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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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6_긍휼히 여기는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f7oQMc7uoyE
Transcript:
(00:01)

제 6장 긍휼히 여기는 자

복이 있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7절

들어가는 말.

의에 굶지린 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를 간절히 찾지 않을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고자 할 때 불리한 사람들이 눈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의 죄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때 남을 정죄하고 미워하기 쉽습니다. 아까 싸우는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싸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악해지는 것입니다. 죄에 대신 사람을 미워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해 줄이고 목마른 자에 관해 말씀하신 후 긍휼히 여기는 자의 행복을 말씀하신 것은 뜻이 깊습니다. 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01:07)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리려이 마음이 저 마음을 증거합니다. 정의에 몰두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가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3절에서 11절. 그들은 죄를 미워하고 죄를 사랑해야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사랑하고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긍휼이란 무엇인가?

긍휼의 국어 사전적 의미는 불쌍하고 가게 여겨 도와줌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긍휼은 사랑의 한 국면입니다. 사랑은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의 발로입니다.
(02:09) 하나님의 사랑에는 새 국면이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 오래참음입니다. 타락한 후 더욱 풍부하게 드러났으니 죄 때문에 인간이 비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7절 의에 줄이고 목마르면서도 긍휼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표입니다. 의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긍휼히 여기는 것은 죄의 용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11절. 이것은 용서보다 넓은 의미입니다. 어떤 사태를 일체의 너그름 태도로 타인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보려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는 사랑입니다.
(03:06) 그가 겪는 비참과 고통이 제거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아이가 스스로 잘못해서 고통당한다 할지라도 엄마는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지 여기지 않습니다. 남들은 아이의 잘못을 말할지라도 엄마는 자식의 고통에 함께 아파합니다. 긍휼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비참하게 되었다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유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불행과 비참 아파합니다. 이것이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12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 귀진함이라. 마태복음 9장 36절
(04:16) 불쌍히 여기신이로 번역된 헬라어 에스프랑크니스페 에스에 에스프랑크니스는 창자에 이르기까지 감동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창자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이 말은 마음 깊은 곳이 떨리기까지 불쌍히 여기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으셨다라는 뜻입니다. 그 마음이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게 하였습니다. 진나라의 환논이라는 장수가 총나라를 정벌할 때의 일입니다. 군사들을 태운 배가 양강을 거슬러 올라가 삼협에 이르렀을 때 병사 중 하나가 나무에서 놀고 있던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사로잡힌 사로잡힌 채 배에 실려가는 새끼를 본 어미 온숭이는 백기쯤 강변을 따라가며 울부짖었습니다. 배가
(05:21) 포구에 멈췄을 때 어미 원숭이는 급히 배에 뛰어오르고는 이내에 죽어버렸습니다.이를 이를 본 병사들은 어미 원숭의 사인이 궁금했습니다. 배를 갈라 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울부짖으며 새끼를 따라왔던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포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단장의 슬픔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받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한편으로는 종교 지도자들의 그릇된 가르침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06:08) 예레미야서 2장 13절.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의 비참한 상태에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긍휼의 마음은 선악의 판단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용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기에 바르게 판단합니다.이는 슬퍼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A비의 마음입니다. 가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가 끌려왔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이 여자가 가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복음 8장 4절에서 5절 말씀. 죄를 미워하셨습니다.
(07:00) 그러나 사람은 사랑하셨습니다. 율법을 존중하면서도 그녀를 살게 할 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장 7절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놓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지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장 11절. 여인의 여인의 비참에 마음 아파 아프셨습니다. 죄는 미워하셨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

긍휼에 빚진 자의 삶.

어떤 사람이 일반 달란트를 비쳤습니다. 당시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인데 1 데나리온은 장정이 하루 교동에서 받을 수 있는 싹시였습니다.
(07:55) 일반 달란트는 장정 한 사람이 주 5오일 금으로 약 23만 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요즘 일당을 15만 원으로 잡으면 약 9조원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일평생 모아도 종으로 일해서는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빚을 탄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탄감받은 사람은 왕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길에서 자신에게 백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갚으라고 독촉했습니다. 백데나리오는 약 1500만 원 정도의 액수입니다. 자신은 큰 빚을 탄감받고도 조금 빚진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료를 감옥에 갇치게 했습니다.
(08:47) 마태복음 18장 30절 비웃끝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내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18장 33절.이 비유가 상기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진 죄의 빛을 탐감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절.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을 멀리 떠나 욕심대로 살았습니다. 어둠 가운데 그늘진 사랑을 우어지게 하여 비참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형벌이 두려워서입니까? 아닙니다.
(09:37)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비참하게 되었으나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무한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도서 3장 5절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언약 관계가 있습니다. 상호 약속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수시로 약속을 어겼습니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책임을 못고 관계를 끊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것이 없으십니다. 당신은 의롭고 우리는 불이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모질게 떠나도 변함없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10:31) 죄 때문에 멀리 떠난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만큼 의롭게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대신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것은 우리였지만 그 비참에 가슴 아파하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렇듯이는 사랑에 의해 완성됩니다. 마태복음 1장 19절. >>

긍휼로 천국의 질서를 보여 주십시오.

이 이 악한 세상에서 두 성품이 날카롭게 대조를 이룹니다. 인간의 포악과 하나님의 긍휼이 그것입니다. 가인은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11:20) 창세기 4장 8절.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가 에녹을 낳았습니다. 창세기 4장 14절 17절. 하나님 없는 가정을 꾸렸고 자손은 번성합니다. 세상 나라의 시작이습니다. 가인의 후손 남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4장 19절 말합니다.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창세기 4장 23절. 어떤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되었습니다. 일부러 그럴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 있습니다. 이에 대해 남맥은 살인으로 응징했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을 전하 말합니다. 가인을 위해서는 벌이 7배일지인데 남매기 위해서 벌이 70배 77배로다
(12:25) 하였더라. 창세기 4장 24절. 가인을 해친 자는 일곱배의 벌을 받았지만 자신을 해친 자는 77배의 벌을 받게 되리라고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심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전음성에 대해 어떤 생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포항만 보게 됩니다. 심판하신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은 교만입니다.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긍휼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알지 못하면 아무도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 사랑을 기억할 때만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13:14)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입니다. 세상이 악해질수록 더욱 빛나야 할 성품입니다. 파악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빛납니다. >>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날은 자비심 없는 시대입니다. 긍휼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빛납니다. 그들이 복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이것은 대가가 아닙니다. 긍휼 긍휼의 마음은 먼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에 이미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14:10)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긍휼에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계획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종교혁자 마르틴 부처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함으로 의롭다고 선언받은 것이다. 인생길을 돌아보십시오.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은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 덕분이었습니다. 용서하시는 은혜와 강건하시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다른 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9장 16절.
(15:06) 은혜의 깊 깊이는 그분의 긍휼을 경험한 깊이입니다. 그 경험에 강박한 마음이 높고 연약한 마음에 힘이 생깁니다. 간절을 딛고 다시 살아갈 희망이 쏟습니다. 이사야 40장 31절. 하나님의 긍휼은 하늘문을 여는 것입니다. 쏟아지는 찬란한 빛으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영혼을 가진 위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염려하면서 사는 것은 자기가 소중한 존재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산 것도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긍휼히 여겨 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둠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16:03) 어둠 속에서 무너졌을 것입니다. 슬픔 속에 절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눈물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그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심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밤담 적시며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십시오. 철근거리 철그렁거리는 죄의 사술에 묶긴 채 낯선 비의 땅으로 저멀리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때를 생각하십시오. 어떻게 자유를 주셨는지를 회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쌍히 여겨 주셨는지를 기억해 보십시오. 사랑받기 원하십니까? 불쌍히 여김을 받고 싶으십니까? 가까이 있는 가없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우리 인생은 타인의 삶과 함께 직조되는 옷감과 같습니다.
(17:05) 그래서 인생은 가끔 자기 바깥에서 전개되어 갑니다. 나를 위해 살았는데 내 인생이 아니었다는 말도 남 위해 살았는데 내 인생이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나 없이 다른 사람들만 다른 사람들 다른 사람들 없이 나만 잘 사는 삶은 없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는 고독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일 쓰러질 들풀도 오늘 생명을 누리듯이 오늘을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분해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애롭지 않습니다.
(17:53) 이미 그가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비참한 자를 대할 때 긍휼로 나타납니다. 경건한 자는 죄를 생각할 때 떨게 되고 죄인을 대할 때 가슴이 미워집니다. 왜냐하면 죄가 가져가 가져다 준 비참한 결과를 죄인 죄인에게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나와 타인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다리와 같으니 남의 비참이 곧 자신의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를 경외하는 것이 곧 은혜의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슬픈 자의 위로자가 되십시오. 그느끼는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그가 홀로 있지 않음을 느끼기 전에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먼저 느끼게 될 것입니다.
(18:46) 당신은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 어떨 때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어떨 때는 그리하지 아니 않으시는가? 그러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영원한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사랑이시기에 변함 없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대적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뉘우칠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비참을 깨닫고 주저 앉을 때야 하나님의 팔이 자기 어깨에 얹힌 것을 느낍니다. 얼마나 긍휼히 여기셨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사랑이셨습니다.
(19:36)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사랑이셨습니다. 아직 사랑하실 사람이 없을 때조차도 삼일체 하나님은 위격간에 서로를 사랑하심으로 사랑이셨습니다. >> 영혼자는 긍휼히 여길 대상이 없었고 창조된 후 복된 상태에 있을 때도 비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자 인간은 비참하고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세상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비참은 바이 되어 긍휼이라는 별들을 찬란하게 하였습니다. 비참의 검은 주단 위에 긍휼의 보석이 빛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셔주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맺는 말.

받은 사랑이 있어야 나눌 사랑이 있는 범입니다.
(20:38)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이제껏 살아온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보람은 남을 위해 사는데 있고 그렇게 산 사람을 어렵지 않습니다. 최고의 감동은 비참의 처지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죽은 자처럼 있을 사람은 산자가 산자로 살게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비참한 자에게 어줍니다. 보욕과 수치를 뒤집었쓴 채 젖은 집단을 태우듯 살아가던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전놈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남도 전놈하게 여기기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이 비참한 세상이 어찌 다른 세상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생애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일생이었습니다.
(21:37) 죄인의 비참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뒤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비참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 앞에 흘린 눈물은 면류관에 박힌 보석이 될 것입니다. 아멘.
긍휼히 여기는 자 한 눈에 보는 6장
1. 들어가는 말
의에 줄이고 목마른 사람들은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했쓴다.
그때 불리한 사람들을 정제하고 미워하기 쉽다.
그러나 의를 추구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상충되지 않는다.
오히려 긍휼함의 유무로 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참된지가 가려진다.
2. 긍휼의 의미
긍휼은 오래참음 자비와 함께 사랑해 한 국면이다.
고통받는 자의 비참과 고통이 제거되기를 바라는 사랑이다.
예수께서는이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 복되다고 하신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7절.
그렇지만 긍휼이 죄까지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죄는 미워하나 죄인은 사랑하는 것.
이것이 참된 긍휼이다.
3.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하나님은 큰 죄를 용서하셨다.
큰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타인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렇게 긍휼히 여길 때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긍휼 덕분이다.
하나님은 긍휼을 통해서 다시 살아갈 은혜를 주셨다.
강팍한 마음은 높고 연약한 마음에 새힘이 생겼다.
그래서 은혜의 깊이는 그분의 긍휼을 경험한 깊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타인을 불쌍히 여겨라.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긍휼에 있다.
4. 맺는말.
받은 사랑을 보라.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가.
그만큼 당신은 소중한 존재다.
타인도 그러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라.
그러면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 아멘. >> 아멘. Д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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