기·요 9:3의 본문적 긴장 |
| "그분이 당신을 통해 다시 빛나십니다" | 12 — Soli Deo Gloria 닫음 지침; δόξα가 본래 '하나님의' 영광 |
| 요 2 그림의 절제된 사용 | 12 — 은유 단일화 지침; 풍유 아닌 동사 용례의 그림으로만 |
| 결미 '멀리 떠남' 씨앗(찬송 387) | 04·09 — 눅 15:14 동일 동사 + 어거스틴 '멀리 떠남'(고백록 1.18.28) → W4 연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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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연속성
- **W1(롬 1:16-17)**: 복음 = "내가 너에게 내려갔다". 예화: 게임기 초기화. 코다 A.
- **W2(행 17:24-28)**: 지으신 분이 먼저 곁에 오심. 예화: 깜깜한 방의 아기. 코다 B.
- **이번주 W3(롬 3:23-24, 연구재작성판)**: 가까이 오신 그분과 나 사이가 끊어져 있다 — "잔치 한가운데서 바닥나는 것"의 진짜 이유. 본문 자기 전개 + 경량 코다. 예화: 좋은 날의 허전함.
- **다음주 W4(눅 15:11-24 「달려오시는 아버지」)**: '바닥남'(궁핍, ὑστερεῖσθαι — 같은 동사!)을 정면으로 받아, 돌이키기 전에 먼저 달려오시는 아버지로 전개. 찬송 387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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