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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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먼저 가시는 하나님
제목: 먼저 가시는 하나님
본문: 사도행전 18장 24-28절
본문: 사도행전 18장 24-28절
찬송: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찬송: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벌써 2026년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1월의 새벽 기도 제목들을 손에 쥐고 힘차게 달려 나섰던 우리가 어느새 6월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인생이 이토록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계절입니다. 다윗은 시편 39편에서 자신의 칠십 평생을 가리켜 "한 손바닥 길이"에 불과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짧고도 고단한 생애 속에서도 다윗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가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영국 북동부 선덜랜드에서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등 주자 단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5,000명이 모두 완주를 하고도 실격 처리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2등 주자가 실수로 경로를 이탈하자, 그 뒤를 달리던 선수들이 오직 앞사람의 '등'만 보고 따라가다가 정규 코스에서 264미터가 모자란 채 골인하고 만 것입니다. 반면 1등 주자 제이크 해리슨이 홀로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앞사람의 등이 아니라 정규 코스의 깃발과 선도 차량을 바라보고 달렸기 때문입니다. 이 마라톤 이야기를 보게 되면 누구를 바라고 가느냐,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가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 18장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삶과 아볼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보다 언제나 먼저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발자취를 함께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우리 모두가 이 시간 함께 따라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등 뒤를 따르는 믿음
예수님의 등 뒤를 따르는 믿음
본문 24절을 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볼로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세 사람 모두는 다 에베소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 땅 밖에서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서 터전을 잡고 살다가 에베소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었고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에베소까지 오게 된 청년이었습니다.
아볼로의 출신지인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지중해 최고의 학문 도시였습니다. 본문에 나온 알렉산드리아는 주전 332년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일컫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책을 만들 때 쓰는 오늘날의 종이와 같은 파피루스 생산지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무려 50만권이나 되는 장서를 보관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학업, 상업, 금융업 등이 발달한 도시여서 지중해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남유다의 멸망 이후 지중해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알렉산드리아로 몰려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 중에 헬라어만 할줄 알고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세대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통해서 유대교로 개종 한 헬라인들도 있었습니다. 이같은 이들을 위하여 구약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이라는 성경책이 이곳 알렉산드라에서 발간되었습니다.
그 알렉산드리아에서 에베소에 이른 사람 중에 아볼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언변이 뛰어나고 성경에 능통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으므로 본문의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성경’을 가리키는 ‘그랍헤γραφή’가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구약성경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지 않고, 수십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나 엄청난 양의 파피루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그 많은 양을 소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볼로는 그 방대한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25절을 보면 아볼로는 일찍부터 예수님에 대해서도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 이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고 전파하였지만, 정작 예수님의 십자자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성취된 복음의 완결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순교 이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져 예수님을 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예수님도 예수님의 공생에 초기에 국한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한 예수님의 복음은 복음의 일부일 뿐 온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 아볼로는 모두 천국을 향해 방향을 정해놓고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다 천국을 바라고 있었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아볼로는 바라복 있는 깃발이 달랐습니다. 마치 선덜랜드에서 마라톤 경주에 임했던 제이크 해리슨과 나머지 선수들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알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셨는지를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그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무리 마라톤의 코스를 바르게 뛰어 결승점을 통과했을 지라도, 반드시 통과해야 할 코스 중 단 하나라도 통과지 못하면 실격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교회 안팍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하였다 할지라도, 예수 내 구주의 믿음이 없으면 그 신앙생활은 실패한 신앙생활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의 등만을 뒤 따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께 맡긴 인생
먼저 가시는 하나님께 맡긴 인생
예수님을 알지만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아볼로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 아볼로가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따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본래 복음 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아볼로는 온전한 복음을 알게 되자, 에베소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볼로는 아가야로 가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있었던 고린도로 건너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아볼로가 고린도로 가고자 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사본 가운데 5세기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전되는 ‘베자사본’에는 27절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에베소에 머물고 있던 어떤 고린도인들이 아볼로의 말을 듣고 그에게 자기들과 함께 자기들의 고향으로 건너가자고 강권하므로, 이에 아볼로가 허락하자 에베소 사람들이 고린도에 있는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이르기를, 그 사람을 영접하라 하여, 그가 아가야에 자리를 잡고 각 교회들에게 큰 도움을 주니라.”
우리가 가진 성경보다 베자사본의 구절이 더 길고 상세한 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전해 온 전승이 추가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를 방문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 중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이들이 아볼로에게 함께 고린도로 건너가 그곳의 성도들을 돌봐 줄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로 넘어간 아볼로는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님이심을 논리 정연하게 전파함으로 예수님을 부정하는 고린도의 유대인들을 공개적으로 제압하였습니다.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떠난 고린도교회는 당장 영적 지도자가 없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고린도를 위해 아볼로를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바울과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 들리지 않거나 에베소에서도 회당에 가지 않거나 등 이 외에도 아볼로를 만나지 못할 무수한 변수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에베소에서 브리스길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를 만났고 그로 인하여 아볼로는 고린도로 건너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를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도구 삼아 펼치신 신비로운 섭리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인생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한 세 사람 모두 에베소에 갑자기 모이게 되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그 일은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필연적인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가시는 하나님께 자신들의 인생을 모두 맡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자신들의 인생 길에 있음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5, 3, 1 달란트를 각각 맡겼습니다. 두 명의 종은 결과를 만들었고, 나머지 한 명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르는 종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에 참여하는 것, 먼저 가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수고하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못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지금 이 순간을 잘 견디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3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서 자신들이 에베소에서 겪어야 했던 삶의 힘겨움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입혀주실 눈분신 영광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이와같은 이들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어느새 6월의 한 복판에 우리는 서게 되었습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사명과 하나님 앞에서 다짐한 결심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삶은 결코 쉬운 삶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마귀는 우리가 사명과 결심을 이루지 못하게 훼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 한 복판에 나만 홀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광야를 통과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먼저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며, 그 주님의 등 뒤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등 뒤를 따를 때 인생의 광야를 건너 하나님께서 올해 우리에게 주시기로 한 언약의 성취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더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6년 마지막 날에 먼저 가시는 하나님의 등 뒤를 따름으로 주님이 주신 모든 사명과 우리의 결심을 온전히 이루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