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교회 삼위의 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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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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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된 설교 내용을 바탕으로 **'교회: 삼위 하나님의 모상과 영생의 공동체'**라는 주제 아래, 1시간 분량의 사경회 또는 설교를 위한 대지 분석 및 요약을 정리해 드립니다.
[설교 대지 분석] 교회: 삼위 하나님의 모상과 영생의 공동체
[설교 대지 분석] 교회: 삼위 하나님의 모상과 영생의 공동체
본문: 에베소서 5: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I. 서론: 교회의 본질 - 삼위 하나님의 모상 (10분)
I. 서론: 교회의 본질 - 삼위 하나님의 모상 (10분)
교회와 구원의 대서사시로, 심오한 교리와 실천적 삶(창조, 구원, 성도 생활)을 아우르는 서신입니다.에베소서의 성격:
교회는 삼위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의 존재 양식을 비추는 '모형' 혹은 '사진'과 같습니다.모상(Imago)으로서의 교회: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완전한 인격을 가지시되 항상 '사랑의 교통' 안에서 하나로 일하십니다. 이 사랑의 교통이 교회의 본질적 기초가 됩니다.삼위일체의 존재 방식:
II. 영생의 의미와 신자의 정체성 (15분)
II. 영생의 의미와 신자의 정체성 (15분)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영사의 반대)을 넘어, 를 의미합니다.영생의 정의:삼위 하나님과 생명적으로 연결되어 그분으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공급받는 관계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릴 사명을 주셨고, 이를 위해 하늘의 자원(지혜, 사랑)과 땅의 자원을 공급하십니다.하늘과 땅의 자원 공급:
영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아는 것'(지식)이며, 이 지식은 반드시 '사랑'을 동반합니다.영생의 도구 - 지식과 사랑:
부족한 지식과 사랑이 점점 풍성해지는 과정이 '성화'이며, 이것이 완성되어 몸과 결합하는 것이 '영화'입니다.성화와 영화:
III. 신자의 삼위일체적 삶의 원리 (15분)
III. 신자의 삼위일체적 삶의 원리 (15분)
신자가 영생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 매일 반복해야 할 세 가지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을 등졌던 마음을 다시 그분께로 돌이키는 끊임없는 전향입니다. 옛 성품을 죽이고 하나님을 향하는 영적 전투입니다.회개(전향, Conversio):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은혜는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이며, 이를 통해 영혼이 아름다워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쇄신(Renewal):
회개와 쇄신을 통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깨닫는 지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번영보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최고의 화두로 삼게 됩니다.발견(Inventio):
IV.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실제적 사랑의 증명 (20분)
IV.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실제적 사랑의 증명 (20분)
구원은 개인적 사건인 동시에 즉각적으로 교회의 지체가 되는 공동체적 사건입니다. 신자는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되어 공동체 안에서 영생을 누립니다.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짐: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 속으로(Into)' 들어가는 것이며, 이미 삼위 하나님과 연합된 교회 공동체 안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삼위 하나님 속으로의 세례:
공동체 지평 위에서의 사랑(Caritas):
진정한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됩니다.나에게 고통을 주는 지체들을 끝까지 인내하고 품을 때 입증
부족한 지체로 인해 겪는 고통을 인내할 때, 우리 안에 '예수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우리의 혈기와 교만이 죽고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됩니다.예수 죽음의 기운:
교회를 떠돌아다니는 '메뚜기 신자'는 이러한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 기회가 없어 본질적인 성화의 진전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결론 및 요약]
[결론 및 요약]
교회는 단순히 지식을 얻거나 개인의 행복을 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교통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모상입니다. 신자는 공동체라는 지평 위에서 허물 있는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기를 깨뜨리는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진정한 **지순한 사랑(Caritas)**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풍성한 영생의 실재입니다.
01 교회 삼위의 모상
2026.06.14 일 오후 8:21 ・ 108분 4초
곽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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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에베소서 5장 25절 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시작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멘 야 수지 맞았구나 이건 우리를 위한 사경회구나.
아내들이 그러시겠지만 오늘 관심 있는 본부는 상반절이 아니라 하반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언제나 진리를 통해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그 진리를 통해서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죄와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얽매인 저희들을 그 진리의 말씀으로 푸으셔서 우리를 자도록,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도록 저희를 도와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더없이 진실한 마음을 주셔서 아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에베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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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베소서는 교회와 구원의 대서사시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복음의 교리들을 담고 있는 깊이 있는 책인 동시에 실제적인 책입니다.
이 서신서가 쓰여진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옥에 있을 때 주후 62년경에 이 서신을 썼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서신의 내용은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까지 포함하는 아주 깊이 있는 교리들을 담고 있고, 그리고 그 교리를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창조와 구원, 교회와 성도의 생활 등등을 아우르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서신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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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베소서는 늘 그러하듯이 1장부터 3장까지의 전반부에서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포함하는 기독교의 교리를 다루고, 4장, 5장, 6장에서는 성도의 실질적인 삶을 다루는 가운데 특별히 교회와 그리스도, 남편과 아내의 유비를 통해서 성도가 어떻게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하며 가정 안에서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 가고, 교회 안에서 그 가정의 모습을 이루어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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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5일 동안 우리들이 생각해 볼 교리는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이고 성도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그리고 교회는 이렇게 모여서 결국 무엇을 하고 어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째서 교회는 자기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가 그리고 성화는 이 교회의 생활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우리들이 살펴보게 될 것이고, 이 빛 아래서 아마 오랫동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성화의 진전이 없고 그리고 핍절한 삶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보게 될 것이고,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을 생애적으로 고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들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오늘 첫째는 ‘교회’가 바로 ‘삼위의 모상’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모상은 이렇게 베낀 것이다. 혹은 그 모형 모형이다 그런 뜻이죠.
이렇게 비춘 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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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을 이렇게 보고 그렸다든지 찍었다든지 하는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거죠.
사진이 우리를 찍은 사진이 우리의 모상이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런 점에서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모상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모상이다. 그 하나님의 모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지만 그 하나님은 각각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에요.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한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다른 성부나 성자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또 이 하나님은 각각 인격을 가지고 계셔서 한 분 한 분이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이 하나님은 삼위의 하나님은 항상 새 하나님으로 일하지 아니하시고 한 하나님으로 일하시는 성부가 계신 곳에 성자와 성령이 계시고, 성령이 일하시는 곳에 성부와 성자가 관여하시는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존재의 양식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교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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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사랑하시고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런데 이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사랑으로 창조하셨지만 그 사랑과 함께 지혜가 있으셨어요.
그 지혜는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계획의 근원이 되어 그 하나님만이 아시는 탁월한 지혜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된 세상은 이 창조된 세상으로서 하나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방향이 있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지혜 가운데 정해 놓으셔서 인간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지혜를 나누어 주심으로 그 사랑과 지혜 안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신 목적을 실현해 가도록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 교회는 바로 그런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교통이 있는 곳인데 이 교회가 있기 전에 교회를 말하기 전에 먼저 신자를 이야기해야죠.
신자, 특별히 이 신자가 영생을 얻은 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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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또 다른 말은 성도지만 신자나 성도나 모두 신자와 성도가 아닌 사람과 틀린 점은 뭐냐 하면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도대체 우리들이 늘 사용하고 있는 이 영생의 의미가 뭐냐 영생의 의미가 뭐냐 이 영생의 의미는 원래 고유한 의미로 본다면 고유한 의미로 본다면은 이 영생의 뜻은 그냥 영원히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생은 영사의 반대말이죠. 영사는 영원히 죽는 거예요.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고 이야기해요.
이게 영생의 고유한 의미예요. 그러니까 신자는 바로 영원히 살게 된 사람이에요.
앞으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라 지금 이미 그 영원히 사는 것이 시작이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죽지 않고 영원히 계속 살 사람들이 바로 신자고 이러한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이렇게 묻고 싶겠죠. 아니 신자도 그래도 죽고 죽으니까 교회에서 추도 예배도 드리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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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생의 고유한 의미는 영원히 사는 것이지만 그것을 실제 적용할 때 적용하는 의미에서 보면은 이것은 그냥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에요.
시간 속에서 죄와 부패로 인해서 아주 더럽고 힘이 없어진 이 육체를 간직한 채 목숨이 붙어서 그냥 기다랗게 시간 속에서 생명이 연장되는 이것을 누구도 행복이라고 얘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적용한 의미에서 영생은 어떤 것이냐 하면 삼위 하나님께로부터 삼위 하나님과 인간이 연결이 되는 거죠.
삼위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그 연결 속에서 신자가 삶이 하나님에게만 있는 그 어떤 것들을 공급받으면서 사는 거, 그러한 생명적인 관계를 가리켜서 영생이라고 불러요.
그런 관계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 바로 영생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어떻게 하다가 보니까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목적이 있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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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하나님이 전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이 세상을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이 세상을 돌보고 가꿀 사명을 인간에게 주셨어요.
그 일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죠. 그러니까 그냥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래서 뚝 떨어진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긴 했지만 더 이상 하나님과 특별한 연결이 없이 그냥 동물처럼 존재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그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를 헤아릴 수가 없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그 일을 해나갈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세상을 가꾸고 돌보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그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 주신 거죠.
우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그에게 자원으로 주셨어요.
이 세계를 하나님이 돌보도록 그에게 위임하셨지만 또한 이 세상을 돌보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신이 얼마든지 활용하고 처분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그런 권세를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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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있는 자원뿐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자원이에요.
우선 하나님처럼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해서는 하나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뛰어나게 잘 알아야지만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파악하고 돌볼 수 있겠죠.
또 돌보되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보기를 원하셨으니까 하나님께로 공급되는 사랑이 있어야지만 하나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돌볼 수 있겠죠.
또 하나님이 인간을 기계처럼 창조하셔서 로보트처럼 움직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스스로 판단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셔서 상당히 하나님을 닮게 하셨으니까 인간은 자기 의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해요.
그러 자유 의지의 권한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셨는데 이것은 인간 이외에 어떤 피조물에도 안 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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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을 공급받으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제 인간의 삶인데 그런 삶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생명과 자원, 땅의 자원과 하늘 자원을 공급받도록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영생이라고 부르는 거죠.
신자나 불신자나 육체는 모두 죽지만 영혼은 모두 죽지 않아요.
영혼은 불멸하도록 창조됐어요. 시작된 때는 있지만 사라지는 때는 없어요.
불신자들의 영혼도 영원히 죽지 않고 형벌 가운데서 고통을 받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생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것들이 끊어진 상태에서 형벌 가운데 있는 영혼이기 때문에 불멸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영생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단 말이죠.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누리는 영생이 바로 이런 것들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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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이 육체가 영원히 보존되는 건 아니지만은 이건 어차피 벗게끔 되어 있는 거고 인간의 본질인 영혼이 바로 그렇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과 생명적인 연합을 누려서 생명을 공급받고 그리고 그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이 땅에 있는 자원과 하늘의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살아가는 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영생을 주신 이유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생을 누리며 살게 하시는데 이 영생의 도구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지식과 사랑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지식, 그 지식과 그다음에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을 통해서 실제로 영생을 얻게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거죠.
영생은 바로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 3절 에서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하나님과 곧 그에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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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영생은 바로 아는 것이 그 아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 그냥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인격적인 체험을 통해서 영혼과 모든 육체가 함께 그것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게 되는 거예요.
이거는 경험을 동반한 지식이에요. 그 지식 속엔 항상 사랑이 포함돼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분을 알게 되죠.
아는 것 없이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그분을 알 자가 없으니 이 지식과 사랑은 통합되어 있는 거죠.
영생은 바로 이 지식과 사랑을 최초로 소유하는 거고, 성화는 부족하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해 부족한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이 성화고, 그리고 마지막에 영화는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고 사랑이 완전히 완성을 이루고 몸과 결합되는 것이 이것이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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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이렇게 성화에 힘쓰는 것도 바로 성화에 힘쓰면 성화에 힘쓰면 그걸 통해서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거죠.
또 반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려고 애를 쓰고 더 많이 사랑하려고 자기 죄와 싸우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도 자라고 사랑도 자라서 그만큼 영생을 충만하게 누리면서 살게 되는 거죠.
은혜가 떨어지면 영생하도록 부르심은 받았는데 실제로 그 풍성한 생명을 못 누려요.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오심을 그것이 바로 영생의 본질이에요.
이러한 이러한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신자예요.
그런데 이제 이 신자가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이 신자가 살아야 할 특별한 삶이 있어요.
왜냐하면 신자가 되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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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혼도 바뀌고 본성도 변화되게 되었어요.
영혼도 바뀌고 본성도 변화되었으니까 이제 그 사람에게 옛날 사람이 먹던 것을 영원히 먹어서는 옛날 사람이 살던 삶의 방식을 따라가서는 변화된 새 사람에게는 그것이 적합하지가 않아요.
이게 이제 매우 중요한 대목이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신자의 삼위일체적 삶이라고 하는 것이 나옵니다.
신자가 된 후에는 이러한 세 가지 삶을 통해서 이 새 삶이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것도 없고 삼위일체적인 삶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그 영생을 풍부하게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오늘 우리 주위에 보면은 예수 믿은 사람 중에서 정말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기가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의 신비에 대해서 눈 뜨고 그것을 인해서 날마다 감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혀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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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히려 세상에 있을 때는 행복하고 방실방실 웃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골난 사람처럼 서로 쳐다보고 웃지도 않고 그리고 살아요.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의도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살면 선교에 도움이 안 돼요. 그러면 아니 하다못해 뭐 화장품 하나라도 찍어 바르니까 얼굴이 허얘져야지 나도 그걸 사고 싶지. 일요일마다 성경 찬송 노란 봉투에 집어넣고 교회 간다고 그러고 갔는데 그 사람같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럼 복음이 안 팔려. 그러니까 최고의 선교는 뭐냐 하면은 자기 자신이 예수 안에서 참 행복한 사람임을 “인생의 행복을 묻는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그런데 그 삼위일체의 삶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첫째는 회개하는 것이에요.
회개함, 컨베르디오라고 말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은 전향하는 거예요.
돌이키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거,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거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신자가 이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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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영혼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예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게 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해 주시고 또 그 지식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셨어요.
영생을 소유하게 된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성도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이런 놀라운 영생을 하나님이 소유하게 하셨지만은 이 영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지만 우리가 지식과 사랑 안에서 계속 자라가면서 우리 안에 아직은 남아 있는 옛 성품을 자꾸 죽일 때에 이 영생은 아주 풍성해져서 그래서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이 하늘나라에 있는 것 같은 행복 속에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지만, 만약에 이 지식과 사랑 안에서 자라가지를 않으면 성화가 진전이 별로 없게 되면은 마음이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아직은 남아 있는 이 옛 사람의 본성이 융성해져서 실제로 그 풍성한 영생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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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아무리 좋은 신자라도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도 이 원리는 똑같아요.
그러니까 성경이 신자의 삶의 정체를 전투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래서 전쟁이에요. 전쟁이에요.
그러나 그 전쟁은 지고 패배하도록 되어 있는 전쟁이 아니라 이기도록 되어 있는 전쟁이에요.
그런 전쟁으로 부름을 받은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 영생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죄의 유혹, 그렇죠.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그 수많은 위협에 맞서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워야 해요.
때로는 악한 영들의 권세가 우리에게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키고 두루 다니며 우리를 삼키려고 하고 대적할 때 우리들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어서 전투적인 삶을 살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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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우리 안에서 일어난 끊임없는 이 부패한 본성, 특별히 하나님을 신실하게 열심히 믿으려고 하지 않는 이 지식의 태만, 육체의 게으름, 그다음에 은근한 자기 사랑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합치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않는 이 나태함 이런 것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서 매일매일 새롭게 살아나는 거.
실제로 여러분들이 아침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충만히 누려서 행복했는데 점심이 되기 전에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진 적 여러분 있었을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는 회개, 하나님을 향하여 등졌던 우리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이 전향이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얼마나 회개를 해야 됩니까? 이게 무슨 이 회개는 날 잡아서 하는 게 아니에요.
대개 그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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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돈 생기면 갚을게 돈 생기면 갚을게 그러고 작은 돈이 생겨도 그거를 남의 돈 갚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계속 쓰니까 큰 돈이 자기한테 왜 생기겠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빚쟁이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회개는 이렇게 몰았다가 이렇게 신년 사경회 때 제일 많이 모이거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좀 한 번 좀 잘 보여보려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와서 한번 다 옛날 털어버리고 그리고 새로 시작해 보자 그러는데 그럴 거 없어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사경회를 왜 자주 합니까?
그러는데 그래서 뭐 한두 번 줄였잖아요. 사경회를 좀 줄였잖아요.
제가 그렇지만 사실 사경회를 하는 이유는 사경회가 필요 없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래서 사경회를 하는 거야.
솔직히 난 진짜 이런 게 필요 없는 교회였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매일 매 주일이 충분합니다. 매일매일 내가 예배에 참석하는 걸로 충분합니다.
사실 무슨 사경회나 주일 예배나 틀린 게 뭐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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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 한꺼번에 했다는 거 이외에는 틀린 거 하나도 없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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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래서 필요한 게 뭐냐 하면은 늘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예요.
날 잡아서 하나님이 한 방 치시면 사업이 부도나면 그때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짐승이에요.
그러면 안 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써 그럼으로써 이 삼위일체의 삶이 이루어지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회개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맺은 이 영생의 관계가 실제의 삶에 있어서 풍성해지게 되는 거죠.
두 번째는 뭐냐 하면은 쇄신되는 거예요. 쇄신 이 쇄신된다는 것은 뭐냐 하면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어떤 걸 쇄신이라 그럴까요? 예를 들자면은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이상하게 털털 그리고 자꾸 엔진이 꺼지고 그리고 막 이상한 소리가 나요.
그래서 공장에 가져갔더니 부속 몇 개가 망가졌다.
29:43
그러면서 며칠 동안 수리를 해가지고 뜯어내버리고 새 부속을 갈고 그리고 엔진 오일까지 다 갈아서 그러고 나서 딱 밟아보니까 벌써 소리부터가 틀려 길길길길길길길길길 그러던 차가 부렁부렁부렁부렁부렁 그러면서 잘 나가는 쇄신된 거죠.
쇄신된 거죠. 여러분도 혹시 그럴 때 있죠?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고 정말 너무나 괴롭고 힘들고 아무 기대 없이 교회에 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주셔요. 그러니까 그냥 말씀이 깊이 은혜를 받고 회개를 하고 그리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뉘우치고 나니까 이상하게 자기를 힘들게 하는 환경은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그냥 심령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거야.
30:37
그렇구나 내가 이제것까지 헛살았구나 잘못 살았구나 그러면서 그냥 그 영혼이 새로워지는 거. 이렇게 되면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부패한 욕망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주님을 믿으면서 살지만은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내 중심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이 가짜 신앙 자기 사랑의 정욕 이런 것들이 이러한 회개를 통해서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게 되고 그 회개를 통해서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게 되면 그 자기 깨어짐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사랑은 토해서 바깥으로 나가고 그리고 없던 진실한 사랑은 생겨나게 되는 거죠.
이때에 영혼이 쇄신되게 됨. 영혼이 쇄신되면 이제 하나님이 그 영혼을 기뻐하시는 영혼이 그렇게 쇄신될 때 계속해서 쇄신의 작용이 일어날 때 그때에 영혼이 점점 더 아름다운 상태가 되어 가는 거.
그러니까 한 번만 은혜를 받으면 안 돼요.
31:58
한 번 은혜를 받고 그리고 또 와서 또 깨달으면서 또 은혜를 받고 또 깨달으면서 은혜를 받고 또 깨달으면서 은혜를 받으면서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 말씀 앞에 은혜를 받아 은혜를 받는다는 게 뭐예요?
아이고 하나님도 어쩜 내 생각하고 그렇게 똑같으실까 대견하기도 하시네.
그 은혜가 아니에요. 은혜는 항상 자기를 깨뜨리는 것과 함께 찾아오게 되는 거.
이 은혜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동안에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인간으로 하여금 행하여야 할 바를 행할 수 있도록 선한 의지를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야 다시 한 번 할까요?
이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하는데 예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이 은혜는 바로 인간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바를 행할 수 있도록 인간 안에서 선한 의지를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예요.
그게 은혜예요.
33:14
그러니까 항상 그런 사랑의 가마와 함께 은혜가 주어지게 되면은 항상 그 안에는 자기가 그렇게 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미움과 통해 자복이 그렇게 꼭 있게 마련이에요.
그걸 통해서 영혼이 새로워지게 되는 겁니다. 새로워진 영혼에는 새로워진 영혼은 그렇게 반복해서 새로워질 때 하나님 앞에 아주 추루하고 더럽던 영혼이 아주 아름답게 되는 거죠.
하나님이나 사람이나 모두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돼 있어요.
영원히 아름다우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을 모두 하나님이 다 사랑하신다고 그렇게 착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일렬로 세울 수 있어요. 1번부터 차례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여러분 모두 사랑하시죠.
그러나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있냐 그러는데 엄지 손가락은 새끼 손가락보다 덜 아파요.
한번 깨물어 봐 그게 왜 덜 아파요?
34:27
그러니까 그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돈 많은 사람 아니 그리고 돈 없는 사람 아니에요 늙은 사람 아니에요 그럼 젊은이도 아니에요. 그런 상관이 없어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영혼이 아름다우니까 어떻게 되죠?
이제 들어보세요. 영혼이 아름다우니까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은 그 영혼과 더 많이 교제하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영혼 안에 있는 그 아름다운 영혼이 가진 지성에 하나님이 말을 건네셔요.
그러면은 영원히 쇄신되고 나면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는 거예요.
35:16
쏙쏙 들어오는 거예요. 막 들어오는 거 오늘도 제가 낮에 묵상을 하면서 마음이 쓰렸어요.
교회 안에 그 말씀이 잘 안 들어온다라는 사람들이 있대요.
근데 뭐가 잘 들어갈지 연속극은 잘 들어가려나 그래서 내가 가까운 시일 내에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 모두 모여라 해 가지고 그래서 한번 어떻게 하면 그게 들리는지 귀를 뚫어주려고 그래요.
송곳으로 이렇게 막 들려요. 그다음에 뭐냐 하면 이 마음이 가지고 있는 이 애성에는 말이지 하나님의 사랑이 전에는 하나님이 많이 사랑해 주셔도 안 느껴졌거든.
하나님의 사랑이 막 느껴지는 거 의지는 전에 항상 나를 곤고하게 했거든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의지는 말을 안 들어 그리고 나를 죄로 끌고 가는 거죠.
그런데 이제 이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를 받아들이기를 기뻐하는 거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로 다 통합이 되는 거예요.
이 분리 현상이 일어나면 괴롭잖아요.
36:30
그러니까 마음 따로고 행동 따로면 골치 아프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하나로 딱 통일이 돼 그러니까 이제 행복해지는 거죠.
이게 쇄신되는 거야. 마지막 세 번째가 뭐냐 하면은 발견하는 거예요.
발견하는 이게 뭘 발견하냐 하면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항상 회개하기 전에 깨닫는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회개를 하죠. 그렇죠. 그리고 회개를 하고 나면 아주 보다 더 분명한 지식이 생겨나게 돼요.
근데 그 지식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닐 경우가 많아요.
이게 뭐냐면 그렇게 뺀질대고 세상에서 일이 터지고 저리 터져서 이제 온몸이 성한 곳이 없다가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거꾸로 졌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러니까 사업도 망하고 하여튼 풍파와 환란을 많이 겪고 그래야지 또 간증이 재미가 있잖아요.
그렇죠.
37:40
환란과 풍파를 겪고 막 그래서 뭐 자살하려고 쥐약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그래서 산에 오르락내리락 했었는데 그래서 그 쥐약을 먹기 위해서 사이다 하고 가져갔는데 사이다만 먹고 내려왔다더라 이런 식의 이제 간증도 나오잖아요.
이제 그랬는데 회개를 깊이 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거 뭘 깨달았냐면 막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걸 정말 하나님 너무 감사하다고 뭘 깨달았냐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항상 마음속으로 하나 있어요. 아 바보 그거 맨날 하는 이야기인데 그때는 왜 그래요?
그거 다 수업료를 지불 안 하고 배우니까 그게 무슨 그렇게 가슴에 안 와닿는 모양이지.
그러다가 이제 환란을 만나고 수업료를 잔뜩 지불하고 마지막에 쥐약까지 들었다 놨다 하니까 이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38:51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부르지도 않던 그런 찬송 부르면서 이렇게 펑펑 감격하는 그게 뭐냐 하면 지식이 생겨나는 지식이 근데 그런 지식을 통해서 뭘 깨닫게 되냐면은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깨닫게 되는 거예요.
도덕적 통치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 자연적인 사물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자연적인 통치를 하셔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느 날 달을 막 때리시면서 너 요즘 왜 빚을 안 내니 하나 그렇게 안 해 태양 보고 너 똑바로 불 타 혼날 줄 알아 그게 그런 얘기아니잖아 하나님께서 패스파인더호가 갖다 놓은 그 화성을 보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게 묻지 않은 심정이 그냥 그건 도덕적 피조물이 아니야 도덕적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에요.
인간이 대표적인 도덕적 피조물이죠. 천사나 인간에게 도덕적 피조물이 되게 하신 거죠.
영혼을 주신 거죠.
40:09
그래서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이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 그랬잖아요.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시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으로 하여금 특히 이 안에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어떻게 어떻게 이 세상을 가꾸어 가게 해야 되겠다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잖아요.
그 계획이 있잖아요. 그 계획과 그 계획과 의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선한 사람이라고 보시는 거예요.
거기 거역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라고 보시는데 거역하고 막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가만히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단도 치시고 혹은 최후에 죽은 후에 심판도 하셔서 당신의 도덕적 의지를 보여주셔. 이렇게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도덕적 통치라고 부르는 거다.
그거를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그래서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고 고백한 사람이 아이고 이제 진짜 무거운 짐 벗어버렸네.
41:17
이제 가서 내 마음대로 살자. 그런 사람 아무도 없다.
모두 다 그렇게 회개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뭐냐 하면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보지 않겠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화두가 되는 거예요.
세상의 번영과 승리보다도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화두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져다준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에 대한 인식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하나님의 도덕적 목적을 따라서 살지 않으면은 그 살아 있으나 산 게 아니에요.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대로 여러분들이 살지를 않는데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것이 벌레 한 마리가 살아 있는 거는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리고 인간이 그렇게 하나님의 목적을 떠나서 살아가지고 행복할 수 없으니까 자기 자신에게도 불행한 것이 되는 거죠.
42:22
이렇게 해서 이제 신자가 회개하고 쇄신되고 그다음에 새롭게 하나님의 지식을 발견하게 될 때에 그때에 이 사람 안에 이제 영생이 풍성하게 누려지게 되는 거죠.
영생이 풍성하게 되는 거죠. 지식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고 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그리고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가기에 필요한 이 땅에 있는 자원과 은혜라고 하는 하늘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도예요.
43:08
이런 성도를 하나님께서 이런 성도를 하나님이 그냥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즉시 그 사람을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시는, 그래서 예수 믿고 거듭나자마자 어떤 의미에서 이 사람이 회개하고 뉘우치고 자기의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은 이미 예수께 접 붙여진 후에 일어나는 일이 순식간에 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 붙여줘서 접 붙이셔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그 머리 된 몸의 일부가 되도록 주님이 그들을 접붙이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한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도의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계속해서 몸에 그 지체들이 붙어가면서 그러면서 영적으로 그 연합을 통해서 교회가 되어 가는 거예요.
44:17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즉시 그 사람은 혼자 예수 믿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믿고 뉘우치는 그 순간 이전에 이미 벌써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인 바 되어서 공동체로서 부름을 받게 되는 거예요.
공동체로서 부름을 받게 되는 거 이거는 영원히 이 지상에 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지상 교회에 속해 있지만 또한 이 지상 교회에 속해 있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는 교회에 영적으로 연결돼 있고 속해 있고 그리고 죽은 후에도 이 교회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영적인 교회의 지체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고 그렇게 지체로 함께 붙어서 있는 상태에서 영생을 누리는 거예요.
그 모습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게끔 그대로 구현된 것이 교회 이게 이 세상에 있는 교회예요.
이거를 눈에 보인다고 해서 “보이는 교회”라고 얘기하는 보이지 않는 교회는 이제 이 영적인 연결들이에요.
45:39
작게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지만 크게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 연결되어 있고 더 크게는 하늘에 있는 성도들과 연결이 되어 있고 더 크게는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성도들과 연결돼 있는 그래서 모두가 하나의 하늘 가족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이런 사실들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신약 성경에 보면은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해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왜 그렇게 기도하라고 그러는 거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은 모두 다 자기 가족을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불러야 된다.
이 그 가족이 바로 누구냐 하면 “하늘 가족”이야.
46:46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거듭나는 그 순간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졌고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졌을 때 나는 이제 내가 아니라 교회의 몸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랑하는 지체들 때문에 공동체로 부름을 받아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이 된 거죠.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딱 끊어졌어요. 손가락이 끊어지잖아요.
얘는 접착체로 뛰어나서 얘는 웬만하면 붙일 수 있어요.
여러분들 그런 일은 당할 리가 없겠지만은 손이 끊어지거나 발가락이 끊어지면은 그거를 그대로 그거를 그대로 얼음 같은 데다 싸가지고 그래도 빨리 가야 돼요.
그럼 고칠 수 있어요. 고칠 수 있어요.
47:46
근데 이렇게 떨어졌을 때 그 몸이라고 그러지 않아 우리들이 여러분들이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 손을 툭 치면은 야 내 몸을 건들지 마 내 몸에 손대지 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자기가 손가락이 끊어져서 그 찬장에 놓고 갔는데 누가 와서 이렇게 건드려 야 내 몸에 손대지 마 몸이 아니예요. 다시 한 번 얘기할게요.
영생은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다른 지체들과 함께 접붙여진 공동체의 상태에서 누리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는 거죠.
48:37
또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셔서 하시는 일이 뭐냐 하면 사랑으로 자라게 하시는 거예요.
사랑으로 자라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잘 보세요.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이 서로의 완전하심 때문에 사랑하신다 그랬죠.
그래서 그 사랑은 바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사랑이 하나님이신 동시에 그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한 분 하나님이 되심으로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는 거죠.
근데 하나님이 그 사랑을 어디에다가 쓰시느냐 당신의 지혜를 이루는 데에 그 사랑을 사용하시는 거죠.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예수 믿다가 바깥으로 나가서 미끄러지면 내버려 두시면 되지.
여러분들 솔직히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다가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 만나면 저 사람은 왜 안 떠나나 이렇게 생각하는 적 없었어요.
12월에 구역이라도 좀 바뀌면 좋을 텐데, 아니 저 사람 왜 왜 우리 구역에다가 준 거야?
그럴 때 있잖아요.
50:00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가 미끄러져서 세상 밖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은혜 주셔서 부르셔. 회개시키시고 또 우리는 그냥 저 좋은 줄 알고 막 살았는데 알고 보니까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우리를 환경으로 탁 치셔서 이 길은 가면 안 된다.
니가 잘못됐다 이런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시잖아요.
왜 왜 하나님이 그렇게 마음대로 막 살게 내버려 두지 않고 그렇게 간섭하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야.
그 계획대로 살면 하나님과 항상 평화를 누릴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매일매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가면서 하나님 앞에 시시때때로 기도하는 사람이 안 기뻐하는 길을 가면서 금식하는 사람보다 훨씬 하나님께서 사랑스러운거에요.
51:06
그렇게 하나님께서 걸어가는 길을 정해놓으시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지혜예요. 이런 사랑과 지혜가 하나님 안에 있어서 그 사랑을 가지고 지혜를 구현해 가시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뭐가 있냐 하면은 그거였구나 하나님이 그걸 원하시는구나 내가 몰랐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이런 아하 하는 게 항상 있어요.
항상 있다. 이거. 물론 거기에는 뼈저린 회개를 동반할 때도 있고 아니면은 감사의 찬송이 우러나올 때도 있지만 그러나 항상 그거였구나 그거였구나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에요.
이 사랑과 지혜, 이 사랑으로서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목적이 목적이라는 이 지혜를 이루어 가시는 거죠.
그런데 이런 사랑과 지혜를 하나님께서 이게 교회에 위탁하시는 거예요.
교회에 그러니까 교회에 오면은 배우는 게 교회에 와서 배워야 할 게 뭐냐 하면은 사랑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52:23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거를 교회가 배울 수 있어 교회에 와서 배울 수 있어야 돼.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교회에 와서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에 창조된 거구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저마다 그렇게 행복해지려고 몸부림을 쳐도 어떤 사람은 피할 수 없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구나.
인생의 행복이 행복의 길이 여기에 있구나. “인생의 행복을 묻는 그대에게” 내가 우리 교회를 소개시켜 주리라.
53:07
요새 얘기 들으니까 요새 설교가 몇 주째 쉬워져서 아주 굉장히 해피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네요.
며칠 더 한번 쉬어보죠. 그런데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들을 지금 풀어가고 있는 그런 것들을 여기 교회에 와서 깨닫게 되는 거. 그 두 개를 보여주기 위해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거예요.
왜 그거를 보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겠어요? 그러잖아요.
믿을 거 아니야 그리고 그거를 계속해서 발견하는 사람은 성화되어 가려고 애쓰지 않겠어요.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구나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이걸 깨달으면서 계속 나갈 거 아니에요 그 완전해지기를 사모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신 것은 바로 그렇게 영생을 누리게 된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이제 그 사랑과 지혜 안에서 자라가게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교회가 그렇게 해서 세워진 거거든요.
54:29
그러니까 이제 이게 어떤 관계냐 하면은 그러니까 교회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해주는 것이 교회의 최고의 봉사거든요.
사랑을 알게 해주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도록 도와주고 그거를 하는 것이 목회예요.
그걸 하는 데가 교회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막 쏟아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에 나올 때마다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그 가슴 저미는 사랑을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자기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지 않는지를 회개하고 자기가 깨뜨려지게 될 때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속에서 풍성하게 솟아오를 거 아니에요.
55:23
그죠 또 이 세상에 세상의 풍조의 의해서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어떤 지체의 표현에 의하면은 겨울에 얼음 속에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그렇게 맑고 깨끗한 진리가 교회에서 선포될 때 그때에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욕망과 추루한 죄 때문에 어두워졌던 지성이 열리고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지혜로워질 거 아니에요 이 두 개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이 두 개를 인간에게 주어야지만 그 인간이 비로소 행복한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 것도 없으면 그에게 다른 모든 것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은 더더욱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 불행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모상이 삼위 하나님의 교통하시는 모습이 이 여기에 세워진 곳이 그 교통하는 모습이 새겨진 곳이 바로 이게 교회예요.
56:54
그래서 이 삼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안에 계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제 많이 헷갈리기 시작하거든요. 왜냐면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 끝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라는데 목사님 주님이 누굽니까?
주님이 누구예요 대답을 못하잖아 봐. 맨날 물으면서 주님이 누구야 누구 목사님 주님이 누구예요 누구? 그러니까 뭘 알아도 분명하게 알아야지 구약에서 주님 그러면 대부분 성자 하나님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예요.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는 이제 주님이라고 부를 때 그 주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게 주님이라는 말의 뜻이에요. 그런데 그래서 이제 그러더니까 또 어떤 사람이 책을 썼는데 뭐라고 썼냐면 우리 그동안에 성부 성자 하나님은 많이 불렀는데 성령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다.
58:37
그러니까 이젠 제발 이제 성부 성자 하나님께는 그만하고 이제 성령 하나님을 많이 찬송함으로 균형을 좀 이루자.
사실 이렇게 처음서부터 말이 되는 것 같죠. 근데 사실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아니 그런다고 해서 그 균형이 잡히겠어요 그 찬송한 횟수를 적어 놓을 거예요.
어떻게 할 거예요? 또 그렇게 적어놨다고 하더라도 성부 하나님 찬송할 때는 마음을 조금 덜 실어 부르고 성자 하나님 부를 때는 은혜를 받아서 좀 열심히 부르고 그럼 그것도 또 형평의 원칙에 안 맞잖아요.
그러니까 다 틀린 거고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틀림없이 그러나 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가 참으로 교회로 존재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부와 성자와 관련이 없이 이 교회를 붙들고 계신 것은 아니에요.
제일 먼저 성부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에 관여하시는지 보여드리겠어요.
59:52
우선 성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것을 계획하신 분이죠.
그리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때문에 망가진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재창조하실 우주의 계획을 세우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 그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가 계획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계획된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창조되었어요.
그 성부 하나님이 인간이 타락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도 성부 하나님이 세우시는 거죠.
또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으로서 성부의 사랑으로서 성도들이 구원받고 교회가 세워지죠.
근데 실제로 성부가 계획을 세우셨지만 성자께서 희생하시는 은혜로서 성부는 성부는 계획하시는 사랑으로, 성자는 희생하시는 은혜로서 자기의 몸을 핏값으로 주셔서 죄 지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버지 앞에 죗값을 치르고 구원해내시죠.
그리고 친히 예수님이 그들의 머리가 되시죠. 그래서 그들과 연합을 이루시죠.
1:01:21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공급받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통치하시는 거죠.
통치하세요. 지금도 통치하고 계시잖아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아주 선명하게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된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깨닫고 순종하잖아요.
통치하는 은혜로 통치하시는 거죠. 그러나 성령 하나님도 여기에 개입하세요. 성령 하나님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게 하시는 장본인이세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셨지만 구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의 공로를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적용시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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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주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와 접붙여지게 되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각 성도들이 개개인이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몸을 이루면서 그 한 성령 안에서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영적인 연결을 가지면서 함께 교통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러니까 교회는 이처럼 삼위 하나님이 함께 개입하셔서 관여하고 계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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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렇게 삼각형으로 돼 있는 것을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한다면 이제 교회가 세워져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로 관여하시고 그래서 머리가 되셔서 통치하고 다스리시며 성부와 성령께서 함께 간섭하셔서 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관여하시지만 성부와 성령이 함께 관여하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교회와 관련을 가지시면서 세우시고 이끄시고 그 안에 성도들을 연합시키시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 그 구속의 공로를 따라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재창조의 계획에 맞게끔 교회가 존재하는 거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계획이 있었는데 인간이 타락해 그 그게 무너지는 것 같은 거죠.
그런데 이 세상을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죄 때문에 타락했지만 원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계획은 그대로 가지고 계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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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가꾸고 완전하게 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다라고 하는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어요.
죄 때문에 망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 고칠 작정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의 종자 씨로 선택한 것이 교회요. 교회 종자씨로 그래서 이 종자씨가 누룩처럼 번져나가면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덧붙여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되고 그 사람들에 의해서 일치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세상을 섬김으로써 이 세상을 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거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고 성도를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이렇게 삼위가 함께하시는 곳이 교회인데 이러한 삼위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지게 되면 예수님과만 사귀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과 함께 사귀게 되는 거죠.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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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삶이 하나님과 함께 연결되어서 그분께로부터 생명과 하늘과 이 땅의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살아가는 것이 이것이 인생의 이제 행복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세례를 주라.
어떻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런데 이게 원래의 원래 희랍어 원문에는 그렇게 안 돼 있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속으로 세례를 주고 그러니까 세례 주는 목사가 성부 성자 성령을 대신해서 세례를 준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관심사는 세례를 주는 사람은 관심의 표적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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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는 사람이 있고 여기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신데 누가 세례를 주든지 사도들이 하여튼 세례를 주면 제자들이 세례를 주면 이 세례를 통해서 여기에 있던 이 개별적인 사람이 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게 되요. 들어가게 되면은 이 들어가는 사람이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미 성부 성자 성령과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고 그다음에 구원받은 신자들이 몸이 되는 그 교회 속으로 연합이 됨으로 말미암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 속으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인투예요.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렇게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이름 그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름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이름은 의미가 없는 말이고 성부의 이름은 성부와 같은 거예요.
성부 성자 성령 속으로 세례를 주노라. 내가 이렇게 세례를 주는데 너는 이 세례를 통해서 성부 성자와 성령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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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부 성자와 성령 속에 속으로 이미 들어가서 몸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는데 니가 그리로 연합이 되는 거다.
그래서 옛날의 교부들은 고대의 교부들은 이 신자를 작은 신들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되어서 들어가게 되면은 인간 자신이 신화된다고 본 거죠.
근데 그거는 사실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라고 얘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성경에도 그런 말이 나오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잖아요.
이분이 신이시란 말이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그러니까 이제 이거 완전히 전에는 그냥 육적인 사람이었는데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람이 되는 거 귀신이 들리고 그런 것과는 틀리게 인격적인 성령님이 그 안에 거하신 신이 계신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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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을 지금이야 뭐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신이라고 부르진 않지만은 그러나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신령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은 지금 우리 모두가 다 동의하는 바이잖아요.
그래야 되는 거죠. 근데 그렇게 되니까 신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의 시작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죠.
영생의 실제가 영생의 실제가 결국은 그것이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하는 거 거듭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신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속으로 들어가서 연합을 이루는데 우리는 항상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는데 나 혼자 뿅 하고 들어가서 탁 하고 연합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 이미 이미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속으로 들어가 연합된 그 교회의 접붙여짐으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연합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있고 교회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서 여기에 있는 교회가 연합을 이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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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음으로 내가 그 교회 속으로 연합되어서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한 지체가 되므로 결국은 모인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과 이렇게 연합되게 되는 거죠.
이게 바로 성도의 정체예요. 성도의 정체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그렇게 예수의 몸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자기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아니 이 세상이 끝나고 영원 무궁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자기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거기에 접붙여진 사람이다라고 하는 그 인식을 안 가지고 살게 되면은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요. 우선 뭐냐 하면 성화의 진전이 없게 돼요.
여러분 주위에 잘 보면은 진짜 욕심도 별로 없고 그리고 하여튼 성경 많이 보고 그리고 하여튼 섬기는 것도 엄청나게 많이 섬기려고 하고 진짜 자기를 위해서 살 어떤 욕망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비전도 많아 그런데 말하자면은 교회가 없어. 있어도 항상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한도 안에서 교회를 이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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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해관계가 부딪히게 되거나 혹은 골치 아픈 일이 생기거나 자기의 만족을 못 주면은 언제든지 교회를 떠나서 철새처럼 날아다녀요.
이런 사람들을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영혼이 굉장히 곤궁하고 허해요.
버리적거리면서 몸부림은 치는데 성화의 진전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다니면서 필연적으로 교회에 욕을 하게 돼 있어요.
그것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하게 돼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자기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접붙여진 그 교회의 한 지체인데 자기가 하는 언어와 행실과 행동과 많은 것들을 통해서 그 교회에 끊임없이 아픔을 주는 거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쓰러졌을 때 제일 먼저 예수님께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뭐예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예수님 만난 적이 없는데 예수 믿는 교인들을 박해하고 욕하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걸 당신 자신에 대한 핍박이라고 여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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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쉽게 얘기하면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계속 찔러서 고통을 주면서 예수여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내가 예수 닮기 원합니다.
내가 이 비전을 가지고 이 세상을 섬겨서 예수의 나라 되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계속 예수의 몸을 찌르는 거야. 피가 나요 예수님은 원하시는 게 뭐냐?
야 니 비전이고 성화고 다 필요 없고 찔리지 나 우선 말아라 그러고 얘기를 하자.
수없이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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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말이죠. 드물긴 하지만은 어떤 경우에는 진리를 굉장히 많이 섭취한 사람이 그래서 이야기를 시키면은 웬만한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교리를 많이 알고 있고 그리고 진짜로 건성이 아니라 진짜 깨뜨려져서 주님을 만난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데 곤고하게 살아 그 이유는 뭐냐 하면은 자기도 모르는 무지로 말미암아서 자기 자신이 예수의 몸의 일부라 하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 하면은 성화에 있어 진전이 없는 거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 자녀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 애가 좀 유별난 애가 있다고 칩시다.
똑똑하고 그리고 주간 원래 못난 애들이 그 저 가출도 잘 안 하고 그 엄마 시키는 대로 한다고 그게 못생긴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거 교회에서도 그래요. 저같이 이렇게 그저 그런 사람이나 이렇게 교회를 지키지 그러니까 그렇게 그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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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얘가 그 가족이 무슨 범죄하고 뭐 이런 가족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가족인데 자기 인생을 설계할 때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 집안이 있고 가문이 있고 조국이 있다.
내 형제가 있고 자매가 있다 이걸 알고 인생을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그리고 인생의 계획을 세운다고 할 때 후자를 선택했을 때 얘가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결혼한 사람이 그 부인이 있다 남편이 있다 이런 걸 계획에 안 세우고 그러고 자기 인생의 계획을 짠다.
행복해질 수 없는 건 너무 자명하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이 문제는 이 정도 다음에 좀 더 다루겠습니다.
근데 이거는 아주 굉장히 치밀해. 근데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왜 이렇게 곤고하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진리를 많이 깨달았고 옛날에 수없이 많은 자기 깨어짐을 경험했는데 자기는 왜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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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교리를 많이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항상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어.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많이 깨달을수록 깊이 낮아져서 빈소리가 요란한 거야.
그러니까 낮아져서 나는 매일매일 내 눈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통해서 인벤치오. 새롭게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없으면 나는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죠. 오늘 이렇게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 중에 좀 아프더라도 제가 사랑으로 찌르는 거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들으세요.
오늘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여러분들 중에도 교회에 고통을 준 사람들 있죠?
과거나 현재나 그거 굉장히 잘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의 자세는 어떠냐 하면은 자기가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고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당해도 교회는 아프게 하지 말아야 돼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많은 축복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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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관이 올바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영혼의 풍성함을 누리면서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왜 한편으로는 예수를 사랑하면서 그 예수를 계속 칼로 찌르는 거야.
그리고 복을 구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이에요.
근데 그 사랑은 예수님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시지 방식까지 우리에게 일임하신 것은 아니에요.
술로 마시는 거 아니에요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인사가 있는데 침을 뱉는 게 인사래요.
얼굴에다가 그래가지고 가장 환대하는 사람에게는 몇 분 전서부터 인사할 준비를 한대 가래를 준비하는 거야.
가래를 해서 딱 뱉어서 여기에 거의 호떡처럼 붙으면은 막 그렇게 기뻐하면서 닦는 데 사랑받고 싶은 사람 있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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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랑해야지. 그러면 이제 영생의 실제가 삼위의 교제라면 이제 성도의 사랑은 성도의 사랑은 상위 간의 교제의 모상이에요.
삼위간의 교제의 모상이에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분 한 분이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지만 각각 인격을 가지신 완전한 하나님이셔요.
우리들이 세 분이라고 이렇게 부르면 안 되지만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인격을 따로따로 가지고 계신 그 삼위의 하나님이에요.
이 하나님이 각 위가 서로 사랑하시는 이유는 각 위의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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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개별적인 위에 있어서 완전함을 가지고 계시고, 삼위일체로 어울리실 때에 가장 완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를 사랑하시는 거죠.
그런데 성부 성자 성령님이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항상 그 사랑하시는 것 말고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셔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삼위 하나님이 서로를 이용하시는 것이 되죠.
그래서 그런 하나님 자신이 목적이 된 그런 종류의 사랑의 교통을 가지고 계신 건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심어놓으신 사랑의 모형이에요.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각각의 아름다움 때문에 함께 사랑으로 교통하시는 것처럼 성도는 이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서 성도는 성도들이 각자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거죠.
그러면 성도가 아름다움만 있나 아름다움만 있어 무슨 성도라고 불러주기에도 좀 미안한 사람도 많지 망도라고 부르면 좋을 사람들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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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된 사람들만 망도 성도는커녕 망도 그런데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들을 보면은 사랑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보아서는 사랑이 불가능해. 그때에 항상 그들이 이루고 있는 교회의 본질을 주목해야 해요.
그들은 지금 아주 망도 비슷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은 그러나 그들은 혼자 따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서 나와 떼어놓을 수 없이 같은 세포처럼 붙어 있는 세포처럼 한 몸의 덩어리를 이루고 그렇게 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 거지 교통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은 그들이 비록 지금은 부패해서 옛 본성이 흥왕하여 성도의 자리에서 미끄러진 삶을 살고 때로는 망령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가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에요.
그때에 이제 성도들에게 사랑이 요구가 되는 거죠.
1:22:42
뭐냐 하면 여기에 오물이 묻었는데 안 지워져 남보고 좀 떼어달라고 그러면은 칼 갖고 와서 막 긁어 그러나 자기 몸은 그렇게 안 하죠.
진짜 지워질 수 없는 오물이 묻었다면은 차라리 그 오물을 묻혀놓고도 매일매일 조금씩 닦아서 한 한 달 만에 닦아내도록 하겠어요 아니면은 그까짓 거 그까짓 거 100g만 떼어내면 되는데 칼 가지고 한번 비내겠어요.
자기 몸은 후자의 방식으로 다루지를 않아요. 다루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서 자기 몸을 보양하듯이 그 망령된 행동을 하는 그 지체가 자기와 떼어놓을 수 없는 몸의 일부야.
그러니까 몸의 일부가 아니고 손톱 같은데 손톱이 뭐가 묻었으면은 그냥 가위로 잘라버리면 돼.
근데 그게 아니라 이 생명이 연결되어 있는 이 살이야.
살과 뼈야.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이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어도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이 몸과 이 몸에 붙어 있는 머리가 아프시지 않도록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정결케 해서 결국은 온전함을 회복하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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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몇 번 닦아서 안 된다고 해서 칼 갖고 와서 이쪽 팔 떼어내고 깨끗하게 사는 게 낫지.
그 얼룩덜룩 지저분한 거 묻히고 사지 멀쩡하면 뭐냐 뭐 하냐 이게 이게 지저분한 거 없애버리고 그냥 팔 자르고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깨끗하냐 하나님이 뭐 덩치를 보시냐 그게 사실 말이 안 되잖아요.
엊그제도 어느 지체가 와서 나한테 얘기해 자기네 교회는 분위기가 나갈 사람은 다 나가라는 주의라고 그러면 안 되죠.
나가면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야. 시끄러운 사람들 나가고 골치 썩이는 사람 나가니까 편하겠지만 그러면 그게 그 교회를 사랑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거죠.
아주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자녀의 몸에 뭐가 묻었는데 야 100g만 떼어내면 되는데 뭘 그러냐 잘라내고 돼지고기 먹자 그게 되겠네.
그렇게 해서 이제 삼위의 교제를 이루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굉장히 힘들게 되는 거죠.
1:25:23
이제 그렇게 되면은 그죠 이게 이게 사람이 계속해서 힘들게 하는데 이 사람과 한몸이라는 걸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속에서 성도들은 고통을 받는 거죠. 고통을 받으면서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우리가 한 몸이 한 몸이다.
이게 회사하고는 틀린 게 그거야. 회사는 자르면 돼.
파이어, 나가 그럼 끝나요. 퇴직금 갖고 나가 그럼 끝나는 거죠.
자기 원하는 사람들로 포진하면 되는 거죠. 근데 교회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예수의 몸의 일부야. 그래서 그런 지체들을 보면서 항상 생각을 하는 거죠.
저 사람은 나와 생각이 틀리고 심지어는 나에게 많은 고통을 줘도 그래도 저 사람이 예수의 몸이다.
저 사람과 나는 분리될 수 없다. 저 사람을 떼어내면 그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고 몸 전체에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에게 이 고통이 전달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 그래서 그 속에서 그러니까 그게 그게 쉬운 거겠어요?
어렵죠 굉장히 어려워요.
1:26:47
그래서 그 속에서 이제 뭘 배웠냐 하면은 이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욕을 받으시면서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지만 누구에도 사랑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그 사랑을 항상 핍박과 고난으로 되돌려받았던 예수님의 그 처지를 생각하게 되는 거 그러면서 그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의 기운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는 걸 경험하는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 들어오는 그 경험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자기가 죽는 경험이에요.
근데 그 죽음의 경험이 그에게는 막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그 사람의 영혼 그 사람이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받지만 그 죽음의 경험을 통해서 그 사람 안에서 정말 살아야 할 것은 하나도 안 죽어요.
그리고 진짜 반드시 죽어야 할 것들이 예수 죽음의 기운이 스며드는 그 죽음의 경험 속에서 죽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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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냐 하면 참기 어려운 사람들을 깊이 인내하면서 자기의 혈기가 죽는 거예요.
하는 거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 때문에 온유한 사람이 되어 가는 거 그거를 견디기 힘들 때마다 항상 그 허물이 있는 지체들을 보고 자기가 항상 그 사람보다 옳다고 판단을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는 그걸 극복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어떤 생각을 하냐 하면은 이렇게 지금 나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지체들은 지체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질서들이다.
그래서 이 질서를 통해서 내가 내가 절대적으로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제 교만이에요.
그게 이제 교회의 일치를 자꾸 깨뜨리는 거죠. 자기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리고 이것만이 유일한 판단이다라고 생각하는 교만이 이제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교회는 상처를 받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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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데도 그것을 깊이 죽이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고통을 받을 때 그때에 사람들을 보면서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향해서 내가 참지 않으면 고통당할 예수의 몸, 상처받을 그리스도 예수의 그 지체 이거를 생각하면서 예수님 때문에 깊이 참는 거죠.
그 속에서 참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옛 성품이 그 참는 과정을 통해서 스며들어온 예수 죽음의 기운이 실제화되어서 들어오는 거야.
들어오면서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혈기가 계 계속 죽어가는 거야.
자기 자신의 이 더러운 욕망 교만 이런 것들이 막 죽어가는 거야.
그렇게 되면은 자기를 아프게 했던 모든 지체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오직 뭐냐 하면 그거를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보게 되는 거 내가 이렇게 더러운 죄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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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질서 속으로 들어가고 나니까 평소에는 절대로 감추어져 있어서 솟아나지 않던 혈기와 원수 맺는 것과 미움, 독설, 그다음에 말하자면 더러운 언어, 모욕적인 행동 이런 것들이 막 솟아나고 결국은 내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혀 있었지만은 그러나 내가 몸을 정말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 예수의 몸보다는 나를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결국은 나는 예수의 몸에서 떨어질 수 없으니 내가 내 몸을 사랑했다라고 하는 이 이기적인 사랑은 진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때에 깊이 자아를 깨뜨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경험들이 스며들어오게 돼요.
스며들어 나는 여러분들이 이 말을 언어로 제가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말 속에 담겨진 의미들을 여러분들이 많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그 속에서 깊이 예수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거 스며 들어오면서 자기의 교만과 이런 것들을 죽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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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 예수의 죽음의 기운이 들어오게 되면은 자기 안에 있는 죄된 성품을 죽이는데 이걸 어느 한 부분만 죽이는 게 아니라 성품 자체를 죽이는 거예요.
그 기운이 떨어지면 달리기도 못하고 턱걸이도 못하고 테니스도 못 치게 되듯이 마찬가지니까 이 죄된 성품이 죽게 되면은 한꺼번에 자신의 악한 것들이 같이 죽게 되는 거죠.
같이 그러면서 자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쉽게 미워하는 마음, 늘 안 그런 것 같았지만 마음속에 지체를 향한 참되고 진실한 사랑이 없었다는 거 이런 것들이 그대로 이제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예수 죽음의 기운에 의해서 이런 것들이 스며들어서 이게 죽어가는 거예요.
죽어갈수록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 사랑에서 자라서 더 풍성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만약에 골치 아프다고 홀라당 교회 떠나고 저 교회 설교가 좋대 그러고 폴짝 하고 저 교회는 훈련이 끝내준다.
그러고 폴짝 하고 저 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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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떻대 그리고 폴짝 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메뚜기처럼 다니는 거죠.
그러면 뭘 못하냐 하면은 예수 죽음의 기운이 스며 들어올 새가 없어.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인간이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댕글댕글 굴렀는데 이게 하나님의 말씀에 콩가루는 많이 묻었어.
근데 이걸 뚫고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설탕가루 내일은 콩가루 여기는 팥가루 이기고 기름에 튀겼다가 꿀에 집어넣었다가 이러고 돌아다니지만은 어차피 밀가루 덩어리인데 뭐 본질이 바뀐 게 아닌데 그리고 자기 딴에는 굉장히 헌신적으로 헌신적으로 사셨겠죠.
집도 파시고 퇴직금도 월급도 많이 교회에 내시고 그러셨겠죠.
근데 하나님이 정말 뭘 기뻐하실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자기 봉헌이에요.
자기 봉헌 자기 자신을 들이는 거야.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 자기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하나 이제 끝까지 신앙생활을 한번 잘 이렇게 반성을 해보세요.
1:35:05
지금도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닐 수도 있고 다른 교회 다닐 수도 있지만은 한번 그 상황 속에서 여러분을 깊이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여러분들은 충격일 거예요.
그러나 너무 충격받지 말고 가슴에 새겨들으세요.
설교가 진리를 가르쳐 주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교회에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고, 사실 그 일을 올바로 하지 못하면 그 교회에서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하기 어렵죠.
그렇지만 설교 좋은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바보 중에 한 바보가 내리는 결론이에요.
1:35:58
문제는 뭐냐 하면 교회는 내가 원하고 필요하는 것을 주는 효용 가치가 있는 한도 안에서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원래 예수 예수의 몸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그냥 진리를 많이 깨닫고 성경 공부 많이 하고 설교 좋은 교회 메뚜기처럼 돌아다니고 훈련하라는 교회에서 몇 년씩 훈련받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잔뼈가 굵었어도 오히려 시골에서 다 쓰러져가는 교회 목사님 설교 그렇게 신통한 거 없는 것 같아도 이 교회에 나를 세우셨고 그리고 주일 학교 애들 할머니 할아버지 몇 명밖에 안 나오는 교회지만은 이 교회가 예수의 몸인데 그리고 교회 섬기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교회관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수 틀리면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장돌뱅이 신자들보다는 훨씬 질이 좋은 원숙한 삶을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는 거예요.
1:37:26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거기에 자기를 합치시키려고 할 때의 그 진리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지, 자기가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진리 중에서 자기의 마음에 드는 것만을 편파적으로 선택해서 그것을 엔조이 하려고 한다면은, 그 진리는 그것을 즐거워하는 그 사람을 결코 삶의 질을 높여줄 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사랑의 교통을 신자가 이 교회 안에서 누리며 살도록 하나 해 주시는 거죠.
그래서 신자가 내일 하겠습니다마는 신자가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을 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지평 그 위에서 입증이 되는 거예요.
다시 반복할게요.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까리따스의 사랑, 즉 지순의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보다도 더 치명적으로 중요한 것이 신앙이 없잖아요.
1:39:01
근데 그 사람이 그러한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지평 위에서만 입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은혜 많이 받고 바깥에 나가서 가정의 삶, 회사에 가서 삶 다 중요해 그렇지만 거기서 잘 산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생활이에요.
여기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 이외에 나에게는 진정한 삶의 목표가 없다라고 하는 것을 이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입증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허물이 많은 지체들, 어떤 때는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지체들,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제공하는 지체들, 그 속에 함께 어울려 살면서 그 속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향해 순결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거기에서 입증이 되는 거예요.
1:40:19
그래서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자기를 편들어주고 늘 자기의 팬이 되는 교인들하고 어울려서 행복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은 까리따스의 사랑 없어도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자기의 생각이 틀려요. 누가 옳은지 모르지만 자기와 생각이 달라 고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자기를 미워해요.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 생각이 달라서 갈등을 일으켜요.
그때에도 고통은 자기가 받고 그다음에 지체는 선대할 수 있는 사람.
자기는 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깊이 깨뜨려져서 고통을 통해서 나의 죄악을 보게 해 주시고, 그리고 주님의 크신 사랑을 모르고 마음대로 살았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아픔 속에서 하나님 내가 어떻게 나를 도와주십시오.
자기 혼자서 고통을 당하고 지체들은 사랑만 받을 수 있게끔 해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크기가 인격의 크기가 그 사람 안에 있는 까리따스의 사랑을 입증하는 거예요.
생각하는 이거는 두 사람 중에 누가 옳으냐라고 하는 문제하고는 틀린 거예요.
1:41:48
제가 아는 한 교회에서 교회가 말도 안 되는 부도덕한 일에 휩싸여서 고통을 받고 있어요.
성도 한 사람이 광고 시간에 제가 할 얘기가 있다 그러고 교회에 나와서 이거 실화예요.
그 자리에서 칼 가지고 할복을 하고 죽어버렸어요.
거기서 피 흘리고 급히 병원에 옮겼는데 결국은 죽었어요.
1:42:15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예요.
옳고 그름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의 문제예요.
그거는 그거는 저기 세상에서 하는 행동이에요. 내가 이게 옳다.
그리고 할복을 해 진짜 죽었어. 성도가 칼 갖고 와가지고 자기를 그어서 한 10년 전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진리를 듣고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
그래서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뭐냐 하면 내 마음에 세상에 있는 사랑을 다 거둬가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 그 지순한 사랑으로 나를 꽉 채우소서 그러면 우리의 마음속에 그 사랑이 꽉 찬 것이 느껴지잖아 느껴지잖아요.
근데 그 사랑이 진짜 자기 안에 있느냐고 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확인이 되는 게 아니에요.
밤 하늘의 별을 보면서 확인이 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을 보면서 확인이 되는 게 아니에요.
1:43:42
밤하늘의 별 보면서 우주의 그 무한함을 묵상할 수 있을 정도 철학적 사유의 능력이 없어도 성경을 펼쳐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 있는 진리에 대한 감성이 모자라도 이 공동체의 지평 속에서 예수의 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졌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자기를 아프게 하고 지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신과 또 자기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붙어 있는 예수의 거룩한 몸, 그 몸에 붙어 있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함께 연합을 이루고 있는 완전하고 거룩한 성삼위 하나님을 보면서 보면서 자기는 깨뜨려지고 형제는 세우고 자기는 상처를 받고 형제는 보호하고 자기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해도 지체들의 명예는 보존해 주고, 그래서 자기가 깊이 깨뜨려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깨뜨려 지체들에게 유익을 주고 자기를 다 부수어서 자기의 원수들을 봉양하고 이렇게 해서 자기는 아파도 그리스도의 몸이 사랑으로 충만해지도록 그거를 통해서 그 사람이 까리따스의 사랑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거예요.
1:45:51
별 보고 철학의 묵상에 잠겨서 무한한 세상을 묵상하다가 교회 와서 조금만 자기를 고통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원수 맺기를 좋아하고 미움의 칼을 가는 사람들은 까리따스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까리타스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진리를 들을 때 설교 시간에 여러분들이 펑펑 울고 앞자리를 다투고 그리고 무슨 책을 읽고 그 까리타스의 사랑 입증 못해. 일부는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진리에 매혹된 사람이 눈에 보이는 형제는 조금만 자기에게 고통을 주면은 단칼의 마음속에서 베어버려요.
그리고 견딜 수 없는 표독한 미움이 형제의 심장을 찔러요. 그때에 찌른 것은 형제의 심장이 아니라 예수의 심장이에요.
근데 이 사람이 예수께 복을 받고 싶어 해요. 그러니까 그는 사울이 했던 거 똑같은 일을 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거지.
결국은 여기에서 그 사람 자신이 굉장히 많은 까리따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은 공동체의 지평 속에서는 없는 것으로 입증이 되잖아요.
1:47:13
그럼 개인의 삶 속에서는 있는 것으로 입증이 되고 공동체의 삶 속에서는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으며 공동체에서 입증된 것이 진실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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