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3장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낭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낭독

제 3장 사랑과 교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3장 사랑과 교제 01 교회, 재창조의 씨앗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AlwRKeA6kw
Transcript:
(00:01) 제 3장 사랑과 교제

Ch 1 교회, 재창조의 씨앗

두 창조

신자는 교회라는 한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때로는 그 사랑이 부족하지만 서로 용서함으로써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제 창조될 세상이 사랑의 사회임을 이 세상에 보여줍니다.
두 창조 교회는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하실 세계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본래의 영광을 상실했고 생명되신 죽음의 세상이 들어왔습니다. [콧방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망가진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세계의 제창조입니다. 제창조란 죄로 인하여 망가진 세상을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01:04) 그렇지만 이렇게 타락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단순한 보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석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 아름다움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재창조를 대해 이야기할 때 다음의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 창조.

먼저 첫 창조의 착골성과 파괴입니다.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와 지상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두 세게 모두에서 당신의 충만한 신성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고이 땅의 나라에서는 인류의 대리자로 삼아이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상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지만 그 영광은 인간의 노동을 통해 더욱 증진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02:00)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에 현실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가능한 아름다움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이 세상에 주신 아름다움은 이미 창조된 세상에서 빛났지만 인간의 노동을 통해 증진될 것이었습니다.이를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우셨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을 닮는 지상과 의지를 주어 뜻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행동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영혼을 주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셨습니다. 그처럼 인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뜻과 의도를 깨달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군지로 창조되었습니다. 네. 네. 읽어주세요.
(02:54) >>
창조 사역에 나타난 삼위의 경륜.
천지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일치된 경륜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만물은 선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말씀하신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의 말씀에 계시느라.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마무리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세상은 또한 성령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전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03:42) 우리는 운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마치 버스가 도로 위를 왔다 갔다 하듯이 성령의 물의 위를 오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은행하다라는 뜻에 히브리어 단어 메라헤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감싸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닭이 어 알을 품고 있듯이 수면보다 훨씬 크신 성령이 수면을 감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이는 성령이 창조된 진료를 온통 덮어서 감싸고 계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피조물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진료가 성령 안에서 개별 사물로 구체적으로 창조되어 만물은 성령 안에서 놀라운 상호 연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편 19편 1절과 4절 자연 세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04:43) 만물은 다른 사물들과 상호 작용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음에 존재합니다. 미생물과 식물 동물 심지어 공기에 우리의 작용까지도 모든 것이 서로 영관을 가지고 질서 있는 조화를 이룹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이는 이는 삼위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의 교통을 반영합니다. 즉 삼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교통하시는 것처럼 피조 세계의 모든 것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상호 연관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첫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
교통하는 사랑 인간의 영혼에는 아는 것과 관련된 지성,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애성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이 있습니다. 지성과 애성은 창조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위탁하신 두 명령 곧 문화 명령과 종교 명령을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기능입니다.
(05:48) 성은 아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 자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이 능력은 애호와 혐오 즉 아름다운 것을 에워할 능력과 어 추루한 것을 혐오할 능력으로 구분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것을 범으로서만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존 로크와 같은 경험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최초의 인간은 사랑에 있어서 백색 판의 어 상태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사랑 자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인간이 마땅히 사랑해야 할 대상에
(06:52) 대한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의 대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입니다. 처음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올바로 알면 알수록 더욱더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입니다. 아담은 하를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담이 이르되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로 부르리라.이는 이는 단지 하와가 자기 신체 일부로 창조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부부가 사랑을 기초로 결합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07:46) 이 사랑의 고백은 부부 관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만드시려고 하신 사회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사랑의 사회였습니다. 셋째로 이 사랑에서 비롯된 다른 피조물들을 향한 선의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이 세상을 다스리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만물에 대해 설량한 관리자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처음 인간은 이러한 사랑의 질사 안에서 탁월한 선일을 가지고 만물을 대했습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의 교통은 인간에게도 반영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위로는 하나님과 사랑의 요통을 옆으로는 인간들 사이에서 사랑의 연합을 아래로는 모든 피조물을 선으로 돌봄으로써 상호 연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08:44) 그리고 이러한 상호 연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했습니다.
죄의 결과
창조의 아름다움은 교통하는 사랑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함께이 모든 것이 깨어졌습니다. 죄로 인한 아름다운 깨어짐은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깨졌습니다. 범죄함으로써 인간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 본성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적을 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하나님을 향하던 사랑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계하고 창조 세계를 다스리도록 유타받은 인간이 있어야 할 사랑은 자기 사랑으로 변했고 자기를 사랑하게 된 인간은 하나님이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09:45) 감과 적대감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을 향한 적이 있는 죄의 결과였습니다. 둘째로 인간을 사이에 교통이 파괴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었던 여자는 이제 남자에게 괴로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래 둘 사이에는 어떠한 다툼도 없었으나 두 사람이 각자 죄를 짓자 하나님이 향한 사랑이 깨졌고 그것은 둘 사이의 사랑도 깨어지게 했습니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내게 알렸느냐? 내가 내게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의 열매를 내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신 주셔서 나와 함께 한 함께 있게 한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사랑의 관계는 죄로 인하여 미움의 갈등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10:42) 그 미움은 살인으로 발전했고 이것은 이후에 태어날 인류가 어떠한 미움과 갈등으로 서로 대색하게 될지를 보여주는 예구이었습니다. 셋째로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선한 관리자로 피조물을 돌봐야 할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무별하게 절복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상조하신 질서를 벗어난 자연은 여러 자연 제어로 인한 자연 제로 인간을 위협했고 자연과 인간은 대적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넷째로 피주물과 피주물 사이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창조되어 상 어 상호 연관을 이루던 피조물을 아름다운의 연관의 상담 부분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의 목적에 기회하던 방식이 상당 부분 대립과 투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1:42) [콧방귀] 그리하여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치열하는 생존 경쟁과 다툼, 죽음과 어 고통 등이 다른 피물 가운데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인간은 자기 어 자신과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이탈하게 되자 그의 영혼과 육체, 정신과 마음은 전에 가지고 있었던 통일성과 조화를 잃어버려 끝없는 불안과 부조화에 시다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만물 사이에 있었던 상호 연관은 상당부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물들 사이에 아름다운 연결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체를 인류 사이에 적용해 보십시오. >> [콧방귀] >> 개인과 사회에서는 놀라운 목적 연관이 있습니다.
(12:36) 처음에 자연 사물들을 균형과 질서 절제와 조화 속에서 상호 연관을 맺으며 하나의 목적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덕적 사물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개별적인 존재와 인간 사이에 분명한 목적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타락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람 사회를 위하기보다는 자기 이기심으로 욕심을 따라 살게 되었고 그것은 갈 결국 갈등으로 가게 가득한 인간 사이를 유했습니다. >>

재창조.

다음으로 우리는 제창조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타락으로 망가진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제창조입니다.
(13:36) 제창조를 위한 계획의 첫 번째 실행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첫 창조 때는 자연 만물을 모두 만들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창조를 위해서는 인간을 먼저 부르십니다. 인간을 구원하여 교회를 이루시게 하시고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써 사람들을 사랑하고 피조 세계를 선대하여 다시 만물의 상호 연관의 중심이 되게 하십니다. 창조의 세계를 다스리는 고난은 아담에게 위임되었지만 대창조의 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을 통해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교회는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도구입니다.
(14:25)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은 아담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 나가는 과정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완전한 재창조가 이루어질 때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한편으로는 끊임없이이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재창조된 세계에서 구현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위 안에 있는 아름다움 교통을 교회 안에서 먼저 구현해야 합니다. 예.

두 창조의 연관.

첫 창조와 재창조는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두 창조 사이에 일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15:12)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다음 두 가지가 반드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재창조는 첫 창조의 완성을 바라봅니다.

먼저 재창조는 첫 창조의 완성을 바라봅니다. 첫 창조와 제창조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연속성이 있습니다. 첫째로 제창조는 첫 창조의 목적을 개성합니다. 구속의 목적은 세계와 인류를 첫 창조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는 제창조는 첫 창조가 이미 가지고 있던 목적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범죄로 처음 창조된 세상이 더럽혀졌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을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없었습니다.
(16:08) 비록 인간은 타락했고 창조 세계는 본래 영광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지혜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이 세상에 다시 드러내셨습니다. 둘째로 제 창조는 창조의 목적인 역동성과 전진성을 개성합니다. 창조의 목적은 창조된 상태 그들의 보존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풍성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모든 비교 세계 안에서 창조의 아름다움은 유지되었고 인간의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날마다 증진되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제창조는 창조 첫 창조의 목적을 계승합니다. 그렇지만 제 창조는 그 이상을 바라봅니다.
(17:04) 인간이 타락지 않았다면 미쳐 알지 못했을 또는 적게 알 수밖에 없었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은 인간의 죄로 인한 구속의 역사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은 첫 창조의 상태가 드러냈을 영광을 능가합니다. 이처럼 제 창조는 첫 창조의 목적 그 이상을 바라봅니다. >>

교회, 재창조의 완성을 위한 씨앗.

다음으로 교회는 어 재창조의 완성을 위한 씨앗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워진 교회는 마지막 그날에 완성될 세계가 어떠할지를 미리 보여주기 위한 존재 위해 존재합니다. 현대문명은 인생의 의미와 행동의 가치를 묻기보다는 생활의 안락함과 욕망의 충족에 골몰하게 합니다.이 때문에 인간은
(18:08) 가치가 좋고 의미가 없는 일에 인생을 소진하게 되었습니다. 물질문명은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왔으나 한편으로는 인간이 세계와 이웃 자신으로부터 더욱 심각한 소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야 할 인간은 시사라 세상을 위하여 살 되었습니다. 교회는 완성된 상에서 이어질 바른 사랑의 질서를 먼저 도입하여 누림으로써이 세상에 올바른 사랑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질서에서 이탈하려는 정욕에 대항하여 회개와 믿음으로 싸우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완성될 세계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 아래 살아갈 것입니다. 그 질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19:08) 그날이 되면 하나님을 정점으로 만물의 존재 질서가 재편되고 그 존재의 질서에 부합하는 가치의 질서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질서를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합니다. 그토록 영광스럽게 재창조될 세계와 인류의 첫 열매가 바로 교회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마지막날 충만하게 누릴 사랑의 교통을 바라보며 그 나라에서 실현될 삶의을 미리 누리는 곳입니다. 신자는 교회 안에서 위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옆으로는 지체를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교통은 이 세상을 향해서도 확장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교회 밖에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합니다.
(20:05) 그로 인해 세상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세계가 완성될 때까지 영적인 한 몸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맺는 말

인류의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의 목적은 단지 타락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차 나타날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의 시작점일 뿐입니다. 교회는 그 영광스러운 재창조의 씨앗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인류 구석의 완성과 함께 이루어질 채 창조는 인간과 교회는 물론 모든 세계와 만물을 포함합니다. 제창조때에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첫 창조의 영광스러운 광위가 온 세상에서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21:04) 그리고이 세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교회는 미래에 이루어질 이러한 완전한 사회가 어떠한 곳인지를 미리 경험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직이 세상의 교회는 미래에 완성될 사회와 같지 않습니다. 그 사회는 더 이상의 죄와 죄의 결과인 비참이 없는 곳이지만 현재의 교회는 여전히 불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를 말씀과 성령으로 성화되게 하심으로써 점점 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성화의 과정에서 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만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혼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22:07) >> 아멘. >> 아멘. H

Ch 2. 사랑 안에서 교제함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3장 사랑과 교제 02 사랑 안에서 교제함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B1pDZR64Kac
Transcript:
(00:01) 2장 사랑 안에서 교제함

성령 안에서의 창조

신자에게 혼자 사는 삶이란 없습니다. 그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른 시체들과 함께 성령의 교통하심을 줍니다. 목사 13장 13절. 이러한 삶을 성도의 고통 또는 성도의 교재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빌립보서 2장 1 2절. 이것은 사람들 간의 단순한 사김이나 무호적 관계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도가 서로 서로 교통하는 것에서 언급된 교통을 의미합니다. 그 교통 안에서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께 젖붙여진 한 몸을 확인하며 교회의 지체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 26절 하늘 생명과 사랑으로 한 몸이 된
(01:06) 다른 지체와 불가분의 관계로 살아갑니다.이는 신자와 교회 모두 성령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다음 사항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심.

먼저 인간의 창조에서 성령의 사역입니다. 인간의 창조와 제 창조는 모두 성령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인간의 창조에서 성령의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으신 것이 인간의 육체라면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은 성령이 영혼을 창조하여 인간에게 부여하신 사건입니다. 이로서 인간은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인간의 영혼은 육체를 다스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 영혼의 주가 되십니다.
(02:08)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영혼에게 부어져 그 영혼의 생명이 육체를 올바로 다스릴 때 인간은 창조 목적에 따라 살게 됩니다. 둘째로 인간의 중생에서 성령의 사역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인간의 타락은 육체와 영혼 모두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 로마서 5장 12절. 그러나 죽음의 선택은 각각 다릅니다. 육체의 죽음은 몸의 모든 기능이 연구히 정지된 상태를 말합니다. 영혼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굳급하던 하늘 생명과 사랑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법하였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장 23절이 구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03:10)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영광이며 시편 8편 5장 이르지 못하다는 모자라자 모자라다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부여하신 영광이 모자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8편 4절에서 8절. 인간은 원래 하나님께 부여받은 영광을 누리고 있었는데 타락하여 그것을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데살로니카 후서 1장 9절. 그 영광은 인간이 생명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6장 33절 15장 17절. 하늘로부터 공급되던 하늘 생명과 사랑이 끊어지자 인간은 살아 있으나 살아 있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04:11) 인간이 살아 있다라는 말은 단지 자연적인 생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르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인간의 영혼을 다시 살리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제창조입니다. 중생으로 영혼의 살림을 받은 신자는 그리스도께 젖붙여집니다. 로마서 11장 17절. 그러므로써 그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하는 하늘 생명과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공급받습니다. 따라서 중생은 개인적인 사건인 동시에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누리는 생명과 사랑이 이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던 교회에 주어진 것인데 그가 교회에 젖붙여져 그것을 함께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5:10)

교회를 창조하심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교회를 창조해서 성령의 사역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 교회를 세우실 계획은 성부에 의해 수립되었습니다. 성자는 그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계속 재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신자를 중생하게 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게 하십니다. 로마서 5장 5절, 요한일서 3장 24절 교회 창조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성령은 공동체의 성령을 부음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 보회사를 보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06:07) 그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2절부터 4절.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속죄 위에 성령을 부으심으로써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이는 성령의 은혜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실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은 복음을 믿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8 9절.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증거되는 복음이 믿어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을 믿기를 바라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 그리스도의 이러한 소원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07:05)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사람들에게 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로 성령께서는 신자 안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신자 안에 영원히 거하시겠다는 것은 곧 교회에 그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회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복음 14장 16절 구약에서 성령의 역사는 필요한 직무를 소행하게 하기 위해 어떤 사람에게 부어지는 한시적인 것이었습니다. 한시적이라는 말은 그 사역이 끝나면 성령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셨다는 것입니다. 단의 죄 때문에 성령이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07:58) 사무엘상 16장 14절 시편 51편 11절. 그러나 신약에서 성령은 신자 안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 로마서 8장 16절, 고린도전서 3장 16절 에베소서 1장 13절 2장 22절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번성이 충돌를 일으키지 않는 신비 신비로운 방식으로 신자 안에 거하십니다. 또한 인간의 지성과 정서와 의지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잔존하는 부패한 본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한 의지를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지혜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 이러한 일은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집니다.
(08:59) 성령은 영원히 교회 안에 거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교회는 연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연합 안에서 그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십니다. 자가 누리는 모든 좋은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니 교회와 성령은 때려야 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교제를 이루시는 성령.

성령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된 신자는 사랑 안에서 서로 교재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신자라고 해도 여전히 그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요한서 1장 8절. 그래서 성도의 교재는 깨뜨려질 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는 불완전한 신자들이 다음에 두 가지를 누리게 하심으로써 교재를 지속할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10:04) 용서와 사랑입니다.

용서를 누림.

첫째로 용서입니다. 교회 안에는 아직 그리스도께 젖붙여지지 않았으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야 하는 사실상의 불신자가 있습니다. 또한 신자라고 해도 여전히 그들 가운데 남아 있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다른 지체를 괴롭게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늘 갈등이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재를 더욱 온전하게 하려면 죄와 허물이 올바르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잘못을 한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서를 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누가복음 11장 4절.
(11:02) 성령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다른 지체에게 죄와 허물을 용서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십니다.이 모든 일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 에베소서 2장 18절 4장 3절. 이러한 용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용서하는 이유.
신자는 다른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을 거아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11:53)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신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 때문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최초로 경험하는 것은 용서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시편 130편 4절. 그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용서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골로새서 3장 13절. 자신이 저주받을 진노의 자식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음을 믿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 자신은 단지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며 자기에게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도록 그 사랑의 비친 자임을 기억합니다. 신자는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해도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지체를 용서합니다.
(12:46)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교회의 불완전함이 운 흠이 많은 심자를 온전하게 하는 교부가 됩니다.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며 그 사랑 안에서 생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자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새 번성은 자신은 고통을 받고 교회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6장 7절. 교회는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함으로써 교회가 더 이상 혼란과 아픔 속에서 고통 당하지 않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8절 .
(13:35) 신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몸인 교회는 불안전하여이 땅에서 고통을 겪게 겪고 있습니다.이 고통은 곧 머리신 그리스도의 아픔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자는 불완전한 교회의 현실을 볼수록 교회의 완전함을 더욱 갈망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이 간절한 기도에 이르게 하고 기도를 통해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 각 사람의 지순의 사랑을 더욱 충만하게 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신자는 서로를 더욱 용서하며 살아갑니다.
용서의 성립
진정한 의미의 용서는 단지 복수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와 다시 사랑의 교재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14:27) 그러므로 용서의 경험 안에는 항상 화목과 관계 회복의 경험이 있습니다. 관계적인 면에서 미움과 사랑은 끊임없이 세상을 찾아 회개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움은 타인을 향한 원망을 고르고 원망은 미워할 대상을 찾게 합니다.이는 이는 마치 사랑이 기뻐할 대상을 찾고 그 기쁨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유사합니다. 아가서 3장 1절 . 미움과 원망은 신자 사이의 관계를 상처와 다툼으로 얼룩치게 합니다. 성경이 미움과 원망으로 인한 비녀를 어둠의 일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2, 13절. 용서는 미움과 원망에서 생긴 다툼의 고리를 끊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15:21) 신자는 먼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있는 곳에는 항상 사람들에 대한 용서가 있습니다. 그가 자기의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신 자는 자신이 받은 비난과 손해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책임을지 않음으로써 연속되는 분쟁의 거리를 끊습니다. 자신이 받은 손해를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지체가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 바라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용서는 자신이 다만 용서받은 죄인일임을 아는 데서 비롯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3절부터 15절.
(16:14)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감격 안에 있는 신자는 자신을 용서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단지 그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로 여깁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한 후에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이미 자신 자기에게 넘치도록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흐르게 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지순의 사랑 안에서 신자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다른 지체에게 용서받고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지체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신자에게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17:01) 고통에 직면할 때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존재입니다. 골로새서 1장 21절.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셔서 우리가 겪어야 했을 고난을 아들이 대신 겪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가슴이는 사랑을 경험할 때마다 성령은 신자 안에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선한 일을 하게 하는 은혜의 힘으로서만 가능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가득찬과 분쟁은 대부분 누군가가 용서를 위해 십자가를지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17:52) 그래서 한번 일어난 분쟁은 기움과 다툼을 일으키며 불길처럼 번져가고 그 아픔은 그리스도의 온몸을 뒤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신자는 자신이 고난을 받더라도 교회와 다른 지체는 더 이상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을 통해 더욱 확장되고 자신에게서 미움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들은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복됨
용서를 통하여 교회는 맡혔던 그리스도와의 교재를 다시 회복합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 또한 신자 사이에서도 실제적으로 사랑의 연합을 누리게함으로써 그들의 교재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18:42) 이러한 용서의 복됨은 두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극적 측면.
소극적으로 용서는 속박에서 자유하게 합니다.이는 우리의 구원 경험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죄사함을 얻기 전까지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속박된 상태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서 6장 16절, 에베소서 4장 18절. 영혼의 어둠과 재성의 눈마음으로 선한 것을 알 수 없었으며 희미하게 알고 있었다고 해도 아는 대로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 때 우리는 모든 속박을 끊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36) 곧 신분의 자유와 영혼과 마음의 자유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 신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죄의 종이었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유가 자녀가 되는 자유를 누린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죄의 사실에 묶여 있던 마음과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된 사람입니다. 물론 신자가 된 후에도 그 안에 잔존하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합니다. 신자는 내적으로는 죄의 경향성 때문에 속박당하고 환경적으로는 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물들의 질서 때문에 속박을 받습니다. 고린도서 4장 8절. 그렇지만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끊임없는 경험은이 모든 것에서 신자를 자유하게 합니다.
(20:25) 용서 안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 교회 안에 미움과 다툼이 가득할 때 지체는 그것으로 인하여 속박당합니다. 그가 행하는 많은 선행은 용서하지 못하는 비묻은 손에 의해 오염되어 버립니다. 진리를 볼 수 있던 눈은 어두워지고 하늘 향해 날아오르던 기도의 날개는 벗깁니다. 마음에 맺친 것을 풀지 못하는 그들의 영혼은 부패야 합니다. 이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악영향이라 미움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부터 32절. 오직 용서만이 그의 영혼을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게 합니다. 그의 영혼을 붙잡고 있던 미움의 짐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게 합니다.
(21:20) 그래서 용서할 때 가장 큰 수혜자는 잘못을 한 사람이 아니라 용서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적극적인 측면
적극적으로 용서는 지체 간의 교재를 새롭고 올바르게 합니다. 빌레몬서 1장 16절부터 18절.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의 마음에는 단지 형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어떤 믿음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교재로 부르시고 예정과 같이 사랑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이러한 사랑의 경험은 용서가 참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고중과 같습니다. 자신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줄 때 신자는 미움과 원망의 속박에서 자신과 상대방을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2:17) 진정한 용서는 관계의 회복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이 용서한 사람과 다시 화목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게함으로써 허물이 많은 지체가 한 번의 잘못으로 복된 교재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지체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할 용서의 복됨입니다.
사랑을 누림
둘째로 사랑입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재는 신자로 하여금 서로 용서하게 할뿐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게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 히브리서 6장 10절. 그로 인하여 교회는 점점 더 온전해져 갑니다. 교회의 참된 기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것도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23:10) 요한복음 3장 16절. 죄인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만든 것도 사랑 때문이었으며 성령을 받은 교회가 한 몸을 이루어 연합하게 하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부터 6절 신자는 그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한 경건과 연단된 꿋꿋함으로 자라갑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뿐만 아니라 그 사랑으로 다른 지체를 사랑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가장 탁월한 섬김은 모든 신자 안에 있는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9절.
(23:56) 이를 이를 위하여 교회는 신자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생활로서 실천하게 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이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그분을 사랑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개인적인 구원을 통하여 지순의 사랑을 소유한 신자가 공동체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서 11장 28절 에베소서 5장 31 32절. 그래서 교회의 지체로서의 삶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24:4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교회를 섬길 수 있고 교회를 섬기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부터 25절.

맺는 말

모든 구원의 역사는 그 전개를 통하여 위 하나님 사이에 완전한 사랑의 그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인간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알게 합니다. 요한일서 4장 9절부터 10절.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신자가 다른 사람을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 신자는 그 사랑 안에서 서로 교재합니다.이 일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용납해 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부터 22절.
(25:33) 신자는 그 일이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거물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장 5절.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그의 영혼은 아름다움을 회복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시는 곳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어느 하나도 이론에만 그치는 것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1장 9절부터 10절.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앎은 언제나 우리에게 분명한 적용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깨달은 대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