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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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찬송가 478장 참 아름다워라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전형상화 (말씀)
누군가 묻습니다. 어떻게 몸이 죽어서 썩으면 소멸되는데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가? 부활이 영의 부활이라면 몰라도 몸의 부활 이라니? 이 질문은 타당한 질문입니다.
우리 영은 부활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사망에 이르면 몸은 죽지만, 영혼은 믿는 자들은 낙원에 이르러 하나님과 복락을 누립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누구나 몸은 죽어서 이 땅에 묻히고 소명되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 처지가 확연하게 달라 집니다. 문제는 그럼 우리가 말하는 부활이 무엇입니까? 네! 몸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씨앗을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36절-38절입니다. 씨를 땅에 묻으면 그 씨가 발아되지 않으면(죽는 것입니다.형질의 변화 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다른 형질로 변화되어 싹이 틉니다. 요한복음 12: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본문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5:42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그렇다고 우리가 씨가 아니라 형체를 땅에 심지는 않지 않습니까? 배추를 땅속에 심는 사람이 없습니다. 배추씨를 땅에 심는 것입니다. 씨와 그 씨의 열매의 형체는 다릅니다. 때에 따러서는 형질이 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38절 말씀은 하나님이 그 섭리와 뜻대로 형제를 주시고 그 씨의 열매의 형상을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리는 그렇습니다. 자연계에서도 이미 적용되고 있고 영적인 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습니다. 씨가 죽어야 자신의 몸을 깨트려야 새로운 형상으로 태어납니다. 우리의 거듭남도 새로 태어남입니다. 새창조라고 하는 중생도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신 에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막혀야 합니다. 그 죽음을 거쳐야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선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39절-41절은 38절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각 피조물에게 다양하고 풍성한 형체와 영광을 허락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과 새와물고기의 육체가 다르고, 하늘과 땅에 속한 형체가 있고 땅에 속한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도 다릅니다. 우주만물은 그 형체와 형상과 모양이 같아 보여도 다 그 각자의 영광과 형상이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실로 신묘막측한 창조의 신비입니다. 바울 사도가 우주의 모든 피조물의 형상과 영광을 설명하는데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영광과 능력과 위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엘 샤다이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9:6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분에게 새로운 몸의 부활이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42절 죽은 자의 부활도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죽은자의 몸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지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이제 우리 몸이 부활하면 다시는 죽거나 썩지 않는 몸으로 영원한 몸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신학적인 원리로 설명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 되었고, 우리가 영화롭게 되면 다시는 죄를 지울수 없는 상태로 변화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신령한 몸은 다시는 썩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도 인생도 같은 적용점에 있습니다. 인생도 썩어지고 불완전한 시간과 성실과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면 하나님이 그것을 새롭게 하시는데 완전하고 새롭고 영원한 것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주 장사의 원리입니다. 마13:44-46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3-44절은 반복을 통해서 확신을 심어줍니다. 욕된것은 영광스러운 것으로 / 약한것은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의 몸이 있다면 당연히 영의 몸도 있지 않겠습니까?
45-49절은 첫사람 아담과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여 설명하는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로마서 5:15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로마서 5:17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5:19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은 땅에서 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흙에 속한자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하늘에 속한 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형상화 (연결)
몸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이원론은 오늘까지 영은 좋은 것이고 선한 것이며 육은 악하고 나쁜 것이라고 우리의 사로를 분리하고 혼란 스럽게 합니다. 이것은 성속의 분리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만든 창조질서의 왜곡을 불러 옵니다. 성스러운 것과 세상적인 것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모일 때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교회는 산으로 가지 않고 세상으로 도시로 들어갑니다.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흘러 들어가고 세상이 빛을 보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마태복음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몸의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몸은 인간을 구성하는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개체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을 소중하게 가꾸고 다루어야 합니다. 건강하게 꺠끗하게 거룩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살이찌면 다이어트도 하시고, 영양소를 잘 공급하고, 외적인 정결함도 신경쓰셔야 합니다. 물론 몸의 부활이 현재 우리의 몸의 형상 그대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신령한 몸이라고 표현합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연약하고 시간이 가면 쇠약해 지는 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영원히 완성된 신령한 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은 제2위이신 성자 예수님은 이땅 에서 만이 아니라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신령한 몸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만큼 몸은 중요합니다. 만약 신령한 몸이 우리에게 필요 없거나 일시적인 것이거나 영원한 천국에서 더 이상 유익하지 않다면 우리에게 신령한 몸을 주실 이유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몸을 가지고 계실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 이신데요~~ 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인간의 지혜로는 가늠이 안됩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님은 몸이 있으신 것이 신학적인 해석입니다.
재형상화(삶의 적용)
우리 몸의 부활을 믿고 소망합시다. 우리는 죄와 싸우는 일로 인하여 지치고 힘들어서 몸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은 매우 중요한 우리의 본질입니다. 정욕이 몸안에서 비롯 되기는 하지만 죄의 좌소는 마음입니다.
우리 몸을 소중히 여기시고 잘 아끼시고 가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신령하신 성도라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신자인가? 의문이 들때도 있습니다. 몸에 충분한 휴식을 주고 영양분을 공급하고 최상의 상태로 유지를 해야 합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혼이 함께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몸이 하나를 이루어 건강하고 즐겁게 하나님의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를 무너트릴 때 이 몸을 소홀하게 하거나 경시하게 거짓된 마음을 심어줄 때가 많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몸은 속되고 영은 신령한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 모두 신령한 것이고 우리 몸은 죽음을 통해서 분리되어 이땅에 썩음 가운데 두지만 주님이 재림 하실 때 새로운 신령한 몸으로 영혼과 다시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몸의 부활입니다.
따라서 몸의 부활을 믿고 소망한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약속을 믿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오늘도 굳게 잡고 하루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