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4 효신 중고등부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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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 죽으나, 나의 유일한 위로(롬14:8, 롬8:28)
사나 죽으나, 나의 유일한 위로(롬14:8, 롬8:2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도입(그렇게 많은 말을 듣는데도 왜 우리는 불안할까요?)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님의 말을 듣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의 말을 듣고, 친구들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쇼츠와 릴스를 통해 또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요.
"공부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 "내신이 중요하다." "외모를 관리해야 인정받는다." "친구가 많아야 인기 있는 사람이다." "팔로워가 많아야 영향력이 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행복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그렇게 많은 말을 듣는데도, 마음은 편안해지기보다 오히려 더 불안해질 때가 많아요.
시험 기간이 되면 "혹시 이번에 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밀려오고, 친구들과 조금만 어색해져도 "혹시 나만 따돌림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SNS를 보다 보면 다른 친구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부족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믿음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실망스럽게 보시면 어떡하지?' '나는 정말 구원받은 걸까?'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불안한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사실 이런 고민은 우리 시대 청소년들만 하는 고민이 아니에요.
무려 450년 전에도 똑같이 불안해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시험도, 친구 관계도 아니었어요.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실까?' '최후의 심판에서 나는 버림받는 건 아닐까?'
이 질문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당시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내가 선한 일을 충분히 해야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시겠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벌을 받겠지.' '나는 아직도 부족한데 정말 괜찮을까?'
늘 불안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놀라운 선물을 하나 주셨어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에요.
신기하게도 이 책은 첫 질문부터 "더 열심히 살아라", "더 착하게 살아라"로 시작하지 않아요. 오히려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요.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누군가 여러분에게 "너를 가장 든든하게 붙잡아 주는 것이 무엇이니?"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짜 흔들리지 않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려 주시려고 해요.
C1. 왜 하필 위로부터 시작했을까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든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정말 잘 이해했던 것 같아요. 사람은 지식이 부족해서만 힘든 존재가 아니라, 마음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힘든 존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450여 년 전 유럽의 성도들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예배를 드리러 성당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당 안에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무서운 그림과 조각들이 가득해요.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 모습, 죄인들이 벌을 받는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혹시 저 사람이 내가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두려워했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하기보다 불안함 속에서 살아갔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다시 펼쳐 보았어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성경은 "너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너를 위해 모든 값을 치르셨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첫 질문은 이렇게 시작해요.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대답은 정말 놀라워요.
"사나 죽으나 나는 내 것이 아니고,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다."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
여러분이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끝까지 찾으려고 할 거예요. 그것이 내 것이기 때문이에요. 하물며 우리를 자기 피 값으로 사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겠어요.
우리가 잘해서 예수님의 것이 된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위로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가 아니에요. 우리의 위로는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예요.
시험 점수가 잘 나와도, 기대보다 낮게 나와도 예수님의 것이에요. 친구가 많을 때도, 외롭다고 느껴질 때도 예수님의 것이에요. 칭찬받을 때도, 오해받을 때도 예수님의 것이에요.
살아 있을 때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상황도 예수님과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어요.
여러분의 정체성은 성적표가 결정하지 않아요. 친구들의 평가가 결정하지 않아요. SNS의 '좋아요' 숫자가 결정하지 않아요.
우리의 진짜 정체성은 오직 하나예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C2.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라는 가장 놀라운 위로(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세상은 계속 "너 자신이 주인이 되어라."라고 말해요.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로 말해요.
"너는 네 것이 아니다."
이 말만 딱 떼어 놓으면 왠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말이 엄청난 위로라는 걸 알게 돼요.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 본 적 있나요? 비행기 안에 탔는데 갑자기 기장이 이렇게 방송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 오늘은 제가 운전하지 않겠습니다. 각자 알아서 조종해 주세요."
아마 다들 공포에 빠질 거예요. 비행기는 전문가가 조종해야 하니까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실패를 경험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어요. "나는 내 것이다."라는 말은 자유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모든 책임을 내가 혼자 져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이기도 해요.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이 고백이 위로가 되는 거예요.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내가 넘어질 때도 주님이 아시고, 내가 울 때도 주님이 아시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까지도 주님이 알고 계신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렇게 고백해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카락 하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질 수 없으며, 참으로 모든 것이 나의 구원을 위해 합력하여 역사합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 머리카락이 몇 개 빠지는지 세어 본 적 있나요? 아마 없을 거예요. 너무 작고 사소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까지도 아신다고 말씀하세요.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밀하게 돌보신다는 뜻이에요.
여러분이 오늘 학교에서 속상했던 일도, 혼자 집에 와서 눈물 흘린 일도,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도 다 알고 계세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이해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시험을 망칠 수도 있고, 친구에게 상처받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일조차도 헛되게 버려 두지 않으세요.
"모든 것이 나의 구원을 위해 합력하여 역사합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성공도, 실패도—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모든 것을 당신의 자녀를 더욱 예수님 닮게 하시고 선한 길로 이끄시는 데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붙드는 것은 단 하나예요.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C3. 이 놀라운 위로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왜 현실에서는 자꾸 불안할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질문도 놓치지 않아요.
"이 위로 가운데서 행복하게 살고 죽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대답은 세 가지예요.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 둘째, 그 모든 죄에서 어떻게 구원받는지 아는 것. 셋째,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
여러분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몸속에 큰 병이 숨어 있었다면 어떨까요? 잠시 마음은 편할 수 있겠지만, 결국 더 큰 위험을 맞게 될 거예요. 반대로 병을 정확히 발견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준다면, 그 진단이 진짜 희망이 되는 거예요.
신앙도 똑같아요.
먼저 우리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아야 해요. 친구들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할 때, 내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할 때, 미워하고 질투하고 용서하지 못할 때—우리는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죄는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두 번째가 필요한 거예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고, 우리 대신 값을 치르셨어요. 우리는 내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감사는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에요.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맺는 열매예요.
복음은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께서 먼저 너를 사랑하셨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거예요. 이미 예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기꺼이 주님을 따라가는 거예요.
죄를 알고, 구원을 알고, 감사를 배우는 삶.
이 세 가지를 알아 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될 거예요.
"정말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정말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구나."
그리고 그 사실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는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적용(여러분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을 함께 살펴보았어요.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성적이 나의 위로인가요? 친구들의 인정이 나의 위로인가요? 좋은 대학, 돈, 사람들의 칭찬이 나의 위로인가요?
그것들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해요.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해요. 하지만 예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세요.
"사나 죽으나 나는 내 것이 아니고,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시험을 잘 봤을 때도, 망쳤을 때도. 친구들과 웃고 있을 때도,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낼 때도. 칭찬을 받을 때도, 실수해서 낙심할 때도.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어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번 한 주를 살아가면서 힘들고 불안한 순간이 찾아오면, 오늘 배운 이 한 문장을 마음속으로 꼭 고백해 보세요.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 고백이 여러분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주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참된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하는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합심기도
자, 이제 오늘 말씀을 마음에 품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어요.
눈을 감아 주세요.
오늘 우리는 이 한 가지 사실을 배웠어요.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각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 보아요.
혹시 요즘 성적 때문에 불안한 친구 있나요? 친구 관계 때문에 힘든 친구 있나요?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친구 있나요? '나는 정말 구원받은 걸까?' 하고 흔들리는 친구 있나요?
그 마음 그대로, 지금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요. 죄를 알고, 구원을 알고, 감사를 배우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세요
우리 함께 기도해요.
(잠시 묵도)
이제 각자 마음속으로, 또는 조용히 입술로 기도해 보아요.
"주님, 저는 오늘 배웠어요. 저는 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자꾸 불안해요. 성적 때문에, 친구 때문에, 미래 때문에 두려워질 때가 많아요. 주님, 오늘 이 고백이 제 마음 깊이 뿌리내리게 해 주세요. 제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라는 사실이 저를 붙들어 주게 해 주세요."
(잠시 기다림)
이제 전도사님이 대표로 기도할게요. 마음을 모아 주세요.
마침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예배의 자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셨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이 놀라운 위로를 오늘 우리 친구들의 마음에 새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 한 주를 살아가는 동안 진짜 힘이 되는 말씀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정성껏 드려진 예물도 주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이 예물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이게 해 주시고, 드린 친구들의 마음 위에도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아파서 못 온 친구도, 여러 사정으로 예배의 자리를 잃어버린 친구들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친구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도 주님이 함께해 주시고, 다음 주에는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며 섬겨 주신 선생님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선생님들 스스로도 늘 기억하게 해 주시고, 섬기는 자리에서 지치지 않도록 주님이 먼저 채워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지금 이 예배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우리 친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학교로,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마다 오늘 들은 말씀이 함께하게 해 주시고, 불안한 순간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라는 고백이 이 친구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는 닻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한 주를 시작하는 이 친구들의 앞길을 주님이 앞서 걸어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