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서문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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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서문과 1장 낭독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6CV0zFOL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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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예. 저자 서문부터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 아, 네. 그러시죠. >> 예. 읽겠습니다.
이 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쓴 책입니다. 깨닫지 못하다 못하기가 짐승 같았던 저를 깨우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책이 책의 체 초고가 작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 기도원에 섰습니다. 2005년 저월 아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를 깨우쳐 교회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하여 저는 목회자에게 이전에 교회 한 지체로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깨닫게 하신 교회에 대한 가르침은 많은 기도를 요구했습니다.
(00:51) 그래서 저는 짊어지고 온 많은 기도 제목을 한 구속으로 놓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 책은 단지 서재에서 발견한 지식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터와 같은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은혜로 쓰여졌습니다. 삶의 현실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를 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깊이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신자들에게도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신자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 점이는 사랑을 알고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01:40) 2019년 3월 26일 그리스도의 노예 김남준 목사
책을 열며
책을 열며
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경륜
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경륜
인생의 행복은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를 이해함으로써 얻어집니다. 경륜의 헬라어 오이코노미아는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법을 뜻하는 노모스가 결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노모스는 다스리다 귀율하다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이코노미아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경리를 뜻할 때는 하나님께서이 세계를 세계 전체를 마치 하나님의 집으로 여겨 다스리고 돌보시는 것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02:35) 하나님의 다스림은 목적없는 다스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이 세상을 지으셨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지금도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그 목적을 우리는 천지 창조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두서 없이 펼쳐지는 것은 인류의 두서 없이 펼쳐지는 것 같은 인류의 역사는 천지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
교회를 세우심
교회를 세우심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 예수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사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셨고 구원받은 인류가 다시 천지 창조의 목적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03:32) 구원의 역사는 그때를 바라보고 달려왔고 또 달려가고 있습니다.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때를 말입니다. 그때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도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불러 한 몸이 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경륜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성경을 통해 교회에 위탁하셨습니다. 서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를 통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 천지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7절. 신자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유대한 경륜을 봅니다. 그 경륜 안에는 안에서 개개인의 인생에게 주어진 의미를 찾습니다.
(04:20) 이 세계를 만들고 인류를 지으신 하나님의 경륜과 자신의 인생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의 경눈의 빛 아래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교회와 함께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이루어 갑니다. 에베소서 1장 8절에서 10절. 그런데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무지로 인해 일어나는 교회 분열 사랑이 없어 발생하는 신자들 사이의 다툼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죄악들이 교회를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교회의 질서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유익을 교회의 평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교통을 고통을 겪습니다.
(05:03) 진리로 세상을 이기기보다는 세속적인 성공으로 세상에서 환영받기를 꿈꾸는 신자들 때문에 교회 목 존재 목적은 신자의 삶에서 구현되지 못합니다. 또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부족은 개인주에 빠진 신자를 양산해 냅니다. 그들은 교회가 자신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거나 교회 안에 어려움이 생길 때 혹은 자신이 희생해야 할 상황이 될 때 교회를 쉽게 떠납니다. 때로는 자신이 교회 정체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또 개인의 이익 이익으로 인한 다툼이나 견해 차이 때문에 지체에게 접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사람에 대한 이러한 불만과 미움은 교회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나아가 무교회주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05:53) 그러나 성경은 교회는 그의 몸이고 우리는 그의 그 몸의 지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 5장 30절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되시고 에베소서 5장 23절 교회를 사랑하여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교회 우리에게 교회를 보살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 성경은 교회 안에 지체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는지 어둠 가운데 거하는지가 명히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9절에서 11절.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영원한 공 영적 공동체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 그러므로 신자는 일평생 교회가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06:37) 그 배움을 통해서 교회와 삼위 하나님의 관계, 교회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인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교회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서 29절 신자 개인의 성화와 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배워가야 합니다. 그리고이 모든 것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입니다.이 >>
책을 읽는 유익.
책을 읽는 유익.
반기독교적인 현실은 나름의 논리로 무장한 현대 사상의 조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 사조를 거스리며 살아가려면 성경적인 논리가 필요합니다.
(07:28) 순수한 믿음과 함께 논리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지식이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신학생들이나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지식은 우리의 실제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교리는 하나님과 세계와 인생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주고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이 전기되기 때문입니다.이 책을 읽으므로 우리가 얻는 유익이 유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교통의 본질이 사랑임을 배웁니다.
(08:23) 그 사랑은 삼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신의 아름다움에 비롯된 것이므로 신앙의 본질이 그분의 아름다움을 알고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편 27편 4절. 둘째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서 교회의 삼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통의 모상임을 배웁니다.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새입격 간의 사랑의 교통임을 본 공통체이므로 신자가 누리는 영생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통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 어 첫 창조의 모상인 교회는 재창조될 어 인류 사이가 어떠할지를 드러내는 공동체임을 배웁니다. 창조 세계가 파괴되기 전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사랑했던 것처럼 교회 안에 신자들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제창조될 세상이 사랑의 사임 사회임을 드러내야
(09:28) 합니다. 첫째로 아 넷째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 교회의 본질이 사랑의 교통이므로 교회는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함을 배웁니다. 그 일체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치로이 세상에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 신자가 교회의 지체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배웁니다. 토스크리투스의 교리 곧 사랑과 용서를 시천할 때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김으로 교회를 살펴볼 것입니다.이 이 교리는 역사적으로 이레나 이레나이 이레나 이우스 어 테레툴리아누스 아타나시우스 그레고리우스 아오구스티니우스와 같은 동방과 서방의 교회 교부들에
(10:33) 의해서 발전되어 왔습니다.이 이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신자가 어 불안절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 교회의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교회는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이 책을 통해 성하의 공 동동체적 의미를 배웁니다. 그동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해되어온 성화의 의미를 교회론적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을 알아가는 즐거움.
하나님을 알아가는 즐거움.
모든 실천적인 지식은 사변이 필요한 지식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1:29) 때로 가장 사변적인 지식이 가장 실천적인 것도이 때문입니다. 성경적 사상에 뿌리를 두지 않은 실천적 지식은 실천이 없는 사변적 지식만큼이나 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교통을 본 교회에 대해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를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공부는 재미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사상을 배우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오락과 혈락에 빠져 시간을 허의합니다. 그로 인해 허무한 것들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요동하는 삶을 삽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12:24) 성경에 대한 체계적인 참고와 성령의 은혜만이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합니다. 작은 풍랑에도 요동치는 쪽배와 같던 우리를 대양을 가로질러 상해하는 항공모함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에 요동함이 없게 합니다. 시편 168절. 하나님께서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대우는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시인의 강부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13:23) 시편 119편 17절부터 20절. >>
제 1장 사랑. 삼위의 교통
제 1장 사랑. 삼위의 교통
삼위 하나님의 교통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위격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시편 27편 4절. 어
Ch 1 사랑. 삼위 안에 있는 사랑.
Ch 1 사랑. 삼위 안에 있는 사랑.
사랑의 근거: 삼위의 아름다움
사랑의 근거: 삼위의 아름다움
삼위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교통하십니다. 영원 전부터 새위격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사랑으로 교통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거니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14:26)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근거는 새위격의 아름다움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기 무한히 아름다우시기에 서로 사랑하십니다. 인간의 일생은 하나님의이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그것을 즐거워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편 8편 1절 인간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되게 자기 밖에 존재하는 것에 아름다움에 생겨납니다. 이에 비하여이 하나님의 사랑의 원인은 하나님 자신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밖에 있는 어떤 원인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새 위격이 무한히 아름다우시기 때문에 사랑으로 교통하십니다.
(15:29) 요한 복음 5장 20절 10장 17절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출애굽기 3장 14절 하나님 자신이 존재의 원인이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인간을 창조하고 난 후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 하나님께서는 새 위격의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받음으로써 영원히 사랑이십니다. 러네상스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단태가 신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영원한 빛이시여 당신은 당신 안에만 계시고 당신만이 당신을 아시고 당신에게만 알려지고 당신을 알면서 사랑하고 웃으시는도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세상 만물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요한일서 1장 아
(16:37) 요한복음 아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32절 우리는이 아름다움을 자연 사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정신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아름다움은 본래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희미한 그림자이며 흩어진 조각에 불과합니다. 본래 아름다움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사야 35장 1절에서 2절.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개별적 위격의 완전성.
개별적 위격의 완전성.
첫째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개별적 위격의 완전성입니다. 하나님은 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각 위격은 다른 위격 때문에 비로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의 구성 요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7:3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 위격이 완전하고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삼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더 이상 하나님 다울 수 없는 무한한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삼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인하여 각 위격은 무한히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각 위격은 다른 위격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한 위격은 개별적으로 다른 두 위격과 사랑으로 교통하십니다.이는 각 위격의 개별적 인격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거기에서 인격은 한 인간이 개체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받는다는 개인주의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격 즉 인격은 관계적 또는 교통적인 인격을 말합니다.
(18:30) 따라서 새 위격은 세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의 의지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새 위격이 의식에서 구별되고 서로 관계를 맺으신다는 사실은 성경이 입증합니다. 성경은 위격들간에 사랑하시며 한 위격이 다른 위격 안에 거하시고 한 위격이 다른 위격에게로 가는 길이며 한 위격이 다른 위격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한 위격이 다른 위격을 영화롭게 하시며 서로간에 은행하시고 함께 계획하시며 위격에 상을 주 수여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서로 의존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하나님을 의존하며 모두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제에게도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19:21) 이는 하나님 스스로 충족하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
위격적 질서의 완전성.
위격적 질서의 완전성.
둘째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육격의 질서의 완전성입니다. 일반적으로 질서의 완전성이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들 사물들과의 관계에서 조화와 균정 절제 속에서 어울린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좋아하는 자신의 다른 사물들과의 어울림을 균정은 자신과 마주하는 사물들과의 대칭적 질서를 절제는 그 모든 개별적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작용에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3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의 새 육격입니다. 새 육격 사이에 영원하고 불변하며 완전한 질서가 있습니다. 성령은 성자와 성부에게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됩니다.
(20:21) 그러나 이것은 초대 교회의 이단자 아리우스의 주장처럼 본질적인 종속이 아닙니다. 안에서 각 위격들 간의 관계에서의 질서 또는 경륜적인 종속을 가르킵니다. 다시 말하면이 세계와의 관계의 질서에서는 성부가 먼저이십니다. 성자가 그다음이시고 성령이 그다음이십니다.이는 인류 창조의 구원에서 성부가 교회 가시고 성자는 실행하시고 성령은 적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케빈 베노전은 성부 하나님을 극작가요 제작자로 성자 하나님을 드라마의 절정이요 총체로 성령 하나님을 모든 연출을 총괄하는 총 감독으로 묘사했습니다. 새 육격의 본질은 서로 종속되지 않는 하나됨입니다. 그렇지만 경륜의 측면에서는 서로 구별되게 일하십니다.
(21:23) 새 육격이 고유하게 그러나 서로 교통하는 가운데 한 하나님의 뜻을 시간과 공간 안에서 펼쳐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각 육격의 고유함은 그 육격의 아름다움이 되고 새육의 아름다 새 육격의 다름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을 이룹니다. 이것이 육격적 질서의 완전성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전하십니다. 다른 육격들 간의 다름 때문에 완전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육격으로 존재하여 사랑으로 교통하시고 그러한 관계 안에서 각 육격은 무한히 아름다운 방식으로 존재하십니다. 아름다운 방식이란 육격들이 하나 안에서 셋을 이루며 셋이지만 한 분 하나님이 되심을 뜻합니다.
(22:17) 따라서 한 육격은 다른 두 육격을 배제하고 홀로 존재하거나 일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육격으로 교통하지만 세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9절 디모데전서 2장 5절 >>
사랑의 방식:서로가 수단이 되지 않으심
사랑의 방식:서로가 수단이 되지 않으심
삼위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신 교통의 번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대상을 궁극적으로 목적으로 정하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영혼과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아우스트뉴스는 참된 사랑을 어 프로이라고 했습니다. 프로인은 향유 또는 누림을 뜻합니다. 곧 그것은 사랑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상의 목표로 없는 즐거움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23:15) 하나님께서는 존재와 가치에서 최고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심에 있어서 각 위격이에 서로 수단이 되지 않으십니다. 위격에서는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더 높은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능가하는 또 다른 존재의 목표가 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시작되는 하나님 때문에 계획속되고 되며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충족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사랑의 온천이자 목적이며 주체가 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자신을 향한 사랑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의 행복과 배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기의 충족적인 사랑은 인간과 만물을 향한 사랑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24:13)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자기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데 사용하십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 자신에 관한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자기적 사랑입니다. >> 그러나 그것이 인간에게는 한없는 이타적 사랑이 되고 만물에게는 선의가 되는 것이니 모든 피조물은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립니다. 그 사랑 안에서 인간은 사랑의 온청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오고스틴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이 지순의 사랑 곧 가리타스의 사랑을 아모르 소키알리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사회적 사랑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나는 교통예라고 부릅니다.이 사랑은 만물의 판단을의 기준을 하나님께 둔 사랑입니다. 그렇기
(25:16)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대상을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게 합니다. 아무리 열렬한 사랑이어도이 질서에서 이탈한 것이라면 그 사랑은 인간을 참된 행복으로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틴에서는 이런 사랑을 아모르 프루바투스 곧 사적인 사랑이라고 불렀으나 나는 단절에라고 부릅니다.이 사랑은 관계를 단절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의 확장인 것입니다. 즉 마물의 질서와 판단 정립의 기준을 자기에게 둔 사랑입니다. 기준을 자기에게 둔이 사랑은 인간을 불행하게 합니다.
(26:11) 오직 하나님만이 만복의 근원이심으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데 오히려 점점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73편 28절.
사랑의 목적: 하나님의 지혜를 이루심
사랑의 목적: 하나님의 지혜를 이루심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기 전 만물에 대한 모든 지식은 하나님의 관념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와 작용에 대한 것뿐 아니라 그 사물들이 질서 안에서 다른 것들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관계에 대한 암지를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지식을 통합하여 당신이 의도하신 세계가 되게 하십니다. 창조된 세상이 하나님을 향하여 존재하도록 당신의 지혜 안에서 창조의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27:10) 잠언 3장 19절 이사야 31장 2절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이 세계를 향해 자연적인 목적을 능가하는 도덕적인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자연적 목적이 모든 피조물의 생성과 행존, 변화와 소멸의 질서에 관한 것이라면 도덕적 목적은 도덕적 피조물, 특히 인간이 만물을 사용함으로써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가는 것과 관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도덕적으로 통치하십니다.이 말은이 세상이 창조의 목적을 향하여 가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성과 의지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47편 8절 66편 7절 89편 9절 하나님 자신은 세계의 존재함이나 인간이 하나님을
(28:15)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더 만족을 얻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스스로 완전하고 충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95편 3에서 3부터 6절 완전하다면 불변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 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과거의 상태가 현재에 비하여 또는 현재의 상태가 과거에 비하여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2편 27절. 하나님께서 불변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어떠한 정동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목석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은 인격적으로 교통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도덕적 감화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29:10)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만 자기 사랑을 버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부터 16절.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관장하시지만 정작 당신은 변하는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바꾸시되 자신은 바뀌지 않으시며 새로움도 오래됨도 없으신 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느끼는 당신의 정동을 인간도 느끼게 하심으로써 인간을 도덕적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기쁨과 슬픔, 분노와 질투 등의 감정을 봅니다.
(30:05) 이것을 통해 인간에게 선한 일에 더욱 열심을 내게 하거나 불순종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이는 이는 당신은 움직이지 않으시면서도 인간과 만물을 당신 뜻대로 움직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시편 103편 19절. 세상을 창조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자연 법칙만을 따라 운행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연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인간 개인과 사회의 도덕 상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시간과 공간 안에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러한 교리적 사실을 이해하려면 다음 사실들을 숙고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지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지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1:02)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이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만물을 통치하시는데이 통치는 만물을 향한 지혜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선으로 다른 피조물과 관계를 맺을 때 선하심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자연 마물에 대해서는 선의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관대함과 호위로 대해 주심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것을 선택하도록 인간에게 지성의 분별력을 주시고 아는 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의지를 사랑으로 감화시키십니다. 열왕기상 3장 11절에서 12절 어에서라죠. 1장 5절. 은혜를 베풀어 악의
(32:08) 증진을 막고 선을 근하십니다. 시편 5편 4절.이 이 모든 일은 인간을 향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때뿐 아니라 징계를 받을 때도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천지 창조의 목적을 신언해 가십니다.
지혜를 이루는 방법.
지혜를 이루는 방법.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이루시는 방법에 관해 습고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지혜로 창조의 목적을 정하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세상을 다스립니다. 만약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다면 세상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에 따라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 정하신 목적을 담과 같이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가십니다.
경륜의 일치.
경륜의 일치.
(33:06) 첫째로 경륜의 일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위격으로 존재하십니다. 새 위격은 창조와 구속 완성에 각각 고유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역할들은 단일한 신적 의지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새 위격은 각각 고유한 작용을 하지만이 작용들은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의지 안에서 조화 속에 일치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창조와 구속 완성에서 한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경률의 일치로 나타납니다. 그러나이 경률의 일치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하나님의 뜻에 합치시키는 것과 같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자기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려면 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의 차이로 인해서 자기 희생과 포기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새 위격은 존재의 목적이 서로에 대하여 상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4:06)
인간의 사랑
인간의 사랑
둘째로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선 지혜로이 세계를 창조하셨고 또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구속의 역사입니다. 인류의 구속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를 통해 드러나는 지혜를 능가합니다. 그런데 구속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사랑과 깊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전개됩니다. 먼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구속의 역사를 통해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만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로 계획을 세우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이 세상에 오신 것 모든 인간을 향한 지극한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34:54)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 안에 지혜를 펼칠 때 당신을 향한 인간의 사랑을 통해 일하십니다. 이때 홀로 하시는 일도 있지만 어떤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간의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타락한 인간을 전도록 구원하신 일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예.
맺는말
맺는말
하나님께서는 삼위 안에 있는 사랑의 교통을 창조 세계에 새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할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사랑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좌절되는 듯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속을 통해서 그 목적을 이루십니다.
(35:47) 이 이 일을 통해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지혜를 펼치시되 무한한 사랑 안에서 그렇게 하십니다. 휘조물을 향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이루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이 땅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아는 것과 동어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인간의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만물을 선의로 대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이 세상의 철학과 사상이나 타 종교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입니다. 우리는이 지혜를 성경과 교회를 통해서 얻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답게 살게 하는 지혜를 품고 있는 하나님의 기관입니다.
(36:39) >> 아멘. >> 아멘. Amen.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1장 사랑, 삼위의 교통 02 참된 인간의 삶 낭독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N4o0YePZA7w
Transcript:
(00:02) 예.
Ch 2. 참된 인간의 삶
Ch 2. 참된 인간의 삶
인간의 의무
인간의 의무
인간은 무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다른 필요물과 같은 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제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위인받았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이 이 점에서는 다른 피조물과 구별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존재의 목적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설량한 관리자로서이 세상을 다스리려면 세계의 근원이시며 인류를 향해 도덕적 목적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앎은 그분을 사랑하게
(01:08) 하고 그 사랑은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게 하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알아가고 사랑하는 것입니다.이 의무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은 행복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위일체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당신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저를 완전히 새롭게 하시기까지이 모든 것을 내 안에서 확장시켜 주소서. >>
기억함.
기억함.
첫째로 인간의 의무는 하나님을 기억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비록 죄로 인해 인간의 영혼이 어둠으로 가득차고 생각을 허탄한데 굴복하여
(02:15)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 안에 당신을 향한 기억의 씨를 남겨 주셨습니다. 로마서 1장 19절.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과 만물 안에 남기신 신성의 흔적을 바라보며 그분을 찾게 됩니다.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신 아니하도다. 사도행전 17장 27절. 이것은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합니다. 상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상이 그로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03:20) 1장 20절.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한 기억의 실로와는 하나님의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인간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구원의 은혜에 대해 아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피조물에게서 있던 신상의 충만한 아름다움과 영광이 인간을 타락으로 희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아름다움과 영광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해도 인간 영혼의 어둠과 지성의 눈으로 인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 계시로는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재 속에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연 계시는 단지 창조주가 계시는 것과 그분의 선악을 심판하신다는 사실만 알려 줍니다.
(04:20) 성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계시해 줍니다. 사도행전 17장 23절, 26장 22, 23절.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할뿐만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에서 17절.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성령의 조명을 받을 때 믿음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억해야 할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자기 밖에서 오는 도움을 찾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복음 증거의 귀를 기울이게 하고 복음을 들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득아다 줍니다.
(05:22)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작용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
알아감.
알아감.
둘째로 인간의 의무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 만물에 새겨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참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베드로서 3장 18절.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믿는 믿음을 천재로 합니다.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분을 알 수 없음을 뜻합니다.
(06:19)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믿음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더 분명한 지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속성과 그것의 시행 방식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성품을 지닌 분이신지를 알고 그 성품이 인간과 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시행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 지식의 빛 아래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세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그를 참 인간이 되게 합니다.이 지식이 없다면 그는 핫차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호세야 4장 6절. 인간이 하나님을 가장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07:18)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분명히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성경은 진리신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의 집이며 보고입니다. 로마서 1장 2절. 인간은 성경을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감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습니다.
사랑함.
사랑함.
셋째로 인간의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참된 쉼과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08:14) 너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힘을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마가복음 12장 29절에서 30절. 사랑은 곧 누림입니다. 인간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누려야 할 대상과 누리기 위해서 사용해야 할 대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참으로 누려야 할 대상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할 대상이 사라졌는데도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 사랑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그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할 것입니다.
(09:04) 무에서 창조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도록 지정하신 것 외에는 모두 그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공간은 우리에게 사랑할 대상을 제시하지만 시간은 그것을 빼앗아 버립니다.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신앙의 지혜는 사물의 외관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영원한 아름다움이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이처럼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이제야 당신을 사랑했싸옵나이다. 하나님 위의 모든 것은 즐거워야 즐거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누리기 위해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들입니다.
(10:00) 다만 사람을 향한 사랑이 이러한 누림 안에 있을 때 인간 또한 누림의 대상이 됩니다. 나머지 사물들은 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되면 사용해야 할 사물을 오히려 누리려 합니다. 하나님 인간 만물이라는 존재의 질서가 욕망 때문에이 임으로 전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자유에 의해서 전도된 사랑의 질서를 따르는 것에서부터 온갖 악이 나옵니다. 내 안에 사랑을 질서롭게 하소서.
인간의 구원 사랑의 완성.
인간의 구원 사랑의 완성.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랑 알아가고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의무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여 타락한 인간은 그 의무를이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1:0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여 그에게 생명 영성을 주십니다. 그로 인하여 인간은 참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영생의 의미와 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생의 의미
영생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의 아들을 보내신 것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이것이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자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복입니다. 영생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다음 사실을 숙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유한 의미: 영원히 사는 것.
고유한 의미: 영원히 사는 것.
고유한 의미에서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11:57) 그렇지만 단지 시간 안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 당시의 완전함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생기 일은 영혼과 늙고 병든 육체로 무한히 사는 것이 행복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영생이 아닙니다.
적용한 의미: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적용한 의미: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적용한 의미에서 영생은 영원히 살되 다른 존재 방식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를 다스리자로 인간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이 세상을 돌보 돌보는데 활용하도록 땅의 자원을 처분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 그러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려면 땅의 자원뿐 아니라 하나 하늘에서 공급하는 어 자원도 필요합니다.
(12:54) 땅의 자원이 먹고 입고 마시는 지상의 사물이라면 하늘의 자원은 진리로서 영혼과 정신 마음의 양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전자는 안접적으로 후자는 직접적으로 주십니다. 영생은 이렇게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서 신자 신자가 지상과 천상에 속한 자원들을 공급받으면서 사는 생명적인 관계입니다.이를 위해서는 삼위 하나님과 친밀한 교재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은 모든 피조물을 피조물 답게 살아 살게 하는 힘입니다. 인간에게는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살아가게 하는 힘도 필요합니다. 육체를 위해서 육적 생명이 필요한 것처럼 영혼을 위해서는 영적 생명이 필요합니다.
(13:46) 이 두 생명을 충만히 소유할 때 인간은 참 인간다운 삶을 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공급해 주시는 천상의 자원은 생명과 사랑입니다. 생명은 타자와 올바른 관계를이 이루며 살게 하는 힘을 줍니다. 영적 생명이 충만할 때 인간은 깨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를 보듬고 살아갑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랑하며 그 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영적 생명의 관계적 국면이 사랑입니다. 하늘에서 부어 주시는 생명과 사랑의 영생의 본질입니다. 인간게 살게 하는 하늘 자원을 하나님께 공급받은 삶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영생에 적용한 의미의 핵심은 위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한 자원의 공급입니다.
(14:40)
영생의 도구
영생의 도구
예수님께서 영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이 이 가르침은 영생의 핵심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희미하게 보여주던 구약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2절 16장 26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시움을 아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15:35) 자신의 전 인격의 경험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시편 34편 8절. 경을 동반한이 지식 안에서 항상 사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식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알게 됩니다. 아는 것 없이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한 자가 아니면 그분을 알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참 하나님이면 그것은 곧 지식이고 그 지식이 참 지식이면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중세 신학자 베르나르스가 사랑 그 자체를 앎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의 풍성에 따라 우리를 영생을 누립니다.
(16:34) 하나님께서는 중생을 통해서 인간 안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심으십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인생을 영생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성화는 지식과 그 사랑의 성장입니다. 신자는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은혜를 경험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이 사랑 안에서 성화에 힘쓰는 것도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의 서생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사랑의 정점입니다. 물론 영화 이후에 이후에 천국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은 성장하겠지만 신자의 지상에서 어 지상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영화는 이제까지 알던 지식과 사랑의 극치가 될 것입니다.
(17:33) >>
맺는 말
맺는 말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께 향해야 할 사랑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간으로 살아갈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비록 양심과 번성의 빛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하나의 우주적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사는 삶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결과 인간은 허무한데 굴복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0절 요한일서 2장 15 16절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본성으로 인하여 참다운 사랑의 대상을 늘 갈망합니다.
(18:28)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영혼의 허기짐과 굶주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을 믿음으로써 인간은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 곧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여 다시 하늘 자원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서 인간은 숙명처럼 자신을 짓누르던 공허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장 8, 9절 말씀. 아멘. >> 아멘. >> 아멘.
(1)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1장 사랑, 삼위의 교통 03 신자의 특별한 삶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MMjPpR4i0AA
Transcript:
(00:01)
Ch 3 신자의 특별한 삶
Ch 3 신자의 특별한 삶
신자답게 하는 세 요소
신자답게 하는 세 요소
하나님께선 사람들이 사랑 안에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성령 안에서 한 사랑으로 교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고백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창세기 2장 23절.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사랑의 연합은 깨어졌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 인간 사이의 사랑만 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랑도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올바른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창세기 3장 10절부터 1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단지 천국 가는 입장권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00:56) 타락하여 잃어버린 창조의 목적 곧 모든 사람이 이웃을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로 여기며 사랑하는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결합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장 39절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개념하라 하시고 고린도전서 11장 24절이는 이미 구약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원소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내 이웃 사랑하기를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장 18절.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완전하게 사랑할 것이며 인간은 자연적 피조물을 선의로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02:01) 더욱 사랑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도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신자 안의 죄성은 늘 그의 영혼의 순전함을 위협하며 로마서 6장 14절 영혼의 완전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중생과 함께 받아들인 사랑의 질서를 따라 살지 못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3장 8절 12장 3절 신자에게 끊임없는 진리의 빛과 은혜의 불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는 진리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과 마음이 세신되어야 하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발견함으로써 새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될로서 그는 신자답게 살 수 있습니다.
(02:58)
회개
회개
첫째로 회개를 통해 신자 다집니다. 신자의 삶에서 회개는 필수적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옛 사람의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를 사랑하는 자와 교통하실 수 없습니다. 죄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하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그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이 땅에 구현하지 못할뿐 아니라 영생의 복을 풍성히 누리지 못합니다. 로마서 16장 12절 야고보서 1장 15절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구현하며 살아가는 삶의 가장 큰 방해물은 신자 안에 옛사람의 성품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 신자는 자신 안에 부패한 본성을 죽이고 매일 새로워져야 합니다.
(03:55) 고 베드로전서 15장 31절. 성경이 신자의 삶을 전투적으로 표현한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 21절. 그러나 그 전투는 결정적으로 승부가 갈린 전투입니다. 이미 승전보가 전해진 상태에서 잔존하는 최 영향력과 버리는 전투입니다. 회개는 그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바락하는 죄성을 몰리치는 일격입니다. 회개는 단지 자신이 지은 죄를 슬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신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의존하게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 인간의 영혼은 순수한 지성을 갖게 됩니다.
(04:56) 그래서 참으로 사랑해야 할 것과 단지 사용해야 할 것들을 바르게 분별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감각적 사물의 아름다움에 메이지 않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시편 27편 4절 무엇이 영원히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가치 없는 것을 추구하려던 마음을 버리고 같이 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부터 24절. 이처럼 신자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돌이킴으로써 자기 안에 잘못 형성된 사랑의 질서를 올바르게 재편합니다.
쇄신.
쇄신.
둘째로 세신을 통해 신자다워집니다. 세신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작용으로 신자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명혼과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05:59) 우리는 중생 곧 첫 회심의 때에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마음이 깨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중생이 영혼에 미치는 효과가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것이 영적 세신입니다. 영적 쇠는 이러한 중생의 효과가 우리 마음 안에서 능력 있게 작용하게 합니다. 죄로 인해서 둔해진 신령한 영적 감각이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신자에게 쇠신이 없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사물을 계속 사랑함으로써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날마다 세신되어야 합니다. 신에 대해 더 깊이 알려면 다음의 사실을 속고해야 합니다.
순결과 사랑의 회복.
순결과 사랑의 회복.
(06:55) 먼저 영혼의 세신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효과입니다. 영혼이 세신됨으로써 신자의 영혼은 신결을 회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소극적으로 쇠는 영혼의 불결을 떨쳐내어 순결을 회복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 영혼의 존재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체를 살아 있게 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참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지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영혼히 고유한 목적에 따라 최고도로 기능하고 작용할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 33장 29절. 그러나 영혼의 이러한 작용은 신자 안에 있는 죄로 인하여 방해를 받습니다.
(07:57) 로마서 2장 9절, 7장 24절, 요한계시록 3장 17절. 그래서 신자는 수시로 영혼의 불결을 털어내고 그것들에서 분리되는 회개와 최신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7장 30절. 적극적으로 쇠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리게 합니다. 이것은 곧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감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감화를 받을 때 인간의 선한 의지는 불러일으켜지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 하나님을 사랑하던 경건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고난과 시련 속에서 그들을 행복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비참과 억압 속에서 그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한 것은 영혼의 신이었습니다.
(08:55)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중고자니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시편 119편 24 25절.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던 시인은 또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 3절. 세신된 마음은 말씀의 은혜로 사랑의 감화를 경험하게 하고 세신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올바른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신자의 영혼이 날마다 쇠신다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재를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로마서 12장 2절, 에베소서 4장 23절.
(09:52)
쇄신과 영혼의 아름다움.
쇄신과 영혼의 아름다움.
다음으로 쇄신과 영혼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신은 영혼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신자는 회개와 신을 통해서 자신 안에 불결한 것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의 삶은 거룩해지고 그의 영혼은 아름다움을 회복합니다. 마태복음 3장 8절, 사도행전 2장 38절, 11장 18절.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은 영혼과 정신의 아름다움입니다. 물론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구현하려면 반드시 육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육체 없이 영혼만 있는 존재를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육체는 벗어버릴 육체로서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장막과 같습니다.
(10:44) 고린도서 5장 1절.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모두 완성되는 그날에 죄와 부패 결핍과 고통에 종속되지 않는 영원하고 완전한 육체를 덧입을 것입니다. 고린도서 5장 2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잠시 있다 사라질 장막인 육체보다 영혼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하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영혼히 아름답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영혼이 처음 창조했을 때의 아름다움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8장 22절. 그래서 최신의 은총을 구하는 모든 자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시편 69편 32절부터 33절.
(11:36)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의지를 주십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창조 목적에 순종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발견.
발견.
셋째로 어 발견을 통해 신자다워집니다. 발견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을 가르킵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발견함으로써 참신자 다워집니다. 전도서 7장 27절 사도행전 10장 34 35절 모든 지식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지성은 만물에 관한 모든 지식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발견하게 합니다.
(12:30) 기독교는 성경만이 삶과 행동의 기준이 된다고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부터 17절. 그러나 만물에 관한 모든 지식이 올바른 관점에서 해석된다면 신자는 성경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밖의 지식은 성경의 해석,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어둠움과 싸워야 합니다. 곧 주관적인 어둠과 객관적인 어둠입니다. 주관적인 어둠은 죄인의 죄된 경향성 때문에 태어 생겨난 것이고 마태복음 6장 23절부터 24절.
(13:24) 객관적인 어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편 119편 18절. 로마서 13장 12절, 에베소서 5장 11절. 다시 말하면 전자는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겪는 영혼의 어둠이고 부자는 지식의 부족 때문에 갖게 되는 지성의 어둠입니다. 시골를 거일던 여행자가 길가에 있는 밭에서 사과를 따먹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그가 그것이 잘못인지 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는 객관적인 어둠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둑질인 줄 알면서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면 그는 주관적인 어둠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객관적인 어둠은 판단의 무지로 인한 것이고 주관적인 어둠은 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14:16) 영혼의 주관적 어둠과 객관적 어둠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속박에 갇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창조하고이 세상을 맡기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한편으로는 진리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죄에 대한 사랑을 버림으로써 끊임없이 어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어둠이 아닌 빛에 속한 자녀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이 이 두 가지 어둠과 싸워 발견해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사색으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15:04) 사도행전 3장 18절, 로마서 1장 17절 진리는 곧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그러므로 신자는 끊임없이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발견됨으로써 진리를 찾아가고 그 진리와 자신의 존재를 일치시킴으로써 진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교회의 지체로 사는 삶.
교회의 지체로 사는 삶.
하늘 생명과 사랑을 충만히 공급받아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사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한 후 혼자 두지 않고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5절 신자는 거듭남과 동시에 교회에 젖붙여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15:59) 에베소서 3장 6절, 4장 16, 25절.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신자는 교회의 지체됨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갑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고린도서 13장 9절.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개인으로가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부르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창조주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 것도 이러한 영적 공동체성을 염두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젖붙여진 다른 지체와 함께 공 공동체로서 영생을 누립니다. 그러므로써 자신도 온전한 신자가 되어가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온전하게 세워져 갑니다.
(16:57) 에베소서 2장 22절. 모든 신자는 하늘에서 공급하는 자원을 통해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허물이 되는 부분은 온전해지도록 힘으로써 교회를 세워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에게 많은 자원을 공급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자원은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부터 11절. 그러한 자원 중 하나가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이것은 교회와 세상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사용하여 교회를 바로 세워가고 나의 것으로 모든 이웃이 유익을 누리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17:49)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의 은사로 교회를 섬기 인색하거나는 안 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으로써 자기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교회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실현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4절 11절.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향한 위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교회의 목양을 통해 창조의 목적에 따라 진실한 신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고린도전서 4장 16절 11장 1절. 유목과 같은 자들이 교회라는 산 속에서 온갖 돌봄을 받으며 금목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5절. 이처럼 교회는 이미 구원받았으나 아직 온전하게 되지 못한 신자를 온전함에 이르도록 고향합니다.
(18:40) 고린도전서 12장 25절.이는 이는 각자를 부르신 자리에서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때 교회도 온전히 세워져 가고 신자도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사랑 안에서 자라감.
사랑 안에서 자라감.
신자는 교회의 지체됨을 통해 사랑 안에서 자라갑니다. 빌립보서 1장 9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인 그리스도에게 부어졌고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부어집니다. 이사야 62장 5절, 요한계시록 21장 2절 9절. 그리고 그것을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19:31)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안에 거할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아 그거였구나. 하나님 이것을 원하셨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물론 뼈저린 회개가 동반될 때도 있고 감사의 찬송이 우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로 인간을 가르치고 돌보는 것입니다. 신자는 교회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하며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20:17) 또한 교회는 순수한 진리를 선포하여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는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빌립보서 2장 15절
맺는 말
맺는 말
신자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는 인간의 힘으로는 벗어 벗어버릴 수 없는 죄 굴러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신자는 회개함으로써 자기 안에 옛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살립니다. 자기 중심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삽니다. 또한 신자는 영혼과 마음이 쇠신됨으로써 죄에 대해 순결해 주고 사랑의 감화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갑니다.
(21:07) 신자는 하나님의 성품과 시행 방식에 대해 배움으로써 인간의 위치가 어디이고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온 삶으로 배워 갑니다. 그렇지만 신자의 이러한 삶은 홀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다른 이들과 함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그 앎을 소유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갑니다. 그러므로써 자신의 존재 목적을 성취합니다. 신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영혼히 아름다운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없나이다.
(22:03) 내 육체와 마음은 악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이시라. 시편 73편 23 절부터 26절
한눈에 보는 1장 사랑, 삼위의 교통 Amor, societas trinitatis
I.서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관해 쉽게 생각하지만 창조부터가 그리스도를 머리삼은 교회를 염두에 둔 창조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함
II. 이 교리를 세우는 유익
이 교리를 세음으로써 우리는 삼위의 교통의 본질이 사랑이고, 교회는 그 사랑의 모상이기에 그 사랑의 확장과 일치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교회에 영광임을 입증할 것임
III. 삼위 안에 있는 사랑
성삼위는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시는데 그 근거는 삼위의 아름다움이심
A. 사랑의 근거: 삼위의 아름다우심
삼위하나님은 당신 안에 가지고 계신 아름다움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시고 사랑받으시며 이로써 사랑이 되시는데 이 아름다움은 다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음
1. 개별적 위의 완전하심
삼위는 개별적으로 완전한 위격을 가지시고,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신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피조물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모상임
2. 삼위의 질서안에서의 완전하심
각 위는 위격적 고유함을 가지고 계시며 이것은 다른 위에게 ‘다름’이 되며 그 다름은 보편적 질서의 아름다움을 이룸
B. 사랑의 방식: 서로에게 수단이 되지 않으심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보다 더 높은 목표가 없는 누림의 사랑과 더 높은 목표를 사랑하는 데 이바지되는 수단으로서의 사랑이 있는데 하나님은 궁극적인 누림의 대상이시며 최종적 목표이심. 이것은 삼위간의 사랑 안에서도 그러함
C. 사랑의 목적: 자신의 지혜를 이루심
하나님의 창조에는 도덕적 목적이 있고 이 목적에 따라 통치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임
1.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지혜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짐
2. 지혜를 이루시는 방법
a. 목표의 합치: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심
여기에 있어 삼위의 목표가 일치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서로를 사랑하시는 데서 기인함
b. 인간의 행복 : 삼위 하나님의 지혜에 합치함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에 합치한 존재가 되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 때 쉼과 평안을 얻도록 지어졌음
IV. 인간으로서 신자의 삶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인간에게 영혼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목적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기 위함임
A.인간의 의무
1. 기억함 memorare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기억의 씨를 남겨두셨으며 하나님에 관해 가장 잘 분명히 기억하는 길은 성경을 통해서임
2. 알아감 intelligere
성경 계시와 인간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데 하나님에 대해 아는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바로 알 수 있게 됨
3. 사랑함 diligere
하나님만이 궁극적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해야 할 대상이시니 영원히 계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함
B. 인간의구원: 사랑의 완성
타락한 인간이 구원받아 하늘자원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따라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완성임
1, 영생의 의미: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아는 것"
a. 고유한 의미: 영원히 사는 것
-완전함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
b. 적용한 의미 : 삼위와의 교통을 통한 공급
-하나님과 영적 연합을 통해 생명을 누리며 창조목적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는 내적 자원을 공급받는 것
2. 영생의 도구: 지식과 사랑
영생은 하나님과 그분의 지혜를 알아가고 사랑으로 감화 받아 영생의 실재를 누리는 삶임
C. 신자의 삼위일체적 삶
신자에게 잔존하는 죄성 때문에 창조목적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므로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적 삶이 필요함
1. 회개함 conversio
이는 죄로부터의 전향인데 자기 깨어짐을 동반하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결별을 포함함
2. 쇄신됨 renovatio
a. 쇄신과 영혼의 아름다움
영혼의 쇄신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회복시켜 주는데 가시적 표상에 매여 창조목적을 이탈하지 않기 위해서, 또 영혼의 행복을 위해서 쇄신되어야 함
b.두 회복: 순결과 감화
영혼의 쇄신은 소극적으로는 영혼의 순결의 회복이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 사랑에 붙들리는 사랑의 감화임
3. 발견함 inventio
모든 진리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신 것들에 대해 발견하는 것인데 이 진리를 찾고 또 합일됨으로써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음
V.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심
신자는 그리스도 없이 신자일 수 없듯이 교회의 지체됨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
A.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심
하나님께서 신자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부르신 것으로 사랑의 일치 속에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
B. 사랑 안에서 자라게 하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향한 사랑 안에서 자라게 하시는데 이 사랑 안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됨
1장 함께 나누어 봅시다
"교회, 삼위의 모상" 설교를 듣고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본 장은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교통과 인간으로서의 신자의 삶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이러한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교통에 참여하기 위한 것으로서 어떤 제도를 마련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의미를 말해봅시다.
3. 사랑의 근거, 사랑의 방식, 사랑의 목적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 간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비교해 보고,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4. 인간의 세 가지 의무와 인간은 결국 어디로 돌아가야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을지 말해보고 우리는 이 의무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5.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 사랑의 완성' 이라는 말의 의미와 영생의 의미를 묵상해 보고, 각자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삶의 질과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 혹은 구원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6. 교회에 예배만 드리고 집에 오지만 철저한 경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세계화 시대에 인터넷 예배만으로도 경건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사랑의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 본장 의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