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에 모이는 사람들 (2)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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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러므로

1절에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이전에 모든 사건들을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다윗이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내어드릴 기회가 올 수 있었던 계기를 말해준다. 다윗이 사울에게 쫒긴 것과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그리고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대면하는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아둘람 굴까지 올 수 있었다.
다윗은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 정도면 괜찮아’
나 정도면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낫지. 내가 조금 부족하긴해도 남들에 비하면 나쁘지 않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기도가 안나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종류가 다릅니다.
나를 위한 기도, 의로운 기도, 나 중심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과 아기스에게 쫒기며 무너진 경험을 하게 된 다윗은 비로소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Psalm 142 NKRV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마스길 곧 기도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아둘람 굴에 모이는 사람들

2절에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에 다윗에게로 옵니다.
이스라엘에 환난과 빚짐과 원통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이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사울의 편에서 이런 문제가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다윗과 함께 하는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이 시기와 이 상황을 비추어보면 다윗의 공동체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 사람들이 가장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이나 재력 그리고 탁월함 등이 필요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것은 겸손함과 순종이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왕으로 사울을 먼저 세우셨고,
그가 교만함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그리고 사람들과 권력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시고,
다윗을 차기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이 꼭 우리 같습니다.
제가 먼저 쫒기듯이 피하듯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눈물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한사람씩 사람들이 오는 겁니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
저와 여러분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고, 체면이 있고, 나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남지 못합니다. 아니 하나님 곁에 남아있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둘람 굴에 왔다가도
내가 생각하는 리더와 다윗은 다르네 하며 사울에게로 가버리고,
나는 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생각하며 성 안으로 들어가버립니다.
그런데 잘 포장된 자기 껍데기를 깨고 자기 내면으로 깊숙히 들어가서
자기 자신을 두루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절대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안을 깊이 드려다보면 우리의 무지함, 무기력함, 오만함, 연약함 등 수많은 약점들을 헤집고 들어가서
결국에 그 끝에 ‘죄’라는 종점에 도착하게 되는데
모든 악함과 모든 약함 그리고 모든 분쟁과 갈등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런데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는 사실과 직면한 사람은
그 누구도 결코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모압 왕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절 “하나님이 나를 이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이 순서를 잘 보세요.

선지자 갓의 등장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릴 준비가 되니까
비로소 선지자 갓의 말씀이 들립니다.
그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서 다윗에게 말씀하셨다는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감각적으로 그것을 알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민한 영적 감각이에요.
내가 그것을 분별하기 어렵다. 잘 모르겠다면 알기까지 기다리세요.
경솔하게 움직이거나 행동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설교가 들립니다. 설교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들리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면
지금 거기에 가서 사울에게 창을 맞고 죽으란 소리냐?
선지자 갓은 사울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내가 그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얼마나 포악한지 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병원과 교회

Mark 2:17 NKRV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병원에 누가 갑니까?
병원에 간다고 병이 고쳐집니까??
병원에 갔는데 당신 죽을 병이 걸렸습니다. 라는 의사의 말에 기분 나빠하며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이
병이 치료될 수 있겠습니까??
또는 병원에서 의사가 당신은 수술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빠른 날짜에 수술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아니요 저는 수술은 싫구요 약만 먹을래요. 약만 계속 처방해주세요.
이런 사람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에 왔는데 자기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처방을 듣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이 그랬고,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이 그랬으며 돈이 많은 부자 청년이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감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안에 영이 죽은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어찌할 수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분입니다.
아둘람에 모인 400명의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그 여정을 갑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제 그 여정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요??

다윗의 용사들

삼하 23장은 다윗 이야기의 엔딩입니다.
그 끝은 위대한 나라를 세우고 또 그 나라를 세우기까지 다윗과 함께한 용사들의 이름과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요셉바셋은 한 번에 8백명을 쳐죽였습니다.
엘르아살은 손에 칼이 붙을 때까지 싸웠습니다.
삼마는 블레셋 군사들을 혼자서 막았습니다.
그리고 13절에 삼십두목 중에 세사람이 아둘람 굴에서 다윗을 만났을 때
다윗이 베들레헴의 물을 한번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러니까
이 말을 듣고 목숨을 걸고 그 물을 구해와서 다윗에게 먹게해주었습니다.
그런 용기와 헌신과 순종으로 나라가 세워집니다.
교회도 이런 용사들이 세우는 것입니다.
그들도 시작은 환난 당해서 빚져서 원통해서 다윗에게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결론

다윗의 용사들은 처음부터 탁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교만했고, 거짓말 했고, 자기 수단과 방법으로 잘 살아보려고 애쓰기도 했으며,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딱 그 자리에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아둘람 굴’이며,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는 자리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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