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일라를 구원하라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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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쯔음,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말립니다. “그건 너무 위험해”, “그건 너무 손해야”, “그건 미련한 선택이야.” 그런데 그 결정이 자꾸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묻고 또 물어도, 하나님이 그 길을 가리키고 계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직접 겪으셨던 그런 결정의 순간이 있으셨다면, 여기서 짧게 나눠주시면 회중이 본문에 훨씬 깊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아둘람 굴에서 다윗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무너진 사람들을 모아 한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다음 장면입니다. 다윗은 그 굴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굴 밖으로, 그것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불러내십니다. 사울의 영토 한복판, 유다 땅으로. 그리고 거기서 또 한 번,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남을 구하러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사람이 보면 다윗은 지금 죽을 자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로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세워가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세 가지로 함께 보겠습니다.

대지 1. 선지자 갓이 유다 땅으로 인도하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거기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삼상 22:5)
다윗은 모압 미스베에서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사울의 손이 직접 닿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갓이 와서 한마디를 전합니다. “거기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유다 땅이 어떤 곳입니까. 사울의 권력이 가장 강하게 미치는 곳, 다윗을 알아보고 신고할 사람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안전을 찾는 사람이라면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확히 그곳으로 다윗을 보내십니다.
본문에 다윗이 갓에게 “왜요”, “정말입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십시오”라고 되묻는 장면이 없습니다.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그것이 전부입니다. 망설임의 기록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안전 너머, 오히려 위험 속으로 부르는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반드시 더 평안하고 더 안정된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여기서 안정된 자리를 떠나 더 어려운 자리—개척, 선교지, 새로운 사역—로 부름받았던 경험을 가진 성도의 이야기, 혹은 목사님의 사역 가운데 있었던 비슷한 결정의 순간을 나누시면 회중에게 와닿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안전 속에 숨겨두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위험 속으로 보내심으로써, 다윗 안에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대지 2. 그일라를 구원하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삼상 23:1-2)
유다 땅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윗에게 또 다른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일라가 블레셋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기 목숨이 쫓기는 처지에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가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어 동사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שָׁאַל (샤알, “묻다”)이고, 다른 하나는 יָשַׁע (야샤, “구원하다”)입니다.
먼저 שָׁאַל, “묻다”를 보십시오. 다윗은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멈추어 묻습니다. “내가 가서… 치리이까.” 이것이 다윗의 영적 체질입니다. 위기 앞에서 그는 먼저 판단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부하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유다 땅에 있어도 두려워하거든 다윗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무리를 치게 되면 어떠하리이까” (삼상23:3)
지극히 합리적인 반대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위험합니다. 그런데 남을 구하러 가자고요?”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자기 목숨도 보장 못 하는 처지에 남의 성읍을 구하러 가는 것은 무모하고 미련하고 손해 보는 선택입니다.
다윗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그는 부하들의 두려움에 떠밀려 결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동시에 부하들의 말을 무시하고 밀어붙이지도 않습니다. 그는 다시 묻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시니” (삼상 23:4)
두 번째 동사 יָשַׁע, “구원하다”를 보십시오. 다윗에게 맡겨진 일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구원”이었습니다. 왕의 본질적인 직무는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직 보좌에 앉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를 구원자의 자리에 세워 연습시키고 계셨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였더라” (삼상 23:5)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곧바로 새로운 위협이 찾아옵니다. 사울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모아 그곳으로 내려오려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윗이 방금 구원해 준 그일라 사람들조차 다윗을 사울에게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미리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넘기리라 하시니” (삼상 23:12)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그 은혜를 갚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본문이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더 위태로운 자리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를 도왔다가 도리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 혹은 옳은 일을 했는데도 상황이 더 복잡해졌던 경험을 나누시면 이 대지의 현실감이 살아납니다.]
다윗은 600명과 함께 그일라를 빠져나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구원해 놓고 쫓겨나는”, 본전도 못 찾는 결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다윗 곁에는 제사장 아비아달과 에봇이 함께 있었습니다(삼상 23:6). 이 위기 한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께 물을 수 있는 통로를 이미 손에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대지 3.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하고, 미련하고, 손해인 것 같은 그 결정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십 광야 산골에도 있었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삼상 23:14)
이제 두 길을 나란히 놓고 보십시오.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도,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명령도, 사람의 계산으로는 모두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무모하다. 미련하다. 손해다. 더 안전한 길이 분명히 있었는데, 하나님은 매번 더 위험한 길을 가리키셨습니다.
여기서 본문의 또 하나의 단어를 보십시오. נָתַן (나탄, “주다/넘기다”)입니다. 이 동사가 본문 곳곳에 반복됩니다.
사울은 다윗이 성문과 빗장이 있는 그일라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이르되 다윗이 성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삼상 23:7)
사울은 하나님께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상황을 보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넘기셨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4절). 그리고 본문의 결론은 이렇게 마칩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14절).
같은 동사,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묻지 않고 확신한 사울은 틀렸고, 거듭 물으며 순종한 다윗은 보호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그일라로 내려간 그 결정은, 당장은 위험을 자초한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을 통해 다윗은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그는 왕이 되기 전에 이미 백성을 구원하는 왕의 직무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는 아비아달과 에봇을 얻어 이후 사울의 추격 속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을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습니다. 무모해 보였던 순종이, 나중에 그의 생존과 다스림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무모하고, 미련하고, 손해인 것 같았던 그 길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세워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사울이 죽은 뒤에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유다 족속이 다윗에게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왕으로 삼았더라” (삼하 2:4)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걷던 그 길의 끝에, 정확히 그 자리가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중에서도, 당장은 이해되지 않았던 결정—직업, 이사, 봉사, 헌신—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구체적인 간증을 짧게 나누시면 이 대지가 회중의 삶에 닿게 됩니다.]

결론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모든 일이 저절로 좋게 풀린다는 낙관론이 아닙니다. 다윗의 그일라 결정처럼, 그 순간에는 위험하고 손해 보는 길로 보이는 결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분별하여 내린 결정이라면,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두려움, 배신의 위협, 정처 없는 도피까지도—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다윗에게 그 선은 유다의 왕좌였습니다.
우리에게 그 선이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 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묻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여 내린 결정이라면, 그 길이 사람 보기에 무모하고 미련하고 손해인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그 결정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사울처럼 묻지 않고 스스로 확신하며 살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두려움 앞에서 다시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가리키시는 그 자리로, 비록 사람들이 말려도,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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