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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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러분은 가장 좋은 것을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보통은 어마어마한 재력을 갖고 싶거나, 좋은 대학 또는 좋은 친구, 비싼 음식, 좋은 차, 핸드폰 등 각자 갖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구하는 자는 받을 것이고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린다는 아주 마법같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함께 읽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을 갖고 싶어한다. 복이라고 함은 사전적으로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이라고 정의한다. 누구든지 교회를 다니던, 다니지 않든지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망이 많다. 또 복을 받고 싶어 한다. 구약에서 말하는 복은 분명하게 물질적인 축복과 풍요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누리게 하신다. 아브라함도 이집트에서 사라를 팔아먹다가 바로가 꿈 속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강한 경고를 주자 많은 재산을 아브라함에게 쥐어주고 이집트를 떠나보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대로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주셔서 이후에 태어나는 이삭, 야곱이 함께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았다. 약속의 자녀들 뿐만 아니라 하갈, 이스마엘에서도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축복을 주셨다. 그 당시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자였나면, 현재 SK 하이닉스나 삼성같은 대기업과 같은 부를 주셨다.
솔로몬도 어땠는가? 그는 성전을 황금으로 지을만큼에 어마어마한 부를 누렸다. 아내를 1000명을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질만큼 재산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중동에서는 현재에서도 일부다처제를 하기 위해서는 아내들에게 똑같이 대해줘야하는 법이 있다. 예를 들어 금반지를 선물하려면 모두에게 선물해줘야하고, 집, 차, 재산을 모두 공평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주변 국가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을 했다. 그저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관계이기에 지극정성으로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해주며,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침실에서 자게 해주면서 자신의 아내들을 돌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인 복들은 받고 누린 솔로몬은 점점 어떻게 되었는가? 열왕기상 3장에서 여호와를 사랑했던 솔로몬이 11장에서는 하나님께 마음을 떠나버리는 상황이 오게 되며 점점 타락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많은 물질의 풍요를 주셨던 것은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아브라함도 솔로몬도 부를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다. 비록 부족하고 실수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가겠다는 사람들이었고, 그러한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도 동일하게 물질의 축복을 구해도 되는 것일까? 당연히 구해도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보기를 원한다. 여러분은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믿으시는가? 아담의 범죄가 우리의 죄가 됨을 고백하시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전 인격과 전 영역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면 우리의 기도 또한 하나님의 뜻보다 앞선 기도는 모두 전적으로 타락한 기도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기도를 드리면서 “저는 금식도 잘하고 십일조도 잘하기에 저 사람들처럼 죄인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하거나 “하나님, 내가 이만큼 노력하고 헌신했으니 복 주셔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봉사했으니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라고 고백하는 것은 은혜를 거래로 바꾸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떤 선한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 “하나님 제가 원하는 길을 열어주세요”, “제가 성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의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욕망만 있을 때이다. 우리는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는 삶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목적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유심히 잘 살펴보아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구하라 그렇게 하면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하시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한다. 찾으라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찾는 것을 찾아낼 것을 말씀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도 아니다. 내가 찾는 것도 찾아내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셔서 아무리 부자가 되고 부유한 삶을 살아도 만약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의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생만큼이나 비참한 인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으로만 우리를 채워주길 원하는 분이 아니다. 영원한 것을 주고 싶어하신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요.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다. 내가 어떤 것을 갖고 싶어하시는지 어떤 것을 소망하는지 각자의 마음을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어떻게 돌을 주겠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주고, 아무리 나쁜 아버지가 있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세상의 부모님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하늘 아버지는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구하고 기도하는 것이 떡인 줄 알았는데, 또는 생선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뱀이나 전갈을 구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내가 구하는 기도는 좋거나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은 무엇일까? 누가복음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이때 우리의 반응은 그 어떤 것보다 기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우리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라고 선포했을 때,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도 모른다는 증거이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시켜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깨닫지 못할 때도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신다. 아무리 뛰어난 신학자가 명강의로 가르친다고 해도, 담임목사님처럼 탁월한 설교를 통해 성경을 풀어준다고 하더라도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시지 않으시면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가시는 분 또한 우리 성령님,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해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린 누구를 닮아가는가? 이 세상 완벽한 최고의 인간이고, 우리가 닮아가야 할 가장 아름답고 흠이 하나도 없는 예수님을 닮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 순간에 누가 함께하시는 것인가? 이 어마어마한 능력의 성령이 함께하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는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원받은 백성을 하나님이 떠나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드는 감정은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승천하셔서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했다. 여러분, 성령 충만과 술 취함이 아주 유사한 모습이라는 것을 아는가? 구약에서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아들을 달라고 탄식하며 서원기도 할 때 엘리 제사장이 기도하고 있는 한나에게 와서 “언제까지 술 취해 있을 작정이냐, 포도주를 끊어라”라고 한다. 실제로 한나는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였던 것이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한을 받으라!”고 선포한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과 술에 취한 사람은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겁(대가리)이 없다. 평소에는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람도 성령에 충만하거나, 술에 취하면 없던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술 마시고 고백한다는 취중고백이라는 가요도 있지 않는가? 두 번째로 말을 주저리 주저리 한다. 다만 차이점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메시지와 복음을 선포하고, 술에 취한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 주저리 한다. 마지막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과 술 취한 사람의 공통점은 기분이 좋아진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얼굴도 행복하고 술 취한 사람의 얼굴도 즐거움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러나 성령 충만과 술 취함은 끝이 다르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다음 날에도 어제의 기쁨으로 감사로 하루를 살아갈 것이고, 술 취한 사람은 어제 한 일 때문에 다음 날 여러가지로 후회하는 일이 가득할 것이다.
그렇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어땠는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귀신을 쫒아내고,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5,000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경험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성령에 충만한 제자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다 약자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아무도 이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죽음은 두렵고 무섭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죽음조차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기쁨의 시간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시대 때 로마의 황제가 신이라고 강조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며 핍박했었다. 당시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주님이시라는 분명한 진리라는 것을 믿음을 가지고 지하교회인 카타콤에 숨어서 진리와 신앙을 지켜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중세시대가 왔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타락하여 거짓된 교리를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을 향해 오직 성경만이 진리라는 것을 외치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화형을 당하며 무참하게 많은 환란과 박해를 당하다가 마침내 종교개혁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근대로 넘어와서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게 되었다. 그렇게 1907년 평양의 대부흥을 경험하다가 일제의 치하에 살게 된 조선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 그 중에 일사각오를 외치며 일제의 신사참배의 압력에도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며 죽음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셨던 주기철 목사님 또한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가능했다. 이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어느 것보다 강력한 능력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다닐 때 성령의 충만했던 때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오순절에 다락방에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때 강력하게 임하였다. 우리에게 강력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첫 번째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기도할 때 분명히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신다. 분명한 것은 은혜에 대해 목말라하고 갈급한 사람일수록 많은 은혜를 누리고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 안에 간절함이 없으면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경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오늘 이 밤에 뜨겁게 기도하기 소망한다. 두 번째로 여러분의 학교, 직장, 믿지 않는 가정에 복음을 전할 때 경험할 것이다. 또한 송파에서 전도할 때 분명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영혼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때 드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변에 나를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혼들을 예비해주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단기선교에서 복음이 필요한 지역에서 선교사님이 복음 전도할 내용을 그 나라 말을 한국말로 읽기 쉽게 해주셔서 캄보디아,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떠듬떠듬하는 말로 전했을 뿐인데,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초등학생 아이가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 집중하고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을 보면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셨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믿는데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부자인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데 너무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너무나도 편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따르는데 망해가는 것 같아보이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인생이 잘 풀려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누렸을 때는 구약의 역사로 보면 출애굽할 때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 뭔가 잘되고 잘 풀리고, 부자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제일 가난할 때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누린다는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면, 우리 집이 제일 가난했을 중학생 때가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뜨겁게 누렸던 시절이었다. 왜 그랬나 생각해보니, 너무 가난해서 의지할 곳이 하나님 밖에 없을 때가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을 요즘들어서 깨닫게 된다. 전능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나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가실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 안에 이미 성령으로 충만히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풍족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너무나 쉽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데 물질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게 과연 진짜 복이냐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 어떤 것은 아무리 좋아보이고 가치있어 보여도 결국 그것은 나에게 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세상의 물질의 축복이 아닌 ‘성령’이시다.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꿈이 없이 무엇하며 살아가야하나 막막해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그리하면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찾으시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 성령께서 반드시 깨닫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니 오늘 창자가 뒤틀리듯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기도할 때 오늘 여러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반드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퍼즐조각처럼 깨달아질 것을 확신한다. 이 밤에, 또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님을 구하시라. 성령께서 충만함을 허락하셔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충성된 일꾼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기도제목]
1. 성령 하나님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발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오직 성경 말씀만이 진리라는 것을 고백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순종하며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2. 주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나게 하시고, 온 성도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3. 한국 교회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의 기도 용사로 헌신될 때 민족과 열방을 살리는 주역으로 우뚝 서게 하시고, 다가올 통일 시대에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되게 하소서
4.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가정과 사역을 돌봐 주셔서 하늘로부터 은혜의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재건과 확장을 위해 쓰임받게 하소서
5. 모든 성도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임을 깨달아 삶의 모든 영역을 선교지로 고백하게 하시고, 제자의 영성과 직업의 전문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