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다니엘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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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결국 허물어질 세상의 실체
1 가장 강하나 형편 없는 자 : 중국 베이징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궁궐인 ‘자금성’이 있다. 자금성에는 크고 작은 방이 9,999개가 있다. 자금성을 지은 황제나, 자금성에서 살았던 황제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집에서 세상을 어떻게 내려다 봤을까? 우리도 집 평수가 커지면 뭔가 조금 당당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자신의 집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황제가 자는 방은 399개이다. 날마다 다른 방에서 잠들었다. 늘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언제든 암살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아무도 모르게 10평 침실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존재가 바로 황제였다. 성경에 느부갓네살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다. 제국을 이룩하여 가장 강대한 나라를 세웠다. 엄청난 건축물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장에서 그랬듯이 4장에서도 꿈을 꾼 후, 꿈 때문에 잠을 청하지 했다. 두려워 떨고 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구조와 이야기 : 다니엘 4장은 봉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3절에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34-37절에 반복된다. 그 중간 부분인 4-33절에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하나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 역시, 느부갓네살처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왕이 꿈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술사들이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다니엘이 꿈의 의미를 해석한다. 왕이 교만해지면 하늘이 치시리라는 해석이다. 다니엘의 권면을 듣지 않은 느부갓네살은 1년 후 정신질환으로 7개월 동안 짐승처럼 살게 된다. 회복된 이후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3 세상의 실체 : (단 4:10-12) - 바벨론 제국을 성경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높이는 하늘에 닿으니”라는 표현이 그러하다. 이 표현에서, 홍수 이 후 인간들이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시 말하면 이 표현은 신에게 도전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는 잊은 채, 한 나무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모든 생명을 자신의 열매로 먹이고 자신의 그늘에 모은다.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은 위대한 왕이었다. 느부갓네살은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고, 자신의 도시를 바라보며 이렇게 감탄한다. (단 4:30) 하지만 하늘에서 한 순찰자, 곧 거룩한 자가 내려온다. 그리고 그 나무를 베어 버린다. 그리고 남은 밑동을 사슬로 묶는다. 거대한 나무가 이렇게 초라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 앞에서 자신을 뽐내던 나무의 오만함을 꺾으셨다. 자신의 생명조차 지켜 낼 수 없는 존재였음이 들통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다. 오늘 날 이 세상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다. 인공 지능, 로봇, 유전자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자신의 능력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을 책임지겠다고 장담한다. 이러한 세상을 의지하면 생명이 보장되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하늘의 순찰자가 오시면, 한 순간에 그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화려하고 강력해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 숨은 불안과 두려움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4 세상 속 하나님의 사람 : 본문에서 다니엘에게 세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다니엘은 하나님의 ㅂ개성으로서 자신의 신실함을 드러냈다. (단 4:9) 왕이 첫번째 꿈을 꾸고 두번째 꿈을 꾸 시기는 16년이 지났다. 다니엘은 그 동안 지혜자들의 머리가 되어 있다. 왕은 다니엘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지난 16년간, 다니엘은 일상 속에서 한결같이 신실했다. 점을 치고 해몽을 하는 일이지만 단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했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신실해야 한다.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지혜를 얻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감당해야 한다. 둘째,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의 의미를 전했다. 꿈의 의미를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꿈의 후반부 내용 때문이다. 제국과 왕의 몰락, 나라와 민족의 흩어짐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전했다. (단 4:19) 다니엘도 두렵다. 왕에게 이 해석을 말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다니엘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한 걸까?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주신 계시, 즉 말씀임을 알았기 때무이다. 다니엘은 꿈을 해석하는 자이다. 그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꿈으로 말씀하신 내용을 풀어 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오늘날 설교자, 목사의 역할이다. 설교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5 해석과 대안 : 다니엘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느부갓네살에게 조언한다. 이제라도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겨 죄를 사하라는 말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따라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그는 공평과 긍휼을 제안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은 바벨론 정신, 제국의 정신에 완전히 배치되는 정신이다. 제국은 폭력으로 세워졌으며, 약육강식 세계의 정점이다. 불평등과 착취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제국은 세워지고, 유지된다. 하지만 공평과 긍휼,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다. 하나님은 구약의 율법을 통해 이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살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의 법을 세상 속에서 살아내고, 또 그 정신을 세상에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6 오늘도 이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 본문 전체의 주체는 17절, 25절, 32절에 반복되는 한 문장에 나타나 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주신다.” 지극히 높으신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 분은 자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주시기도 하고, 다시 빼앗기도 하신다. 주인이시고 왕이신 그분은 한 번도 그 보좌에서 내려오신 적이 없다. 느부갓네살은 긴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 이 진리를 깨달았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세상은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그 능력을 끊임없이 과시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지쳐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강함을 주장하는 세상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모든 것은 그 교만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찬양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으나 사라질 제국과 왕의 삶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택할 수 있다. 그 믿음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살기를 바란다. 승리의 그 날을 꿈꾸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노진준) 교만 / 단 4:34-37
1 교만의 수많은 얼굴. 교만은 큰 죄입니다. 하지만 교만을 정의하는 일이 현대인들에게 쉬운일은 아닙니다. 교만은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교만이 정말로 심각한 죄라면 우리는 이 죄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다 하여서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의 교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왕국의 지붕에서 자아도취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섭정을 시작햇지만 아버지를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고, 그를 우습게 여긴 많은 정적과 강력한 외세의 저항을 평정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신가요? 느부갓네살이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악몽에 시달리며 힘을 키웠고, 재물을 모았습니다. 물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인정하겠지만 느부갓네살이 자기가 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후세 사람들도 그의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내 능력과 권세 이 큰 도성 바벨론을 세웠도다. 여기 이 영광스러운 도성에 나의 땀과 수고와 능력이 나타나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그는 하늘에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여러분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기가 했다고 말한 교만 떄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일까요? 느부갓네살이 왕궁 지붕에서 자기가 이룬 업적에 도취되어서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대단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 영광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자랑하지 않고 자기도취에 빠져 행동하지 않는다고 교만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2 교만과 겸손. 교만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교만의 반대말은 겸손입니다. 겸손을 바르게 정의해야 교만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겸손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겸손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교만은 무엇일까요? 교만은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시켜서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교만은 문제이지만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교만은 심각한 죄입니다. 교만은 불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인간은 스스로 행복할 수 없는 불행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돈이 생기고 권세가 생기면 행복한 줄 알고, 지식이 있고 열정이 있으면 불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교만입니다. 느부갓네살의 교만이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가 이룬 업적에 도취되어서 내가 했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를 죄인이 아닌 다른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만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행복해졌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교만입니다.
3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죄. 여러분 교만은 권세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범하는 죄가 아닙니다. 권세와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이 범하는 죄입니다.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이지만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무시하는 것도 교만이지만 열등감으로 낙심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이런 마음은 우리가 하난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죄인임을 부인하게 만들고, 다른 것들에 마음을 두게 만듭니다. 교만은 부자만 짓는 죄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짓는 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단순한 자랑이나 허세 혹은 남을 없긴 여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던 것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불행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왜곡하고 부인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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