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연합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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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오늘도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 가운데 우리를 붙드시능 하나님의 강한 팔을 경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개개인의 상황과 어려움을 아시는 주께서 우리의 괴로움을 알아주시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속히 이루어 주시옵소서.
130주년을 맞이한 주의 백성들에게 함께 나아갈 길을 보여주시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화평과 공의를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운데 우리 중 연약한 자, 힘겨워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로가 되어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하는 이자리를 사모하며 주께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 시대의 무질서와 개인주의 속에서 우리 교회가 진리 위에 굳게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창조의 질서를 아름답게 여기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 안에서 나에게 주신 직분과 역할이 계급이 아니라,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한 거룩한 질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남의 자리를 탐내거나 헛된 권리를 주장하는 부끄러움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내게 맡겨진 역할에 묵묵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우리가 서로 완벽히 의존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높고 낮음 없이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화평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주의 몸된 교회로,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Corinthians 11:2–16 NKRV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개인의 권리’와 ‘평등’일 것입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성경적인 가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가치가 세상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때로는 선을 넘습니다. 기계적인 평등을 주장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건강한 권위나 창조의 질서마저 ‘억압’과 ‘차별’로 규정하고 해체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2천 년 전, 1세기 고린도 교회 안에도 이와 똑같은 영적 혼란이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상업과 철학이 발달한 도시로, 사람들은 늘 새로운 사상과 개인의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이 문화가 교회 안으로 여과 없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교회 안의 일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이다"라는 복음의 진리를 크게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평등해졌으니 이제 육신적인 성별의 구분이나 사회적 질서 따위는 다 무시해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여성들은 예배 시간에 당시 사회적으로 ‘정숙함’과 ‘영적 질서 아래 있음’을 상징하던 ‘수건’을 과감히 벗어 던졌습니다. 남성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자신들의 ‘영적 평등’과 ‘자유의 권리’를 마음껏 과시한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똑똑하게 권리를 찾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예배는 극심한 무질서에 빠졌고,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무례하고 질서 없는 이상한 집단이라며 조롱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계적인 평등과 무조건적인 권리 주장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영적 질서와 직분은 심각하게 흔들립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를 무너뜨리는 ‘권리 주장’을 멈추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창조의 질서’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영적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이 말하는 평등은 ‘역할의 획일화’가 아니라 ‘질서 안의 동등함’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그들이 모이기를 힘쓰며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려 했던 그 중심 자체는 칭찬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3절을 통해 그들의 치명적인 오해를 교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3절)
이 구절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영락없는 성차별이나 계급주의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머리’가 상징하는 ‘질서’에 있습니다.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로 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가치와 존재에 있어서 완벽하게 ‘평등’하십니다. 누가 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에 있어서 예수님은 철저히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질서’를 취하셨습니다. 남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 질서를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 똑같은 성도이고 다 같이 구원받았는데, 왜 저분은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리더가 되어서 앞장서고, 나는 그 밑에서 순종해야 하는가?”라며 직분을 계급이나 차별로 여깁니다. 철저히 세상의 평등주의적 시각으로 교회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평등은 ‘모두가 똑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획일화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와 가치는 완벽히 동등하되, 이 몸 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기 위해 각자에게 다르게 주신 ‘기능적인 역할’, 곧 영적인 질서를 인정하는 것이 진짜 성경적 평등입니다.

둘째로, 개인의 권리를 앞세우면 부끄러움이 되고,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면 영광이 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수건을 벗어 던지는 것을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요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4절과 15절에서 ‘본성’을 언급하며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고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성별의 고유한 경계를 인위적으로 허무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수치)’을 가져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특성과 질서를 묵묵히 지킬 때,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영광’이 된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과 직분에 아주 날카롭게 적용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의 권위를 함부로 무시하거나, 내게 주어지지 않은 직분을 탐내며 “왜 나를 안 세워주느냐, 불합리하다”고 반감을 품는 것은 똑똑하게 내 권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하나님이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의 영적 질서를 훼손하는 아주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게 주신 직분이 앞장서서 이끄는 자리이든, 아니면 이름 없이 빛 없이 순종하며 돕는 자리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질서에 인간적인 자존심을 내려놓고 기꺼이 하나님의 질서에 나를 맞출 때, 그 순종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 되며 교회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질서는 결코 계급이 아니며, 우리는 주 안에서 완벽히 상호 의존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질서와 순종을 몹시 강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분을 가진 자가 자칫 우월감에 빠지거나 권력을 남용할 위험이 생깁니다. 바울은 11절과 12절을 통해 이 위험을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1-12절)
처음 창조 때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질서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역사를 보십시오. 모든 남자는 다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납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위에 영원히 군림할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서로를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도 똑같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리더 없이 성도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섬길 성도가 없는데 리더만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계급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반드시 필요로 하도록 하나님께서 정교하게 엮어 놓으신 생명줄입니다. 이 모든 직분과 질서가 결국 “하나님에게서 났음(12절)”을 우리가 진심으로 인정할 때, 교회는 무익한 권리 투쟁과 반감을 멈추고 진정한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너의 권리를 찾아라!”, “모든 차이와 질서를 없애는 것이 진짜 평등이다!” 그러나 그 세상의 논리가 교회에 들어온 결과는 고린도 교회처럼 깊은 분열과 상처뿐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것은 나의 권리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교회와 직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세상의 가치관에서 성경의 가치관으로 바꾸기를 소망합니다. 혹시라도 내게 허락하신 교회의 영적 질서에 불순종했던 교만과 반감이 있다면 철저히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나에게 주신 그 자리, 그 직분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부여하신 거룩한 역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질서에 순응함으로, 다툼과 분열을 넘어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어내는 영광스러운 우리 교회,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말씀을 생각하며 먼저 기도하실 때, 회개의 자리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생각하지도, 살아가지도 않았던 우리의 이전 모습을 돌아보며 기도합시다. 개인의 권리와 기쁨만을 추구하였던 나의 모습이 있지는 않았는지 함께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기도하실 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과 교회 안에서의 모습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아름답게 세워지기를 기도합시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에 순종하였듯, 우리의 모습도 서로의 동등됨을 기억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참된 순종으로 완성되기를 기도합시다.
이후 각자 가져오신 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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