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2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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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하나님이 요나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이 니느웨로 가서 회개 할 것을 말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요나는 그냥 일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선지자의 사명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다.
다시말해 요나는 선지자 인 것이다. 그럼에도 요나는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도망간다.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하였다.
다시스는 니느웨의 정반대 방향에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1장 3절을 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욥바로 내려갔더니 그곳에 뭐가 있는가? 다시스로 가는 배가 마침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가 계획한대로 원하는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거스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계획한대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일이 되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여지는 현상에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목회자 입장에서 교회가 사람이 늘고 재정이 늘어난다고 목회자인 내가 지금 올바로 목회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나도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삶을 보며 나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는 것 처럼 니느웨와는 정반대에 있는 다시스로 가고 있다.
그런데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니느웨는 앗수르라는 나라의 큰 도시였다.
그리고 당시 앗수르는 고대 근동에가 강력한 제국이었고 과거에 이스라엘이 조공을 바쳐야 했었다.
그리고 앗수르는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나라였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요나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령하신 것은 니느웨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나는 이미 알았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결국에는 니느웨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망해야 하는 나라를 구원하신다고 하니 요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고 이것을 아신 하나님은 오늘 1:4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니려서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이 후의 내용이 오늘 본문이다.
배에 있던 사람들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지금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바다가 잔잔해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그러지 요나가 뭐라고 하는가? 본문 12절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이 모습을 보면 요나가 마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요나는 지금 자신이 이 큰 폭풍의 원인임을 인정한다.
지금 자신 때문에 모든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회개하지 않는다.
만약에 자신의 불순종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아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니느웨로 가겠다고 말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원들에게 배를 돌려 육지에 내려달라고 해서 니느웨로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오늘 본문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나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은 하지만 회개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았다.
원수같은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요나는 물에 던져지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오늘 본문 1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요나가 바다에 빠져 죽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어떻게 하셨나? 예비하셨다.
여기서 예비하사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지정하다, 준비하다, 배정하다” 이다.
그러니깐 단순히 준비했다의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특별히 정하시고 배치하셨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이었다면 요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말 안듣는 사람을 사용하겠는가?
하나님 입장에서 선지자가 요나 한명밖에 없었겠는가?
그냥 요나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다른 선지자한테 똑같은 사명을 줘도 되는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요나를 통해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그래서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나의 열심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신다는 사실이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능력이 없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불순종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요나를 통해서도 결국에 하나님이 계획하신것을 이루어가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능력은 사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면 내가 아무것도 안해도 되겠네 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우리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결정적인 힘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준비되어야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힘과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 하면 우리의 능력과 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불순종의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늘 언제나 주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내가 능력이 없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 말은 오늘 본문의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것은 그렇다고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3일길을 다녀야 하는 도시를 하루만에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다.
뭘 의미하는가? 그냥 대충한 것이다. 그냥 억지로 억지로 마지못해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온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요나가 이렇게 말한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그들이 회개해서 구원을 얻는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사명을 다 감당하고서도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요나는 정말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의문이 드는게 하나가 있는데, 하나님이 왜 이렇게 불순종하는 요나를 사용하셨냐는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에서 선지자가 요나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인데, 왜 요나를 계속해서 사용하시냐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 말씀에 순종 잘 하는 선지자를 다시 선택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좋아 보이지 않는가?
왜 하나님은 요나를 끝까지 사용하신것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일의 결과보다 일하는 사람의 영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니느웨 백성들은 3장에서 이미 회개 하였다.
그러기에 사역의 목적만을 놓고 보면 요나서는 3장에서 끝나야 한다.
그런데 요나서는 3장에서 끝나지 않고 4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4장에서 하나님께서 화를 내면서 죽기를 구하는 요나를 찾아가 요나의 굳은 마음을 끈질기게 설득하신다.
하나님은 말을 잘 듣는 기계적은 도구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진심으로 깨닫고 닮아가는 참된 자녀를 원하신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요나라는 한 사람의 마음을 원하신 것이다.
또한, 불순종한 요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것은 그만큼 요나를 깊이 사랑하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 같은 받을 자격 없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며 견디지 못해한다.
그런데 정작 요나 자신이 그 똑같은 긍휼을 받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요나는 불순종하고, 도망치고, 죽기를 구하였다.
이러한 선지자를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건지시고 다시 쓰시는 것은 이거야말로 요나가 그토록 못마땅해하던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베푸신 인내로, 요나가 배워야 할 교훈을 그의 삶에 직접 새기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니느웨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요나도 사랑하셨다.
니느웨를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지만, 요나의 마음을 바꾸시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나님은 사역의 결과만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아니라, 사역하는 우리의 영혼도 돌보시는 분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시면서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 가신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경험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도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역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해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그 사역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주님의 뜻과 마음을 깨달아 그 주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도망치는 요나를 품으셨다면, 우리가 볼 때 “저 사람은 안된다”고 일찍 포기해 버린 그 사람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요나가 받은 긍휼을 깨닫은 사람만이, 니느웨에게 베푸시는 그 긍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신이 받은 긍휼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긍휼도 기뻐 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