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 부활의 종교

거리전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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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inthians 15:1–11 NKRV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습니다. 올 한 해, 새롭게 마음먹으셨던 것 있으시죠. 살 빼야지, 담배 끊어야지, 부지런해야지, 아이들한테 화 안 내야지. "이번엔 정말 달라져 보자."
그 결심, 지금 어디쯤 와 있으십니까? **[질문 후 1~2초 침묵]**
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대개는 며칠 못 갔을 겁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하죠. 솔직히, 저야말로 작심삼일의 사람입니다. 수도 없이 결심하고, 다시 넘어집니다.
전문가들은 그게 다 '습관'이라 하더군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렇게 굳어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노력해도 안 바뀌면 어떤가요? 어떨 때는 자기가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난 원래 이런가?" "난 원래 안 되나?" 여러분은 그런 적 없으십니까? **[한 박자]**
사람은 잘 안 바뀝니다. 저도, 여러분도요.
오늘 말씀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바뀌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사람. 신약 성경 열세 권을 쓴 바울입니다.
이건 누가 지어낸 게 아닙니다. 그가 자기 손으로 쓴 편지에 직접 써 놨어요 —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구약을 통째로 배운 바리새인, 요즘 말로 지성인이었습니다. 그 지식과 열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고, 그게 백번 옳다고 믿었어요. 신념이 그렇게 단단한 사람 — 누가 봐도, 이 사람만은 안 바뀝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쉽게 말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겁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요? 그 말, 그때 사람들도 안 믿었습니다. 똑똑하다는 그 고린도 항구 도시 사람들도요. 그러니 '부활은 못 믿겠다'는 건, 요즘 사람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절대 못 바꾸는' 마지막 벽입니다.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 그 법칙만은 아무도 못 깹니다.
그러니 바울의 이야기는 여기서 벽을 마주합니다. 사람은 안 바뀌고, 죽은 사람은 무덤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 그게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럼 우리도, 변화의 소망 없이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겁니까? **[여백]**
그런데 — **[정적]**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습니다.
죽어 장사됐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 베드로에게, 한 번은 오백 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 그리고 맨 나중에, 그분을 박해하던 그 바울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이렇게 부릅니다 — "달이 차지 못한 채 태어난 자 같은 나." 칠삭둥이, 다 자라지도 못하고 세상에 나온 자. 가장 밑바닥인 자기에게 그분이 찾아오신 겁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바울은 평생 이 한마디를 안고 살았어요 —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짧은 침묵 — "그럼… 나도?"]**
바울이 사도가 된 건, 자기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를 찾아오신 분이, 그를 바꾸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만 분명히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게, 단 하나에 달려 있어요. 정말 그분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분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바울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찾아올 분이 무덤 안에 그대로 계셨을 테니까요. 박해자 사울은 그냥 박해자로 늙어 죽었겠죠. 바울도 그렇게 말합니다 — 그분이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전하는 것도 믿는 것도 다 헛것이라고. 제가 이 자리에서 매주 외치는 것도, 다 헛것이겠죠.
그래서 기독교는, 좋은 가르침 몇 마디 모아 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었던 분이 다시 살아나 사람을 찾아오시는 — 그 한 사건 위에 통째로 서 있어요.
그리고 이건 꾸며낸 이야기일 수가 없습니다. 방금 그 오백 명, 대부분이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까지 멀쩡히 살아 있었어요. "못 믿겠거든 가서 물어보라"는 거죠.
게다가 그분은 "살아나셨다"가 아니라 —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죽음을 단 한 번 깨고 나오셔서, 영원히 살아 계세요.
살아 계시기에, 그분은 지금도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바울을 찾아오셨던 것처럼.
**〔개인 간증 — 박사님 실제 이야기로 구체화〕** 그리고 — 저를 찾아오셨던 것처럼요. 솔직히, 그 부활이 없었다면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겁니다. 제 힘으로 된 게 아니에요. 살아 계신 그분이 어느 날 저를 찾아오셨고 — 그래서 못난 제가, 오늘 그분의 종으로 여기 서 있는 겁니다.
바울을 찾아오신 그분이, 저를 찾아오신 그분이 — 지금도, 만나기 원하시는 한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 발걸음을 멈추신 당신을요.
큰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찾아오시는 건 그분의 때에 일어나니까요. 다만 한 가지 — 당신 한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 여기까지 찾아오신 분이 계시다는 것. 오늘은 그 사실 하나만 믿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여기 와 계신 그분께, 지금 이대로의 당신을, 그냥 한번 맡겨 보십시오. **[잠시 — 마음으로 조용히 그분을 불러보는 한 박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그 '나' 자리에, 당신의 이름을 한번 넣어 보십시오.
---
이제 그 은혜 앞에서, 축복으로 마치겠습니다.
**〔축도 — 삼위일체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 우리를 찾아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끝까지 우리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 지금도 살아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 오늘 여기 발걸음을 멈추신 여러분 모두와 함께,
> 지금부터 영원까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원래 설교문 - 13분>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습니다. 올 한 동안 새롭게 마음 먹었던 것들이 있으셨습니까? 살 빼야지, 담배 끊어야지, 부지런해야지, 아이들한테 화 안내야지.. 정말 각오하고 달라져보자! 그 결심이 지금 어디쯤에 와 있으십니까? 수 개월이 지나는 동안 — 저만 그런 게 아니라면요. 대개는 며칠 못 갔을 겁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하죠. 다시 그 자리, 우리 인생은 그 시간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야 말로 작심삼일의 사람입니다. 수도 없이 결심하고, 다시 넘어집니다. 안해야지,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생각처럼 안될 때가 많아요.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게 다 습관이라고요. 어느 장소에 가면, 어떤 상황이 되면, 항상 그 일을 하는 것. 그게 습관이랍니다. 습관이 하나 몸에 붙는데도 두 달이 넘게 걸린답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노력해도 노력해도 안 바뀌면 어떻게 되나요. 채념을 합니다. 자기에 대해 실망하기도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기 까지 합니다. "난 원래 이런가?", "난 원래 안되나?"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사람은 잘 안 바뀝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럴거에요. 오늘 말씀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야 말로 바뀌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신약 성경의 13권을 쓴 바울입니다. 고린도서는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기 손으로 쓴 편지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써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확실히 지키는 것을 신앙이라고 여겼어요. 요즘말로 하면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한 지성과 열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백번 옳다고 여겼어요. 정말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이죠. 바뀌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쉽게 말하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겁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요? 그 말을 그때 사람들도 안 믿었습니다. 똑똑하다는 그 고린도 항구 도시 사람들도요.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건 도무지 못 믿겠다 했어요. 그러니 '부활을 못 믿겠다'는 건, 요즘 사람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도 그랬어요.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건 '절대 못 바꾸는' 사실의 마지막입니다.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아무도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 없어요. 그 법칙만은 아무도 못 깹니다. 그러니 바울의 이야기는 여기서 벽을 마주합니다. 사람은 안 바뀌어요. 마치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법칙은, 세상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도 변화의 소망없이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겁니까. 그런데요.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습니다. 바울이 편지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죽어서 장사되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한 번은 오백 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그 예수님을 박해했던 내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오늘 편지에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달이 차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과 같은 나" 그런 나에게도 찾아오셨다. 옛날 말로 칠삭둥이, 팔삭둥이라는 말이 있죠? 열달을 채 못채우고 태어난 아기를 말합니다. 다 자라지 못하고 세상에 나온 자 같은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바울은 평생 이 말을 달고 살았어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바울이 성경의 13권을 쓴 사도가 된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찾아오신 분 때문에 그가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성경을 받아들이십니까? 성경은 전체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정말 그분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분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바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박해자 사울은 그냥 박해자로 늙어 죽었을 겁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좋은 가르침 몇 마디를 모아 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었던 분이 다시 살아나, 사람을 찾아오시는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지금도 그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사람들에게 찾아오신다고 증언합니다. 바울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하는 것도 믿는 것도 다 헛것이라고요. 제가 이 자리에서 매주 외치는 것도 다 헛것이겠지요. 그런데, 이건 꾸며낸 이야기 아닙니다.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그분을 직접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다. 한번은 오백 명이 한꺼번에 보았다. 그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있다. 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까지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못 믿겠거든 가서 물어보라"는 거죠. 그 뿐 아니라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다! 죽음을, 깨고 나오신 그분이 영원히 살아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주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바울을 찾아오셨던 것처럼요.
**〔개인 간증 — 박사님 실제 이야기로 구체화〕**그리고 — 저를 찾아오셨던 것처럼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부활이 없었다면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잘나서, 제 힘으로 된 게 아닙니다. 살아 계신 그분이 어느 날 저를 찾아오셨고 — 그래서 못난 제가 오늘, 그분의 종으로 여기 서 있는 겁니다. 바울을 찾아오셨던 그분이, 저를 찾아오셨던 그분이 지금도, 그분이 만나기 원하시는 한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어쩌면 오늘, 바로 이 자리에 우연히 발걸음을 멈춘 당신을요. 큰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찾아오시는 건 그분의 때에 일어납니다. 수 많은 시간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분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 한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그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 사실만 믿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여기계신 예수님께, 여러분 이대로의 당신을, 그냥 한번 맡겨 보십시오. **[잠시 — 마음으로 조용히 그분을 불러보는 한 박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여러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 앞에 응답되는 여러분의 고백이 있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도 — 삼위일체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 우리를 찾아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끝까지 우리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 이 자리에 발걸음을 멈추신 여러분 모두와 함께,> 지금부터 영원까지 있기를 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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