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교회, 다시 세우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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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은혜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한 마음으로 나아온 우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모르는 눈물과 크고 작은 삶의 무거운 짐들을 안고 십자가 앞에 엎드릴 때, 우리의 몸과 영혼이 주 안에서 평안하여 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간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주시옵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위로와 평안으로 채워 주시고,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의 제목들마다 주님의 때에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다투고 흔들리며 아파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마음도 참 무겁습니다. 주님, 이 나라 이 민족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다시금 은혜로 덮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교회를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내 뜻과 내 고집을 부드럽게 내려놓게 하시고, 오직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넉넉한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질서 안에서 화평을 누리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다시 살아나고, 따뜻한 하나님의 품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말씀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해 무너졌던 우리의 마음이 다시 든든하게 세워지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본문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서론: 왜 교회는 무너지고 있는가?
서론: 왜 교회는 무너지고 있는가?
최근 들어, 교회를 새롭게 개척한다거나 든든하게 세워간다는 기쁜 소식보다는, 교회가 분쟁으로 인해 갈라지고 해체된다는 소식이 더 많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그런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기존 성도들마저 교회 생활에 지쳐 떠나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일까?"
능력이 부족해서일까요? 헌신과 열심이 부족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14장의 말씀에 따르면, 교회가 무너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교회가 "품위와 질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부족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배당에 모일 때마다 저마다 자신이 받은 은사를 뽐내며,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언을 선포하며 자신이 얼마나 신령한지를 증명하려 했습니다. 열심은 뜨거웠지만, 그 열심에 부딪혀 예배는 난장판이 되었고 교회는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이 영적인 혼란을 수습하고 무너져가는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오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던지는 세 가지 영적 원리를 통해, 우리 교회가 어떻게 다시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을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목적의 회복: '나의 만족'이 아닌 '교회의 덕'을 구하십시오.
본론 1. 목적의 회복: '나의 만족'이 아닌 '교회의 덕'을 구하십시오.
첫째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의 '목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본문 26절을 다 함께 보겠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성도 여러분, 당시 고린도 교회의 예배는 오늘날처럼 특정한 한 명의 설교자나 찬양 인도자가 예배의 모든 순서를 주도하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26절에 "각각"이라는 표현이 보이십니까? 예배당에 모일 때, 성도들은 저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돌아가며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한쪽에서 누군가 성령의 감동으로 찬송시를 지어 부르면, 다른 누군가는 일어나서 가르치는 말씀을 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계시를 선포하거나 방언을 하고 통역을 했습니다. 특정 소수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역동적으로 예배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뜨겁고 활기찼겠습니까? 하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받은 은사를 뽐내며 나서려다 보니, 예배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무질서한 열심을 향해 가장 중요한 기준 하나를 선언합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덕'은 그저 마음씨 좋게 웃어주고 양보하는 윤리적인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인 '오이코도메(οἰκοδομή)'는 건축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입니다.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짓는다는 뜻의 '데모'가 합쳐진 말로, 문자 그대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강단에서 가르치는 그 말씀, 그들이 부르는 찬양, 심지어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나 은사’, 이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는 성도들이 모일 때 '공동체의 유익'보다 '나의 목소리와 나의 영적 만족'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은사가 뛰어나도, 그것이 성도들을 세워주고 교회를 하나 되게 묶어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너진 교회를 세우는 첫걸음은, 내 모든 말과 행동의 목적을 오직 '교회를 세우는 것'에 두는 것입니다.
본론 2. 방법의 회복: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질서'에 순종하십시오.
본론 2. 방법의 회복: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질서'에 순종하십시오.
둘째로, 교회를 지어 올리기 위해서는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서로 열심을 내다보면, 필연적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때 교회를 지켜내는 힘은 '내 주장의 정당성'이 아니라 '질서를 향한 자발적인 굴복'입니다. 바울은 32절에서 아주 놀라운 통찰을 제시합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아무리 성령의 강한 감동을 받았고 내 말이 100% 옳다 하더라도, 그것이 예배와 교회의 질서를 깰 것 같다면 스스로 입을 닫고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성령 충만은 무엇일까요? 통제할 수 없는 무아지경에 빠져 폭주하는 것일까요? 진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질서 앞에서 나를 다스리는 자발적인 통제력입니다.
이 원리는 34절과 35절에 등장하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 말씀은 결코 여성의 인격을 깎아내리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무분별한 발언과 질문으로 예배의 질서를 깨뜨리던 상황을 교정하시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태초에 가정과 교회에 부여하신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우리 교단 헌법이목사와 장로, 그리고 권사와 집사의 직분을 세우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직분은 계급장이나 완장이 아닙니다. 직분은 교회의 무질서를 막고,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통로입니다. 내가 맞고 상대방이 틀린 것 같을 때에도, 당회와 치리회라는 교회의 영적 질서 앞에 순종할 때 우리 교회는 허물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3. 동력의 회복: 교회를 통해 '화평의 하나님'을 드러내십시오.
본론 3. 동력의 회복: 교회를 통해 '화평의 하나님'을 드러내십시오.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이렇게까지 자기를 부인하며 교회의 품위와 질서를 지켜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3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이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태초에 흑암과 혼돈(Chaos)밖에 없던 세상에, 말씀으로 질서(Cosmos)를 세우신 분이 바로 우리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질서를 잃고 각자의 주장만 내세우며 무질서하게 다투고 분열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어떤 하나님을 보게 되겠습니까? '무질서와 싸움의 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게 왜곡된 관점에서 보게 하는 끔찍한 죄악이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나의 정당한 권리를 십자가 앞에 포기하고, 질서에 순종하여 아름다운 평안을 이룰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 교회를 통해 살아계신 '화평의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 품위와 질서로 건물을 짓는 자들
결론: 품위와 질서로 건물을 짓는 자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너져 가는 여러 교회의 현실을 보며 탄식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 자신이 먼저 무너진 교회를 다시 짓는 벽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39절과 40절에서 이렇게 권면하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여러 분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그 현장을 위해, 또 우리 교회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듯, 여러분의 그 모든 열심이 '품위'와 '질서'라는 옷을 입게 하시길 바랍니다. 나의 옳음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작은 절제, 나에게 주신 직분과 교회의 치리회에 순종하는 겸손함이 모일 때, 우리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과 삶의 모든 행위를 통해 우리 교회가 화평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아름답게 지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