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공동생활_형제 교정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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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해주신 소스 자료를 바탕으로, **'형제 교정의 은혜와 영적 자선'**이라는 주제로 1시간 분량의 강의 또는 소그룹 공부를 위한 상세 정리안을 작성해 드립니다.
[강연/스터디] 형제 교정의 은혜와 영적 자선
[강연/스터디] 형제 교정의 은혜와 영적 자선
성경 본문: 누가복음 6장 41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 서론: 천국 백성의 높은 삶의 표준과 하나님의 은혜
1. 서론: 천국 백성의 높은 삶의 표준과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삶의 표준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수준입니다.천국 백성의 표준:
우리가 이 표준을 따라 살려고 할 때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매 순간 공급하시는 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표준을 주신 목적: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형제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형제 교정'은 서로를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영적 자선'**입니다.형제 교정의 정의:
2. 형제를 교정하는 자가 직면하는 세 가지 위험
2. 형제를 교정하는 자가 직면하는 세 가지 위험
형제를 교정하려는 선한 동기로 시작하더라도, 인간의 부패한 본성 때문에 다음과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타인의 결점을 주목하기 시작하면 쉽게 편견이 생기며, 사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감정에 좌우되기 쉽습니다.첫째, 편견에 사로잡힘:
사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생겨나는데, 형제의 '추한' 죄와 결점만을 계속 보다 보면 사랑의 감정이 미움이나 혐오로 변하게 됩니다.둘째, 사랑을 유지하기 어려움:
형제를 교정하다 보면 마치 자신이 온전한 사람인 양 착각하여,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었으며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잊게 됩니다.셋째,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림:
3. 온전한 교정을 위한 올바른 길: 자신을 돌아봄
3. 온전한 교정을 위한 올바른 길: 자신을 돌아봄
형제를 온전케 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온전해지는 비결은 철저한 자기 성찰에 있습니다.
형제의 죄를 발견할 때 즉시 자신에게도 동일한 뿌리의 죄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교정 후에도 자신이 정죄의 죄에 빠지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교정 전후의 자기 살핌:
우리 자신이 걸어온 길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용서와 긍휼로 이어진 발자국임을 기억해야 합니다.하나님의 사죄 은총 기억:
하나님이 나의 허물을 어떻게 참아주시고 사랑으로 회복시키셨는지 생각하며, 그 마음과 태도로 형제를 대해야 합니다.하나님이 나를 다루신 방법 적용:
4. 자신에 대해 공정해지는 영성
4. 자신에 대해 공정해지는 영성
가장 높은 영성의 표지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공정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진리의 빛이 우리 총명을 비출 때만 보지 못했던 자신의 부패와 결함을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진리의 빛:
진리가 '참됨'을 지향하게 한다면, 사랑은 우리가 '선한 존재'로 바뀌어 실천하도록 이끕니다.사랑의 마음:
교정의 동기는 항상 이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있어야 죄는 미워하되 형제의 영혼은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교정의 동기 유지: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5. 사랑과 은혜의 공급처
5. 사랑과 은혜의 공급처
형제 교정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인간의 자연적인 선의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혜입니다.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성령님이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성령의 감화:
우리가 힘들더라도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려는 , 하나님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공급하십니다.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도우심:선한 의지를 선택할 때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주님을 꼭 붙들 때 비로소 사랑의 감화가 일어납니다.전심으로 매달림:
6. 결론: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는 공동체
6. 결론: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는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 중 불필요한 사람은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모든 지체의 소중함:
오류에 빠진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다시 건강하게 태어나도록 고쳐줄 수 있는 곳은 세상에서 교회뿐입니다.교회의 유일성:
죄는 미워하되 형제는 뜨겁게 사랑하며,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우리의 사명:
주님이 주신 높은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매일 은혜의 단비를 구하며,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헌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마지막 기도:
이 정리안은 제공된 설교 녹취록 소스("성도의 공동생활_형제 교정03.pdf")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제공해주신 소스 자료를 바탕으로, 소그룹 성경 공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형제 교정의 은혜와 영적 자선' 활동지를 만들어 드립니다.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형제의 눈 속 티와 내 눈 속 들보
[소그룹 성경 공부 활동지] 형제의 눈 속 티와 내 눈 속 들보
● 본문 말씀: 누가복음 6장 41절 ● 주제: 형제 교정의 위험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법
1. 마음 열기 (Ice Breaking)
1. 마음 열기 (Ice Breaking)
최근 누군가의 작은 잘못이나 실수(티)가 유난히 크게 보여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나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는지 나누어 봅시다.
2. 말씀 깊이 읽기 (Observation & Understanding)
2. 말씀 깊이 읽기 (Observation & Understanding)
Q1.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인간의 힘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높은 삶의 표준을 가르쳐 주셨을까요? (출처,)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매 순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답변 가이드:은혜와 능력
Q2. 형제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형제 교정'을 할 때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위험은 무엇인가요? (출처,,)
형제의 결점을 주목하다 보면 쉽게 편견에 휩싸여 공정한 판단을 그르치게 됩니다,.편견:
형제의 '추한' 죄를 계속 보다 보면 사랑의 감정이 미움이나 혐오로 변하기 쉽습니다,.사랑 상실:
형제를 교정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었는지와 하나님의 긍휼을 잊어버리게 됩니다.망각:
Q3. '자신을 공정하게 다루는 것'이 왜 중요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 (출처,,)
자기 사랑에 빠지면 형제의 티보다 더 큰 '들보'(미움, 정죄)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봄)과 (선한 존재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답변 가이드:진리의 빛사랑의 마음
3. 삶에 적용하기 (Application)
3. 삶에 적용하기 (Application)
Q4. 설교자는 자신이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던 경험을 고백합니다. 이 질문이 형제를 대하는 태도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출처,)
하나님이 나의 허물을 어떻게 참아주시고 사랑하셨는지 기억할 때, 비로소 형제의 죄는 미워하되 그 영혼은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됩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다루셨는지 나누어 봅시다.나눔 포인트:
Q5. 현재 내 마음속에 미움이나 혐오감이 느껴지는 형제가 있나요? 그를 포기하지 않는 '지체'로 선택하기 위해 오늘 내가 구해야 할 '은혜'는 무엇인가요? (출처,)
내 안에는 선한 의지가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사랑의 감화를 부어주시도록 전심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 형제를 위해 어떤 기도를 시작할지 결단해 봅시다.나눔 포인트:
4. 함께 기도하기
4. 함께 기도하기
우리의 눈에서 교만의 '들보'를 제거해 주시고, 진리의 빛 안에서 자신을 공정하게 보게 하소서.
형제의 허물을 볼 때 정죄하기보다 하나님의 사죄 은총을 먼저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사랑의 유기체가 되게 하소서,.
본 활동지는 설교 녹취록 "성도의 공동생활_형제 교정03.pdf"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음악]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신약성경 누가복음 6장 41절 입니다. 우리 다 같이 누가복음 6장 41절을 읽으시겠습니다. 시작.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아멘.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속에 있는 들는 깨닫지 못하느냐?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마이 사랑하시고 아침마다 새로운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셔서 오늘도 우리의 마하하는 죄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진멸되지 않고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를 구해 주시고 이 시간도 그 피로 우리를 날마다 깨끗게 하시려고 더러운 죄인들을 주님 앞에 부르셨사오니 종들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을 향해나이다. 우리의 많은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오늘도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상천한 영혼의 세살이 돋게 하시옵소서. 아멘.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이 속해 있는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천국 백성의 삶과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백성들은 하늘나라의 백성답게 사는 삶의 표준이 있는데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얼핏 보기에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높은 삶의 표준도 이 가르침 속에 많이 등장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은 오히려 이 가르침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모든 삶의 표준들이 우리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표준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처럼 높은 삶의 표준을 가르쳐 주신 것은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고 또 이 표준을 따라서 살려고 할 때 우리 인간들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이 표준을 따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함으로써 오히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런 높은 삶의 표준을 주신 것이죠. 바로 그러한 계명 속에서 오늘 형제 교정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내 눈에는 자기 눈에 들보를 가진 사람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형제의 작은 결점을 보는 대신에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빼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형제를 올바르게 하기 위한 형제 교정에 있어서 아주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형제를 교정하는 것 이것이 영적 자선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잘 하기만 하면 서로가 서로를 교정해 줌으로써 우리가 극단적인 자기 사랑에서 오는 영혼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점점 더 온전한 신자가 되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개개인의 온전케됨은 성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온전함을 이루어서 전체적으로 예수의 몸을 온전케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렇게 형제를 교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형제를 교정하는 자에게 위험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형제를 교정하는 자의 위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우선 첫째는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게 된다는 것이죠.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서 결점을 발견하고 혹은 죄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형제를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겠죠. 어쨌든 그는 형제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죄나 혹은 결점을 보았기 때문에이 형제가 그 다른 형제를 교정해 주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죠. 이렇게 일단 형제의 결점을 주목하고 나면 사람은 아주 쉽게 편견에 휩싸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견에 휩싸이게 될 때 그다음에는 사실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대신에 그 편견에 의해서 좌우되어 그 일의 판단을 그르치게 되기가 십상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몇해 전에 병원에서 검진을 했더니 시력이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러면서 정밀검진을 하라고 저를 보냈습니다. 날짜를 받아서 안과에 가서 정밀검진을 하고자 했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 주사가 매우 고약한 주사인데 맞으면은 굉장히 힘들고 토할 것 같은데 그래도 참으셔야 됩니다. 하면서 혈관에다가 작은 주사 한 방을 놔줬어요.데 이게 무슨 주사인지 그 주사 바늘을 꼽자마자 막 구역질이 나기 시작하면서 쓰레기 통에서 몇 번을 토했습니다. 이윽고 주일이 끝나고 나서 2, 3분쯤 흐르고 나니까 생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상한 일들이 내 몸에서 일어났어. 그게 뭐냐면 계속 구토할 것 같은 증세와 함께 눈이 갑자기 색깔이 들어오면서 사물 모두가 다 새빨갛게 보이는 거예요. 하얀 건 빨갛게 보이고 파란 건 보라색으로 보이고 그리고 빨간 거는 까만색으로 보이고 하여튼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방을 사방을 다 보니까 사람들 얼굴을 술취한 것처럼 싹 빨갛게 보이고 벽도 빨갛고 모두 빨게 내 손톱도 빨갛게 보여. 그리고는 그렇게 된 눈에다가 기계를 갖다 대고 검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주사를 맞으면서 느낀게 있어요. 아, 그렇구나.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이렇게 주사액처럼 어느 한 순간에 우리의 마음의 혈관을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온통 우리의 몸에 퍼지는데 그렇게 퍼지게 될 때에 우리는 그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일단 그 사람이 싫어지고 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싫고 일단 그 사람이 좋아지고 나면 그 사람의 결점 때문에 또 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이런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형제가 죄를 지었거나 잘못했을 때 그를 교정해 주기 위해서는 잘못을 주목해야 하거든요. 그 잘못을 주목하는 결점을 주목하는 동안에 우리는 형제를 싫어하거나 혹는 형제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을 무시해 버리고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그를 영원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그 아름다운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면서 그 결점 때문에 혹은 그 죄 때문에 그 형제 전체를 미워하게 되는 이런 일들,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형제를 교정하는 자들이 빠지게 되는 위험이죠. 그래서 실제로 옳은 일을 위해서 나서서 투쟁하고 그것들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옳은 일을 위해서 투쟁하고 애쓰는 가운데 사람들 가운데에 따뜻한 사랑을 가슴 깊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입니다. 되게 옳은 일을 위해서 분토하는 의로운 사람들은 되게 단호하고 그리고 독선적이기가 쉬운 것이죠.
이러한 인간 본성의 이치는 형제 교정의 과정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의 결점을 교정해 주는 일은 영적 자선일 수 있지만 그렇게 교정하는 자가 위험한 이유는 그가 형제의 결점과 죄를 봐야 하기 때문이죠. 그때에 그는 편견에 휩싸여서 형제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는 그러한 위험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랑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이것이 형제를 교정하는 사람 자신의 빠지기 쉬운 위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사랑이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사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사랑이 생겨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진실하게 바로 바라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유격과 더러움에 꽉차게 되면 아름답지 않은데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신자 안에서 일어나는 세상 사랑과 부패한 자기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순결해지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명정하게 되고 지성은 예리하게 되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들만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될 때 그 사람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계속해서 마음속에 사랑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죠. 사랑 안에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을 많이 바라보게 될 때에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들이 특별히 아이를 갖게 되면은 그 임산부들은 더러운 자리에는 앉지도 않고 예쁜 것 아니면은 보지도 않고 그리고 좋은 음악 아니면 듣지도 않고 이렇게 하죠. 그렇게함으로써 태아가 좋은 심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인데 어느 정도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똑같이 우리도 영혼히 맑고 순수할 때에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될수록 그 사람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되는데도 더 이상 그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때에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아름다운 것이 계속 발견될 때에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 계속 내 마음속에서 자라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과 아름다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형제에게 바로잡아 줘야 할 죄가 있거나 고쳐야 할 잘못된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까? 추한 것입니까? 추한 것이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될 때에 만약에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하게 된다면 반대로 추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 사랑하던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미움이나 싫어함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름답지 못하고 추한 것을 하나 둘 계속 발견해 가면 갈수록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는데 이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계속해서 자라나지만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때 즉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것과 추한 것을 발견하게 된 중간 지점에 오게 될 때 우리의 감정의 상태는 권태감 내지는 싫증을 지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계속 발견할 때는 사랑의 마음이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에는 권태감이 그것을 지나쳐서 추한 것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당연히 싫어하는 마음이나 미움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형제에게 있는 이러한 죄나 혹은 잘못된 태도, 자신을 괴롭게 하는 그런 잘못된 특성은 모두 이 형제로이 형제에게는 추한 것이죠. 그래서 그 추한 것을 계속 발견하면서도 사랑을 유지한다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고쳐 주기 위한 동기가 교회를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은 싫은 식고 그리고 결정과 그 죄에 대한 미움이 그 사람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꽉 차서 그래서 결국은 형제가 죄를 지닌 것을 고쳐주려고 하다가 자기 자신이 형제를 미워하고 공동체를 해치는 죄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왕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죠.뿐만 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형제의 어 죄를 발보게 되면은 형제를 교정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렇게 형제를 교정해 주고 한자 하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또 하나의 위험은 자신의 처지를 잊게 되는 것이죠. 잊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면 우리가 예수님이 된 것처럼 착각을 느끼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많이 간증하다 보면 지금 내가 은혜 안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 방어 기재 가운데 훌륭한 것 하나가 바로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잊어버리는 것 그 자체가 죄의 특성이고 그리고 기억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특성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잊어버리지 말라고 계속해서 잊지 말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 그 은혜 그리고 자신들은 얼마나 비참한 인간인지에 대한 깨달음 이런 것들을 잊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여보내기 전에 이제 너희가 가나안의 땅에 들어가면 심지 않은 포도원에서 실과를 따고 그리고 너희가 짓지 않은 집에서 살게 될텐데 그때에 너희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 내가 의로워서 이 땅을 얻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너무나 타락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그래서 죄인된 너희를이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고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형제를 자꾸 교정하다가 보면은 자신이 자기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형제를 교정하려고 하는 자기 자신이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 형제를 대할 때가 많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삶을 살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형제를 교정하는 올바른 길이 무엇이냐? 이것은 형제를 교정하면서 그 형제를 온전케 할뿐 아니라 형제를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도 온전해지는 것이 바로 영적인 자손인 형제의 교정을 올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를 교정하면서도 온전해지는 길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우선 첫째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죠.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선 교정하기 전에는 교정하기 첫째로 교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죠. 만약에 형제 형제에게서 어떤 죄가 발견되거나 결점이 발견되면 그는 즉시 그런 동일한 결정과 죄가 자신에게는 없는지 자기를 살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 같은 종류는 아니더라도 모든 과오와 죄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같은 뿌리에서 종류는 다르지만 다른 죄와 결점들이 내게는 없는지를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형제를 교정하기 전에 형제의 죄나 결점을 보면서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면 그 다음에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게 되고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형제가 죄를 지었는데도 혹은 결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 형제를 무자비하게 정죄한 대신이 형제를 예수 안에 붙어 있는 생명처럼 생각하며 그 죄를 다룰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또한 교정하는 중에도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깊이 생각할 때에 이 형제를 다룰 때에도 하나님의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다루어서 죄는 제거하고 오류는 벗어나게 하고 형제의 영혼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러한 아름답고 복스러운 변화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다루어 오신 방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살아온 신앙생활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끊임없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사죄의 은총으로 이어진 발자국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모든 길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이 순간에도 여러분들의 양심은 여러분들이 살아온 길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혹은 이 양심 자체가 의식 속에 붙어서 증인처럼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기능이니 양심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들이 지은 죄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으면 여러분은 스스로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어떻게 용서해 주셨는지에 대한 기억도 희미할 것입니다. 기억이 그것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관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우리의 살아온 모든 날들은 끊없는 끝없는 하나님의 은총 그분의 긍휼과 은혜 때문에 살아온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쓰러지고 넘어질 때에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밟아 버리시는 대신에 거기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보고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보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 결과가 우리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상처와 비참을 가져다 주었으며 또 우리가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간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우리의 지난 날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살아온 지난 날들을 회고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고 걸어온 우리의 날들이 많지만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잘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날은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5년 전에 제가 개인적으로 영혼의 깊은 침체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깊은 영혼의 침체가 내 마음속에 한동안 찾아오면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시작이 됐습니다. 기도해도 기도가 잘 안 되고 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이제 나는 아무 희망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내가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깊이 밀려오고 그러고 나니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나 아니면 이렇게 저렇게 어 마주하게 되는 현실들이 모두 나를 슬프게 하고 이 이제는 내게 정말 희망이 별로 없는 것 같은 그런 깊은 영혼의 침체 속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특별히 그렇게 침체에 빠진 몇 주간이 있었는데 기도는 오직 하나밖에는 할 말이 없었어요. 오직 기도는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영혼을 맡겨 주셨지만은 그러나 나는 내 영혼 하나도 간소할 수 없을 정도 이렇게 연약해서 마치 블레셋 백성들과 싸우다가 나귀의 턱뼈를 던져버리고 쓰러진 삼손처럼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영혼의 침체에 빠지게 되면은 깊은 고독이 밀려오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나의 이 침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혼이 매우 위험한 때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고난이 오고 시련이 오고 혹은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도 영혼이 살아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어나지 않고 평안해도 영혼이 깊은 침체 속에 들어가게 되면 견디게 어려워지죠. 그러는 가운데 우울하게 몇 주를 보냈는데 마침 목사님들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설교를 해야 될 그런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곤하게 먼 길을 가서 밤에 자고 새벽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도 여전히 마음이 매우 무겁고 그리고 내 마음 한구석했던 양심의 송사가 들려왔어. 네 영혼도 그러면서 무슨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봉사한다 그러느냐는 거죠.
그래도 이제 나에게 임무가 주어졌으니까 어쨌든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해야 되겠기에 일어나서 기도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나아가서 단에 올라서 성경 구절을 읽는 순간부터 저는 일생에 별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아주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나는 오히려 말씀을 전하고 있는 나에게서 이탈해서 그래서 내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나는 내 속에서 빠져나와서 이 예배당 한가운데 앉아서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원고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설교를 하면서 저는 설교하는 시간 본문을 읽는 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눈물이 앞을 가려서 참아 설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나 자신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때 주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하나님 앞에 나는 침체에 빠졌습니다. 내 안에는 죄가 많습니다. 나는 무기력합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이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많이 기도했는데 그 많은 기도와 불평에 대해서는 대꾸를 한 마디도 하지 아니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서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울면서 주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그럼요. 그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찬송이 울려 퍼졌어요.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음악] 주의 자비는 [음악]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음악]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음악]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침체에 빠졌을 때 나를 맞는 사람은 실망했겠죠. 충만했을 때 나를 만난 사람들은 존경했겠죠. 내가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살 때에 날 만났던 사람들은 나 때문에 불쾌했겠죠. 좋은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때 날 만났던 사람들은 행복해 했겠죠. 내가 죄에 빠졌을 때는 사람들이 나를 혐오했겠죠. 그리고 내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는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생각했겠죠. 어떤 때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어떤 때는 나를 버리고 어떤 때는 좋아하고 어떤 때는 혐오하고 어떤 때는 기대를 걸고 어떤 때는 실망해서 나를 떠나고 버리기도 했겠죠. 때로는 가장 가까이서 나를 잘 알고 사랑하던 사람들도 그렇게 떠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새벽에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음악]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그리고는 그 순간 나의 많은 불교를 보면서 회개하고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결심했습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들고 얼마 남지 않은이 길을 가야지라고 말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이 어떻게 죄와 오류 속에 빠졌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이 다루셨는지를 생각하게 되면이 형제도 하나님이 그렇게 다루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형제를 교정하다가 오히려 더 큰 미움의 죄를 짓고 정죄의 죄를 짓는 그런데 도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정하는 도중뿐만 아니라 또한 교정한 후에도 끊임없이 그 형제를 교정한 후에도 교정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형제를 올바르게 잘 교정하기 위해서 훌륭하게 섬기고 자신은 형제를 교정해 준 그 죄에 빠져 버리는 경우는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형제를 고친 후에도 형제가 올바르게 살도록 계속 기도하고 돌보는 가운데도 우리 자신 또한 그러한 허물과 죄를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형제에게는 본성 속에서 그것이 흘러나와서 문제가 됐지만은 나는 아직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형제를 교정하면서도 자기도 또한 온전하게 되는 비결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교정하면서 온전해지는 또 하나의 길은 자신에 대해서 공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다 버려도 끝까지 자기 편을 드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그래서 자신과 자기 자신은 정말 영원한 친구이고 영원히 하나예요. 자기가 자기를 배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아니면 진리의 빛이 아니면 자기를 배반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교정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자기 사랑에 꽉찬 사람이라면 형제를 교정해 주는 그 가운데에서도 이런 자기 사랑의 정신이 교정의 과정에 개입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돼요.
그래서 결국은 형제를 교정하는 가운데에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고 형제의 영혼을 교정해 주는 가운데에 그것을 통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게 되고 형제를 정죄하게 되고 그래서 형제에게 있는 죄보다도 더 큰 죄를 짓게 되어 교정해 줘야 될 죄가 티끌이라면 그 형제를 미워하고 자신을 공정히 다루지 못하 하는 데서 오는 죄는 들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형제의 교정이 힘들어지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자신을 공정하게 다루는 것은 그러면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요? 자신을 공정하게 다루는 이것은 가장 높은 영성의 표지입니다. 자기를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을 공정하게 다루는 것은 높은 영성의 표지예요. 자신을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우선 첫째는 진리의 빛이 필요해요. 진리의 빛에 의해서 자신을 객관적인 모습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그 진리의 빛이 우리의 총명을 비춤으로써 우리들이 볼 수 없었던 우리 자신의 죄 그리고 우리의 결함 그리고 우리의 모든 부패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형제를 교정해 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형제를 모두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형제에게 부족하고 허물 많은 것들을 보게해서 형제로 하여금 그 진리로 돌아가고 그 빛의 조명을 받아서 자신이 혼자 생활했더라면 보지 못했을 죄와 부패한 악들 더러움들을 보게 해서 그를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죠. 진리의 빛이 비치게 될 때 우리는 영혼의 어두움으로부터 물러나게 됩니다.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 진리의 빛 앞에서 공정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또 하나는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될 때 우리를 공정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진리의 빛은 진리 진리의 빛은 찾아가는 가치가 진 참참됨입니다. 참된 참됨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진리의 빛이 비추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 진리의 빛 앞에 비춰서 참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자신이 어떻게 부족한 존재인지 이것을 알게끔 만들어 주는데 이것이 바로 참됨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꽉 차게 되면 이제 그것을 발견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렇게 참되지 않은 우리가 참된 존재로 바뀌고 그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이것은 실천과 관계가 되죠.
그래서 이 이러한 우리 자신이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은 선을 지향해. 선한 것, 좋은 것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진리의 진리의 빛을 받는 명정한 지성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것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꽉 찬 우리의 애성은 우리를 고쳐서 선한 대로 돌아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교정을 통해서 혹은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와 형제를 모두 진리로 돌아가고 선한 것으로 돌아가게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예전에 추루함과 누추함, 더러움을 버리고 탁월하고 아름답고 선한 존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공정하게 다루는 유익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형제를 교정하면서도 자신이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보다도 더 필수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형제 교정의 동기가 항상 사랑이게끔 유지하는 것이죠. 형제 교정의 동기가 늘 사랑이게끔 유지하게 되는 것이죠.
형제는 형제 혼자 따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붙어 있는 형제이니 그 형제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는 그 형제가 생명적으로 붙어 있는 유지 유기체적인 몸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이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되고 이 교회의 영적인 유기체인 교회에 대한 사랑은 곧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에께 대한 사랑과 나뉘어지지 않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지순한 사랑이 신자 안에 계속 살아 있어야지만 죄를 지은 그 형제를 보면서 그 죄는 미워하되 그 형제는 사랑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그의 잘못된 것을 잘 고치고 새롭게 하여서 예수의 몸에 아름다운 지체로 젖붙이게 되도록 유지하도록 만들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또한 그 형제를 고치는 과정을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케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이런 형제의 올바른 교정을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 그 사랑은 어디서 오냐라고 하는 것이죠. 그 사랑은 어디에서 오냐?이 이 사랑은 자연적인 선의가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 자연적인 선의라면 형제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때까지만 육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때까지만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때까지만 자연적인 선의는 유지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더 이상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그가 지은 죄나 잘못된 패도나 허물 때문에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을 때에는 그때에는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형제에 대한 미움과 그리고 싫어함, 싫어하는 혐오의 감정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냐면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그 형제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사랑이 일어나게 될 때에 사랑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때에 비로서 어 사랑이 일어나게 될 때에 비로서 그 형제를 교정하는 동기가 교정하는 내 내내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사랑은 우리 안에 생래적으로 존재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어 주셔야 하는 사랑이에요. 우리 가운데 사랑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랑이 있기는 커녕 우리 가운데 사랑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살아온 날들 중에이 사랑에 감화를 받으며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소수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성령님의 감화예요.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행하여야 하지만 스스로는 행할 수 없는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은혜예요. 그래서 이 은혜를 우리들이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받으면서 살아가야지만 이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사랑을 위해서 은혜가 필요하다면 그러면 그 은혜는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이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니 숙명처럼 주시면 주시고 말면 말고 우리 자신이 자기를 방임한 채 그냥 천수답을 개관해 놓고 하늘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그렇게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이어야 됩니까라는 반문이 나오는 거죠.
그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끊임 과오와 죄 가운데 있는 형제를 끝까지 사랑하게 하는 이 사랑의 감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데 이러한 은혜가 계속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은혜를 주시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을 따라 행하는 어떤 것들을 선택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선택해도 선택할 힘이 없지만 그렇게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은혜의 감화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이죠.
아마 여러분들은 그런 거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이 갈림길에 있어서 미끄러져 침륜에 빠질 것인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설 것인가?이 기로에 놓이게 되었을 때 도저히 여러분 자신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감동이 와요. 그래서 내가 힘들지만은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리라.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굳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은혜를 불러오는 도구가 된다라고 하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의 의지가 선한 것을 택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것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이죠. 넓은 의미의 은혜에서는 바로 우리가 그런 선한 것들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이지만 그러한 넓은 의미의 은혜는 우리의 의지로 하여금 선한 것을 택하도록 강제하는 그런 은혜가 아니에요. 인간의 의지는 무엇에 의해서도 강제될 수 없어요. 이 이 의지는 인간의 영혼의 기능이기 때문에 만약에 무엇인가 의해서이 인간의 의지가 강요된다면 인간의 영혼은 파괴되어 버린다는 그러니까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옳은 것을 택하지만 이것은 결코 우리의 의지를 강제하는 그런 종류의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압력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것을 그 은혜의 덕분에 선택하게 되면 그러면 선택을 해도 우리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선한 의지의 능력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가 선택할 때에 그 선택을 시행할 수 있는 놀라운 선한 의지를 우리 안에서 성령의 사랑의 감화를 통해서 불러일으키시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사랑할 수 없는 형제를 사랑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에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미워하는 형제가 있고 그리고 그의 결점과 죄를 보았기 때문에 그를 추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그가 싫어 그를 싫어하고 혐오하게 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만약에 여러분들 안에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이 그를 위해서 가슴에 손으로 얹고 진지하게 이 사람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지체입니다. 그리고 선택을 해 보세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참 신기하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는 것이죠. 얼마 전에 울산에 집회를 내려갔는데 거기 목사님이 새로 등록한 자기의 새신자 한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이 사람은 미신에 빠져서 맨날 점치러 다니고 구신화하면서 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를 자신을 그렇게 보호해 주는 영적인 어머니와 같은 무당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녀봤자 별로 그렇게 크게 잘되는 일이 없어서 어느 날 사람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왔답니다. 내가 이제 예수를 믿으려고 하니 날 좀 도와주십시오. 그랬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그 영적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대요. 여보세요. 그러니까 어 너구나. 어라. 너 부적 태워 버렸구나. 아니 그걸 어떻게 하면 그 정도야 알지? 아, 사실은 제가 그거 다 태워버리고 되는 것도 없고 그래서 교회에 나가서 예수 믿기로 그렇게 결심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 하는 말이 그 사람 하는 말이 그러더래요. 그래 뭘 믿든지 잘 믿어라. 그러고 끊으려요. 그러고 나서 교회 다니면서 이제 두어달 교회에 나왔답니다. 주일날만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거죠. 그러니 뭐 설교를 뭘 알아들을 수가 있겠어요? 찬송을 알겠어요. 그러면서 한 두어 달 지나는 동안에 정말 이거 교회 나와 봐도 내 인생이 바뀌는게 아니구나.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답니다. 저입니다. 그러니까 어 또 웬 일이냐 그랬더니 저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니까 교회 다녀봐도 효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 무당이 하는 말이 이 그렇 가면 안 돼. 넌 이제 예수께로 갔으니까 계속 믿어야지. 그렇게 일요일 날 교회만 간다고 해서 그게 믿는 거냐? 열심히 믿어야지. 예수를 꽉 붙들어야지. 예. 열심히 믿어야지. 마음을 바쳐. 그리고 열심히 믿어야지 내 인생에 효험이 있지.이 이 사람이 그러고 나서 다시 교회에 와서 새 가족반 공부도 하고 이러면서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무당의 손을 들어서 그런 변화를 받기는 했지만은 사실은 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정말 하나님께 있는 진리의 말씀 아닙니까?
우리들이 일요일 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이런 사랑의 감화를 받습니까? 우리가 신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들이 이런 사랑의 감화를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의 감화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해렬하게 매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날마다 의지하고 주님을 꼭 붙들어서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갈 때 그때에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감화 은혜가 생겨나게 되고 그 은혜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지체를 용서하게 되고 혈육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지체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가 죄를 지었는데도 그 죄 때문에 그를 미워하는 대신 죄는 미워하되 그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찢어지고 나뉘어진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붙어 있는 한 살 한 뼈 그리고 한 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께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며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그 아름다움 영원한 아름다움이 없는 지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때로는 죄만 짓고 공동체에 아픔을 주는 지체 같아도 무례하기 짝이 없고 자신에게 명예를 깎아내리고 평판을 떨어뜨리는 그런 죄를 짓는 지체에조차도 주님께서는 그가 꼭 필요하십니다. 한 번도 그를 구원하여 당신의 몸에 젖붙여 당신의 몸에 일부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주께서 필요하시다고 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겠으며 주님이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신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더럽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모두 결점과 약점을 가진 인간들인데 우리들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사랑으로 매일같이 주님을 의지하며 매 순간 우리를 주님 앞에 세우면서 나도 온전해 가고 형제도 온전해져 가고 그래서 우리의 온전해져 가는 것이 성례전적으로 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봉헌되며 그래서 하나님께 받쳐지고 그래서 우리가 이 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오류에 빠진 형제들이 교정이 되고 고쳐지고 그래서 우리 모두 빛 가운데서 살면 도탄에 빠진 형제들을 긍휼히 여기고 죄에 빠진 형제들의 눈물을 씻겨주며 그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도록고 고쳐 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 교회 이외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버리면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밖에는 없어.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특별히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알고 모인 우리들에게 그렇게 유원처럼 말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사랑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형제의 허물과 죄를 사랑하진 마세요. 그거는 끝까지 미워하십시오. 그러나 형제를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긍휼히 여기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도 영혼의 깊은 침체 속에서 어둠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십시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살아온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날밖에 없는데 살아온 모든 날들은 또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받은 날들이었어. 선물로 받은 날들이었어. 그러면서 내가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온전하게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떠나갔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을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많은 지체들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긍휼히 여겨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려고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며 그러면서도 진리 안에서 온전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애쓰고 헌신한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나를 위해 늘 눈물로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저항할 수 없는 그 사랑에 붙잡혀서 살아갈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길을 버리고 목사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생각해도 죄가 싫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깨뜨려져야 할 부인의 대상입니다. 저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있게 하시는 동안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그리고 완전한 인간인지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얼마 얼마나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인지 그것을 보여 주는 것도 제가 여러분과 함께 살아 있는 목표는 아닙니다. 이 교회를 잘 부흥시켜서 큰 교회로 만든 것도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앞에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인생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끊임없는 하나님의 용서와 지체들의 긍휼히 여김 속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이만한 믿음으로 자라온 것처럼 저도 13년 동안 그렇게 하나님의 목양을 받으면서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강대에 엎드려서 종종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난 이 교회의 목자가 아니라 주님의 향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그 모든 은혜를 나를 도구로만 사용해서 베풀지 마시고 내게도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저를 위해서 늘 기도하시고 특별히 여러분의 지체들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시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미 주셨던 진리를 버리지 말고 그것을 곱게 붙들고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사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 우리 자신은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라는 존재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믿은 우리를 광야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상처가 많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서 그래서 추운 날에 서로 목을 굽이며 함께 끌어앉고 살아가는 양떼들 들처럼 우리를 한 곳에 한 곳에 모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아 있는 날 동안에 우리는 우리 형제들에게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위로가 되어야 하고 또 형제들 우리들도 그 형제들에 대해서 그렇게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죄는 미워하고 날마다 주님의 그 위로와 은혜 속에서 교회가 온전하게 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이렇게 한 교회로 붙여놓으셔서 한 목자 아래 붙들어 주고 넘어진 곳에서 다시 진리를 붙들고 일어서며 앞으로 걸어가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꿈꾸는 교회가 있습니다. 나는 비록 부족하지만 그러나 흙 이불을 덮고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 꿈꾸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날마다 깨어져 부패하기이를데 없는 죄인이지만 날마다 영혼들을 섬기면서 온전의 길로 가는 그러한 목회자가 있는 교회 그리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그런 가시는 사람들이지만 이곳에 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는 교인들 세상에서라면 벌써 버림받았을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먼저 사람들의 눈물과 헌신으로 용서를 받으며 긍휼과 자비를 얻으며 모든 편견과 교만들을 극복하고 그렇게 사랑하고 신뢰하며 그래서 예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 사랑을 이루며 함께 한 몸으로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의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교회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런 주님의 은혜의 감화를 힘입어서 그 사랑 안에서 매일매일 이 교회를 온전케 해가는 하나님의 훌륭한 도구들로 살아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이 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 우리 중심으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에 기도할 때 하나님 주님이 우리에게 이르라고 하시는 표준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표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메마른 우리의 영혼에 은혜의 단비를 부어 주시고 그래서 연약한 지체를 긍휼히 여기고 그리고 연약한 지체를 깊이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시고 또 우리 특별히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서 목회자인 저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서 우리 모두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주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도와 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할렐루야 [음악]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간절히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새롭고 이 새로운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죄를 부을 건져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 여기에 있는 사랑하는 모든 지체들 위해 이제로부터 부터 영원히 함께 있어지다. 아멘. [음악]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