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교육(8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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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views윌리엄 윌리몬의 저서 ‘Remember who you are’(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를 기반으로 한 세례자 교육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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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앞두고 지금 어떤 마음이에요?
설레는 분도 계실 거고,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냥 교회 다니면 받는 거 아닌가?"
싶은 분도 계실 거예요.
어떤 마음이든 괜찮아요.
그 마음 그대로 가져오면 돼요.
오늘은 세례가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그 진짜 이야기를 함께 해보려 해요.
1. 진단: 우리는 왜 세례가 필요한가?
1. 진단: 우리는 왜 세례가 필요한가?
먼저 한 가지 물어볼게요.
성인이 되면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몸이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에요.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 병원에 가요.
세례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문제없는데"라는 생각이
사실 가장 심각한 상태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진짜 문제는 뭘까요?
거짓말이나 나쁜 말 같은 것들을 떠올리셨나요?
그런 것들은 사실 표면적인 현상이에요.
진짜 문제는 훨씬 깊은 곳에 있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자기중심성이에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려는 성질이에요.
예를 들어볼게요.
게임에서 졌을 때 엄청나게 열이 받은 적 있어요?
"내가 이겨야 이 상황이 옳다"는 생각,
그게 내가 기준이 되어 있는 거예요.
연락이 바로 안 왔을 때 괜히 서운한 적 있어요?
"나한테는 바로 답해줘야 해"라는 기준이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있는 거예요.
사소한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이게 쌓이면,
결국 내 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이
다 불만이 되어버려요.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따라오는 게 있어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려면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줄 무언가가 필요해요.
그게 바로 두 번째, 우상숭배예요.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이에요.
초등학생한테 맞는 말로 바꿔볼게요.
내 기분이 오늘 시험 점수에 따라 완전히 바뀐다면,
그 시험 점수가 나의 우상이 된 거예요.
친구가 나랑 놀아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망가진다면,
그 친구의 반응이 나의 우상이 된 거예요.
조금 더 크면 이렇게 돼요.
내 가치가 누군가의 인정 없이는 흔들린다면,
그 인정이 나의 우상이에요.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요?
2. 주체: 이 엄청난 일은 누가 하시는가?
2. 주체: 이 엄청난 일은 누가 하시는가?
자기중심성과 우상숭배,
이 둘을 묶어서 성경은 '죄'라고 해요.
그런데 이 죄는 절대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요.
더 열심히 살거나, 더 착하게 살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의 뿌리 자체가
이미 죄로 물들어 있거든요.
내가 스스로 내 뿌리를 뽑을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이 깊은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세례는 내가 결심해서 받는 게 아니에요.
세례의 진짜 주인공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겠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에요.
이걸 이렇게 생각해보면 돼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그래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우리는 그저 '예'라고 대답하기만 하면 돼요.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세례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엄청난 일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하실까요?
3. 예식: 죽음과 부활의 의미
3. 예식: 죽음과 부활의 의미
바로 물을 통해서예요.
왜 하필 물이고, 왜 머리에 부을까요?
우리에게 물은 그냥 H2O예요.
마시고 씻는 것.
그런데 고대인들에게 물은 전혀 다른 의미였어요.
고대인들에게 물은 죽음을 상징했어요.
세례의 물은 나의 옛사람을 완전히 장사지내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사건을 담고 있어요.
그러니 세례식에서 머리에 물을 얹었을 때
빨리 털어내려고 하지 마세요.
그 물은 축축해서 불편한 물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주시는
가장 거룩한 상징이에요.
세례는 이전의 삶과의 단호한 절연이자,
새 생명으로의 부활이에요.
그렇다면 부활한 나는 이제 누구일까요?
4. 정의: 세례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4. 정의: 세례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세례는 옛사람을 장사지내는 장례식이자,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탄생식이에요.
새롭게 태어난 나는 이제 누구일까요?
하나님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선포하세요.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처음에 얘기했던 자기중심성.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려는 것.
사실 그게 정체성에서도 똑같이 나타나요.
내가 나를 직접 정의하고 쟁취하려는 것,
그것도 내가 중심이 되려는 거거든요.
그런데 세상은 여기에 기름을 부어요.
끊임없이 이렇게 말해요.
"네가 이룬 것, 네가 가진 것,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보는지,
그게 곧 너야."
성적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고,
못 나오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것.
팔로워가 많으면 내가 괜찮은 사람 같고,
아무도 내 게시물에 반응 안 하면
갑자기 내가 초라해지는 것.
아니면 더 어릴 때는 이래요.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오늘 다른 애랑 놀면
나는 왠지 별로인 애가 된 것 같은 기분.
세상은 그게 너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진정한 정체성은 내가 발견하거나 성취하는 게 아니에요.
태어난 아기는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짓지 않아요.
부모가 지어줘요.
그 이름 안에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길 바라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다 담겨 있어요.
우리의 정체성도 똑같아요.
하나님이 먼저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세례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먼저 선언하는 예식이에요.
하나님의 자녀.
왕족.
지금 당장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는 평생 그 이름에 걸맞게 자라가는 사람들이에요.
신앙은 훌륭해지기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에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기쁜 소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 이름은 혼자 받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같은 이름을 받은 가족 안으로
함께 들어오게 돼요.
5. 공동체: 나 홀로 신앙은 없다
5. 공동체: 나 홀로 신앙은 없다
신앙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홀로 있는 그리스도인은 없어요.
교회는 취향이나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가 아니에요.
세례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가는
입양의 자리예요.
입양을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아요.
부모가 먼저 이 아이를 선택하고,
내 아이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셔서
한 가족이 된 것이에요.
그리고 가족이 됐다는 건,
이제 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에요.
혼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서로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기억을 잃으면 떠올려줘요.
그게 교회예요.
(유아세례를 앞두신 부모님들께)
유아세례는 내 아이를
하나님의 영원한 팔에 온전히 맡기는
내려놓음의 예식이에요.
거친 풍랑 속에서
내 아이를 하나님의 품으로 던져 넣는
가장 깊은 신뢰의 행위예요.
동시에 내 아이를
교회 공동체의 책임에 함께 내어맡기는
언약의 자리이기도 해요.
부모가 불안하여 아이를 온전히 맡기지 못할 때,
교회 공동체가 그 책임을 함께 지겠다는 약속이에요.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강요가 아니에요.
"이것이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이란다"라고
삶으로 솔직하게 증언하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 가족 안에서 우리의 삶은
세례 이후에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요?
6. 지속: 평생의 갱신과 영원한 위로
6. 지속: 평생의 갱신과 영원한 위로
세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에요.
단 한 번으로 완전한 사건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평생이에요.
세례가 끝나는 날이 없거든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기억하는 것,
그게 세례를 살아내는 거예요.
그렇다고 세례를 받은 다음
갑자기 완벽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기억하시나요?
처음에 얘기했던 그 장면들.
성적이 나를 정의하고,
친구 반응 하나에 내 하루가 흔들리던 것.
세례를 받은 후에도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
여전히 넘어지고, 여전히 흔들려요.
그런데 달라지는 게 있어요.
그게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해요.
내가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거든요.
혹시 지금 이런 마음이 드는 분 계신가요?
"나는 세례를 받기에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세례를 받고 나서도 이렇게 넘어지면 어떡하지."
그 마음, 당연해요.
그런데 그게 바로 세례가 필요한 이유예요.
완벽한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게 아니라,
세례가 우리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다시 받겠다는 말은 하나님이 처음에 실패하셨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세요.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서
세례의 의미를 평생 새롭게 깨닫도록 이끄시고,
우리가 잊어버릴 때마다 다시 기억나게 하세요.
세례는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영원한 위로의 징표예요.
우리가 방황하고,
하나님을 떠나려 발버둥 칠지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세요.
그게 세례예요.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에요.
마치며
마치며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잠깐 되돌아볼게요.
우리 안에 자기중심성과 우상숭배라는
깊은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어요.
우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그리고 물을 통해 선포하세요.
네 옛사람은 죽었다고.
이제 너는 새 사람이라고.
그 새 사람의 이름이
하나님의 자녀예요. 왕족이에요.
그 이름을 혼자 받는 게 아니라
같은 이름을 받은 가족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넘어질 때마다 그 이름을 다시 기억하면서
평생 그 이름에 걸맞게 자라가는 것,
그게 세례를 받은 사람의 삶이에요.
이 모든 것을 우리가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셨어요.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요.
생각해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 뭔가요?
내가 엄청 노력해서 겨우 얻은 것보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받은 선물이 더 감동이잖아요.
세례가 그래요.
자격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 거예요.
세례를 기억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에요.
오늘도 넘어졌을 때,
오늘도 흔들렸을 때,
오늘도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돼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예요.
그게 내 이름이에요.
그 이름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어요.
당신이 누구인지, 잊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