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교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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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본문: 고린도전서 12장 22-25절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수요예배를 통해 우리 7교구와 사랑부가 한자리에서 예배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얼마 전, 우리 사랑부의 한 성도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담임목사님을 뵙고 반갑게 "얘가 김성겸이야!"라고 외쳤던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성도님이 어머니와 함께 강정일 목사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목사님께 인사드려야지"라고 하셨더니, 우리 성도님이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니야, 김성겸 아니잖아!"
그 상황에서 강정일 목사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그래, 나 아니다!"라고 재치 있게 받아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신가요? 마음이 참 행복해지지 않으십니까? 맞습니다. 우리 사랑부는 바로 이런 순수함과 행복이 가득한 공동체입니다.
우리 동산교회 사랑부에는 현재 260여 명의 성도님이 계십니다. 이분들의 가족과 헌신하시는 교사분들까지 포함하면, 사랑부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무려 1,000명이 넘습니다. 우리 교회 전체 성도 중 10% 가까운 분들이 이 공동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랑부 성도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 교회 안에 이렇게 많은 장애인 성도들을 두셨을까요? 그저 우리가 돌봐주어야 할 대상일 뿐일까요?
오늘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동산교회라는 몸 안에 사랑부 성도들을 세우신 진짜 이유,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야 할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대지: 세상의 눈에는 약해 보이나, 도리어 '요긴한' 지체입니다.

– 교회의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지체
오늘 본문 2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이 말씀이 선포된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능력과 은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강한 지체'라며 자랑했습니다.
반면에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이 없는 성도들은 어떻게 대했을까요? 그들을 '약하게 보이는 지체', '덜 귀한 지체'로 취급하며 무시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영적인 서열을 나누며 깊은 교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교만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일침을 가하시는 장면입니다. "너희 눈에 약해 보이는 그 지체가, 사실은 도리어 요긴하다!"
여기서 '요긴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저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거나, 있으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지체가 없으면 몸 자체가 생명을 잃어버리는, 없어서는 절대 안 될 필수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겉으로 드러나는 탄탄한 근육이나 단단한 뼈는 참 강해 보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몇몇분들이 속으로 '목사님, 저는 골다공증이 있어서 뼈도 참 약한데요~' 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요. 오늘 이 밤에 주님께서 튼튼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겉으로 튼튼해 보이는 것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했던 화려한 은사들과 같습니다. 반면에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심장이나 폐는 참 연약합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고 약해 보이는 장기들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요? 겉이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가장 약해 보이는 곳이, 사실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 동산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도 겉으로 보기에 강해 보이는 지체가 있고, 반대로 한없이 약해 보이는 지체가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랑부 성도님들을 볼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의 인간적인 눈, 세상의 잣대로 볼 때는  약해 보입니다. 혼자서는 예배드리기도 쉽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과 돌봄이 늘 필요한 분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우리가 품고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사랑부 성도님들은 단순히 우리가 돌봐주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분명한 유익을 주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겉모습을 꾸미기 쉽습니다. 예배를 당연한 습관처럼 여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랑부 성도님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참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으면, 제 자신의 형식적인 신앙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주중에 사랑부 성도님 한 분이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일에 교회 오죠?"
처음에는 웃음이 났습니다. '내가 담당 목사인데, 당연히 교회에 가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매주 주일 예배를 당연한 일과로, 습관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 성도님은 주일 예배를 평일 내내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랑부 성도님들은 느린 찬양에도 스스로 율동을 창작해서 온몸으로 찬양합니다. 예배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예배는 나와 하나님이 대면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찬양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예배를 인도하는 강한 자 같았지만, 사실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제가 훨씬 더 연약한 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부 성도님들은 우리가 불쌍히 여겨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형식에 빠져 굳어가는 우리 신앙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생명의 지체요, 가장 '요긴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내 곁의 연약한 지체들을 우리 교회를 살리는 가장 존귀한 지체로 대우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대지: 분쟁 없이 서로 같이 돌보는 '한 몸'이 되게 하십니다.

– 일방적인 도움이 아닌, 서로를 살리는 상호 돌봄
이어서 고린도전서 12장 24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몸을 '고르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체와 감추어진 지체, 강한 지체와 약한 지체를 차별하지 않고 조화롭게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부족해 보이는 지체에게 도리어 더 큰 '귀중함'을 입히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교회 안에 '강한 자와 약한 자', '베푸는 자와 받는 자'라는 서열과 분쟁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돕기만 하는 사람과 받기만 하는 사람으로 교회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손이 아프면 발이 함께 아파하고 반응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서로 같이 돌보는' 동행을 원하십니다.
작년 여름, 저는 이 말씀을 7교구 성도님들의 섬김을 통해 우리 사랑부 공동체에서 목격했습니다. 지난해 7교구에서 사랑부 여름 수련회와 비전트립을 위해 귀한 헌금을 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사랑부는 처음으로 비전트립을 다녀왔고, 400여 명의 공동체가 은혜 가운데 수련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 기억에 남는 한 성도님이 계십니다. 비전트립을 떠나기 전, 그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선교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나 가는 거 아니에요?" 본인은 선교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비전트립을 다녀온 뒤에는 고백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저도 선교가요!"
그 고백을 듣는데 얼마나 큰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7교구 성도님들의 헌금이 한 영혼의 생각을 바꾸고, 주님의 사명을 깨닫는 '선교의 주체'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 사랑의 열매가 올해까지 이어집니다. 올해 우리 사랑부는 7교구의 사랑을 힘입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2박 3일 비전트립을 떠납니다. 7교구 성도님들이 쏟아주신 정성과 헌신이 사랑부 성도들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고, 그 열매가 하나하나 맺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7교구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동산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권위의 벽을 허물고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진정한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랑의 원리는 우리 7교구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속한 셀 안을 돌아보십시오. 혹시 혼자 힘들어하는 지체는 없습니까? 서로 다른 성격과 환경 때문에 서먹한 관계는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한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내 곁의 셀 식구는 내가 돌보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돕기 위해 붙여주신 '한 몸'입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한 몸입니다. 서로의 약함을 탓하기보다 그 약함을 위해 기도하고, 기꺼이 짐을 나누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흘려보낸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나도 선교사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고, 올해는 제주도 하늘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같이 돌볼 때,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앞으로도 7교구와 사랑부가, 그리고 우리 모든 셀과 가정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주님 주시는 사명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참된 교회의 모습, 바로 '아름다운 동행'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의 약함을 채우며 함께 걷는 동행의 기쁨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 사랑부를 이렇게 정식으로 초대해주시고, 함께 말씀을 나누며 기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 교구가 7교구가 처음입니다. 이 자리를 준비해주시고 마음을 다해 섬겨주시는 여러분의 모습에서, 우리 사랑부 공동체는 정말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든든한 동역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7교구와 사랑부가 이 '아름다운 동행'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약함을 탓하지 않고, 그 약함을 통해 도리어 서로를 온전하게 세워가는 우리 동산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밤, 우리 7교구와 사랑부가 이 동행을 다시 한번 결단합시다. 더 나아가 우리 셀과 가정마다 서로를 한 몸으로 여기고, 주님 주시는 사명의 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축복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동행의 은혜를 주소서. 내 눈에 연약해 보이는 지체를 하나님이 붙여주신 '한 몸'으로 보게 하소서.
서로를 세우는 동행이 되게 하소서. 7교구와 사랑부가 서로의 짐을 나누며, 사명의 길을 함께 걷는 진정한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가정과 셀에 동행의 기쁨을 주소서. 모든 관계 속에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우는 '아름다운 동행'이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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