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두드림

성령강림(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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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부터 물을 굉장히 많이 마셨습니다. 사실 물 뿐만 아니라 우유나 콜라 같은 음료수를 포함하면 정말 많이 마셨는데요, 이게 지금까지도 습관이 됐는지 아직도 제가 하루에 못해도 3리터에서 4리터 정도는 매일 마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에 텃밭을 일구고 하다보면 땀을 많이 흘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거의 1리터를 원샷으로도 마실 수 있을 만큼 물을 아직도 참 많이 마십니다.
그런데 마실 수 있는 거라고 해서 다 몸에 좋은 건 아니죠. 제가 어렸을 때, 한창 콜라를 좋아했을 때는 아직 제로콜라처럼 인공감미료 등으로 설탕 없이 만드는 음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콜라도 많이 마시고, 우유도 많이 마시다 보니까 살이 빠지지 않고 계속 쪘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지금은 제로 콜라 같은 것도 있고, 저도 가급적이면 보리차나 물을 많이 마시려고 하기는 합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약 60%의 물로 이루어져 있을 만큼 물이 없으면 살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도 합니다. 또 텃밭을 기르면서 물을 제때 주지 않으면 금새 식물이 시들어버리고, 또 물을 잘 주면 다시 살아나는 걸 보면서 이 지구의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물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더욱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죠. 그 물 안에 어떤 것이 같이 함유되었냐에 따라서 물이 때로는 우리 몸을 해치기도 합니다. 같은 물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설탕물인지 소금물인지 아니면 농약을 탄 농약물인지에 따라서 쓰이는 곳도 다르고 해로운지 이로운지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같은 물이라고 해도 내용물과 상황과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서 좋게 쓰이는지 나쁘게 쓰이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모세와 다툼(1-4)

오늘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곤란한 와중에 모세와 다투게 되었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하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물에 대해서 다루는 이야기 인데도 이 물에 대해서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1절 말씀을 보시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서 이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곳에 마실 물이 없는거예요.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 말씀을 보시면 먼저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물을 마시게 하시오!”라고 했다고 하는데, 아마 이런말만 오간게 아니라 좀 큰 다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모세가 대답하기를 “어째서 나와 다투려고 하는 것이오?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이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부족해서 모세와 다투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되는 것일까요?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을 사람이 3일만 마시지 않아도 목숨을 잃을 수 있고, 3일 까지가 아니라 하루만 마시지 않아도 정상적인 생활이 안될 것입니다. 그럼 사실 모세에게 따질 법도 하지 않나요? 그리고 모세에게 따지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되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3절에 등장합니다. 백성이 물을 못마시니까 목이 너무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모세!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이리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과 우리 가축들을 다 목말라 죽게하는 것이오!” 백성들이 모세가 애굽에서 백성들을 인도해냈으니 모세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모세에게 마구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런가요? 모세가 백성들을 인도해내었나요? 아닙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 등장했던 것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에 불과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백성들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나님! 왜 저희를 이리로 인도해내셨습니까?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물을 주세요!”하고 말이죠.
그런데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말씀 드린 것이 아니라 모세를 향해서 그리 했습니다. 심지어 4절 말씀을 보시면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주님! 제가 이 백성들을 대체 어찌해야합니까? 조금만 더 있으면 아주 저를 돌로 칠 것 같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면 정말 사람들의 분위기가 엄청 흉흉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물을 못마시는 것을 모세 탓을 하면서 말이죠.
사실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도 물을 참 많이 마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만큼 갈증도 남들보다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텃밭을 가꾸면서 몇 시간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땀이 너무나서인지 막 어질어질 할 정도로 갈증이 심하더라구요. 그럴 때는 꼭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지면서 별거 아닌일에도 짜증이 막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제가 물을 마시지 못했다고 다른 사람 탓을 하면서 막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낸다면 어떻습니까? 갈증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 것이죠.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시면 되는 것이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상태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모세 한 사람에게 책임을 씌우고 돌까지 던질까말까 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구해야할 대상은 지금 하나님인데, 모세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희가 살면서 마치 물이 부족한 백성들처럼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혹시 우리 주변을 탓하거나 신세를 탓하거나 때로는 목사님들이나 정치인들처럼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탓하거나 하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교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게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들이고, 또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져야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당장의 눈 앞에 닥친 위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것, 마치 중세시대 때 마녀사냥과 같은 일들이 요즘에도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댓글만 봐도, 이게다 누구누구 때문이다, 저 사람을 아주 잡아죽여야지 등등 흉악한 말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누구 한 사람을 잡아서 책임을 물으려고 혈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해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실제로 모세가 이 사태를 해결하려고 가장 먼저 한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본문말씀 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Exodus 17:4 NKRV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하나님! 제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라고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아주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세는 백성을 저주하기 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해서 두드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시는 여러분과 제가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해 문을 두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느 한 사람을 죽이려고, 돌을 던지려고 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 문을 두드릴 때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 반석을 치라(5-6)

5절 말씀부터 보시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해결방법을 제시해주십니다. 백성들 중에서 장로들, 쉽게 말하면 어르신들을 데리고 나와서 지팡이를 손에 잡고, 6절에 한 반석으로 가서는 반석을 치라, 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 반석을 치면 물이 나오고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행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요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반석을 치는 행위, 반석을 두드리는 모세의 행위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물을 많이 마셨다던가, 반석에서 물이 막 솓구쳐 나왔다던가 하는 표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먼저는 오늘 본문말씀 6절 마지막에 등장하는 말, “모세가 그대로 행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지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고하는 주제를 가지고 모세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위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데요. 모세가 반석을 두드리는 것처럼,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 “그대로 행하는 두드림”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을 두드려서 물이 나온다고 하셨으면, 나오는 거예요. 오히려 반석을 어떻게든 굴려서 수원을 찾아서 굴착기로 바닥을 뚫고 해봤자 물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바로 모세의 두드림입니다.
두번째로는 백성들이 이 물을 마셔봤자 어차피 또 목이 말라올 것이기 때문에 굳이 백성들이 물을 마시는 장면에 대해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 곁에 서 쉬실 때 사마리아 여인 한 명이 물을 길으러 오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그 여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hn 4:13–14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물에서 나오는 물, 모세가 두드린 반석에서 나오는 물 모두, 지금 당장 많이 마셔봤자 다시 목마르게 될 물입니다. 소모되는 물입니다. 저희가 화장실 가서 소변을 보거나 땀을 흘려서 나오면 배출될 물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어떻다고 하십니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1 Corinthians 10:1 NKRV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1 Corinthians 10:4 NKRV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주시고 홍해를 갈라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조상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같이 신령한 음료를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모세가 반석을 두드린 결과는 지금 당장 목을 축일 수 있는 소모품인 물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으로부터 나온 샘물을 마신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함” 말씀하신 “그대로 반석을 두드린” 결과라는 것입니다.
가끔 기도를 하다보면, 우리가 바라는대로, 기도하는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갈 때만해도, 미국의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 과정을 잘 밟아나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는데, 오히려 전혀 풀리지 않고 한국에 도망쳐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돌을 던지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얼마나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과정들 연합감리교회든 아니면 한국의 감리교회든 아니면 어디든지 간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살면, 목회의 길과 과정을 사람이 제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인도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처럼 모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반석을 두드렸을 때,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목을 축였는지 안축였는지 라는 내용보다도, 말씀따라서 반석을 두드릴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샘물이 터져나올 것이라는 성경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두드리는 자에게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시고, 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Exodus 17:6 NKRV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여러분과 제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생의 샘물을 마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삶을 살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민 20:10-12)

오늘 본문말씀은 그렇게 모세가 하나님께 순종한 장면으로서 반석을 두드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민수기에는요, 똑같이 반석을 두드려서 물을 마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모세가 불순종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민수기 20장 10-12절 말씀을 보시면
Numbers 20:10–12 NKRV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원래는 하나님께서 반석 앞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서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는데, 모세가 그말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10절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야겠느냐? 라고 성질을 내면서 반석을 두번 두드리게 됩니다.
똑같은 두드림, 똑같은 물에 대한 말씀인데 하나님께 순종하는 두드림이 아니라 말씀대로 하지 않고, 마치 모세 본인의 능력인것 마냥 반석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물이 나오긴 나와요. 이번엔 회중과 짐승들이 물을 마신다는 언급까지 확실하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12절에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이지 못하게끔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모세는 신명기에서 가나안 땅을 강건너에서 멀찍이 보기만 했을 뿐이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불순종한 결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설교 초반에 같은 물이라고 해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똑같이 반석을 두드렸고, 똑같이 물을 낸 상황이고 심지어 이번에는 백성들과 가축들이 물을 마셨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결과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더 큰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간 과정에서 얻는 작은 이득, 물을 마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가장 마지막에 얻게 되었을 것인 약속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눈 앞에 당장 필요한 것을 취하기 위해서 아무 문이나 두드렸다가는, 특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방식으로 두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실 더 큰 비전에 다다르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시는 여러분과 제가 이런 결과를 맞이 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더 큰 비전을 위해서 눈 앞에 있는 것 때문에 불순종하기 보다, 순종으로 반석을 두드리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모세 한 사람에게 원망을 쏟아냈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저희 또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을 원망하기 보다 하나님을 향해서 문을 두드리고, 하나님께 구하고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했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생을 얻게 하는 샘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장 눈 앞에 있는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의 마실 물을 위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더 큰 비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당장의 눈 앞에 있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죄를 짓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문을 두드리며, 순종하는 삶으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영생의 샘물을 마시고, 또한 불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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