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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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9:32-43 도입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마태복음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의 삶에 언제나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렸을 때, 다들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옆집 누구는 공부도 잘하고 상도 탔다던데, 너는 누굴 닮아서 그러니?” 저 역시 어릴 적 부모님께서 저를 다른 집 자녀들과 비교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당신을 닮아서 그렇다”고 하시고, 아버지는 “아니다, 당신을 닮아서 그렇다”며 서로 미루시며 다투시곤 했죠. 누군가를 닮았다는 것, 누구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숨길 수 없는 흔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은 삶은 누구를 닮아 있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인 1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증인이란 무엇입니까? 내 삶을 통해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연약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훗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삶 전체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가리키는 이정표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베드로는 이렇게 철저히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첫째, 베드로는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2절 이하를 보면, 계속해서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사방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룻다라는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는 애니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중풍병으로 무려 8년이나 침상에 누워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현대로 치면 심각한 뇌졸중입니다. 뇌출혈 등으로 인해 반신이 마비되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당시 의술로는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8년 동안 굳어버린 애니아의 절망 앞에 선 베드로가 이렇게 선포합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34절)
우리는 이 선포에 주목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내가 너를 고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고 선포합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문장에는 놀라운 생동감이 있습니다. ‘낫게 하신다’는 현재형 동사이고,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명령형 동사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늘에 계신 줄만 알았던 예수님이 베드로 곁에 살아서 함께 계시며 일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곁에 서 계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시간으로 통역하듯, “애니아야, 지금 예수님이 너를 낫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어! 그러니 이제 일어나라!”라고 외친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베드로와 함께하시며, 절망으로 짓눌린 중풍병자 애니아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한한 능력의 주님이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셨고, 전신 마비로 누워있던 애니아를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룻다와 사론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요점은 무엇인가요?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애니아에게 전한 것입니다. 증인은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정석원 목사님이 쓰신 책에 이런 재미있고 깊이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어렸을 적 학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울 때였습니다. 기독교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던 선생님께서 제우스, 아테나, 포세이돈 같은 신들을 설명하시다가 갑자기 어린 정석원 학생을 지목하며 물으셨습니다. “내가 볼 때는 이 신화 속 신들이나 네가 믿는 예수나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때 어린 학생이었던 목사님은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완전히 다릅니다. 신화나 다른 종교에서는 사람이 신을 찾아가야 합니다. 신을 만나려고 죽어라 도를 닦고 고행을 해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믿는 예수님은 유일하게 직접 이 땅에,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진짜 다른 점입니다.”
세상의 영웅들이나 위인들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집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님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곁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영향력을 미치고 그 말씀이 내 삶을 바꾸고 그 말씀이 여전히 넘어지고 흔들리는 우리 청년들의 고단한 일상 가운데서 성령으로 찾아오십니다. “내가 너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상태는 요한복음 15장 5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신앙생활의 핵심은 예수님을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꼭 붙어 있듯이 말입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는 예수님 안에서 주님은 내 안에서 함께 있어야 합니다.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저는 오늘 하루도 예수님과 함께 삽니다!”라는 고백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함께 사는게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으로 매일매일 읽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함께 고백할까요? “저는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삽니다!” 이 고백을 통해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안에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자연스럽게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나게 될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둘째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애니아를 고친 놀라운 사건 직후, 36절부터는 욥바에 살던 ‘다비다(도르가)’라는 여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평소 가난한 과부들을 위해 속옷과 겉옷을 지어 입히며, 선행과 구제를 넘치게 하던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병들어 죽고 맙니다. 사람들은 시신을 씻어 다락에 뉘어 놓고, 급히 베드로를 부릅니다.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도르가의 사랑을 받았던 과부들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도르가가 지어준 옷들을 보여주며 그녀의 따뜻했던 삶을 증언합니다. 도르가 역시 예수님의 섬김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다 내보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뒤, 시체를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40절). 그렇게 다비다는 다시 살아납니다.
이 장면, 어딘가 굉장히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하셨던 행동과 놀랍도록 똑같습니다. 마가복음 5장 41절에서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오늘 베드로가 아람어로 외친 말은 무엇일까요? “다비다굼! (다비다야 일어나라)” 입니다.
베드로는 철저히 예수님을 따라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 속에서는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다! 살리는 능력은 내겐 없지만 나는 예수님처럼 살겠다! 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향해 “네 침상을 가지고 일어나라”고 했던 것도,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던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습을 모방합니다. 즉 예수님처럼 닮아가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하니, 예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베드로의 시선이 머물고,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베드로의 마음이 있으며, 예수님의 능력이 베드로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서로 물들고 닮아갑니다. 하물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어떨까요? 그분의 압도적인 은혜와 사랑, 우리를 살리신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력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철저히 변화시켜 작은 예수로 만들어 가십니다.
한국 교회사 가운데 이처럼 예수님께 물들어 철저히 '작은 예수'로 살다 가신 한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바보 의사'라고 불렸던 복음병원 설립자, 고(故) 장기려 박사님입니다.
당대 최고의 천재 의사였던 그분에게는 유독 가난한 환자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전재산을 털어도 병원비를 낼 수 없어서 퇴원을 못 하고 있던 한 가난한 농부 환자가 장기려 박사님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사정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병원 행정처에 가서 사정을 해야 했지만, 박사님은 그 농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처방전에 아주 기상천외한 문장을 적어 주었습니다.
"이 환자에게는 밤중에 뒷문을 열어주어 퇴원시키도록 하시오."
그리고는 행여나 그 농부가 도망치다 잡힐까 봐, 자신의 월급에서 가만히 꺼낸 얼마 안 되는 돈을 농부의 손에 쥐여주며 속삭였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오늘 밤에 병원 뒷문을 열어둘 테니 간수들이 잠든 사이에 빨리 도망치시오. 그리고 이 돈으로 집에 가는 차비 하시오."
장기려 박사님은 병원 원장이었지만, 평생 자기 명의의 집 한 채, 땅 한 평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나실 때 남긴 유품은 그가 입던 의사 가운과 성경과 책 몇권 , 그리고 병원 옥상에 있던 작은 침대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향해 "바보 같은 의사"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조금만 욕심을 부렸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시선은 언제나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셨음에도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려 하셨던 그 발자취를 너무나 선명하게 보고 있었기에, 그분을 닮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그를 바보라 불렀지만, 그 농부와 수많은 가난한 이웃들은 그 박사님의 삶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베드로가 ‘다비다굼’을 외치며 예수님처럼 행할 수 있었던 비결, 장기려 박사님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랑을 베풀며 작은 예수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단 하나입니다.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날마다 예수님 안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부활 생명의 영향력 안에 온전히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세상에서 더 높아져 섬김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0장 45절 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신 그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섬기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라가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서 예수님을 묵상하십시오. 무릎 꿇고 기도하며 말씀이신 주님과 깊이 교제하십시오. 개인적인 성경묵상은 말씀이신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럴 때, 내 힘과 결단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면 상처받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자리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그 자리에, 정직하게 땀 흘리며 직장 생활을 감당하는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예수의 그 사랑과 생명이 흘러갈 것입니다.
도르가가 바느질로 가난한 이웃을 섬겼잖아요? 여러분이 가진 전공, 재능, 배운 능력, 그리고 작은 미소와 친절 하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나를 위해 이 땅에 찾아오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과 온전히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절망이 소망이 되고, 죽음이 생명으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 예수, 늘 함께하시네 우리 합심해서 기도합시다!
“예수님과 함께 살도록 성경을 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안에 머무르길 원합니다. 말씀에 자리 기도에 자리에 머물기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자연스럽게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나게 될줄 믿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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