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찾음

성령강림(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다(12-13)

오늘 본문말씀 12절을 보시면요,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주님! 저에게 이 백성을 인도하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나와 함께 갈 자를 지시하지 않으십니까? 주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모세가 말하는 하나님의 앞에 은총을 입었다, 13절 앞에 부분에서는 주의 목전에, 그러니까 눈 앞에 은총을 입었다,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히브리어를 의역, 그러니까 우리나라 말에 맞게끔 바꾼 것인데요.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면, “주의 시야에 있는 은총을 찾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시야에 있는 은총을 찾은거니까, 하나님께서 모세게 은총을 주신 건 맞습니다. 그러니까 “은총을 입었다”라는 표현 자체가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의 뉘앙스로는 기본적으로 모세가 “은총을 찾았기” 때문에 모세는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럼 문제는 이것이죠. 모세는 무슨 은총을 찾은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란 무엇인가요? 본문말씀 13절 말씀을 보시면, 모세가 직접 그 은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은총을 찾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길을 제게 보여주시고,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해주십시오!” 모세가 찾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 즉 하나님께서 품으신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곧 은총이라는 것이죠.
이 모세가 찾는 것에 응답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모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체 어떤 분이신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다음장인 34장 6-7절에 말씀하고 있는데요,
Exodus 34:6–7 NKRV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이 말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다, 벌을 안 주시지는 않는데, 벌보다는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특히 시편 103편에서는 이 장면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시편 103:10에
Psalm 103:10 NKRV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죄를 처벌하시는데,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모세에게 전하신 것입니다.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하죠. 사람이 잘못을 범하면 그 잘못한 그대로 복수하듯이 처벌하는 관습, 동해복수법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700년 즘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 등에도 등장하는 아주 오래된 법이기도 한데요,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처벌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을 자세히 살펴보면요, 실제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해당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Leviticus 24:19–20 NKRV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아니, 아까전에는 죄를 범한 그대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시고서는, 왜 율법에서는 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을 하신 걸까요?
율법에서 이야기하는 동해복수법은 그 이름처럼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공평함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레위기말씀에서 바로 뒤에 나오는 같은 장 22절에 보시면, 이 법을 외국인이든지,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이든지 똑같이 적용하라 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지인이 와서 이스라엘 사람한테 피해를 입어도 공평하게 처리하라는 말씀인 거예요.
실제로 똑같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동해복수법이 있는 함무라비 법전은요 공평하지 않고 오히려 귀족, 평민, 노예 신분에 따라서 피해가 달라집니다. 귀족이 평민에게 때리거나 다치게 하면 돈으로 물고 끝나게 하는 법이 적혀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 중에 거하는 나그네를 함부로 해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공평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법은 사람들끼리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는 법이었어요. 다만 하나님께서 죄를 그대로 보복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복수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죄를 지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에요.
또한 이 율법은요 예수님 시대에 와서 완전한 율법이 됩니다. 마태복음 말씀을 보시면,
마 5:38-39 사람의 죄를 그대로 보복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께서 나타내심. 죄를 당하면, 그 죄악을 반복해서, 즉 복수해서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끊어내는 것.
Matthew 5:38–39 NKRV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이것은 사람의 죄를 그대로 보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당했을 때에, 그것을 똑같이 복수하려고 하면, 복수한 사람도 그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죄를 당했다고 나도 그 죄를 범하면, 피해자 또한 죄인이 되버리지 않습니까? 결국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뜻은 계속 복수해서 죄를 더 키우지 말고, 사랑으로 끊어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와서요, 모세가 찾았던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뜻, 다른 말로는 모세가 찾은 하나님의 은총은 무엇입니까? 죄가 또 다른 죄를 낳고, 그 죄가 또 다른 죄를 낳는 이 죄악의 고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끊어내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본문말씀 13절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렇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진 백성이 되는 것이 바로 모세가 찾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살다보면, 저희도 남들에게 뭔가 불합리하거나 좋지 못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보면, 뭔가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죠,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회개해야할 때가 차 운전할 때입니다. 저도 이번주에 일이 있어서 제천 영월도 다녀오고 영동에도 다녀오고 했는데요, 그렇게 운전할 때마다 보면 꼭 칼치기로 끼어들거나, 아니면 고속도로에서 굳이 1차선으로 천천~~히 가고 있는 차들 보면, 화가 막 나면서 “앞으로 딱 가가지고 브레이크를 확 밟아버릴까보다 그냥”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참았지만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그랬다가 사고라도 나면, 더 안좋은 일로만 키우게 됩니다. 죄가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죄와 악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은총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처럼, 저희 또한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죄를 또 죄로 갚아서 더 큰 악을 만드는게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저희로 하여금 찾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본문말씀 13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Exodus 33:13 NKRV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총, 즉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찾아나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14-15)

본문말씀 14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친히 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친히 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내가 너를 쉬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가시면 모세를 쉬게하신다는 건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신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왜 모세를 쉬게 하는 일이 되는 걸까요? 모세가 혼자 백성들을 인도하는게 힘드니까 가신다는 걸까요? 애초에 백성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거잖아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쉬다 라고 하는 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왘흐(נוּחַ)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쉬다, 정착하다 라는 뜻을 가지는 데요. 특히 이 쉰다 라는 것은 짐을 덜어내어서 쉬게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짐이라고 하는게 봇짐처럼 물리적으로 짊어지는 짐도 있지만, 마음의 짐이라고 하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나왘흐, 쉬다 라고 하는 동사는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를테면 이사야 말씀에
Isaiah 14:3 NKRV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슬픔과 곤고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신다, 라고 할 때 이 안식을 주다는 표현에서 나왘흐 라고 하는 단어가 쓰이게 됩니다.
그럼 모세에게 주어진 마음의 짐이란 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말씀 앞에 등장하는 구절인 2-3절을 보시면요,
Exodus 33:2–3 NKRV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가나안,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 등등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족속들이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시긴 할 건데, 하도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원망을 해대니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신다고 선언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본문말씀 15절 말씀에 “주님께서 친히 가시지 않으면 우리를 여기서 보내지도 말아주옵소서!”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히 오시는 것,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죠. 모세의 마음의 짐, 가나안 땅에 있는 여러 족속들을 걱정하는 그 근심 걱정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쉬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는 것이 바로 모세가 찾는 것입니다.
유명한 말씀이죠, 다윗이 쓴 시인 시편 23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Psalm 23:4 NKRV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죽을 것만 같은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도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지켜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는 것, 저희가 걷는 이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가 당할 여러 피해로부터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라는 것입니다.
몇 번 말씀드린 적은 있지만, 저도 이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특히 제가 신학과 목회가 아니라 다른 길로 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 막으시는 걸 경험했어요. 한참 음악을 열심히 할 때에 “신학교 때려치고 음악이나 해볼까?”생각해서 열심히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했었는데, 코로나가 금방 터지는 바람에 막혀서 못하게 되었어요. 또 한참 컴퓨터 공부를 할 때는 “일본으로 해외 취업을 해서 돈이나 벌어야 겠다”했었는데, 해외 취업을 도와주는 기관이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못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도망쳐왔을 때는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그냥 다른 일을 알아볼까?”했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다시 돌아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하려고 하는 일마다 다 막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제가 가야할 방향을 잘 제시해주고 계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또 하나님께 제가 할 일을 찾았을 때 주신 비전인 목회자의 길로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딴 길로 새지 않도록, 위험한 길을 가지 않도록인도하시고 보호해주고 계셨던 거죠.
본문말씀 1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Exodus 33:14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을 따라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와 주의 백성(16-17)

마지막으로 본문말씀 16절 말씀부터 보시면요,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저와 주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을 찾은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약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저와 주님의 백성들을 천하 만민 중에서 구별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17절에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할 것이다”라고 답변하십니다.
여기서 앞선 구절들과는 중요한 전환점이 등장합니다. 12절부터 15절까지는 모세가 “나”에게 은총을 찾았다고 하셨다, “내게” 주님의 길을 보여주소서 등등 모세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등장하는데요, 16절에는 어떻습니까? “나와 주의 백성”으로 이야기하면서 모세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은총을 찾은 사람들임을 보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모세에게 “네”가 말하는 이 일도 하겠다. “너는” 내 목전에서 은총을 찾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가 하나님을 찾은 것과 같이 백성들에게도 은총을 입은 줄을 보여주시긴 할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하나님 앞에 개별적으로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모세 한 명이 하나님 앞에 은총을 찾았고, 또한 모세를 이름으로도 알고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뻐서 그러신다는게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고 하시는 겁니다. 실제로 본문말씀 앞에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세워서 예배드리기도 하는 등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구원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긴 할 건데 같이 안가겠다는 말씀도 하신거죠.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찾았고, 또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은총을 찾게 해달라고 간청하니까 이 백성들을 함께 천하 만민 중에서 구별된 백성으로 세워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한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구원을 받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예수님이죠.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서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믿는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 등장한 이야기 중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다가 밤새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떠니 지진이 나서 문이 다 열리고 갇혀있던 모든 사람이 다 풀려나게 되었거든요. 그 모습을 본 간수가 큰일났다 싶어서 자결하려고 했을 때, 바울과 실라가 그 사람을 말렸습니다. “우리가 도망가지 않고 다 여기 있으니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그러자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면서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Acts 16:31 NKRV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 말을 들은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집으로 초청했을 때, 정말로 그 간수의 모든 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게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간수 한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온 집안이 함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항상 어렸을 때부터 “너는 6대째 신앙인이다”이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저의 아버지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처음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믿기 시작한 분들을 통해 저까지 이렇게 믿음의 계보가 내려오게 된 것인데요. 그 신앙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믿음이 전혀 없던 집안에 시집을 온 믿는 여성들이 그 집안에 복음을 전하고, 또 그 딸들이 시집을 가서 복음을 전해서 주로 유교의 뿌리가 깊었던 집안에 복음을 뿌리내리게 해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온 집안을 구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의 믿음은 그저 저희 만의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을 통해서 점점 더 퍼져나가는 믿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찾기를 바랐던 것처럼, 우리가 받은 믿음을 꽁꽁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널리 퍼뜨려나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총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찾는 것입니다. 죄를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으시고 또한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찾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나 힘든 길을 지나갈 때에 하나님을 찾고, 또한 하나님을 찾을 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는 믿음은 혼자 갖는 것이 아니라 퍼져나가는 믿음입니다. 모세가 백성을 구원하려고 했던 것 같이, 바울이 간수와 그 집안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한 바와 같이 우리의 믿음이 많은 이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믿고,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모세가 하나님의 은총을 찾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찾고, 또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찾고, 그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세계 열방에 전해나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