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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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오늘 함께 보실 말씀은 시편 8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성경 봉독을 하려고 하는데요,
시편 3편부터 7편을 함께 읽고, 그 다음에 시편 8편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시편 자체가 길지 않아서 5분정도 걸리니,
한 절 한 절 우리의 마음을 집중해서 읽어보겠습니다.
7편까지는 한절씩 교독해서 읽고, 8편은 다같이 합독하겠습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다윗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고,
다윗의 마음을 떠올리시며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먼저 3편 1절부터 읽겠습니다.
Psalm 3 NKRV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Psalm 4 NKRV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Psalm 5 NKRV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Psalm 6 NKRV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Psalm 7 NKRV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Psalm 8 NKRV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아멘
감사합니다.
자, 시편 3편부터 8편까지를 쭉 읽어봤는데 어떠신가요?
앞선 시들과 8편에서 혹시 어떤 차이를 발견하시거나 느끼신 것이 있을까요?
(질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죠?
7편까지 다윗의 주변에 원수들과, 그를 치는 무리들과, 그를 비웃는 자들과, 함정들로 가득하다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무거웠던 마음이 탁 놓이고, 안도의 한숨이 폭하고 쉬어지게 됩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른 나라에 여행 온 사람의 감탄처럼, 그런 감격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시편 시리즈 설교를 진행하면서, 한편 한편 설교문을 작성할 때마다 앞선 시편들을 다시 읽어보곤 했는데,
7편에서 8편으로 넘어갈때의 이 감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신학자들의 구분에 따르면 시편 8편은 찬양시 입니다.
하나님의 높음을 찬양하고, 그 아름다움을 경외하며 반응하는 시인의 고백입니다.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피조 세계의 한 현장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하고 찬양이 터져나오는 순간 말입니다.

제가 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때에, 군함을 타고 하와이에 간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로 한나절 걸릴 길이 배로는 2주 정도 걸립니다.
한참 가다보면 광활한 태평양 한 가운데에 우리 배만 덩그러니 있게 됩니다.
군함은 해가 지면 등화 관제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등화관제란 적에게 우리 배에 위치를 들키면 안되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모든 불빛을 차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밤 중의 바다에서는 아주 작은 담뱃불도 몇 km 밖에서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밤 중이 되면 갑판에 나가면 사방에 어떤 인공적인 빛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럴때 하늘을 보면 구름이 없는 그런 날에는, 정말 쏟아질듯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하늘에 가득합니다.
보름 달은 말 그대로 눈이 부십니다.
바다에는 그 달빛과 별빛이 부서져 흩어집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와, 진짜 하나님…”
이런 감격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면 이처럼 아름다운 곳들이 있습니다.

높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평야, 나이아가라와 같은 거대한 폭포수, 그랜드 캐년, 참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놀라운 장관입니다.
그런 곳을 마주 하는 설렘과 기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것이겠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고 믿음이 더욱 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편 8편은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 보기 좋은 장소에서 유유자적 감탄하며 부르는 그런 찬양은 아닙니다.

2절에 보면 그의 가까운 곳에는 여전히 주의 대적들과, 원수들과, 보복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8:2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편부터 7편까지 이어져온 다윗의 비극적이고, 원수들에게 둘러쌓인 인생은 여전합니다.
온 땅도, 온 하늘도, 온 세상 사람들도 다 다윗을 죽이려는듯 소리칩니다.
다윗이 주의 이름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상황은 바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다윗의 원수와 보복자들이 그를 협박하고, 속이고,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는 소리가 가득한 인생입니다.
시편 3편부터 7편의 배경처럼 일반적으로 볼 때는 여전히 비극의 현장이며 전쟁터의 한 가운데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시끄럽고 폭력적인 소리들이
오늘은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앞에 잠잠해졌다고 말합니다.
오늘 다윗은 원수들의 강하고 두려운 소리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 약하고 작은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약한 소리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보호를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세우심 = 성채
아니, 그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뒤에 오늘 100일된 다엘이가 왔는데 무슨 말을 하나요?
저희 집 막내 세이는 어느새 5살이 되었는데도 하루종일 엄마아빠를 찾습니다.
당연합니다. 젖먹이들이, 호산나를 외치겠습니까, 할렐루야를 외치겠습니까.
엄마, 배고파.
엄마, 이거 흘렸어.
엄마, 어디가.
엄마,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원래 다 그런거죠?
이 부모를 찾는 칭얼거림이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에서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의 권능의 성채가 높이 서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의 수많은 생물 중에 갓태어난 인간은 유독 연약합니다.

예전에 아기기린이 태어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아기 기린은 태어나자마자 자기 네 발로 일어설 수 없으면 어미 기린이 젖도 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기린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아기는 스스로 일어서기는 커녕 기는데에만 수개월이 걸립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응애 응애 우는 것 밖에 없는데 그 소리도 뭐 그리 대단치도 않습니다.
만약에 아기가 정글 한 가운데서 태어나서 할 줄 아는 것이 응애하고 우는 것 밖에 없다면 수 많은 포식자의 먹이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들이 살아가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부모의 돌봄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모습에서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돌봄에 달려있음을 깨닫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원수들의 목소리가 다윗의 귀에서 잠잠해지고,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부모를 찾는 소리가 하나님의 메세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 감격에 찬 다윗의 고백은 이처럼 스스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적인 무대 위에서 불려지는 노래입니다.
다윗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아기에게 엄마가 세계 최고의 미인이듯, 다윗에겐 하나님이 고난중에도 아름답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야 감사하고, 원수들과 근심 걱정이 사라져야 주변의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 노래할 수 있는 우리와는 참 다른 타이밍이지 않습니까?
이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시편 8편을 통해서 비극을 단숨에 샬롬으로 바꾸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심미안”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심미안 :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

어떤 대상에 대해 아름다운지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심미안이라고 합니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 그림에 담긴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제가 잠시 그림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인 피카소의 작품입니다.
짠! 피카소가 자신의 연인을 그린 그림입니다.
잠시 30초간 감상하시죠.
(30초 후) 어떠신가요?
솔직히 저는 도저히 이게 왜 아름다운 그림인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피카소의 그림들 중 제 기준에서는 그나마 멀쩡한 것을 가져온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을 알아볼 수 있는 심미안이 저에게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몇몇 분들 잠깐 사이에 이 그림에 푹 빠진 것처럼,
이 그림이 갖고 있는 제가 이해하지 못한 아름다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지고,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보는 심미안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다행인 사실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 심미안은 다른 재능들보다 빠르게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름다움 것들을 많이 보고, 어떤 아름다운 요소가 있는지 공부하다보면
심미안은 점점 길러집니다.
피카소의 그림 뿐만 아니라 더욱 난해한 그림들에서도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여행의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여행을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경험해본 사람이 오히려 새로운 여행지에서도 그곳의 아름다움을 더욱 쉽게 발견하기 마련입니다.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 더 많은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는 만큼 심미안도 생깁니다.

문제는 다윗이 발견한 아름다움은 이런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단순히 세상 풍경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시편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다윗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움은 온 땅과 하늘에서 보이는 주의 이름의 아름다움입니다.
적들로 둘러쌓인 땅, 솟아날 구멍없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이 바로 다윗이 가진 눈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이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이나 본질적으로 성장 방법은 동일합니다.
두 심미안의 공통점은 둘 다 똑같이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공부하고 알아야한다느 것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상의 심미안은 다양한 아름다운 것을 보고, 비교하며 공부해야 성장한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은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면 성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분의 아름다움을 비교할 다른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피카소의 그림이야, 고흐랑도 비교하고, 다빈치랑도 비교하고, 다양한 화가의 그림과 함께 보며 그 그림이 어떻게 아름다운 것인지 배울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다른 신들과 비교해서 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뭐 제우스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배우겠습니까?
아니면 석가모니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배우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에 의한 지식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이 다윗이 비결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 지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눈을 밝혀주는 안경이 되어 그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안경을 쓴 다윗은 보이는 것의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발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스러운 상황 너머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다윗이 쓴 말씀의 안경은 창세기 1장의 안경으로 보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시편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다윗의 시선과 고백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창조가 떠오릅니다.
다윗의 눈은 하늘을 만드시고, 달과 별을 만드시고, 소와 양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 주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두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하늘도 사람을 위해, 달과 별도 사람을 위해,
온 만물이 다 사람을 위해 베풀어주신 선물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놀라운 창조의 질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편 8:5–6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창조의 질서에서 사람의 위치는 하나님보다 조금 아래, 그리고 모든 만물의 위 입니다.
이 위치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요즘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데 멕시코전에서 안타깝게 우리 골키퍼와 수비수가 공을 잡는 과정에서 같은 편끼리 충돌하여 실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약속된 위치가 잘 지켜지지 않아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의 질서로 우리에게 주신 이 위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위로는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고, 아래로는 만물 위에 서서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사람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은 위치로 올라가려 했을 때 선악과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만물보다 아래로 내려갔을 때, 하늘을 섬기고, 땅을 섬기고, 해를 섬기고, 달과 별들을 섬겼습니다.
돈을 섬기고, 성공을 쫓습니다.
우상 숭배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부와 성공이 마치 우리 위에 위치한 듯이 쫓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라라 베푸신 모든 만물인데, 우리보다 위에 있는 우상으로 여겨,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타락은 위치 선정의 실패였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서 있을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리는 위로는 하나님을 주로 섬기며, 아래로는 만물을 다스리는 자리,
이 위치가 우리의 영광의 자리이며, 다윗이 이 시편8편에서 서서 찬양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삶의 위치를 둘러 봅시다.
그런데 둘러 싸고 있는 사방의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위와 아래를 바라봅시다.
다윗의 주변은 여전히 원수에게 둘러쌓인 갈 곳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위로 돌리자 하나님이 그를 향해 베푸신 하늘과 달과 별이 보였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대로 하나님의 아래, 만물의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머리 위에는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세상입니까?
우리가 마땅히 서야할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위에서 주인이 되시고, 왕이 되시는 그 위치가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위치임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부와 명예도, 꿈과 소망도, 가족이나 어떤 관계도 감히 그 자리에 두지 않도록 위치를 조정합시다.

어떻게 하냐구요?

저를 따라해봅시다.
“주께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내 꿈도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주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나 또한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인정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우리의 고백,
따라해보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인조차 하나님이심을 감사함으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위치를 올바른 위치에 조정하는 방법입니다.
범사에 주님께 감사를 고백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온 땅과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며 다윗처럼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할렐루야! 아멘!

서로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선

자, 하나님을 우리 주님으로 위에 모셨습니다.
주님 명령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만물을 아래에 두고 섭리대로 다스립니다.
이대로 끝일까요?
아니요. 우리가 빼먹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서로 입니다.
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다윗의 영적 심미안은 이제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합니다.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하늘과 달과 별과 온 우주를 보면, ‘그래 하나님이 참 아름다우시다’ 하겠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옆 사람을 한 번 볼까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데, 우주에 비하면 참 먼지 같은 인생입니다.
심지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참 웬수도 그런 웬수들이 없습니다.
원수들에게 둘러쌓인 다윗은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들에게서 어떻게 주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요?
이런 고민들을 저희와 똑같이 한 사람이 성경에 등장하는데 바로 선지자 요나입니다.

요나서에 보면 큰 성 니느웨가 등장합니다.

니느웨가 얼마나 큰 성인지 표현을 보면 이렇습니다.
Jonah 3:3 NKRV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사흘”을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 니느웨입니다.
자 여러분, 걸어서 서울을 가로지르는데 며칠이나 걸릴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성인 남성의 걸음 기준으로 뛰지 않아도 8시간이면 가로지릅니다.
그러면 니느웨는 서울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성이었다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니느웨의 크기는 지름은 서울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넓이로는 80배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고대의 기준으로는 물론 충분히 큰 성이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서울 중구보다도 작은 성입니다.
그러면 사흘 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대해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사흘은 요나가 성 구석구석을 다니며 소리쳐서 12만명에게 빼먹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사흘 길 되는 큰 성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관심사는 니느웨 성의 크기가 아니라, 그곳에 거하는 사람에 초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요나는 사흘 길 걸리는 성을 하루만에 돌고 끝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만족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니느웨 성에 거하는 그 사람들은 요나가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나가 속한 민족의 원수들이었습니다.
내 눈은 요나처럼 사람들을 원수로 봅니다.
아름다움은 커녕, 추하고, 밉고, 원망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만 가득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에게는 그들 조차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는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아끼시고, 돌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 없이 어린 아기 때부터 나를 돌보셨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시선을 선택해야겠습니까?
요나의 눈입니까? 하나님의 시선입니까?
만약 우리가 여전히 요나의 눈으로, 나 자신의 눈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을 보기 원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내 시선과 판단이 내 주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가장 명확하면서도 불가능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뒤에는 이러한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수로 여기는 자까지 아끼시고, 돌보시고, 사랑하시니,
너희도 사랑하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가르치신 사랑의 눈, 영적인 심미안으로 서로를 바라봅시다.
나의 원수는 여전히 못마땅하고,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 않을지라도,
그 너머에 있는 그들을 조건 없는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Psalm 8:9 NKRV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우심은 깨달아도, 그 아름다움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차마 값을 매기거나 이유를 달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람을 왜 생각하시며, 왜 우리를 돌보시며, 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지 그 은혜를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누립시다.
그 은혜를 누립시다.
받은 것과, 드릴 것을 계산하는 신앙은 내려놓고,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할렐루야. 아멘
다 함께 “하나님의 은혜” 찬양 드리시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합심기도

1. 감사의 기도

먼저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창조의 질서의 자리에 서기 위해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로 인정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합시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주님이 베푸신 것임에 감사합시다.
나를 사랑하심에 감사합시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하심에 감사합시다.
사랑하는 가족을 주심에 감사합시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합시다.
그동안 고백하지 못했던 감사를 다 주님께 드립시다.
큰 일과 사소한 것을 구분하지 말고, 그 너머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감사합시다.
다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신 주님을 간절히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겠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여!

2. 주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소서

이어서 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영적 심미안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어려움과 낙심 가운데 나를 보호시며 위에게 계신 하나님을 바라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을 보는 눈을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또한 더 이상 요나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세상 가운데서 주의 아름다움을 보게하소서
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 아름다움을 닮아가게 하소서.
주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다 함께 주님을 간절히 세 번 부르시며, 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선을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여!

마무리 기도

Psalm 8 NKRV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아멘.
아름다우신 주님
우리가 삶 가운데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사,
다윗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게 하소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주의 돌보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옆사람과 인사

“참 아름다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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