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부 6.16
26년 소망부 1학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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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나님의사랑을,은혜
찬양/하나님의사랑을,은혜
소망부 예배를 위하여 묵상기도 하시겠습니다.
묵상기도/기원
묵상기도/기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도신경 하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신앙고백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430장
찬송가/430장
본문
본문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
여러분 성화라고 불리는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을 보신적이 있나요?
예수님을 그린 성화들, 사도들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머리 뒤에 빛나는 원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후광/광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독교 미술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불상을 보아도 뒤에 빛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이집트 벽화에도 신성한 존재들에게는 빛이 그려져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은 한 가지를 공통적으로 표현해왔습니다. 거룩한 존재에게서는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담은 사람에게서는 빛이 난다는 것을.
오늘 성경에서 그 장면을 실제로 만납니다. 여든한 살의 노인,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을 보낸 목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스스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던 모든 사람이 보았습니다.
왜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을까요. 오늘 그 비밀을 함께 열어보겠습니다.
【대지 1】하나님과 말씀으로 대화합시다
【대지 1】하나님과 말씀으로 대화합시다
2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광채가 왜 났습니까. 본문이 직접 말씀합니다.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광채의 이유는 하나입니다. 여호와와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광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 들고 내려올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광채의 본질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 안에 들어올 때 그 사람에게서 빛이 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경건해 보이려고, 더 거룩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는 광채가 나지 않습니다.
광채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빛의 근원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4절은 이어서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4)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합니다.
광채의 근원이 말씀에 있다는 오늘 본문의 진리가,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좋은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빛 자체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 광채를 발할 수 있는 그릇입니다. 그 그릇이 말씀으로 채워질 때 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시내산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은 어디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시내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순간,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편 119:130) 성경을 여는 행위 자체가 빛이 비추는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성경 한 구절이라도 읽어 주십시오. 눈이 침침하시면 큰 글자 성경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귀가 잘 들리신다면 성경 듣기 앱을 활용하셔도 됩니다. 한 절이어도 됩니다. 두 절이어도 됩니다.
그 순간이 여러분의 시내산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쌓일수록, 여러분 얼굴에 모세가 알지 못했던 그 광채가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대지 2】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합시다
【대지 2】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합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무엇을 했는지 출애굽기 33장이 알려줍니다.
(출애굽기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친구와 이야기하듯. 이것이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쌍방향 대화였습니다.
그 대화의 결과로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대화에는 두 방향이 있습니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두 방향이 모두 이루어질 때 비로소 대화가 완성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쌍방향 대화.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를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건강을 달라, 자녀를 지켜달라, 이 일을 이루어 달라. 물론 이런 간구도 기도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친구와의 대화가 부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하나님과의 기도도 요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는 것, 감사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 마음속의 두려움을 털어놓는 것,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모세의 나이를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이 장면에서 모세는 여든한 살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사십 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 뙤약볕 아래서 양 떼를 몰며 걸었습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잤습니다.
요즘처럼 자외선 차단제도 없고 그늘막도 없습니다. 사십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여든한 살 노인의 얼굴이 어떠했겠습니까. 주름이 깊을 것입니다. 피부가 거칠 것입니다. 탄력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의 햇볕이 사십 년간 그 얼굴에 새겨놓은 세월의 흔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외모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크게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옷을 곱게 입고, 회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크게 기도하고, 금식할 때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잘 관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마태복음 23:27) 겉은 하얗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안에는 죽음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의 얼굴은 가꾸어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한 얼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에 광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대화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말씀드리고 듣는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여전히 가능합니다. 무릎이 아파서 꿇을 수 없어도 됩니다. 앉아서 하셔도 됩니다. 누워서 하셔도 됩니다. 기도는 무릎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흐려져서 길게 하지 못하셔도 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가 기도입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속으로 드리는 기도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여러분이 평생 드려온 새벽 기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울었던 그 자녀들을 위한 기도들. 병원 침대 위에서 수액 줄을 달고 드렸던 그 기도들. 그것이 다 여러분의 시내산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했듯, 여러분도 그 기도들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해왔습니다.
그 대화를 오늘도 이어가십시오.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감사한 것을 고백하십시오. 두려운 것을 털어놓으십시오. 잘 모르는 것을 솔직히 여쭤보십시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쌓일수록 여러분 얼굴에는 모세가 알지 못했던 그 광채가 조금씩 더 깊어질 것입니다.
【대지 3】하나님과 대화한 사람에게 광채가 드러납니다
【대지 3】하나님과 대화한 사람에게 광채가 드러납니다
3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출애굽기 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두 가지 사실이 이 구절에서 드러납니다.
첫째, 광채를 먼저 알아본 것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습니다. 광채는 자기 선언이 아닙니다. 스스로 "나는 빛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이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움은 공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느끼는 경외입니다.
모세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간접적으로 전달되었고, 그 영광 앞에서 사람들은 경외를 느꼈습니다. 모세의 광채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중요한 진리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깊이 대화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고, 그 변화가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광채가 난 얼굴이 여든 살 넘은 노인의 얼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풍화된 그 얼굴, 세월이 깊이 새겨진 그 얼굴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났습니다. 세상은 젊은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과 대화해온 얼굴에서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 모세의 장면을 다시 언급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
바울은 모세의 빛나는 얼굴이 모세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영광을 닮아가며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만남이 쌓일수록, 대화가 깊어질수록 더욱 빛나가는 것입니다. 그
리고 바울은 이것이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리에 나아갈 때, 성령께서 그 나머지를 하십니다. 우리 얼굴에 영광을 새기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오늘 한 가지를 고백하고 싶습니다.
이 교회에서 가장 빛나는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지 아십니까.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의 얼굴입니다.
이 말이 그냥 하는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수십 년을 새벽마다 성경을 읽어 오셨습니다. 수십 년을 기도해 오셨습니다. 어려울 때도 아플 때도 하나님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세월 동안 쌓인 하나님과의 대화가 여러분 얼굴에 새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광채를 몰랐던 것처럼, 여러분도 자신의 얼굴이 빛난다는 것을 모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압니다. 손자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편안한 이유가 있습니다.
큰 소리로 뭔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아이가 조용해지는 그 이유. 그것이 광채입니다.
하나님과 오래 대화해온 사람에게서 나오는 빛입니다. 교회의 젊은 성도들이 어르신들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경외감을 느끼는 이유도 같습니다. 수십 년의 기도와 말씀이 그 얼굴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마음이 드십니까. "나는 요즘 성경도 잘 못 읽고 기도도 짧아졌는데." 괜찮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모세도 처음부터 광채가 났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쌓이면서 조금씩 변해간 것입니다.
오늘 드리는 한 절의 말씀, 오늘 드리는 짧은 기도 한 마디가 여러분 얼굴에 광채를 더합니다.
그리고 그 광채는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광채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님 앞에 서게 했듯, 여러분의 광채가 이 교회를, 여러분의 가정을, 여러분의 자녀와 손자손녀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 읽고 기도하는 그 작은 행위가, 이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십시오. 말씀으로, 기도로. 그 대화가 여러분의 얼굴에 광채를 새깁니다. 그 광채가 이 교회를 빛나게 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우리는 여든 살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광채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대화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의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드러납니다. 외모가 아닙니다. 나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면 성경을 한 구절 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길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 오늘 이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이 시내산입니다. 그것이 광채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
영광에서 영광으로. 만남이 쌓일수록 더욱 빛납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오늘도, 내일도, 그 영광을 더해가기를 간절히 축언합니다.
기도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통해 주님과 머무는 시간이 저희에게 얼마나 깊은 은혜인지 깨닫게 하시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주님, 저희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주님을 만나는 시내산이 되게 해주십시오. 비록 눈이 침침해지고 기억은 조금씩 흐려질지라도, 매일 성경 한 구절을 펴서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마음에 담게 하옵소서. 거창하고 화려한 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하루의 기쁨과 슬픔, 막막함과 두려움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며 주님과 진솔하게 대화하게 하옵소서.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거칠어지고 주름진 얼굴입니다. 아픈 무릎 탓에 예전처럼 바닥에 엎드려 오랜 시간 기도하지 못하는 연약한 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저희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주님 곁에 다가가기를 원합니다. 스스로 겉모습을 꾸미고 빛을 내려 애쓰기보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맑고 따뜻한 빛이 저희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 곁에 있는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교회의 젊은 세대가 저희를 통해 주님의 포근한 평안을 느끼게 하옵소서. 저희가 평생 눈물로 심어온 기도와 말씀의 자리가, 우리 가정을 살리고 이 공동체를 든든하게 안아주는 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과 동행하며 저희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끌어 주실 줄 믿으며, 우리의 참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