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구함

성령강림(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1-6)

오늘 본문말씀은 아브람이 환상 중에 하나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이 아브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원래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아마도 유목민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왜냐하면 이 아브람의 아버지인 데라라고 하는 사람이 갈대아 우르라고 하는 곳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다는 말씀이 창세기 11장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라라고 하는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지 못하고 그 중간인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러서 거류하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아브람이 하란에 있을 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는 말씀을 듣고, 가나안땅으로 여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미 도착했는데 가뭄이 들어서 잠깐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오기도 하고, 헤브론에 들렀다 오기도 하고 몇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어느날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며, 또한 네가 받을 상이 아주 크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오히려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2-3절에 “아니 하나님, 대체 저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저는 자식이 없으니, 저의 상속자는 다마스커스 사람인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도저히 자녀를 주시지 않으니, 제 집에서 나온 종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말하는 이 장면은 아브람이 사실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요, 먼저 아브람이 살던 족장 시대에서 자녀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땅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가축을 가지고 있던지 어떤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자녀들에게 상속해야 하는데, 지금 아브람은 상속해줄만한 직계 자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2절에 보시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상속인이라고 하고, 또 그 다음절인 3절에 개역개정에는 “내 집에서 길린 자”라고만 되어있는데, 아브람이 자녀가 없던 것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가장임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엘리에셀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브람의 종이었고, 상속을 위해서 입양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굉장히 치욕스러운 일일 수도 있고, 또 무엇보다도 최후의 최후에만 사용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가꾸고 일구어낸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하는게 아니라 사실상 생판 남에게 상속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브람이 하나님께 구하는 이 장면, “하나님, 제게 대체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제가 자녀도 없고 이 종을 상속인으로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겁니까?”라고 묻는 장면은 절망속에서 부르짖는 장면입니다. 뭘 어떻게 해볼래야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닥치고, 또 당시의 사회 상황 속에서 굉장히 치욕스럽고 정말로 원치 않는 선택을 억지로 해야만 할 때에, “하나님 제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합니까?”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죠? 4-5절 말씀을 보시면, “아니다. 네가 말한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아니라 네가 나은 자녀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밖으로 한번 나가서 하늘을 봐라! 별을 감히 셀 수 있겠느냐?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을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약속을 하십니다.
그 때에 아브람이 어떻게 이야기하냐면요 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Genesis 15:6 NKRV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실 때 그것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아브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셨다고 합니다. 앞에서 아브람이 거의 빈정대듯이 말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잊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아브람에게 주시리라고 하신 것을 확증하신 이후에 아브람이 그것을 “믿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의롭다고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살면서 때로는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의 어려움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희가 필요한 것은 그냥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하시겠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저희가 믿음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냥 믿음인 척하는 자포자기나 다름 없는 것이죠.
아브람이 하나님께 구하고 묻는 것을 통해서 저희가 알 수 있는 것은 저희가 감당하기 힘든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좌절할 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입니다. 따져도 하나님께 따져묻자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도대체 자녀를 주시지 않는데, 저한테 뭘 주시겠다는 거예요?”라고 물었던 아브람 처럼, 저희 또한 “하나님! 제가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합니까?”하고 하나님께 묻고 구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 구하고 구한 끝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이 있다면, 응답이 있다면 아브람처럼 다시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어야합니다. 본문말씀 6절을 다시한번 함께 읽어볼까요?
Genesis 15:6 NKRV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할렐루야! 어려움이 생길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다른 누군가가 아닌 하나님을 먼저 찾고, 또한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을 믿으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무엇으로 알리이까?(7-11, 17)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더 이브람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7절 말씀을 보시면요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었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 땅이라고 하는 것은 가나안 땅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번에도 아브람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주님, 그럼 제가 이 땅이 제 것이라는 것을 제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9절 말씀에 3년된 암소, 암염소,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새끼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아브람이 새를 제외하고는 가축을 다 쪼개서 얹어놓았다고 하죠. 그리고 11절에 여기선 솔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원래 뜻은 맹금류, 그러니까 독수리나 매같이 사납고 육식을 하는 종류의 새가 다 해당이 됩니다. 그런 맹금류가 쪼개놓은 동물 사체에 내리려고 할 때에 아브람이 다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사실 보면 굉장히 잔인하고 징그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가축을 잡아서 먹는 것도 아니고 쪼개서 서로 마주보게 늘어놓는 행위가 대체 뭘까요? 사실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의식 중에 하나였습니다. 특히 기원전 18세기 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마리 토판 문서라고 하는 점토판에는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시키신 일과 유사하게 동물을 반으로 쪼개서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건 단순히 어떤 제사를 드리거나, 아니면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쓰이는게 아니라, 계약을 맺기 위해서 쓰이는 의식입니다. 쪼개놓은 동물 사이로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가게 되면,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이 계약을 깬다면 그 사람은 이 동물들 처럼 둘로 쪼개질 것이오!”라고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계약인 것이죠.
그래서 보통 이런 계약은 아주아주 중요한 계약을 맺어야하는 두 사람이 맺거나 아니면 힘이 쎈 왕국이 약한 왕국을 손에 넣고 그 속국의 왕만 지나가게 해서 충성심을 확인하는 용도로도 쓰였습니다. 그런데 17절로 넘어가서 보시면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갑자기 연기가 나는 화로가 보이더니 타는 횃불이 이 쪼개놓은 가축들 사이로 지나갔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브람은 지나가지 않았는데, 하나님만 이 계약을 위해서 가축들 사이로 지나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무엇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신줄 알겠습니까?”하고 증거를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증거로 하나님 자신만 부담을 지는 계약을 아브람과 맺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요 이러한 일방적인 계약, 그것도 저희에게 불리한 계약이 아니라 저희에게 일방적으로 이득이 되는 계약을 저희와 세우셨습니다. 골로새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Colossians 1:22–23a NKRV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하나님께서 만약에 계약을 어기면 가축이 쪼개진 것처럼 스스로가 그렇게 되리라고 아주 강력한 언약을 아브람과 세우신 것처럼,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먼저 하나님 스스로가 육체의 죽음을 감당하시고 저희로 하여금 믿는자들에게 의롭다 여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제가 대체 무엇으로 이 땅을 받은 줄 알겠습니까?”라고 했을 때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 저희가 “무엇으로 저희가 하나님 나라를 받은 줄 알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저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람이 하나님께 언약의 증표를 구했던 것처럼, 저희는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언약의 증표, 십자가를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Romans 6:6–7 NKRV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십자가를 구한다는 것은 죄악된 우리의 예전 모습을 버리고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믿는 사람으로서 의인으로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사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는 믿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다음장인 16장만 봐도요 하도 아들이 가져지지 않으니까 사래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낳기도 합니다. 믿음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표시가 드러나지요. 그런데 나중에 정말로 이삭이 태어난 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여주신 이후에는 어떻습니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시험에도 그렇게 어렵게 낳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증표를 보여주신 이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완전히 바뀐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의 증표를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이미 그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증표를 이미 받은 것입니다. 아브람이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축 사이로 지나가신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언약의 증표를 세우신 것입니다.
본문말씀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Genesis 15:17 NKRV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할렐루야! 아브람에게는 횃불로 나타내시고, 저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언약의 증표를 세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죄악된 우리의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새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십자가를 구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대 만에 이 땅으로(12-16)

본문말씀 12절말씀으로 돌아오면요, 아브람이 깊은 잠에 들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 땅에 가서 400년 동안 그 이방 사람들을 섬기다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징벌하시고 그 자손들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는 말씀이었어요. 다만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평안히 장사될 것이고 자손들은 4대가 지나면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않았다고 하시는데요, 이 아모리 족속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한 족속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족속들을 대표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냥 아브람의 후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족속들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체하시는 거고, 그걸 위해선 시간이 더 흐른 뒤에나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죠.
저희는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알지요. 모세를 통해서 이미 살펴본 출애굽 사건, 즉 400년이나 지난 후에 일어날 일을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람에게 다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꿔 생각해보면, 사실 아브람에게 크게 의미있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 즉 “너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말씀과는 반대되는 말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조금은 충격적인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아브람에게는 400년이나 지난 후에 일어날 일인데, 그 때까지 살아있을 수도 없고, 아브람에게 있어서 대체 이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걸까요? 특히 자손들이 이방 땅에 가서 고생하고 온다는 말씀인데, 이걸 아브람에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이는 이스라엘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미리 보이신 겁니다. 4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400년이라는 기간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시는 기간입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말씀을 보시면,
Exodus 1:12 NKRV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애굽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더 번성하고 퍼져나갔습니다. 하늘의 별 만큼 그 수를 많게 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기간은 고통과 고난의 기간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어두운 예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련하시는 방식, 즉 고난을 통해서 성숙시키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악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훗날 아브람의 자손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에 걸맞는 백성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단련시키시는 기간이기도 했다는 겁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출애굽하고서도 40년이나 더 광야를 떠돌며 단련되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Hebrews 12:11 NKRV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고난과 징계가 당장은 즐거워 보이지 않아도, 후에 그것으로 연단 받은 사람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브람의 자손들이 겪게될 절망적인 상황, 혹은 암울한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시고 또한 단련하실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 드린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설교하는걸 굉장히 두려워하고 또한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발 설교 좀 덜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했었는데 오히려 설교하는 자리에만 보내시는 거죠. 정말 처음에는 꽤나 고초를 치렀습니다. 한 일주일을 내내 고민하고 기도하고 말씀 읽고, 때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밤을 새서 준비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요. 그때는 정말 “왜 나한테 자꾸 이런 일만 생기는거야!”하고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 시간만큼 제가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고난과 시험으로 단련을 시키십니다. 살면서 저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에, 그저 그 상황에 절망하고 두려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한 훈련시키시는 과정임을 믿고, 또한 기도로 준비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어려움이 생길 때에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하나님이었고, 하나님께 “무엇을 주시렵니까”하고 구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해주셨을 때는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저희 또한 어려움이 닥칠 때에 포기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먼저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인 십자가를 구할 수 있어야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언약의 증거를 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시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저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증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그 언약에 응답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구하는 것, 즉 죄인된 모습이 죽고, 변화된 새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일에 힘써야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시험으로 저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닥칠 어려움을 말씀해주신 것처럼, 또한 그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련시키신 것처럼 저희의 삶 또한 하나님께서 고난과 여러움으로 단련시켜 주십니다. 그저 어려운 일로 인해서 좌절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서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로 준비하면서 성숙해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구하고, 언약의 증표인 십자가를 구하며 의인으로서 살아가기 힘쓰고, 고난과 시험으로 저희를 단련시키는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