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에서 부활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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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조리한 세상에서 부활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본문: 15:50-58
[서론]
요새 사람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때문에 난리입니다.
저번에 여수 내려가서 가족들을 만났을때에도 이 주식얘기를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최근에 식사하는데 뒤에 있던 직장인 분들도 그 얘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어떤 연예인은 몇 년전 우연히 하이닉스 주식을 사놔서 그걸로 집을 샀다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주식으로 난리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한쪽이 복잡해집니다.
성실하게 일하는게 부질없어 보입니다.
청년들이 평생 열심히 일해도 서울에서 집한채 사기 힘든 현실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한방에 몇년치 돈을 벌수 있으니 모든게 허무해보입니다.
주식만 그렇습니까?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서 부동산이나 코인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힘이 쭉 빠집니다.
수년동안 열심히 일해도 얻지 못할 돈을 한번에 얻을수 있으니 말입니다.
참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엊그제 뉴스를 보았습니다.
부산에서 어떤 운전자 실수로 차가 보행자를 덮쳤습니다.
하필 그곳을 지나가던 평범한 40대 아주머니가 함께가던 자식 앞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었을텐데 말입니다.
한순간의 사고로 인생이 끝나버렸습니다.
얼마나 허망한 인생입니까?
참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또 제가 아는 어떤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밖에 뛰어다닐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도 자기처럼 아픈줄 안다고 합니다.
골수이식을 받았지만 수년째 집밖으로 마음껏 나가지 못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돌보느라 생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가 고통을 겪고, 부모는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집니다.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고, 그 부모는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일까요?
참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부조리해 보입니다.
세상 곳곳에 이해할수 없는 고통과 슬픔, 죽음이 넘쳐납니다.
이런 부조리하고 허무한 세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고, 인생이 허망하고,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는데 말입니다.
왜 우리는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본론1]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지 세상이 불공평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이 부조리를 느끼는 이유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연약한 몸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갑자기 몸에 큰 병이 찾아오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추고 맙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붙잡을수 없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도 질병으로 고통받을수 있습니다.
이것이 죄와 죽음 아래에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요즘 제 몸을 보면 이런 현실을 더욱 잘 느끼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이 나이에 벌써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니 말입니다.
예전에는 허리 아파도 하루만 누워있으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 신통치 않습니다.
어르신들 앞에서 부끄럽지만 이런게 노화의 과정이라 생각하면 서글퍼집니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때마다 “결국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는구나” 싶습니다.
저만 그러겠습니까?
돌도 씹어먹을거 같은 젊은 여러분들도 결국에는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지금은 그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결국 낡아지고 썩어가는 죽음의 과정을 피할길이 없습니다 .
참 야속하고 부조리한 현실입니다.
이런 연약한 몸이다보니 고린도교회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몸을 낮게 여겼습니다.
영혼은 귀하고 신성한 것이지만 몸은 더럽고 하찮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여기며 죽은후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는게 진짜 구원이라고 믿었습니다.
영혼과 육체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은연중 우리도 이런 생각에 스며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예를들어, 몸이 아픈데 그것을 영의 문제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으로만 이겨내려고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몸과 영혼을 나눌수 없으며 몸 역시 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50절입니다.
50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산으로 받지 못합니다.
지금 바울은 부활할 몸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살과 피’는 현재 우리가 가진 연약한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살과 피이며,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이 육체로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의 유산을 받을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첫 창조에 속한 아담과 같은 몸입니다.
그래서 죄와 죽음의 영향을 받아 썩을수 밖에 없는 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난후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으로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죄와 죽음의 영향력이 여전히 발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썩지 않을 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죽지 않을 몸이 필요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는 그 생명에 합당한 새로운 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놀라운 비밀을 전합니다.
52절입니다.
52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병들어 죽을수 밖에 없는 연약한 몸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몸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버려질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몸을 새롭게 변화시켜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날이 되면 우리는 더이상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병들어 죽을 몸이 아닌 죽지 않을 불멸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병으로 사고로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있는 비참한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날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이라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질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거울 속에 쇠약해진 우리의 모습을 볼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본론2]
그럼 이런 놀라운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병들고 썩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한 몸이 어떻게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그 근거는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 근거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있습니다.
55-57절입니다.
다같이 선포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겠습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바울은 마치 죽음을 향해 호통치듯 외치고 있습니다.
죽음을 마치 치명적인 독침을 쏘는 존재에 비유합니다.
사실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단지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독침인 죄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을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독침인 죄때문입니다.
독침이 없는 벌이 무섭겠습니까?
벌이 무서운 것은 독침때문입니다.
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우리를 끊어놓는 치명적인 독입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가 말라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죽음에게 죄라는 독침을 찌를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율법입니다.
물론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하고 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이 죄인을 만나면 죄를 드러내어 죄인을 정죄합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내 몸 깊은 곳의 병이 드러납니다.
검사결과 자체가 병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검사결과는 ‘치명적인 병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율법이 죄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율법이 인간 안에 숨겨진 죄의 추악함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기준에 도달할수 없는 비참한 죄인임을 폭로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음 속에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내 안의 욕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됩니다.
죄가 되어 우리를 정죄하여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온 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정죄와 죽음의 독침을 대신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때 죽음은 자신이 승리한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흘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독침을 통째로 뽑아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더이상 우리의 마지막 운명이 될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셔서 우리 역시 부활할 것을 확증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가 된 것입니다.
제가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 있는 데린쿠유라는 거대한 지하도시를 방문한 적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지하 15층 깊이까지 굴을 파고 살았던 곳입니다.
그 곳 사람들은 수십년 동안 햇빛을 제대로 못봐 등이 굽는 구루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살았을까요?
그들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았기에 땅속의 어둠을 견뎌낸 것입니다.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찬송을 부를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칼과 죽음으로 그들을 위협했지만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보다 더 큰 부활의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런 그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 결국 로마가 기독교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가장 사랑하던 엄마를 갑자기 잃고 극심한 슬픔과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으려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이 전부이고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면, 그 절망과 허무가 백번 이해됩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안개처럼 사라진다면 성실하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 너머에 주님이 예비하신 찬란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실한 승리가 있기에 우리는 슬픔 중에도 소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수 있는 것입니다.
[본론3]
그렇다면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승리를 믿는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한 일들을 마주합니다.
왜 잘 믿는 내 가족에게 혹은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
왜 예수 안 믿고 악하게 사는 자들이 더 잘사는 것처럼 보일까?
이런 불공평한 세상에서 내가 믿음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그냥 천국가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여기며 현실을 도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선포합니다.
58절입니다.
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시 부활할 것이기에 오히려 현실을 더욱 잘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인생의 허무함에 흔들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주의 일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일이란 단순히 교회 봉사하고 기도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천국,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모든 삶을 말합니다.
예를들어, 남들은 다 편법을 쓰고 일확천금을 노릴 때,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직장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삭막하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도, 내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것입니다.
질병과 아픔의 한복판에서도 나를 변화시키실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를 원망 없이 성실하게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위대한 주님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행한 우리의 그 작은 눈물과 땀방울, 성실한 노동과 사랑의 수고는 결코 썩어 없어질
세상의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열매로 영원히 남게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의 부조리와 육체의 연약함 앞에 낙심하여 흔들리지 맙시다.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가 있습니다.
영광스럽게 변화될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을 품고, 오늘 나에게 맡겨진 일상 속에서 흔들림 없이 신실하게 행합시다.
우리의 모든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