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 받는 자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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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μακάριοι οἱ πεινῶντες καὶ διψῶντες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ὅτι αὐτοὶ χορτασ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ἐλεήμονες, ὅτι αὐτοὶ ἐλε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καθαροὶ τῇ καρδίᾳ, ὅτι αὐτοὶ τὸν θεὸν ὄψ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

μακάριοι οἱ δεδιωγμένοι ἕνεκεν δικαιοσύνης,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μακάριοί ἐστε ὅταν ⸉ὀνειδίσωσιν ὑμᾶς καὶ διώξωσιν καὶ

εἴπωσιν πᾶν πονηρὸν καθʼ ὑμῶν ψευδόμενοι ἕνεκεν ἐμοῦ.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ὅτι ὁ μισθὸς ὑμῶν πολὺ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οὕτως γὰρ ἐδίωξαν τοὺς προφήτας τοὺς πρὸ ὑμῶν.

그리고 무리를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산속으로 올라가셨고,
앉으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분의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르시기를
복이 있도다, 그 심령에 파산 선고 받은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이여.
왜나하면 그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긍흘히 여기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율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그 마음에 있어서 청결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 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할 때 복이 있도다, 너희들이여. 기뻐하고 즐지위하라.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너회 전에 있던 그 선지자들도 그렇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KNJ 사역)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09_박해 받는 자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o35UxLacmYk
Transcript:
(00:02)

제 9장 박해받는 자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오고 있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10절

들어가는 말

죄가 들어온 후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세상에는 다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목과 갈등, 분노와 억압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지자 평화롭게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연 만물도 함께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옵니다.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첫걸음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평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서 4장 2절.
(01:01) 복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세상 권세를 잡은 마귀에게는 나쁜 소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백성들은 서로 다른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두 질서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박해가 일어납니다.

박해란 무엇인가?

국어 사전적으로 박혈란 약한 처지의 개인이나 세력을 억누르거나 괴롭혀 해를 끼침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에 박해받는 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믿음이나 신념을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히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 디오코에서 온 것입니다. 신자의 부독한 행실이 사람들의 입에 오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가 불법을 저질러 법정에서 심판을 받기도 합니다.
(01:57) 이것은 박해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보상이 없습니다. 제가 있어 매를 막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베드로전서 2장 20절. 네. >> 진정한 의미에 박히는 하네 네. 진정한 의미에 박히는 하나님 나라의의 때문에 받는 고단을 가르킵니다.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0절.은 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상태입니다. 이때 의는 담과 같이 정의됩니다. 인간의 의한 하나님의 성품의 반영으로서 인간의 을한 하나님의 성품의 반영으로써 사람의 내면 세계와 외면 생활이 하나님의 뜻에 완벽히 합치된 상태이다.
(02:53) 박해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를 위해서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치되기를 힘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기에 바퀴를 받습니다. 이것은 먼저 신자 안에서 경험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두 개의 자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를 따라 살고자 하는 욕망과 성령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의지가 대립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는 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은혜가 사라질 때 욕망이 렸 느껴집니다. 그은 하나 한 마음 안에서 서로 싸움질하며 고통을 줍니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나를 산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심에 내가 근심하나이다.
(03:48) 시편 30편 7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로마서 7장 23절. 의를 위한 고통은 마음의 갈등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상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흔히 예수 믿으면 세상 만사가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도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 어떤 고통은 원인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세상 것들을 누리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04:34)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 관계는 하나님 사랑의 질서를 따릅니다. 신자의 마음은 진리와 성령으로 변화됩니다. 구원과 함께 삶에는 새로운 질서가 도익됩니다.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질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그것이 세상 나라의 질서와 충돌하면 저항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막해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서 다른 방식의 삶을 살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집단에서 따림을 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불익을 받거나 심지어 형벌에 처해지기도 합니다. 이로서 신자는 자신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이 없다면 밖에 굴복할 것입니다.
(05:25)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면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날게 느껴질수록 하늘나라는 친숙해질 것입니다. 밖에 받을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은 커질 것입니다. 의를 위해 박를 받을 때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됩니다. 의에 줄이고 목마는 사람이 추구하던 것이 그 나라의 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따라 살기에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핍법받아 흘린 눈물은 세상 사람으로 얼룩진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 줍니다. 맑은 마음으로 천국을 소망하게 만들어 줍니다. 울음속에 하나님이 함께해 위로해 하나님이 함께해 위로해 주십니다. 마태복음에서 박해라는 주제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06:22) 당시 초기 교회 공동체가 현재적으로 받고 있던 고난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들은 동적인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으면서 그런 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도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신자를 박해하는 세상

세상이 그리스도를 받게 했으니 신자도 박해받지 핍박받지 않겠습니까? 희생과 고난 없이 예수를 따를 수 없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9장 23절과 24절 핍박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박해의 피로 쓰여진 역사입니다. 원래 성경책의 모 모서리에 모서리가 붉은색으로 칠해졌을졌던이 이유입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박해받았습니다.
(07:23)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빼앗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습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헤롯이 동세계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일에 불이함을 지적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절과 4절 그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은 춤을 주었습니다. 헤롯은 그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는 어미의 지시를 따라 세례 요한의 목을 소반에 얹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 8절. 세례 요한은 목목배임을 당했습니다. 요한은 헤롯의 정적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헤롯의 불리를 꾸짖었을 뿐입니다. 그냥 선지자로서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08:12) 그러나 헤롯은 그를 죽였습니다. 우리가 의를 추구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싫어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세상과의 갈등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6절 38절. 세상 사람들과 다른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희생할 대일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중국에서 한 노 목회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그리스도를 만나 목회 헌신하였습니다. 문화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신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목회자들은 가혹한 고문 끝에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긴 채이 목회자는 약 15년 동안 수영소에서 죽음 같은 세월을 이어갔습니다.
(09:03) 그동안 가족들과 단 한 번도 면에는 물론 서신 왕내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만기 출소한 후 고향 집에 돌아왔습니다. 교회는 이미 없어졌고 성도들은 뿔불이 흩어진지 오래였습니다. 정든 집은 거의 폐허 상태였습니다. 큰 아들은 마양 노동자가 되어 있었고 둘째 아들은 공상당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화병으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동네 주민으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들을 전에 듣고 목회자는 마당에 주제 앉아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때 선명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예야 그래도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는 더욱 몽아와 풍곡하며 대답했습니다. 예 주님 그래도 제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09:56) 그 이야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와서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흔느꼈습니다. 스스로 떠올린 주님의 물음이 귀가를 맴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야 너도 나를 너도 그렇게 나를 사랑하느냐? 바울의 평생 소원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유익하던 것을 다해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다음에 두 가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 11절.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인생 황원의 때였습니다.
(10:53)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 바울의 생애는 박해의 연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40에서 하나 감안매를 다섯 번 받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막고 한 번 돌로 막고 세 번 파선했습니다.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습니다. 여러 번 여행하였습니다.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또한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을 경험했습니다.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에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또 수고하며 예수고 여러 번 자지 못했습니다.
(11:45) 줄이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어야 했습니다. 고린도서 11장 24절부터 27절.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소명을 따라 살 때 세상으로부터 박해봤습니다. 그때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로들은 박해를 받을 때 기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인정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 밖에 받는 것은 특권처럼 여겼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가신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세상의 번영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12:43) 밖을 때 자기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단지 나그네요. 이방인을 확인합니다. 하늘 본양을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영혼과 정신의 육체 생활에서 그 작은 섭리에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 의복과 음식을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가족들까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신자는 이것들을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모두 세상이 세상 아 소망이 단지 세상에 있다면 어찌 인생이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변하는 세상에 대한 사랑은 불멸한 영혼을 땅에 묶어 버립니다.
(13:40) 그리하여 날지 못하는 새가 되게 하니 거기 무슨 자유가 있겠습니까? 자유가 없는데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행복과 불행은 모두 사랑해서 옵니다. 행복은 악한 것을 올바르게 미워한 것이고 불행한 불행은 선한 것을 그릇되게 사랑한 것입니다. 만약 선한 것이 늘 아름답고 악한 것이 항상 추루하게 보인다면 아무도 불행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류에 빠질 어 빠질 수 있기에 밖에는 우리를 깨어 정신 차리게 해줍니다. 데살로전서 5장 6절 밖에를 견딜 때 자신이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쏟는 눈물에 세상 사랑은 씻겨 나가고 흘리는 핏물의 사랑은 깊어져 갑니다. 세상에 살고 있으나 하늘에 속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14:39) >>

박해 받는 자의 행복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애통하는 자가 됩니다. 온유한 자가 됩니다.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됩니다. 만드는 자가 됩니다. 그럴수록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습니다. 페이지 231쪽입니다. 위쪽에 불리한 세상이기에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어린양처럼 애통하였으나 박해를 받을 때는 사자처럼 담대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마태복음 5장 10절. 밖에 받는 자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이 동일합니다.
(15:36)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둘 모두 같은 선으로 끝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이 말씀을 팔복이 아니라 칠복이라고 부봅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과 핍박받는 자의 복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포함하는 동일한 복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조건으로는 여덟 개지만 행복의 선언으로는 일곱 개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행복의 종류와 관련해서 보면 즐복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행복의 선언이 첫 번째와 여덟 번째에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이 있나니라고 하신 조건으로 보면 여덟 개이기 때문에 팔복이라 부릅니다.
(16:40) 어 제가이어서 됐습니다. 음. >> 음. 몇 번째 줄이죠? 232쪽 세 번째 줄입니다. >> 네. 두 가지 복됨에 관해 동일한 사람 곧 천국이 그들의 것이로 시작하고 끝을내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장치입니다. 첫 번째 복이 존재의 변화를 말해 준다면 여덟 번째 복은 변화된 존재가 세상에서 무엇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 답답게 사는 것도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하나님 나라가 찾아오는 모습이고 부자는 세상의 나라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천국을 누리게 하실까요? 천국을 두 국면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7:42) 첫째로지상적이고 현재적인 국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신자는 거기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립니다. 악받은 자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위로를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방식으로 기쁨을 줍니다. 육체로는 밖를 받지만 영혼으로는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둘째로 천상적이고 미래적인 국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에 반응하는 권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반역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8:35) 그러나 마침내 세상 나라의 질서는 파괴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 속에 정의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밖에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또한 상속받은 나라를 현재적으로 누리며 살아갈 살아갑니다. 그 나라에는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완전한 평화와 행복의 나라입니다. 영혼과 육체에 모자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신앙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초월성과 역사성입니다. 하나는 초울성입니다. 이것은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청원하는 신령한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 영적인 은혜 같은 것입니다. 신앙이 가진 이런 초울적인 은혜의 성격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신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19:34) 이것이 신앙의 초월성입니다. 또 하나는 역사성입니다. 그것은 신앙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시대적 상황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시대 역사 발전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선과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우리에 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문화 발전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세상에 세상의 땅끝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 신앙의 역사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박해를 받았습니다. 비난과 멸시 조롱과 고난을 한몸에 받으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모든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고난을이기는 강인함과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꿋꿋함이 어디서 나올까요? 나를 보르신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20:30)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신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복음 8장 29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셨기에 모든 것을 견디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승천하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으로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핍박 속에서 믿음을 따라 살아가야 할 힘이 어디에 나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21:25) 하나님 이름을 위해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세상 욕심을 버리고 싶은 마음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곧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있을 때만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박해가 아무리 걸치고 강해도 하나님을 하나님은 이겨낼 힘을 주십니다. 의지하는 자를 더욱 강하게 하십니다. 신령한 은혜와 거룩한 능력을 주십니다. 주십니다. 매일 부어 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박해에 굴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박해가 크지 아 문제는 박해의 크기가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받는 크기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22:06) 그리스도께서 핍박을 받을 때 비겁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밖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잠시 머물 세상에서도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악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었습니다. 사랑의 기쁨으로 이기며 사십시오. 예. >> 네. 박성 목사님 >>

맺는 말.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남이 알지 못한 복음을 들려 주셨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이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과 14절.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모 없어집니다.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밟히게 됩니다.
(22:58) 마태복음 5장 13절. 하나님을 누림으로 박해를 견뎌야 합니다. 의를 위한 삶을 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정의로운 삶을 사십시오. 박해를 견디십시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들이 알 수 없는 신령한 은혜가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그 믿음으로 박해를 견딥니다. 그들이 욕하면 우리는 모욕받을 것이고 때리면 맞을 것이며 죽이면 죽을 것입니다.
(23:44)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박해받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모르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팔복의 사람으로 부르십니다.이 이 부르심에 응답하시니까 >> 아멘. >> 네. 윤상민 목사님 >> 한 눈에 보는 거 읽어 주세요. >>
박해 박는 자 한 눈에 보는 9장
1.들어가는 말.
하나님 나라 백성과 세상 나라 백성은 다른 질서에서 살아간다.
두 질서가 충돌할 때 신자는 하나님 나라 질서를 따는다.
그때 세상은 신자를 박해할 것이다.
2. 의를 위한 박해.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그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0절.
이 박히는 신자 안팎에서 일어난다.
첫째로 신자 안에서다.
육체를 따르 따 따르려는 자와 성령을 따르려는 자가 대입하는 것이다.
그때 신자는 고통을 받는다.
둘째로 신자 밖에서다.
신자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상 사람들 때문에 밖을 받는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다른 방식으로 살살기 때문이다.
신자는 박해받을 때 다음 두 가지를 깨닫는다.
첫째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세상이 본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3. 박해받는 자의 행복.
신자는 박해받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국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10절.
그러면 신자는 어떤 식으로 천국을 누릴까?
첫째로 지상적이고 현현재적인 국면이다.
예수님 오신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되었다.
신자는 박해받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천상적이고 미래적인 국민이다.
그리스도 재림의 날 그 나라의 질서는 완전하게 설 것이다.
완전한 사랑 속에서 정의로운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4.맺는 말
하나님은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신자는 박해를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을 누림으로 박해를 견디라.
의로운 삶을 포기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신령한 은혜로 박해를 이기며 살길 바란다. >> 아멘.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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