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은 주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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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품은 주님의 은혜

본문: 요한복음 18장 12-27절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의 문을 열며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루살렘의 밤처럼 우리의 영혼과 삶의 자리에 갑작스러운 매서운 시련의 추위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계절처럼, 영적인 계절에도 혹독한 겨울이 찾아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본문의 무대인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고지대이기에, 봄철 유월절 밤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 매서운 기후적 배경은 오늘 본문 속 인물들이 처한 영적인 온도를 시각적으로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의 강인한 결단과 뜨거운 열정으로 인생의 추위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곤 합니다. 나의 신앙과 다짐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호기롭게 큰소리를 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 베드로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 가겠다고 결단했고,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노라 자신만만하게 장담하며 밤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은 진심이었고, 그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8장 12-27절 은 참으로 묘한 대비를 이루는 샌드위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나스의 뜰 안에서 당당하게 심문을 당하시며 진리의 빛을 비추시는 참 빛 예수님의 모습과, 뜰 밖의 어두움 속에서 숯불을 쬐며 비겁하게 무너져가는 베드로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어두운 밤에 일어난 두 사건의 극명한 대비를 통하여, 스스로의 의지를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참된 구속적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 자신의 의지와 다짐은 삶의 추위와 위기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본문 17-18절은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까지 굳이 들어간 것은 결코 주님을 배신하려 하거나 악한 의도를 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 군사들이 들이닥쳤을 때 홀로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서 자를 만큼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두려워 도망치고 숨어버렸을 때도, 베드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주님을 따라갔던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주님 곁에 머물고 싶었고,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다짐과 열정이라는 이 '혈과 육'은 십자가라는 거대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추위는 매서워졌고, 대제사장 뜰안의 살벌한 공기는 베드로의 영혼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문을 지키던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의 그 단단해 보였던 자기 신뢰와 다짐은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주님과의 연합을 부정하며 "나는 아니라"는 비참한 고백을 던졌습니다.
베드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종들과 경비병들이 피워놓은 세상의 온기인 숯불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그 따뜻한 불빛 아래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 있는 동안, 그의 영적 무기력함은 세상 천하에 완전히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말고의 친척이 나타나 칼을 휘두르던 베드로의 정체를 지목하자, 그는 살기 위해 저주하고 맹세하며 주님을 모른다고 거칠게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진 자화상입니다.
우리 역시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고, 매일 아침 기도의 무릎을 꿇으며 "오늘 하루는 미워하지 않겠다, 오늘 하루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영적으로 승리하겠다" 굳게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거친 농사일과 고된 노동에 지쳐 육신이 피곤해지며, 당장 눈앞의 이익과 손해라는 현실의 시련 앞에 서면 베드로처럼 너무나 쉽게 넘어지고 낙심하는 영적 무기력함을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이러한 영적 침체와 넘어짐은 우리가 단순히 조심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 자체가 스스로를 구원하거나 믿음을 지킬 능력이 전혀 없는 근원적인 연약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의 구속적 은혜는 우리의 영적 실패보다 언제나 더 크고 신실합니다.

베드로가 안뜰 밖 차가운 어둠 속에서 부끄럽게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예수님은 안나스의 불법적인 신문 앞에서도 스스로를 숨기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진리를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군사들 앞에서 "내가 그니라" 선언하시며 제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돌려보내셨고, 이제는 홀로 결박당한 채 뺨을 맞으시며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연약함과 그의 뼈아픈 세 번의 부인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를 원망하지 않으시고, 그 실패한 제자를 대신하여 묵묵히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결박과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뺨을 치는 경비병을 향해 23절에서 당당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3절의 말씀 속에는, 자기를 때리는 자들의 무지와 완악함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시면서도 끝까지 그 영혼들을 대속하기 위해 고난을 자처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선명하게 녹아 있습니다.
어떤 비행기 안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고,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아주 극성스러운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그 무례하고 통제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혀를 차며 마음속으로 깊이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릴 때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아이의 다리가 심하게 휘어 있고 발육이 부진한 발달장애를 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깨달은 순간, 승객들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정죄와 짜증의 눈빛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집에만 묶어두지 않고, 조금 넘어지고 부딪히더라도 세상에 적응하고 걷는 법을 가르치고자 애써 그 힘든 여정을 동반했던 부모의 눈물겨운 사랑과 긍휼을 비로소 눈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소란을 피우고 콜라를 쏟은 것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그 부모는 아이의 장애와 한계를 다 알면서도 끝까지 품고 사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가장 위대하고 눈물겨운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이해와 용납은 언제나 사후적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허물과 실수를 먼저 마주하면 정죄하고 비난하다가, 그 배후에 숨겨진 어쩔 수 없는 사정이나 연약함의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어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용납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구속적 은혜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알고 품어주시는 먼저 베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무너지는 부끄러운 현장을 목격하신 뒤에야 마지못해 사정을 헤아려 주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베드로라는 존재가 지닌 죄로 인한연약함이라는 영적인 장애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고, 그 한계와 연약함의 이유를 다 아시기에 이미 그의 실패까지 품어 안으셨습니다.
안나스의 뜰에서 주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 주님의 시선은 베드로를 정죄하거나 질책하는 눈빛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가진 죄로 인한 연약함이라는 영적인 장애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 약한 제자를 품으시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결박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무너질 것을 아셨지만, 그의 믿음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미리 눈물로 기도해 두셨고,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는 영광스러운 회복의 사명까지 미리 예비해 두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째 주님을 부인한 직후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 닭 울음소리는 심판과 파멸을 알리는 정죄의 조종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매서운 어둠의 밤이 마침내 지나가고, 은혜의 새 아침이 밝아왔음을 알리는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신호였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은혜로 다시 서게 되는 인생

우리는 오늘 본문을 대할 때 실패한 우리 자신과 베드로의 무력함에 시선을 빼앗겨 낙심하는 영적 침체에서 단호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연약함보다 훨씬 더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해 뺨을 맞으시고 결박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의 구속적 사랑을 깊이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이 주님의 은혜 중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은혜로 생각이 바뀌면 낙심하는 대신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의 자리에 엎드리게 됩니다.
나의 결단과 신앙의 다짐을 신뢰하지 않고,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의 마음을 품음으로써 날마다 그 놀라운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인생의 매서운 추위와 밤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다짐과 결단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주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직면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 힘과 뜨거운 열정만으로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다고 자만했던 우리의 영적 교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처럼 주님을 향한 진짜 사랑의 마음을 품고서도, 삶의 무거운 무게와 두려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자화상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비참한 실패보다 주님의 신실하신 구속적 은혜가 언제나 더 크고 깊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다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홀로 묵묵히 고난의 뺨을 맞으시고 결박당하신 주님의 큰 사랑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낙심하고 영적으로 침체되어 울고 있을 때, 우리를 매섭게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끓는 긍휼의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없이 품어주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의 시선을 나의 연약함과 한계에 두지 않고,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십자가로만 고정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매일 아침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사로잡게 하시고, 낙심하는 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영적 습관이 형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과 습관이 바뀌고, 마침내 예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 세상 속에서 주님이 쓰시는 믿음의 실력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적 침체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은혜의 새 아침을 날마다 열어주시는 구원의 주님을 기대하오며,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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