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길라와 아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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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제목: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본문: 사도행전 18장 24-28절
본문: 사도행전 18장 24-28절
찬송: 465장 주 믿는 나 남위해
찬송: 465장 주 믿는 나 남위해
말씀의 문을 열며: 움켜쥔 손을 펴는 감사
말씀의 문을 열며: 움켜쥔 손을 펴는 감사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감사의 토대 위에 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감사의 고백이 마르지 않는 삶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형편이 어떠하든지 주님 안에서 감사의 조건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감사의 이유를 찾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리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고백하는 감사는 참된 감사가 될 수 없으며, 성경이 말하는 진짜 감사는 언제나 우리의 구체적인 몸과 발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고마움을 뜻하는 한자 '사례할 사(謝)'를 가만히 살펴보면 말씀 언(言)과 몸 신(身), 그리고 마디 촌(寸)이 합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참된 감사가 단순히 입술의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마디마디를 통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삶의 고백이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참된 감사의 의미 역시 단순히 입술의 미사여구가 아니라, 내가 쥐고 있던 움켜쥔 손을 활짝 펴서 상대방을 향해 기꺼이 내미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나를 위해 움켜쥐고 살던 손을 펴서 이웃을 향해 내밀 때, 비로소 주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 진실함으로 증명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삶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손을 활짝 펴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구원받은 우리의 감사 역시 펴진 손과 발의 구체적인 헌신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여 일평생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손과 발을 기꺼이 내어 드렸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소박하고도 위대한 삶의 태도를 묵상하며, 우리 역시 그러한 은혜의 통로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명예를 지키준 사랑
명예를 지키준 사랑
오늘 본문 26a절은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라고 증언합니다. 당시 에베소에 이른 아볼로라는 유대인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학식이 높고 언변이 뛰어났으며 구약 성경에 아주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는 뜨거운 영적 열정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고 있었기에,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깊은 은혜와 부활의 영광에 대해서는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지식은 불완전했고, 그가 회당에서 선포한 복음은 아직 미완성에 불과했습니다.
이때 회당에 앉아 그의 설교를 듣고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단번에 아볼로의 미흡함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들 부부는 위대한 사도 바울 밑에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복음의 정수를 체계적으로 배운 성숙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아볼로의 불완전한 설교를 들었을 때, 그들 부부에게는 그것을 현장에서 즉시 바로잡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회당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아볼로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며 자신들의 신학적 우월함을 뽐내거나, 아볼로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른 이의 부족함을 보았을 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공적인 자리에서 들추어내어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부부는 비판의 유혹을 이겨내고 조용히 침묵하며 절제했습니다. 그들은 회당의 수많은 유대인 앞에서 아볼로의 명예와 영혼을 먼저 지켜주었습니다. 지식의 부족함보다 그 청년이 가진 복음의 열정을 먼저 귀하게 여겼고, 공중 앞에서 그의 인격을 소중하게 대우했습니다. 부족함을 보았을 때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빼어 들지 않고, 오히려 그 부족함을 조용히 감싸 안아주는 인격적인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는 성숙한 신앙의 품격이며,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온몸으로 맞이하는 따뜻한 밥상
온몸으로 맞이하는 따뜻한 밥상
본문 26b절은 이어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라고 증언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회당 예배가 끝난 후, 아볼로를 자신들의 처소로 조용히 인도했습니다. 여기서 "데려다가"라는 말은 단순히 장소를 이동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가정으로 영접하여 친밀하게 맞아들였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대 문화에서 누군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넘어 먼지 묻은 발을 씻겨주고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는 따뜻한 몸의 환대를 수반하는 고된 섬김이었습니다.
이러한 몸의 환대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뜨거운 대낮에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길을 지나던 낯선 나그네 세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 더운 광야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덥고, 지치고, 없는 일을 만들어 해야 하는 불편함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불편함을 게의치 않고 나그네들을 보자마자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거친 발을 씻기게 하고, 아내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로 정성껏 떡을 만들게 했으며, 하인들을 시켜 가장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던 이 위대한 사건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과 발을 내어놓아 온몸으로 나그네의 발을 씻겨주고 음식을 차려낸 구체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이 환대를 통해 아브라함은 이삭을 약속 받게 되었습니다. 25년 동안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이 질 것이라”는 약속이 멈춰 있었는데 이 환대를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미래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형편이 좋든 나쁘든지간에 누군가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물꼬를 트게 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원래 안식일 후 다음 날에 시작될 고된 천막 제조 일을 위하여 마땅히 쉼을 얻고 안식해야 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곧바로 거친 일터로 나아가 가죽을 만지고 자르고 꿰매며 온종일 몸을 써서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고달픈 이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의 모임이 끝나고 피곤하고 지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마땅히 누려야 할 육신의 휴식과 권리를 기꺼이 접어둔 채 아볼로를 자신들의 처소로 영접하여 대접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피로가 몰려오는 거친 손과 발을 이끌고 청년 아볼로를 향해 가만히 손을 뻗어 그의 더러워진 발을 씻겼으며, 정성껏 따뜻한 밥상을 차려 내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댁을 심방하다 보면 가끔 손때가 묻어 닳아지고 녹슬어 무뎌진 호미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다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녹슨 호미라도 농부의 손에 붙혀지면 잡초를 뽑아내고, 정성스럽게 기른 농작물을 캐내게 해줍니다.
배움으로 따지면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보다 훨씬 더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배움이 조금 짧고 그들의 손과 발은 비록 투박하고 닳아진 도구에 불과했을지라도 지혜롭고 자애로운 주님의 손에 쥐어질 때 생명을 살리는 귀한 하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아볼로에게 영적인 진리를 입으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기 전에, 이미 따뜻하게 대접한 밥상과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입술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삶의 행동으로 전하는 신행일치의 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온전한 몸의 환대에 깊이 감동한 아볼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결국 에베소를 넘어 온 초대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가장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생명을 연주하는 하늘의 노래
말씀의 문을 닫으며: 생명을 연주하는 하늘의 노래
구원의 큰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이제 우리 역시 다른 이의 부족함을 정죄하는 날카로운 입술을 거두고 비판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공간과 가정을 열어 고되고 힘든 자리에 기꺼이 우리의 손과 발을 내어밀어 따뜻한 환대의 기지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더러운 죄인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형벌에 당신의 거룩한 손과 발을 완전히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손을 펴서 못 박히셨기에, 그 큰 사랑을 입은 우리 역시 이제는 움켜쥔 손을 펴서 연약한 지체의 발을 기꺼이 씻겨주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대단한 형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인생을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게 연주하실 주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릴 때, 우리의 손과 발은 세상을 치유하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될 것입니다. 교회의 고되고 힘든 봉사의 자리에,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의 자리에 우리의 몸을 기꺼이 내어놓음으로 이 어두운 세상에 거룩한 하늘의 향기를 드높이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평생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하노라 고백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삶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의 게으름과 거짓된 신앙을 이 시간 정직하게 회개합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부족함이나 허물은 쉽게 판단하고 지적하여 마음의 상처를 주면서도, 정작 그 영혼을 품기 위한 우리의 손과 발은 움켜쥐고만 있었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원하옵기는, 오늘 말씀을 묵상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보았을 때 공적인 자리에서 망신을 주거나 정죄하지 않고, 비판을 절제하며 조용히 허물을 덮어주는 성숙한 인격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사적인 삶의 공간을 기꺼이 열어 고단한 이웃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손과 발의 구체적인 섬김을 실천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교회의 고되고 힘든 구석구석의 자리마다, 주방에서 국수를 삶고 예배당을 청소하며 차량을 안내하는 힘겨운 자리마다 기꺼이 자신의 닳아진 손과 발을 내어놓는 진정한 환대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거친 손과 발이 영원하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우리 중앙교회를 통해 이 지역 사회와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따뜻한 품을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살리시려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