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지체 하나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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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112:1–3 NKRV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찬송가: 내 주의 나라와 208장
1 Corinthians 12:12–31 NKRV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전형상화 (말씀이해)
고전 12장은 한 성령안에 다양한 은사가 있음을 먼저 이야기 하고 /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한 몸인 교회 안에 다양한 지체가 있음을 말하면서 바울의 교회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 12장 12–31절의 중심 문장은 27절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바울은 교회를 단순한 모임이나 조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도들은 그 몸에 붙어 있는 각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두 가지 진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나는 통일성입니다. 교회는 한 몸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양성입니다. 한 몸 안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은사와 직분의 차이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고, 우월감을 가지거나 열등감을 느끼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과 지체”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교회는 획일적인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지체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1) 12–13절: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

바울은 먼저 교회의 근본 정체성을 말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많은 지체가 있지만 결국 한 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기본 원리입니다.
특히 13절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여기서 바울은 교회의 통일성이 인간적 조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민족, 신분, 사회적 배경, 능력, 은사의 차이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께 연합시키고, 동시에 서로에게 연결시키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개인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 편입된 사람입니다.
교회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동호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고, 한 몸으로 세우신 언약 공동체입니다.

2) 14–20절: 지체의 다양성은 열등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배치다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이제 바울은 교회 안에서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사람들을 다룹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고,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열등감을 가진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나는 설교도 못하고, 가르치는 은사도 없고, 눈에 띄는 사역도 하지 못하니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몸이 다 눈이면 듣는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몸이 다 귀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몸은 다양한 지체가 있을 때 온전하게 기능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18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지체의 위치와 역할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내가 맡은 자리와 은사는 비교의 근거가 아니라 소명의 자리입니다. 성도는 “왜 나는 저 사람처럼 쓰임 받지 못하는가?”라고 묻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몸 안에 어떤 지체로 두셨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3) 21–26절: 지체는 서로 필요하며, 약한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

앞부분이 열등감을 가진 지체를 향한 말씀이라면, 21절부터는 우월감을 가진 지체를 향한 말씀입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교회 안에서 눈에 띄는 은사나 직분을 가진 사람이 다른 지체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몸 안에서 어떤 지체도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놀라운 반전을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세상은 강한 것, 눈에 띄는 것, 많은 영향력을 가진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기준으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합니다.
기도하는 성도, 조용히 섬기는 성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성도, 아픈 지체, 연약한 지체, 돌봄이 필요한 지체도 교회의 짐이 아니라 교회의 몸을 온전하게 하는 중요한 지체입니다.
교회의 건강은 강한 몇 사람의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건강은 약한 지체를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25–2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이것이 교회의 유기적 연합입니다. 교회는 한 지체의 아픔을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지 않습니다. 한 지체의 기쁨도 개인의 성취로만 보지 않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연결된 몸의 삶입니다.

4) 27–31절: 직분과 은사는 몸을 세우기 위한 섬김의 질서다

27절에서 바울은 결론처럼 말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후 바울은 교회 안에 세우신 여러 직분과 은사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여기서 직분과 은사는 계급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몸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방언 등을 주신 이유는 각 지체가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반복적으로 묻습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대답은 분명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직분을 맡을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는 모두가 같은 일을 할 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체가 하나님께 받은 역할을 따라 충성할 때 건강 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 직분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몸을 위한 섬김의 자리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교사, 찬양팀, 순장, 봉사자, 중보기도자 모두 몸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몸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형상화(현실과 연결)

1)교회의 지체와 몸의 관계

지체는 몸에 속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손이 몸에서 떨어지면 손의 기능을 잃습니다. 눈이 몸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지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몸 안에서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개인으로도 하나님 앞에 서지만, 교회와 분리된 개인주의적 신앙으로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입니다.
반대로 몸도 지체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몸은 지체들을 통해 움직이고, 보고, 듣고, 섬기고, 사랑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특정한 한 사람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목회자만으로 세워지지 않고, 장로만으로 세워지지 않고, 눈에 띄는 은사를 가진 사람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가 연결되어 함께 세워집니다. 따라서 지체와 몸의 관계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체는 몸에 속해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둘째, 지체는 서로 다르다. 모든 성도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지체는 서로 필요하다. 어떤 지체도 스스로 충분하지 않고, 어떤 지체도 불필요하지 않습니다.

2)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바울은 단순히 “교회는 몸과 같다”고 하지 않습니다. 더 깊게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동등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께 연합된 몸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연합된 성도들은 서로에게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개인적 구원으로 끝나지 않고 교회적 연합으로 나타납니다.
이 관점에서 교회 분열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갈등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입니다. 또한 성도를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를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론은 곧 그리스도론과 연결됩니다. 교회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3)지체의 필요와 용도

본문은 모든 지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필요는 모두 같은 방식의 필요가 아닙니다. 눈은 보는 일에 필요하고, 귀는 듣는 일에 필요하며, 손은 붙잡고 섬기는 일에 필요하고, 발은 움직이고 찾아가는 일에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쓰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봄과 위로에 쓰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정과 질서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와 권면에 쓰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한 봉사로 교회를 지탱합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의 크기가 아니라 몸을 세우는 방향입니다. 은사가 아무리 커 보여도 몸을 세우지 못하고 자기 자랑으로 흐르면 교회를 해칩니다. 반대로 작아 보이는 섬김이라도 몸을 세우고 지체를 살리면 그것은 귀한 은사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방언과 같은 눈에 띄는 은사를 과도하게 높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의 참된 기준을 “화려함”이 아니라 “덕을 세움”에 둡니다. 그래서 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 뒤, 곧바로 13장에서 사랑을 말합니다. 은사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은사는 몸을 세우지 못합니다.

4)교회 직분과 몸의 관계

교회 직분은 몸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공적 섬김입니다. 직분은 신분 상승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더 높은 사람이 되는 통로도 아닙니다. 직분은 몸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섬김의 질서입니다.목회자는 말씀으로 몸을 세웁니다. 장로는 말씀과 치리로 양떼를 돌봅니다. 집사는 섬김과 구제로 몸의 필요를 살핍니다. 교사는 진리를 가르쳐 지체들을 자라게 합니다. 순장은 가까운 자리에서 돌봄과 권면을 감당합니다. 봉사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합니다.
직분의 차이는 가치의 차이가 아닙니다. 기능의 차이입니다. 손과 눈의 기능이 다르다고 해서 손이 눈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고, 눈이 손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이 아닙니다. 둘 다 몸을 위해 필요합니다.그러므로 교회 직분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합니다.첫째, 직분을 계급화하는 오류입니다. 직분을 권력과 명예로 이해하면 교회는 세상 조직처럼 변합니다.
둘째, 직분의 질서를 무시하는 오류입니다. 모두가 같은 지체라고 해서 아무 질서도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몸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눈의 역할이 있고 손의 역할이 있으며 발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질서 있게 직분과 은사를 두셨습니다.따라서 교회는 계급 공동체가 아니라 질서 있는 몸입니다.

5)성령 안에서 각 지체의 연결성

성령은 교회 안에서 네 가지 일을 하십니다.
첫째, 성령은 우리를 한 몸 안으로 넣으십니다. 13절의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말은 성령께서 성도를 그리스도와 교회 안으로 연합시키신다는 뜻입니다.
둘째, 성령은 각 지체에게 다양한 은사와 역할을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획일화가 아닙니다. 성령은 모든 사람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양한 은사와 역할을 통해 한 몸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셋째, 성령은 다양한 지체들을 서로 의존하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세우는 교회입니다.
넷째, 성령은 지체들을 사랑으로 묶으십니다. 고전 12장은 곧바로 고전 13장으로 이어집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랑 안에서 사용될 때 몸을 세웁니다.

6)다양성과 통일성의 관계

이 본문을 강해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양성 속의 통일성입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라는 말이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하다는 말이 제각기 따로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통일성만 강조하고 다양성을 무시하면 교회는 획일적인 조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 같은 방식, 같은 은사,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게 됩니다. 이것은 몸이 아니라 기계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다양성만 강조하고 통일성을 잃으면 교회는 분열된 개인들의 모임이 됩니다. 각자가 자기 은사, 자기 취향, 자기 사역만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몸이 아니라 흩어진 부품에 가깝습니다.성경적 교회는 둘 다 붙듭니다. 교회는 한 몸입니다. 그러나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 지체입니다. 그러나 한 몸입니다. 이것이 고전 12장 12–31절의 핵심입니다.
재형상화
이 본문은 교회 안에 있는 세 부류의 사람에게 각각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성도에게 적용됩니다. “나는 별로 쓸모없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눈에 띄는 은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성도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당신은 몸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당신을 그 자리에 두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섬김도 몸을 살립니다.
둘째, 다른 지체를 가볍게 여기는 성도에게 적용됩니다. “저 사람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저 사역은 중요하지 않다. 저 사람은 없어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은 몸의 원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몸 안에서 불필요한 지체는 없습니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합니다.
셋째, 직분과 은사를 자기 자랑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직분은 높아지는 자리가 아니라 낮아져 몸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은사는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도구입니다. 사랑 없는 은사는 결국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합니다. 교회는 개인들이 모여 있는 종교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몸의 각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첫째, “나는 몸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혼자 신앙생활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자라고, 보호받고, 세워집니다. 둘째, “몸은 나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작아 보여도, 내가 약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몸 안에 두셨다면 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와 사명이 있습니다. 결국 본문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지체를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묶으시고, 각 지체가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게 하심으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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