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사랑과 일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낭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개정판 2쇄

Notes
Transcript

설교

제공해주신 설교 자료를 바탕으로 **'사랑과 일치의 영적 질서'**라는 주제 아래, 1시간 분량의 강연이나 설교를 위한 대지 분석 및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설교 개요] 사랑과 일치의 영적 질서

본문: 에베소서 5:25 하반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서론: 교회의 본질 –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상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존재의 모상이며 교회 내 성도의 교제는 삼위 하나님 안에 있던 사랑의 교통의 모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망가진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으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을 통한 ‘일치’**가 필요합니다.

제1대지: 일치의 근거와 사랑의 자리 (영적 메커니즘)

일치를 가능케 하는 사랑(Caritas):
교회의 일치는 인본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들이 나누는 **지순한 사랑(까리따스, Caritas)**에 근거합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지순한 사랑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양떼(지체)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거하는 자리 – 영혼과 마음:
사랑은 실제적으로 이며, 영혼의 세 가지 기능(지성-판단, 애성-사랑/혐오, 의성-이행/저항) 중 안에 존재합니다.영혼의 기능:영혼 안에 존재하는 경향애성(愛性)
마음은 영혼의 작용이 실제로 나타나는 곳입니다. 영혼의 상태가 마음에 투영되고, 마음의 작용을 통해 행실이라는 열매가 맺힙니다.마음의 역할:
따라서 일치는 신자의 내면, 즉 영혼과 마음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질서가 바로 잡힐 때 시작됩니다.

제2대지: 일치의 방해 요소와 회복의 원리

일치를 해치는 근본 원인 – 자기 사랑:
인간은 타락 이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사랑’**으로 꽉 찬 상태로 태어납니다.
거듭난 신자라도 내면에 자기 사랑의 욕망이 남아있어 은혜 생활을 게을리하면 마음이 굳어지고, 마치 속이 익지 않은 '곤달걀'처럼 생명력 없는 상태가 되어 교회의 일치를 해칩니다.
원리적 일치와 실제적 일치: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명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분쟁 중이라도 교회는 엄연히 예수의 몸입니다.원리적 일치:
원리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몸의 지체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태를 말합니다.실제적 일치:
교회가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만드신 '거대한 굴착기'와 같은 도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제3대지: 실제적 일치를 위한 구체적 방법 (사랑의 질서 재편)

하나님 및 사람과의 바른 관계:
각 사람이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성령 안에서 자연스럽게 성도 간의 일치가 촉진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가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일치를 이룹니다.겸손한 태도
사랑의 질서 재편 (목표의 원칙):
사랑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낮은 단계의 사랑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기여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의 중심축을 하나님께로 옮겨야 합니다. 이는 수없이 반복되는 회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모든 성도가 하나님이라는 하나의 중심점에 사랑의 말뚝을 박을 때 비로소 질서 있는 일치가 일어납니다.
철저한 자기 깨어짐과 회개:
일치를 위해서는 이 죽어야 합니다.뼛속까지 사무친 자기 사랑
고난과 말씀을 통해 자기가 깨어질 때 예수 죽음의 기운이 들어와 교만과 허영을 죽이고, 내 안에 예수가 다시 사심으로써 사랑의 질서가 회복됩니다.

결론: 진리에 합치되는 삶의 질

신앙은 단순히 진리를 깨닫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입니다.신앙의 본질:진리에 자신을 합치시키는 치열한 투쟁
삶의 질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쳐서 진리에 복종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이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보다 적게 알아도 진실하게 사는 시골 할머니의 삶이 더 가치 있습니다.삶의 질:
교회 내의 분쟁과 아픔은 결국 교만과 이기심 때문입니다. 매일 "나는 죽고 예수는 내 안에 사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진리에 자신을 부합시키는 삶을 살 때 교회는 진정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사항]: 위 내용은 제공된 설교 녹취록을 분석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설교자의 의도와 핵심 개념(까리따스, 영혼의 기능, 사랑의 질서 등)을 충실히 반영하였습니다.
03 사랑과 일치
2026.06.24 수 오전 8:18 ・ 119분 55초
곽기욱
참석자 1 00:13
신약 성경 에베소서 제 5장 25절 하반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저희들이 한 공동체로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지한 저희들을 주님의 지혜로 깨우쳐 주시고, 그래서 우리로 사랑으로 그 일을 지혜를 이루시는 주님께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자모실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어린 자모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깨달음이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지금 우리와 함께 어린이 사경회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시고 영혼의 참된 변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참석자 1 01:56
아멘, 어제는 사랑과 교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사랑과 교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제 이루시는 더 중요하고 큰 일들로 하루하루 이렇게 진전돼서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은 그래서 사랑과 교회의 일치의 문제, 사랑과 일치의 문제를 오늘 다뤄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존재의 모상이고, 그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는 삼위 하나님 안에 있던 사랑의 교통의 모상이라고 우리는 이틀 동안 배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의 이 교재는 성도의 교재는 근원적으로는 삼위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사랑으로 교통하는 교재의 모상을 본다는 것이고, 또 보다 더 가깝게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었던 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 사이에 있는 연결을 본다는 것이었죠.
참석자 1 03:45
그리고 미래적으로는 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타락해서 망가진 이 세상을 우주적으로 모두 회복시키시려고 하는데, 그때의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회복되어질 만물들의 교통의 본보기로서 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교통이 이루어지게 된다라고 하는 거죠.
근데 이러한 교통이 정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뜻에 부합하도록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교통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사랑이에요.
그 사랑을 통해서만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는 바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들이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연합되어서 그 까리따스의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도 또한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 사랑 속에서 함께 교제함으로써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했던 교회의 모습이 되는 것이죠.
이 사랑은 인간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자고 약속한 인본주의적인 사랑이나 인도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사랑이 아니에요.
참석자 1 05:27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이제 예루살렘 교회를 맡기시려고 할 때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어보신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니가 양떼를 사랑하느냐 그렇게 물어보지 아니하시고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걸 물어보셨죠.
다시 말하면 이 베드로의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지순의 사랑 곧 카리타스의 사랑이 있느냐고 물으신 거죠.
만약에 그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양떼들도 사랑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그냥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가 좋으니까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사람이 자기의 이해관계와 부딪히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 때에 그를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던 거죠.
참석자 1 06:41
그러면 결국 교회라고 하는 것은 위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과 사귀고 또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도들이 사귀고 밖으로는 그 사랑의 감격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서 그들에게 선교하고 하는 이런 것이 되고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서로 교제하고 그 교제 속에서 일치를 보여야 돼요.
사랑 자체가 바로 일치를 필요로 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함께 일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되는데 이런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사랑이 있어야지만 그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함께 교제하고 그 교제를 이 세상에 확장하도록 선교하고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사랑을 보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삼위 하나님과 교회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영혼들 사이에 이제 일치와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08:04
그러니까 당연히 이렇게 되다가 보니까 이제 이 사랑이 교제의 원인인 동시에 결국은 이 교제를 통해서 그 사랑 안에서 교회가 일치를 이루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왜 일치를 이루어야 되는지 이제 좀 더 살펴보면 되겠지만은 그래서 결국 중요한 전제를 우리들이 하나 얻게 되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인간에게 따라서 인간에게 이제 이 사랑이 꼭 필요하게 된대.
이 사랑은 자기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거예요.
자기 안에 있는 이 사랑 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사랑이 아니라 내 바깥에서 내 바깥에 존재하는 삼위 하나님 안에 있는 아가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것 때문에 감격하면서 반응하면서 생겨난 것이 까리따스의 사랑 곧 지순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란 말이죠.
참석자 1 09:11
그 사랑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제 이 사랑이 이 사랑이 결국은 우리 바깥에 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데, 그래서 결국은 성경에서 이제 이 사랑이 거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대한 강조가 주어지는 거예요.
성경에서 대부분 이러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지순한 사랑이 신자 안에 거하는 것을 이야기해줘요. 근데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은 이러한 사랑이 인간의 마음 안에 거한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신자의 마음 안에 거한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성경은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 사랑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사랑이 우리 마음 안에 있다고 성경이 말한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될 거예요.
우선 첫째로 사랑이 거하는 자리가 문제가 되는 거죠.
참석자 1 10:27
그러면 이러한 사랑 곧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인 이 까리따스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지만 우리가 그렇게 그렇게 삼위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그런 까리따스가 있어야지만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지체들 간의 연합을 이루고 또 그 사랑으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이 사랑의 자리가 어디냐 그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은 이 사랑의 자리는 최종적인 자리는 어디냐 성경은 이것을 마음이라고 이야기해요.
근데 이거를 이제 차례차례 설명을 할 테니까 잘 들으셔야 돼요.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은 이 영혼과 육체가 있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영혼과 육체의 작용이에요.
작용 그래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냐면은 그러면 사랑이 신자의 어디에 있느냐 그럴 때 실제적으로는 실제 실제적으로는 신자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뭐냐 하면 영혼 안에 있는 경향이에요.
참석자 1 12:01
그래서 이 경향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면 그것을 보면 기쁘고 그것을 그것을 무엇을 보든지 그것을 자꾸 생각하고 연상하게 되는 거죠.
이게 영혼 안에 사랑이 있는 거죠. 실제적으로는 영혼 안에 있고 기능적으로는 이게 인간의 애성 안에 있는 거죠.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혼의 세 가지 기능을 주셨어요.
첫 번째 기능은 지성이라는 기능 또 하나는 지성이라는 기능을 주셔서 사물을 보고 깨닫고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을 주셨죠.
또 하나는 애성을 주셔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고 싫어하는 것을 혐오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어요.
애성이에요. 또 하나는 의성을 주셨어요. 이거는 뭐냐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을 안 하겠다고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어요.
참석자 1 13:09
그래서 이것을 깨닫고 판단하는 것을 지성 사랑하고 혐오하는 것을 애성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안 하겠다고 저항하는 것을 의성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이 사랑은 바로 이 두 번째는 두 번째인 애성 안에 존재하는 거죠.
기능적으로 볼 때에는 이 사랑이 이 애성 안에 존재예요.
그러나 이제 실제로 이것을 작용적으로 볼 때 작용적으로 볼 때에는 이 사랑이 신자의 마음 안에 거해요.
마음은 무엇이냐 하면 영혼의 작용이에요. 그래서 영혼이 지성과 그 영혼이 이 판단하고 추론하고 그다음에 혐오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다음에 이행하고 저항하고 하는 이 기능을 영혼이 가지고 있는데 이런 기능을 영원히 인간의 마음을 작용시켜서 행하는 거죠.
그러니까 마음은 육체나 영혼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통해서 인간은 그 영혼 안에 있는 사랑을 애성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곳은 인간의 마음이에요.
마음에서 바로 인간의 행동들이 만들어지고 행동들이 나오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14:47
그런데 이제 성경은 그래서 이 마음을 굉장히 강조해요.
그래서 몇 해 전에 마음 지킴이의 교리라고 하는 설교를 한 5년 전에 한 적 있죠.
그렇게 이 마음이 그토록 중요해요. 근데 성경은 이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이시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 마음의 주인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보는 거죠.
이 마음을 통해서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겠다라고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면서 행동들이 산출되는 거죠.
그래서 영혼이 영혼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그것이 그대로 마음에 투영이 돼요.
잠시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영혼이 어떠한가가 그대로 인간의 마음이 투영이 되고 인간은 그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영혼이 아름다운 상태인지 추루한 상태인지를 보여줄 수 있어요.
또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함을 보여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행실이 그 마음의 열매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16:09
이렇게 해서 결국은 최종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은 이 사랑이 실제로 행동을 표출하고 작용하는 면에 있어서 이 사랑은 신자의 마음 안에 있는 거죠.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에 말씀 들으러 나왔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의 마음 안에 지금 어떤 사랑이 있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인간은 맨 처음에 태어날 때 백색 서판의 상태로 태어나질 않았어요.
백색 서판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누군가 서판에다가 글을 쓰면 그게 그대로 되듯이 인간이 그렇게 환경에 의해서 주입이 되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나 인간은 태어날 때 그렇게 백색 서판의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요.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이 태어날 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지순한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득 채워서 사람을 창조하신 거죠.
그러니까 아담은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을 사랑했던 거죠.
참석자 1 17:28
태어나니까 머리가 텅 비었는데 하나님이 누군가 그리고 성경학교 가서 하나씩 배워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게 아니죠.
가르칠 사람도 없었고 자기가 최초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미 창조될 때부터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상태로 태어나는 거죠.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인간이 이제 이 사랑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으로 꽉 차서 태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갈 때 자기를 사랑하는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나 잘해요.
왜 사람들이 똑바로 서서 전철 표를 사는데 새치기 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에요?
자기를 사랑해서 그래요. 추운데 기다리기 싫고 자기 빨리 타고 가고 싶다 이거죠.
누구는 누구는 누구는 안 그러냐 이거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욕적인 사랑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거예요.
열렬해요.
참석자 1 18:37
그래서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면 필요하면 죽여버리는 거죠.
그럴 정도로 인간이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로 태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이제 이런 인간이 이제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제 인간이 그런 사랑을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은 그러면 자기를 사랑하는 거죠.
그러면 성경은 세상 사랑을 이야기하는데요. 그 세상 사랑은 자기가 세상을 좋아하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거니까, 세상 사랑은 자기 사랑을 위한 사랑이에요.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해요.
왜냐하면 교회가 하나님이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잖아요.
자기가 세상을 좋아하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거죠.
사랑은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것들도 사랑하는 것이 다 사랑이다 이거죠.
참석자 1 19:46
그렇게 해서 인간의 마음은 이제 이 두 가지 사랑이 교차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듭나기 전에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없고 자기를 향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이기적이고 사악한 인간이 되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주님을 만나고 깨뜨려져요. 그리고 회개해요.
그 회개가 바로 이제 내 인생의 중심축을 나 중심에서 버리고 하나님께로 옮깁니다라고 하는 선언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실제 그 마음속에 영혼 속에 들어오게 되고, 그걸로 인해서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까리따스의 사랑이 꽉 차게 되는 거예요.
그런 지순한 사랑이 꽉 차게 돼요. 그 꽉 찬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거죠.
참석자 1 20:43
이렇게 이렇게 되는데 지상에 있는 교회의 회원인 모든 성도들이 이런 사랑으로 꽉 차 있게 된다면은 그러면 서로가 사랑하면서 교제를 이루고 일치를 이루면서, 그래서 이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교통의 모상이라는 것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같은 마음을 품고 이 세상으로 나아가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그 일을 공동체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거죠.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신자인데도 거듭나서 예수께 접붙여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 안에 자기를 사랑하려고 하는 욕망들이 일부분이긴 하지만 남아 있는 거죠.
일부분 남아 있는데 은혜 생활을 잘 하면서 이것들을 계속 죽이고 누르면은 제법 그래도 남을 사랑하는 지순의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신 계획에 기여할 수 있는데 이게 신앙생활을 잘 안 해 기도도 안 해 해도 늘 형식적이고 예배에 덜렁덜렁 와가지고 형식적으로 참석하고 돈이나 몇 푼 내고 가고 이런 식으로 건달같이 신앙생활을 한다 이거죠.
참석자 1 22:06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이 사람의 내면의 세계에 하나님이 이게 성령님께서 그런 내면의 세계를 기뻐하지 않으셔요.
그러면은 이 내면의 세계가 점점 굳어져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이 그에게 역사하질 않아.
그리고 내면의 세계는 만져지지 않고 겉에만 계속해서 그런 그 변화들이 일어나는 겉에서만 계속해서 도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은 어떻게 되냐 하면은 이 사람 자체가 마치 겉에 다 타고 소금 하나도 익지 않은 그런 곤달걀 비슷하게 된다.
이거 곤달걀 기억나요? 왜 생각 안 나요? 이제 지금은 뭐 그런 거 없죠 병아리를 부화시키려고 하다가 이게 이게 되다가 마른 거야.
그거를 이제 다 내다가 팔아요. 좀 쌌죠. 옛날에 그거를 삶아 그래서 다 깨뜨리면은 겉에는 달걀같이 이렇게 되는데 이렇게 뚝 열어보면 닭 목이 쭉 나온다고 병아리 목이 눈을 이렇게 감고 있죠.
참석자 1 23:12
그것도 간장 찍어서 맛있게 소금 찍어서 그냥 맛있게 먹는 얼마나 맛있는데 털까지 뽑아가면서 근데 그렇게 곤달걀알처럼 돼버리는 거예요.
돼버리는 거죠.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런데 이제 교회가 일치를 이루어야 되는 왜 일치를 이루어야 될까요?
이거는 뭐 논변할 필요가 없어요. 왜 일치를 이루어야 되는 거는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셔요.
그리고 신자는 거듭나자마자 진짜 회개하기도 전에 이미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는 거죠.
그러면은 이렇게 해서 정상적으로 이렇게 움직이고 머리가 손을 내밀어라 설교를 해라 그 말을 하자 아니면 뭐 이렇게 해서 모든 지체가 이 머리에 의해서 움직여져야지 이게 정상이잖아요.
그래야지만 이게 인간으로서 이 머리가 자기가 생각하고자 하는 대로 의도하면서 이렇게 살 거 아니에요?
몸에 장애가 있어 보신 분 있으세요?
참석자 1 24:33
저는 사실은 장애가 있어 본 적이 없는데 허리가 아파가지고 몇 년째 고생을 하면서 거의 이렇게 진짜 지팡이를 하도 우리 집사람이 못 집게 해서 못 짚었지만은 이렇게 해서 교회 계단을 붙들고 올라간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지금도 나아졌다가는 또 안 좋아졌다가는 막 이래 그래서 뭐 그러려니 하고 이제 사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 지금 빨리 뛰어가야 되거든.
근데 갈 수가 없어요. 이렇게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프고 이 허리가 다리로 연결이 되어서 다리가 저린데 어떻게 가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뛰어가 지금 뛰어가야지 일이 되는데 이러고 이러고 가는 거야.
목이 좀 안 좋아. 그럼 목을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없어.
분명히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고개를 크게 끄떡거려야 주는데 끄떡거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마네킹처럼 말이지 이게 이러면은 결국은 어때?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인생을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굉장히 불편한 거죠.
참석자 1 25:37
굉장히 불편한 거예요. 그리고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 거죠.
지금도 무거운 걸 들을 수가 없어요. 한 한 달 전에 무거운 거 들었다가 또 계속 이렇게 엎드려서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몇 달 며칠 몇 주 다녔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이렇게 되는 거죠. 더 심해지면 어떡하죠 이제 뭐냐하면 신경 이상 증세가 일어나는 거죠.
머리는 손을 내밀어 그러는데 소송이 이렇게 가는 거죠.
이렇게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이게 몸을 통해서 이 머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를 하나의 큰 거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내서는 할 수 없는 그 일을 큰 사람을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거예요.
혼자는 가서 삽으로 퍼봐야 이게 흙 몇 개 푸다 마는데 그 큰 사람이 가서 한번 삽으로 푼다고 생각을 해봐 그러니까 수천 명이 매달려도 할 수 없는 일을 교회 하나가 걸어가서 해내는 거죠.
참석자 1 26:53
그렇게 사람이 그 삽을 가지고 회비자 회비자 그러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빵빵 그러더니 막 이게 이게 뭐예요?
이게 엑스카베이터 이 굴착기가 오는 거예요. 그렇게 해가지고 그냥 한꺼번에 확 퍼서 그래서 한 두 번 싫으니까 트럭으로 하나 까뜩이 두 번 실으니까 그러는 거 봐.
그럼 이게 교회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말하자면은 사역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하시려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보내시려고 만드신 거거든요.
근데 이게 등치는 커서 가긴 갔는데 이게 움직이지 않은 거야.
가서 말해라 그러는데 헛소리하는 거예요. 이게 이게 입이 따로 놀아가지고 그리고 손이 잡아라 하는데 잡혀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은 그 교회를 만드신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세상을 완전히 구속을 통해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유일한 도구가 교회예요.
그 교회를 통해서 그 일을 하고 싶은데 이 교회가 멍청이 같이 그 일을 못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교회가 일치를 이루지 못한 모습이에요.
참석자 1 28:03
그러니까 그걸 볼 때 주님은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교회가 일치를 이루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이 교회의 일치는 원리적인 측면과 실제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원리적으로는 교회가 일치가 이루어진 거죠.
왜냐하면 내가 팔을 내미는데 이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팔이 내 마음대로 안 가 그렇다고 해서 이게 내 몸이 아니에요.
이것도 내 입이 밥을 먹고 위가 소화를 시켜줘야지 이거 먹고 산다 이 얘기예요.
꼬집으면 이것도 아파 살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일치를 못 이루어도 원리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고 이미 원리적으로는 그런 생명적인 일치가 이루어진 거예요.
장애 상태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교회가 일치를 못 이루고 있어도 그건 엄연히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에요.
분쟁이 많고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를 무시하고 무슨 깡패 집단 보듯이 하고 이러는 거 죄 짓는 거예요.
참석자 1 29:07
그 교회의 교회 됨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도덕적인 상태나 사람들의 윤리적인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에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교회를 생각해야 돼.
예수의 몸이에요. 좋은 교회에서 잘못하는 것만 죄가 아니라 좋지 않은 교회에서 나쁘게 행동하는 것도 큰 죄라 이거예요.
교회를 막 보는 것은 예수님을 막 보는 행동이에요.
그런 점에서 원리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죠. 그러나 이제 교회를 재창조하실 세상을 위해 도구로 택하신 것을 기억한다면은 이런 원리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렇게 몸이 잘 안 움직여서 물리 치료라도 받아서 그래서 원하는 대로 이게 몸을 움직여 보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게 바로 실제적인 일치예요.
그래서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리적인 일치를 넘어선 실제적인 일치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거죠.
참석자 1 30:14
그러면 이 교회의 일치라는 것이 뭐냐? 우선 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가 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야. 가끔 자기네 교회에 문제가 없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있죠.
정말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문제가 없는 것이 진짜 문제가 없는 거지.
은혜가 없는 데에 문제가 없는 것은 문제가 많은 거야.
왜냐하면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킬 기운조차도 없어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이 교회의 일치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것은 말하자면은 육체적이고 그다음에 가시적인 그런 일치 가시적인 조직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영적인 일치이고 유기체적인 일치를 가리키는 거니.
참석자 1 31:29
그리고 이 진정한 일치는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신자들의 연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치예요.
그러니까 분쟁이 없는 상태가 그것이 일치라고 그러면 안 되죠.
예를 들어봅시다. 교인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지만 세상에 관심이 많아 축도 하기 전에 다 도망가 그리고 회의가 소집이 안 돼.
그럼 분쟁이 있겠어요? 아니 회의를 해야지 뭐 의견을 내놓고 다투든지 말든지 해야지 예배 끝나면 다 도망가는데 무슨 다툼이 일어나겠어요?
돋보기 쓰고 성경도 눈에 보일까 말까 하는 할머니들만 대여섯 명 남았다.
그러면 늘 일치가 이루어지지 폐하기로 동의합니다.
모이자마자 그걸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러면 이 교회의 일치는 그럼 뭐냐 바른 관계의 온전함의 일치예요.
바른 관계와 온전함의 일치야. 그러면 그 바른 관계의 온전함의 일치인데 이게 먼저 그러면 바른 관계의 일치부터 생각해 보고 그다음에 온전함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어요.
참석자 1 33:01
우선 그 바른 관계의 일치라고 하는 것이 뭐냐 첫째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그것이 교회의 일치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에요.
중요한 조건이에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일치 참 신기하죠.
뭐가 신기하냐 하면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생전 처음 만났는데도 헤어지기가 싫어요.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하는 걸 저 사람이 찰떡같이 알아들어 그리고 어쩜 저 사람이 입을 열어서 얘기하는데 다 내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내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한참 노닥거리고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은 3시간이 지나고 4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거죠.
두 사람이 만나서 그렇게 뜨겁게 사랑한 적도 없는데 각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주님의 진리에 합치되니까 그 사람이 만났을 때 이 한 성령 안에서 통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적 없습니까?
참석자 1 34:30
굉장히 친한 친구인데 그래서 무지하게 보고 싶을 줄 알고 만났는데 한 1시간 지나고 나니까 갑자기 마음이 매 매우 건조해지면서 더 이상 이 사람하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기가 힘든 거 왜냐하면 지금 내 관심사하고 이 사람의 관심사가 너무 틀려요.
나는 지금 이제 이 외롭고 고단한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될 것이냐를 고민하는데 맨날 무슨 만나서 30분 동안 떠드는데 연예인들이 이혼한 이야기, 재혼한 이야기 맨날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영이 통하지 않는 거지 쉽게 얘기하면 그래서 일치는 각 사람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이 일치가 촉진이 되는 거예요.
일치가 촉진이 되는 거죠. 그런데 종종 보면은 우리는 뭐라 그러냐면 일단 일치하고 보자.
일단 일치를 하고 보자. 그렇게 해서 실로 점검하듯이 일단 일치하는 거야.
우리 이제 일치하기로 하자. 그런데 그게 오래 갑니까?
이해관계가 맞는 한도 안에서는 유지가 돼요.
참석자 1 35:56
그런데 이해관계가 맞는 한도 안에서 교제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몸에 지체된 성도의 교제의 본질이 아니에요.
이거는 이 세상에 있는 이익 단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예요.
교회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죠. 그러니까 진리로 말미암아 하나 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지고 교회에서 하나 되는 것을 추구한다라고 하는 것은 전면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를 세우신 뜻을 거스리는 행동이라 이거죠.
거스리는 행동이라 이거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간절히 하나님께 비셨던 기도의 제목 가운데 하나가 저희를 하나 되게 하소서 하는 것이었어요.
근데 그것은 무조건 함께 모여서 하나가 되라는 것을 지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는 저희를 진리로 하나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진리로 하나 되게 해달라는 것 그 진리는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바른 관계를 맺게 만들어주는 그런 차원에서의 일치예요.
참석자 1 37:17
진리를 깨닫고 그래서 각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질 때 일치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목사님 그럼 진리를 못 깨닫는 사람은 뭐 그러면 소외 당해요.
소외당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진리를 깨달을 거고 우리와 진정으로 하나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으면서 끝까지 그를 사랑하고 진리 앞으로 데려오는 것이 교회가 하는 일이죠.
그거죠. 교회에서도 보면 오늘도 심방 가서 회심한 이야기 참 재미있게 들었는데 그 보면은 말이죠.
어떤 사람은 아예 교회 오는 첫날 예수도 하나도 안 믿었던 사람인데 회심하고 주님을 만나서 인생이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요즘은 제가 안 그럽니다마는 개척교회 때는 지금보다 훨씬 혈기방자했잖아요.
성화가 덜 됐으니까 예배 시간에 계속 와서 졸고 자고 그리고 예배 시간에 맨날 늦게 오고 일찍 가고 말이야.
오죽했으면 내가 심방 가서 그랬어 넌 교회를 떠나라.
참석자 1 38:32
야단을 치고 감정적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라 니가 이렇게 이런 교회 다니면서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뭐가 있냐 예배가 2시간이 넘는 이런 교회에서 왜 그런 선고문을 받느냐 거룩할 성자의 성고문이 왜 그런 성고문을 받느냐 그러지 말고 너한테 맞는 그런 교회에 가라.
내가 두 지체한테 얘기했어요. 두 지체 중에 한 지체는 지금 전도사님이 되셨고
참석자 1 39:04
내가 누구라고 이야기는 다음에 해줄게요. 그리고 한 지체는 자기 갈 곳으로 갔어요.
근데 그 얘기를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거 그러니까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기다려서 이제는 진짜 기도해 주다가 마음의 포기가 돼 그냥 그냥 난 괜찮으니까 그냥 자기한테 맞는 교회에 가서 찬양 좋아하니까 가서 그럼 열심히 탬버린 치면서 찬송 부르고 그러면서도 또 은혜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갔으면 그랬는데 거의 포기했는데 뭐 몇 년 만에 주님을 만났대 그러면서 사람이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만약에 사랑으로 기다려주지 않으면은 그게 그 쓸모없이 될 사람이 기다려주니까 그렇게 되잖아요.
그 기다려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제 일치를 기다리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그러나 진정한 실제적인 일치는 진리를 함께 깨달을 때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이것들이 이 일치가 그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냐 하면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거죠.
참석자 1 40:22
올바른 관계인데 이것은 둘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먼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거든요.
이거는 신자 개개인의 개개인의 진실한 참회와 믿음을 통해서 생겨나는 겁니다.
이건 너무 뭐 그렇게 기이한 눈빛으로 쳐다볼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망가진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진실한 참회와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믿음을 통해서 그 관계가 회복이 되는 거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한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참여해서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죄를 짓고 그 진리의 등을 돌리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합치시킬 때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인간적인 머리를 굴리면서 자기 이치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죽어도 안 믿으려고 그러는 게 이게 인간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성이 부패했기 때문에 인간이 이러는 거죠.
참석자 1 41:35
그런데 그 인간이 그렇게 참회하고 주님을 향한 신실한 신앙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을 꽉 믿고 붙들게 되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잖아요.
아무리 죄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셔서 다시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똑바른 관계를 가지고 예전에는 쓰레기 같은 죄인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지금 하나님 앞에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이게 사실은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이루는 관계다.
이게 그러니까 그 사건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좀 심하게 얘기하면 너 왜 회개 안 하냐 너 때문에 내가 손해 본다.
참석자 1 42:28
너 손가락인데 그게 손가락이 그렇게 곪아가지고 그러고 다니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이제 너무 그러면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으니까 우리는 대신 그래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해 주실 거야.
그러고 이제 위해서 기도해 주는 거죠. 그러나 한 사람이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면 이게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에요.
공동체적인 사건이에요. 자꾸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러는데 그런 거 없어요.
개인일 수가 없어요. 어느 목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청년들이 함께 몰려서 무슨 주일날 오후에 무슨 설악산으로 등산을 간다고 그래서 안 된다 그랬더니 기어코 갔더래요.
왜 갔느냐 가지 말라고 그러는데 우리 개인적으로 간 겁니다.
참석자 1 43:19
바보 바보 이게 교리의 기초를 몰라서 하는 거야 그런 거 없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공동체적인 사건이에요. 그렇게 진실한 참여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면은 그러면 이제 교회의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일치가 이루어지는 그다음에 또 하나는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일치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럼 바른 관계라고 사람과 바른 관계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과 그런 바른 관계는 항상 사랑과 올바른 태도로 유지가 되잖아요.
그 똑같은 원리가 그 사랑 안에서 함께 사랑하여야 할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에게로 이어져야 돼요.
기도하는 거는 뭐 진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기도를 하는데 이 태도가 잘못된 사람들 있죠.
태도가 잘못된 사람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그거죠.
우리에게 고난이 항상 심오한 죄 때문에만 오는 게 아니에요.
태도가 잘못되면은 그 태도 때문에 고난이 와 어려움이 와요.
항상 그런 거죠. 근데 태도가 잘못돼 있어요.
참석자 1 44:43
그러면은 삶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은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는 거죠.
근데 그 고통을 주는 사람이 다행히 신앙이 아주 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보면서 저게 신앙이 없어서 저러고 다니는데 내가 참고 용서해 줘야지 그러고 품어요.
근데 여러분하고 똑같은 강적을 만났어 그러면은 뭐라고 그러면 이쪽에서는 뭐라고 그러는데 이 다음에는 뭐냐면 이 인간이 그러고 딱 하고 나오는 거야.
한 판 뜨는 거지 이제 그러면 이제 이 교회의 아픔이 증대되는 거죠.
그래서 태도를 올바르게 해야 돼요. 이 태도를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어요.
참석자 1 45:31
하도를 올바르게 무엇이든지 간에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낫게 생각하고 그리고 항상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아량, 그다음에 자신을 정말 낮추는 이러한 섬기는 모습들이 있어서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될 때 그때 교회의 일치가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이제 이러한 교회의 일치는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또한 온전함을 추구하는 가운데에 교회가 일치되게 된다 이거죠.
온전함을 추구하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만족하고 구원받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이게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해져야 돼요.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영혼은 인간 존재의 삶의 원인이 되는 거죠.
참석자 1 47:05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영혼이 인간의 본질이다 이거죠.
그래서 영혼이 어떠한가에 의해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이 되는 거예요.
영혼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지성과 애성과 의지 모두 하나님께 반항하며 살려고 하겠죠.
그것에 영향을 받는 마음은 그것을 실제로 사용해서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행동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대적하고 거역하는 삶을 살아갈 거 아니에요.
인간이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영원히 그 사람의 인간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원인이 되는 거죠.
이 원인 할 때 인이에요. 근데 이 영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혼은 두 가지 인자를 가지고 있어요.
두 가지 원인이 된다 이거죠. 하나는 뭐냐 하면 목적인이 돼요.
목적인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 하면 영혼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목적을 향해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인자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뜻이에요.
참석자 1 48:19
그럼 그게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특별히 그 창조한 인간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해 주셨을 때는 이 거듭난 신자의 영혼 안에는 어떤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자기가 가야지만 이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일치가 되고 영원히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가고자 하는 목적이 뭐냐 자기는 아직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영혼은 하나님이 자기를 자기를 창조하시고 또 자기를 품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창조하신 그 원래의 창조된 목적을 따라 살아갈 때 이 영혼이 행복해야 하는 거예요.
이걸 가리켜서 어려운 말로 영혼의 목적인이라고 얘기하는 목적인으로서의 영혼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모 그룹의 딸이 자살을 했어.
우리 모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러는데 미국에서는 그런 교통사고 난 적이 없다고 발표를 했어요.
그래서 그것이 나중에 신문에 보도되고 보니까 죽었어요.
참석자 1 49:42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은 아직도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자살을 해서 죽었는데 남겨놓고 간 자기 유산이 뭐 2천 몇백 억이래요.
그리고 그 부자인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그리고 부족한 것 없이 모두 살았는데 그런데 이 세상을 하직해 버렸어요.
이 세상에 있는 물질로 해결될 수 있는 영혼의 문제는 없어요.
영혼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물질이나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는 영혼에 도움이 되질 않아요.
그냥 죽어버렸어요. 한동안 참 나에게 직접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은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리고 돈 많은 사람들이 이 기회에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야 돈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참 참 많구나 그것만 깨닫고 겸손해져도 아마 영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거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참석자 1 50:56
이렇게 그럼 인간의 영혼은 많은 것을 누리고 가지고 있어도 영혼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살지 않으면은 인간의 영혼은 행복해하지 않아요.
여러분 죄 가운데서 즐거움을 누리고 많은 재산을 누리고 행복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 때 영혼에 참된 만족이 있었습니까?
그런 만족이 없었기 때문에 어거스틴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길 때까지는 내 영혼의 참된 쉼이 없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한 거예요.
이게 바로 영혼이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인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영혼 안에 또 하나의 인자적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완성이에요.
완성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의 영혼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 영혼을 살리시면 하나님과 생명적인 교제를 누려요.
이게 영생이죠. 그죠? 교재를 누리고 그리스도 예수께 연합되어서 한몸이 돼 이거는 어떤 경우에도 취소가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 정도 가지고는 영원히 만족을 안 한다 이거죠.
참석자 1 52:10
그럼 뭘 그럼 어떻게 만족을 하 끊임없이 자신이 영혼이 영혼 됨으로 꽉 찬 온전한 영이 되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보다 더 많았지만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죄가 가득 찼을 때보다 지금 돈 좀 별로 없고 가난하게 살지만 그러나 주님을 잘 믿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변화되었을 때 지금이 내 영혼이 더 편안하고 행복하고요.
그건 왜냐하면 영혼 자체 안에 이런 완성으로 향하여 가고 싶어 하는 그렇게 해주어야지만 자기 스스로 행복해하는 것이 있는 거라 이거죠.
그럼 무슨 뜻이냐 하면 이거를 교회에 적용시키면은 교회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영체로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교회는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몸이 된 신자들이 이렇게 자기가 자기가 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살아서 자신의 영혼이 행복하진 않아.
참석자 1 53:24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영혼이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계획에 맞게 살아야지만 영원히 행복해 해.
근데 인간이 항상 자기의 영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냐 이건 철 들어야지 귀를 기울이는 거야.
그러지 않고 영혼은 이 속에서 막 죽겠다고 몸부림을 치는데 이거 기울이지 않고 육체에 귀를 기울이는 거야.
야야야 속삭속삭 하면 야야야야야 지금 니가 이러고 살 때냐 지금 이 시커먼 교회당에 들어가고 지금 그러고 있을 때냐 이 세상에 지금 얼마나 좋은 세상인데 말이지 너 즐겨라 즐겨 야 노래도 있지 않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젊어서 놀아라 이런 식으로 세상에 자꾸 유혹을 하는 거야.
근데 그런 외침이 이 인간의 마음에 훨씬 더 잘 들리는 거예요.
이런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영혼의 진실한 부르짖음에 귀를 잘 들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막 살면 안 돼요. 막 살면 안 돼요. 욕망이 욕망이 이끄는 대로 막 이런 식으로 막 살면 영혼의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거요.
참석자 1 54:41
그렇게 되는 거예요. 위치가
참석자 1 54:46
그렇게 하면서 이제 이렇게 자기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깊이 지금 어디로 가다가 여기로 갔는지 지금 내가 지금 어수선하다 어떻게 영혼의 목적인을 얘기했죠 그렇구나.
그래서 그래서 영혼이 자기를 완성시켜줄 때 행복해하는 거예요.
그럼 그걸 교회에 적용을 시키면 똑같이 이 교회가 교회가 하나의 큰 영체로 본다면은 똑같이 교회도 성도들이 안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진실하게 변화되면 교회가 전체적으로 교회를 세워놓으신 원래의 목적을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 길로 가고 이럴 때 교회는 기뻐하게 되는 겁니다.
행복해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되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완성인이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끊임없이 참회와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이 영혼됨으로 가득 찰 때 그 연합들이 이루어져서 교회는 순수해지는 거죠.
참석자 1 55:57
그렇게 되어서 교회가 점점 더 영적으로 완성될 때 그때 이 교회는 행복해하고 주님이 그런 교회에 기쁘게 거하시는 거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런 것들이 이런 교리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커다란 격려를 주는 거죠.
지금은 저 인간이 저렇게 뺀질대고 예수 안 믿는데 저 사람의 영혼은 그러는 그 인간 자체를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자기를 좀 자기의 자기를 지금 품고 있는 저 인간 좀 변화 되어서 그래서 내 영혼을 완성시켜달라는 내 영혼을 온전함으로 꽉 채워주고 그리고 내가 진짜 원래의 그 창조의 목적을 따라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영혼 속에 깊은 울부짖음이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게 이제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죄인도 교회 안에서 포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참석자 1 56:58
그거를 그거를 귀를 기울이는데 이렇게 귀를 기울일 때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카리타스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그러면 이제 그러면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그러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 교회의 진정한 일치라는 것이 결국은 사랑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과 올바른 관계가 세워짐으로써 일치를 이룬다는 것을 이제 알았는데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런 구체적으로 이런 일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거를 이제 우리들이 한번 생각해 보는 거죠.
첫째는 뭐냐 하면은 사랑의 질서가 재편됨으로써 사랑의 질서가 재편됨으로써 일치가 이루어지는 거죠.
교회는 원리적으로는 이미 일치를 이루고 있죠. 그리고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아직 일치를 못 이루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들이 이제 실제적으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의 질서가 재편돼야 된다.
사랑의 질서가 재편돼야 된다 이거죠. 그러면 이 사랑의 질서가 재편되는 방식이 뭐냐라고 하는 거죠.
참석자 1 58:19
이 사랑의 질서라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사랑의 질서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은 사랑을 하는데 사랑하는 것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내가 어떤 것을 사랑하게 되면은 그것에 대한 사랑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이루는 데 기여해야 돼요.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 기여해야 돼.
이걸 군사학에서 목표의 원칙이라 그래요. 이 비유를 들면 여러분들이 이해가 쉬울 거야.
전쟁을 하는 거예요. 전쟁의 최종적인 목표는 뭐죠?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요? 아니에요. 승리 승리 이겨야지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어 아니죠.
그거는 운동 경기할 때 그러는 거고 이겨야 돼요. 그래서 맥아더 대통령 맥아더 장군이 그랬잖아요.
맥아더 장군이 그랬잖아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각하 저보다 더 귀한 단어가 없습니다.
딴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이겨야 되는 거 승리에.
참석자 1 59:38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냐 하면 그러면 승리하자. 만약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면 이기자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죠.
옛날 같으면은 저 왕의 목을 당장 따와라. 그 나라는 졸고 있나 아니 얘들아 뭐 하느냐 가서 저 나라의 왕의 목을 따와라.
아니 명령을 안 내려서 못 가나 그 나라는 점심시간이요.
놀고 있냐고요. 그 전쟁을 해서 차례차례 계획을 세워줘요.
그래서 뭐냐 하면 어떤 것을 생명을 걸고 공격을 해요.
예를 들면 진지를 차지한다든지 아니면 배를 부순다든지 건물을 파괴한다든지 그러죠.
그럼 그 작은 목표는 더 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여해야 돼요.
그래서 여러 부대가 작은 목표를 정해서 이제 공격을 해요.
그러면 그것이 합쳐져서 그것보다 큰 목표를 성취하는 거야.
그러면 그거보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또 공격을 해.
그렇게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해서 가는 거죠.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어요.
참석자 1 1:00:49
지금 보니까 수많은 군인들이 지금 저기 전진을 하려고 그러는데 저 높은 토치카에서 그 굉장히 발달한 무기를 가지고 병사는 얼마 안 됐는데 막 어마어마하게 공격을 해야 돼서 한 시간에 수만 발씩 총알이 날아오면서 이 사람들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가 된 거죠.
그러니까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졌어요. 지금 교착 상태에 빠졌어요.
교착 상태에 빠졌단 말이에요. 그런데 근데요. 한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군인들 하나하나씩 데려다 놓고 그 총알이 날아오는데 그 저기 저기 페이스 페인팅 여기가 이렇게 빨간 것도 바르고 하얀 것도 바르고 왜 그러는 거 있잖아요.
페이스 페인팅 알잖아요. 바디 페인팅 그걸 하고 있는 거야 왜 하냐 그러니까 얼마나 예뻐요.
그러면 그 총살감이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일은 저 전쟁에서 이기는데 이게 나쁜 건 아니겠죠.
그렇지만 저 전쟁에서 이기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해요.
그렇잖아요.
참석자 1 1:01:57
그러면은 지혜로운 지휘관이면은 온통 공격을 해도 도저히 저 총알 세례 때문에 안 되니까 특공대를 조직하겠죠.
그렇게 해가지고 밤새도록 피를 흘리듯이 가서 결국은 나중에 폭탄을 안고 뛰어들어가서 같이 죽었다더라 그런 거 도덕 교과서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거를 할 거 아니에요 그것이 바로 그런 원칙하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이 사랑의 질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 거죠. 그러면 내가 이걸 좋아한다.
내가 이 일 을 좋아한다 그러면 그것 자체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거예요.
뚝 끊어져서 그것 자체여서는 안 된다 이거죠. 그것 자체라고 하는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너 왜 이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니 그럴 때 그 일 자체로 난 더 이상 이유가 없어 그 얘기는 뭐냐 하면 내가 좋으니까 그 뜻이거든요.
그거는 안 된다 이거죠. 만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참석자 1 1:02:53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 바깥에 나 바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즐거워해야 할 것과 사용해야 할 것으로 나뉘는 거죠.
이 즐거워하고 사용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랑의 질서예요.
즐거워하고 사랑할 것으로 나뉘어지는 거죠. 나뉘어지는 거죠.
그러면 그 그 사용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해서 기여하는 거죠.
기여할 글 근데 그 자체를 끝인 것처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거죠.
의복은 몸을 위해서 입는 거죠.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입어주고 겨울은 따뜻한 옷을 입어줘야죠.
그런데 이 의복이 마치 이 자체가 완전한 목적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이 의복을 사랑하게 되면은 이 사랑의 질서가 잘못된 사랑일서죠.
근데 인간은 그런 식으로 질서를 갖고 있는 거죠.
참석자 1 1:04:06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이제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아이고 이거 동기간들이 좀 편안하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 사람들이 이게 거지가 된다든지 사업이 망하고 그러면 맨날 와서 돈 달라고 그럴 테니까 내가 고달플 거야.
그리고 이 사람들 좀 돌봐줘야지 그리고 동그라미 치는 거죠.
그다음에 뭐냐면 내 동생이 직장에 잘 다니려면 그 회사가 잘 돼야 될 텐데 그 회사 제품 사줘.
동그라미 더 쳐지는 거죠. 그 회사가 잘 되려면 이 경제가 잘 돌아가야 될 텐데 동그라미 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커지는 거예요. 근데 근데 이게 원이 아무리 커져도 결국은 마지막에 다 들어와서 이렇게 사랑하는 질서를 나름대로 세웠는데 그 이유가 그 근원이 뭐냐 자기야 자기 자기 자기 이런 사랑의 질서를 여러분 모두가 다 가지고 교회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요. 그러니까 와르르 무너지는 거예요.
나 세상 사랑 렸네. 나 주님만 사랑해. 다 깨닫는 그거 다 쓸데없는 거구나.
참석자 1 1:05:26
내가 알고 보니까 그거 다 쓸데없는 거야. 그거는 모두 잠시 지나간 나그네의 인생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야.
그리고 깊이 회개해요. 그리고 진짜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뭘 좋은 마음이 들어요. 내가 이렇게 하는 거 주님이 좋아하실까?
이게 내가 이걸 좋아하는데 이게 주님께 보탬이 될까 이렇게 하면서 원을 다시 그리는 거죠.
아까 그거는 자기 사랑의 질서고 나중에 그린 이 원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질서예요.
그러니까 그 질서가 재편돼야 되는데 그 질서가 재편된다는 거는 쉬운 거 아니에요 그거는 정말 엄청난 자기 변혁이 일어나야지만 가능해지는 거죠.
힘든 거죠.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진실한 자기 깨어짐의 회개요.
그 자기 깨어짐의 회개와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그것을 통해서 이 사랑의 질서가 바뀌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1:06:42
그래서 이제 이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이렇게 둘이 같이 사랑의 질서가 재편되어야지만 일치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일치가 이루어질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사랑의 질서라고 원을 그렸는데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달라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달라요. 이 질서가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 중심축을 옮기지 않은 채로 그것을 맞춘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조금씩은 맞출 수 있어요. 테니스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그럼 우르르 모여 모여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 왜 일단 식성도 틀리고 인간성도 다르지만 일단 테니스 치는 건 같은 취미니까 그 굉장한 일체감을 이루는 거죠.
그래 이러는 거죠. 그러니까 난 테니스 싫어 도박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참석자 1 1:07:41
그럼 다음 옛날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말이지 주일 예배만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집사님들이 교회 그 바로 대문 옆에 전봇대가 있는데 그 원형으로 똑같이 모여 위에서 이렇게 내려다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거기서 곗돈 모아가지고 놀아주는 거야.
목사님한테 바가지로 혼내지 오야 나오라 그래가지고
참석자 1 1:08:10
그 그렇게 일치가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그런 그 서 안 되고 그러니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중심으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가 하는 질서가 잡히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진리가 잡아주니까 진리는 이 사람에게 이 말하고 저 사람에게 저 말하고 그러지 않으니까 그 질서가 똑같이 잡히게 되는 거죠.
근데 이거는 개인적으로도 일어나고 공동체적으로 일어나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일어나냐면 참회를 통해서 자기의 사랑의 질서를 버리게 되는 거죠.
자기 사랑의 질서를 버리게 되는 거 그러니까 자기 사랑 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하나님 사랑의 질서로 이루어지는 나라이고 세상 나라는 세상 사랑의 질서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자기 사랑의 질서로 이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 나라에는 통일성이 있을 수가 없어요.
참석자 1 1:09:24
그러니까 각자 다 자기 나름대로 중심축이 되어서 수천만 개의 중심축을 가지고 원을 그리는 거야.
다행히 그 원이 가끔 많이 겹쳐 그러니까 거기서 한마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살지만 원을 크게 그릴 때는 많이 만나지만 자꾸 적어지면 그다음에 만날 일이 없게 되는 거죠.
서로가 서로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러나 이제 교회는 틀려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 사랑의 질서대로 이루어진 나라가 하나님 나라 세상 사람의 자기 사랑의 질서대로 이루어진 나라가 세상 나라 이렇게 해서 이 두 나라가 역사 속에 함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해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신자가 교회에 들어와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져서 이제 신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몸의 일부가 되었어요.
참석자 1 1:10:24
근데 그건 참 좋은데 문제는 뭐냐 하면은 그 사람이 한 번 깊이 회개하고 사랑의 중심축을 자기에게서 하나님게로 옮긴 것은 사실이지만은 그러나 이것이 한 번 옮긴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이 중심축을 옮기려고 하는 이 요사스러운 존재가 이게 신자라는 존재예요.
결국은 그거를 완전히 옮길 수 있느냐 옮길 수가 없어요.
그냥 잡아당겨가지고 어느 날 이렇게 옮겨서 딱 꼽아놓고 그다음에 원을 그렸거든.
근데 사경회를 하는 거야. 가서 펑펑 울고 회귀하고는 다시 갖다 반납하는 거야.
근데 콱 꽂아놓고 한참 살다가 보니까 또 이제 정신이 맛이 가기 시작하면서 은혜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살그머니 끌고 이번에 눈치를 보면서 살살 하면서 다 꽂아놔 보는 거예요.
그러다 또 말씀을 듣다가 기도하다가 깨뜨려지는 거야.
또 갖다 놓는 거야. 이런 존재야. 옛날에는 다 그 건드리면 죽어.
하나님도 국물도 없어.
참석자 1 1:11:34
이러던 사람이 이제 신자가 된 다음에는 이거 갖다 놓고 그냥 은혜가 충만할 때에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이러다가 은혜가 떨어지면 왠지 자기가 손해 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서 한번 살짝 쏙 빼고 한번 갖고 가보는 그러다가 이제 회개하고 다시 갖다 놓고 이거를 수없이 이 짓을 하는 게 이게 신자라 이 얘기예요.
그러니 이렇게 이렇게 함께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꽂아놓고 있으면 이거 꽂힌 자리가 한 군데야 여러 군데가 아니라 이게 기가 막히네.
그러니까 여러 군데가 아니라 한 군데다가 다 꼽아놓는 거야.
그거를 중심으로 사랑의 질서가 번져가니까 파문처럼 번져가니까 야 이거 이거는 이 정도만 사랑하면 되겠지.
그러면은 다들 그럼 그렇지 다 동의를 한다 이거죠.
이건 더 많이 사랑해야 돼. 그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지.
이 일보다 저 일이 더 급하지 나의 행복보다야. 지체들의 기쁨이 더 중요하지 우리의 기쁨보다야.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지 그러면 모두 동의를 해요.
참석자 1 1:12:42
근데 사실 그런 교회가 몇 교회나 되냐 이게 이제 가끔 다수가 와서 하나의 통에다가 다 꽂아놓고 가는 때 있어요.
그땐 진짜로 목회하기가 참 행복하죠. 왜냐하면 너무 말을 잘 들으니까.
근데 이제 은혜가 떨어지면 다 와서 돌려달라고 그러고 갖고 가서 말뚝 다시 박는 거야.
이게 춘추전국 시대가 되는 거지 이제 전부 다 그래갖고 게판이 되는 거야.
이 개라고 그러는데 이게 도그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크랩 이 개를 얘기하는 거야.
그래서 각자 옆으로 다 가는 게판이 되는 겁니다. 원고에 없는 얘기가 나오는 게판이 되는 거야.
그러면서 그냥 막 그렇게 되는 거죠. 근데 그런 것들이 해결되는 방법이 뭐냐 하면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이 안 돼요.
그거 어떡하겠어요? 어떡하겠어요? 옛날 중세 시대 같으면은 간단하죠.
교회 지하실에서 유치장 만들면 돼. 그래서 까불면 갖다 집어넣는 거야.
수 틀리면 찌개 가지고 고문하면 돼.
참석자 1 1:14:01
근데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치는 그런 일치가 아니거든요.
그런 일치가 아니거든요. 그런 일치가 아니죠. 그러니까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그거를 해결하는 길은 뭐냐 하면 가장 미련한 방법밖에는 없는 겁니다.
그렇게 말뚝 끌고 가서 딴 데 박으려고 하는 사람을 사람이 빨리 회개하고 돌아와서 제 자리에 말뚝 꽂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그러한 일들이 그래서 이 예배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이게 2천 명, 3천 명 4천 명 되는 사람을 하나씩 말뚝을 제자리에 갖다 꼽으라고 만약에 그렇게 하려면 이게 보통 일이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교회가 실제적으로 하나 됨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건으로서 함께 같은 곳에서 한 하나님을 한 성령 안에서 경험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일체감을 갖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회개해요.
회개하면 각자 그 유치장 만들어 놓지도 않았는데 각자 이제 그날 저녁부터 반납하기 시작하는 거야.
하나님 진짜 죄송해요.
참석자 1 1:15:22
이거 끌고 갔다가 나 정말 이게 아닌 것 같아요. 잘못했습니다.
그거 갖다 놓으면 그 회개하는 사람들 보면서 자기도 회개하고 그러면서 각자 다 갖다 놓으면 다시 사랑의 질서가 원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근데 이제 이게 말로는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이러한 사랑의 질서의 재편을 위해서는 결국은 어떻게 해야 되냐면은 자기 사랑이 죽어야 되거든 자기가 죽어야 되거든요.
근데 인간의 자기 사랑이 얼마나 얼마나 뼛속까지 사무쳤는지 아세요?
얼마나 인간의 자기 사랑이 뼛속까지 뼛속까지 사무치는지 아세요?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눈에 보이는 자기를 사랑하는 대신 그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사랑의 질서를 반납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면 아주 진실하고 깊은 자기 깨어짐이 필요한 거예요.
참석자 1 1:16:27
깨어짐이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그래서 우리를 말씀으로 다루시기도 하지만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가서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는 하나님이 먼저 마음을 고난을 통해서 흔들어 놓으셔요.
고난이나 마음의 심적인 깊은 고통을 통해서 말씀이 잘 들어가도록 많이 흔들어서 말랑말랑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 말씀을 보내 그때 인간은 깊이 고통을 받는 거예요.
그때에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빛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 인간이며 그리고 자신은 몰랐었는데 자기 안에 정말 이 처절하고 더러운 자기 사랑이 있다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달은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게 되는 거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이렇게 회개하기 전에는 자기가 하나였거든.
그런데 이제 진리를 깨닫고 회개하기 시작하면 이게 내 안에 내가 또 있는 걸 발견하는 거예요.
근데 내가 원하지 않는 내가 있는 게 발견이 되는 거예요.
이게 이제 자기 깨어지는 시초예요.
참석자 1 1:17:42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기가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 뭘 의미하냐면 자기가 이제 은혜 안으로 들어가기 은혜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 은혜에 화합하지 않는 육적인 자아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인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깊이 회개하는 거예요. 그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주님을 멀리 떠나서 방황하고 죄를 짓던 자기 자신을 깊이 회개하고 아파하는 거 그럼 그럴 때 그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 이건 사실은 말로 설명해서 손에 쥐어줄 수가 없어요.
이건 경험의 영역이기 때문에 쥐어줄 수가 없어요.
있으며 들어 근데 인간은 이 뼛속까지 그 뼛속까지 깨뜨려지는 것 같은 그 깊은 고통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회개하다가 너무 심하면 혼절한다고 혼절해요.
참석자 1 1:18:55
기자 그래서 그러면서 그렇게 자기가 말할 수 없이 그 깊은 고통을 그 속에서 자기가 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주님을 무시하는 삶을 살았는가 그리고 이 잘못된 사랑의 질서 때문에 하나님과 지체들에게 고통을 준 거 이런 것들을 깊이 파고들어오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들어오는데 이 고통이 무엇이냐 하면은 예수 죽으심의 고통입니다.
예수 죽음의 고통 예수 죽음의 기운이 이러한 영적인 연결을 통해서 흘러들어오는 거죠.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자신이 깨뜨려지는 가운데 그대로 경험이 되는 거 이 죽음의 기운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는 것들을 죽이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깊이 깨뜨려지면서 정욕 교만 허영 이런 것들이 이제 막 죽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죽는 것과 함께 예수가 우리 몸에서 다시 사는 거예요.
참석자 1 1:20:10
그러니까 이제 사랑하는 질서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상당한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예요.
이런 일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많이 일어날 때 그 교회는 뛰어난 사랑의 질서의 일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일치 되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는 말이죠.
매주 모였을 때의 예배를 드리면서 눈물의 바다가 돼야 돼.
예배가 끝났는데도 가슴이 떨려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로 예배당에 남아 있어야 돼.
귀가 앉아가지고 말이지 시간이나 보고 앉았고 말이지 그렇게 해가지고 아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교회가 뭔지 너무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교회의 문제예요.
교회 그래서 자기 사랑의 질서에 대해서 계속 깨뜨려져서 그래서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교회가 일치 교회의 실제적인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1:21:23
이게 개인적으로는 참회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데 공동체적으로는 교회의 목적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거죠.
교회의 목적을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제 공동체 교회가 이렇게 존재하잖아요.
그죠 그러면은 이제 교회가 왜 존재하게 되는지를 이제 신자들은 이제 깨달아요.
물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깨달으면 이제 보다 더 잘 알 수 있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못 배우면 오해하거나 잘못 알 수도 있지만 일단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신자가 되어서 성화의 삶을 살게 되면 직감적으로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이 뭘 기뻐하신다라고 하는 것을 안다 얘기죠.
그런데 그렇게 되는데 이제 신자가 이렇게 이제 깊이 하나님 앞에 깨뜨려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질서를 갖게 되면은 그러면 자기의 존재의 목적과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과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과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질 않는다 이거죠.
왜냐하면 잘 들으세요.
참석자 1 1:22:44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나를 구원하신 목적하고 완전하게 일치를 해 이게 나를 구원하신 목적을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면 그 목적을 바로 교회가 계승하고 있는 거야.
왜냐하면 교회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의 연합이니까 그러니까 교회가 그 목적을 희생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가 바른 쪽으로 안 가니까 은혜를 받은 내가 살아가려고 하는 인생의 목적과 교회의 목적이 분리가 되는 것이지, 교회가 진리에 의해서 바르게 갈 길을 가고 신자가 자기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받고 하나님 사랑의 질서로 통합될 때에는 그가 교회를 잘 섬기고 교회가 진리를 따라서 올바로 세상을 섬기면 신자는 그 교회의 몸의 일부로서 이 세상에서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교회를 통해서 구현하면서 사는 거예요.
자기가 직접 선교를 나갈 수는 없잖아요. 근데 거기는 하나님이 나를 보내기를 원하시는 곳 아니에요.
참석자 1 1:23:56
내가 만약에 예수께 속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거기 갈 수 없었을 텐데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졌기 때문에 우리의 몸의 지체인 한 지체가 거기 간 거야.
지체가 거기 있을 때 우리도 거기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해야 될 일을 그 지체가 하고 있는 거죠.
무슨 뜻인지 이해가죠.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나의 존재의 목적이 교회의 존재의 목적과 일치되는 거죠.
근데 이제 불행한 일이 가끔 일어나는 이게 뭐냐 하면 교회가 가는 방향이 전혀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할 때에 가고 싶은 그런 쪽으로 안 가 그래서 뭐냐 하면 내가 열심히 교회를 섬겨도 섬기는 이것들이 사용이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가지를 않고 다른 쪽으로 갔나 그때 이제 신자랑 갈등하고 고민하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1:24:54
그래서 이 교회에 있는 신자가 돈을 다 모아가지고 딴 데 보내고 그다음에 예배는 여기 와서 드리지만은 그다음에 봉사는 다 딴 교회에 가서 하고 그다음에 여기는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 공부는 b 교회로 찬양 훈련은 c 교회로 상담 학교는 d 교회로 그다음에 무슨 장애인 사역은 f 교회로 그러면서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는 거예요.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사람이 이게 비정상적인 교회 생활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모든 교회를 다 사랑하는 것 같은데 아무 교회도 자기 교회가 없어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이런 것들은 정상적인 교회 생활의 모습이 아니라 이거죠.
그렇게 해서 이제 공동체적으로 그 목적을 받아들이는데 이제 여기에서 뭐가 나오냐면은 이제 생명의 질서와 사역의 질서를 사모하는 거죠.
참석자 1 1:25:55
다시 말하면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하나님을 훌륭하게 섬기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꽉 찬 상태가 돼야 되잖아요.
이제 그걸 눈을 뜨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냐면 나 개인의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충만한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이 가득하도록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렇게 됨으로써 교회가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그걸 구하는 겁니다.
뿐만 아니죠. 사역을 해나가려고 하면은 사역을 위해서 많은 자원들이 필요하겠죠.
이 세상에 있는 땅에서 사역을 하니까 땅의 자원도 필요해요.
헌금을 하게 되죠. 그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자원이 필요하죠.
참석자 1 1:26:53
그렇죠 아무리 돈 많이 갖다 뿌려도 그들이 예수 믿고 회심하는 거 아니죠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섬길 때 그들의 마음에 감화가 일어나고 복음이 심겨져서 그들이 회심하고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이런 건 돈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 근데 이건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가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자원이 필요한데 그중에 하나가 은사야 그러니까 하나님이 각 지체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어요.
이거는 하나님이 개인에게 주신 게 아니야. 여러분들에게 만약에 어떤 은사를 주셨다 그거는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 공동체를 위해서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에 그 주어진 은사를 그게 자기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인색케 하거나 아니면은 그것을 가지고 공동체를 섬기기를 소홀히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서 거두어져요.
참석자 1 1:27:50
그리고 죄의 지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왜냐하면 그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맡긴 거예요.
그걸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예요. 그러니까 달란트를 주신 것과 소명은 분리가 안 돼요.
분리가 안 된다 이거죠. 그걸 하나님께서 주신 거예요.
그거를 사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걸 가지고 공동체에 유익을 줘서 은사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이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돼.
같은 창고에 들어 있는 것처럼 사용을 해. 이렇게 해서 교회가 생명과 자원으로 가득 차기를 사모하는 가운데 교회가 한마음이 되는 거죠.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모여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어요.
뭐죠? 그 무엇인가? 교회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지금 부족하다 이거 그러니까 교회를 참으로 교회답게 존재하도록 만들어줄 그 무엇을 잘 몰랐지만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거죠.
여기 성령이 임하셨잖아 핍박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죠.
온 교회가 모여서 그 핍박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참석자 1 1:28:59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서 다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을 구현해 갈 수 있는 그런 충만한 것으로 하나님이 채워주신 거죠.
그렇게 채워지고 올바르게 되고 하는 이 모든 일에 교회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덧붙여진 모든 사람들이 그 책임을 함께 공유하는 겁니다.
함께 그러면서 그것이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이렇게 일치가 중요한데 이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이 뭐냐 그게 결국은 다툼이에요.
다툼 그럼 이 다툼이 무엇 때문에 생기느냐 이거죠.
우선 첫째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면은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을 나누는 소극적인 원인은 뭐냐 하면 다툼의 원인은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면은 영원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이 세상에 있는 허탄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 이 일치를 해치게 되는 것이다.
해치게 되는 물 무슨 뜻이냐 하면 이 교회는 진리가 있는 곳이죠.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가 있는 곳이 교회라고 하는 거죠.
참석자 1 1:30:22
우리가 이제 삼위 하나님의 교통하시는 그 본질이 사랑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사랑과 함께 무엇이 있다 그랬죠? 그렇죠 잘 기억하시네.
그 사랑과 함께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계획하신 전체적인 디자인이 있는데 그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에서 우러난 거죠.
그 지혜를 이 세상에 실행하실 때에 사랑을 사용하셔서 지혜를 실행하시는 거죠.
예를 들자면 좀 이해가 잘 안 가시는 것 같은데 비유를 들면 이해가 잘 갈까요?
여러분들에게 자녀가 있어요. 그럼 이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뭘 몰라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얘가 어떻게 살아야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알죠.
그러면 아니까 여러분들은 그 아이가 서로 이렇게 해서 행복하게 되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죠.
이게 여러분들의 지혜예요. 근데 그 지혜를 자녀를 통해서 이룰 때 어떻게 이루어요?
사랑으로서 이루잖아요.
참석자 1 1:31:32
그 아이가 6살밖에 안 된 아이가 왜 15살 먹은 아이만큼 사려 깊게 행동하지 못하느냐고 몽둥이로 패지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아이 오줌 싸고 똥 싸고 말썽부리는 거를 다 참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냥 얘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지 않고 지혜를 가지고 그 아이를 자기가 원하는 행복한 길로 데려가려고 애쓰는 게 이게 부모의 양육자로서의 책임 아니에요.
사랑과 지혜로 이루어지는 거죠. 지혜가 없고 사랑만 하면 애들이 망치는 거죠.
또 사랑이 없고 지혜만 있으면 그다음에 아버지 인간으로 아버지 엄마 인간으로 생각도 안 하고 원수 지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해 가지고 계신 놀라운 지혜가 있는데 그거를 실제로 구현해 가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인간의 인간을 향해서 이런 것들을 구현해 가실 때 사랑을 가지고 구현해 가시는 거죠.
참석자 1 1:32:34
그렇게 사랑으로 구현해 가신 과정이 여러분들의 회심의 경험, 첫사랑의 경험, 인도하시는 경험 이런 걸 다 경험하게 되는 그 사랑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가라고 그러지 아니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은 한 번도 여러분들에게 올 기분이다.
한 달 여유 줄 테니까 니 마음대로 죄 지으면서 한번 살아봐라 보너스다.
하나님 그렇게 안 하신대요. 그냥 지혜가 분명히 있으시기 때문에 그 길로 여러분들을 데려가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들려 이게 바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혜예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은 이러한 것들은 이러한 것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도 하나님이 계획을 하시지만 그러나 이것은 항상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향해서 질서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로 데려가시려고 하는 거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매 순간마다 굉장히 많이 인도하시죠.
그죠?
참석자 1 1:33:40
뭐가 필요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물질도 주시고요.
그렇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저렇게 기도해요.
오늘도 심방 가니까 어느 자매님이 그래요. 은혜를 많이 받고 친구하고 통화를 했더니 친구가 그러는데 간증을 하는데 자기가 은혜를 많이 받으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는 내 거다.
넌 내 거다. 이 자매가 하도 샘이 나서 하나님 왜 나보고는 안 그러세요?
그랬더니 그러고 나서 저기 서점에 가서 테이블 사는데 너무 많아서 좀 듣기 좋은 거 골라달라고 그래가지고 차에 탁 틀고 탁 트는데 너는 내 것이라 할렐루야 응답이 된 거지.
물론 그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고 이 사람은 가수를 통해서 했지만 그런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해 주시는 것이 세밀하잖아요.
근데 그게 끝이 아니야 하나하나가 이어져서 궁극적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싶으신 곳이 있는 건 아니에요.
참석자 1 1:34:43
그렇게 해서 추구하시는 가치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에요.
그 영원한 것에 대해서 눈을 뜨는 거죠. 제가 직장 다닐 때 직장 전도를 열심히 했어요.
그중에 이제 지금은 다 이제 노인네가 되셨겠지만 아줌마 한 분을 열심히 전도를 했는데 굉장히 신앙을 순수하게 잘 받아들여서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시는데 다들 모여서 이제 간증을 하는데 그래서 이제 점심시간에 모여서 이제 성경 공부해서 간증을 하는데 물어봤어요.
당신은 예수 믿고 나서 제일 편한 게 뭐냐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뭐 거창하게 뭐 이제 내가 하나님 사랑하게 됐고 뭐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러지 않고 뭐냐 자네는 항상 돈이 두둑히 있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분하고 편하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 이유가 뭐겠느냐 그게 바로 영원 이게 이 관심 자체가 현세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향하여서 가려주는 거죠.
여러분 은혜를 받지 않으면은 이 세상에서 누구나 다 악다구리처럼 살아가 악다구리 알아요.
참석자 1 1:35:59
악다구리처럼 살아가 그래갖고 악악대면서 그냥 악을 행하는 거야.
요만한 이 하나 하고 주차 한 번 잘못했다고 와서 만약 이 꼬챙이 갖고 와서 타이어 다 둘러놓고 공중 전화 오래 건다고 발길로 차가지고 공중전화 박스를 부셔버리고 이렇게 못된 짓을 하면서 악악거리고 살거든 그리고 승진 못했다고 죽어버린다고 그러고 연예인 하나 내가 옛날에 알던 사람은 인기 떨어졌는데 매일 말이지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더라.
그리스도인인데도 그러고 살아요. 그러다가 이제 예수님을 믿고 깊이 변화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와 은혜는 은혜가 밀려와 은혜가 밀려오면 뭐냐 하면은 그런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적어요.
그거 아무러면 어때 한 번 보면 어때요? 옛날에 불교 신자이긴 하지만 성철 스님이 있는데 그러더니 그 절에서 그 동지 하나가 막 뛰어나오면서 그러더 스님 스님 큰스님 왜 호들갑이냐 큰 스님 책이 나왔습니다.
참석자 1 1:37:14
그러니까 성철 스님이 참선이나 해라 언젠가 책을 하나 썼는데 누가 와서 목사님 책 나왔대요 심방이나 해라
참석자 1 1:37:29
그 이게 이런 현세에 있다라는 게 이게 아무것도 아니고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영원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자꾸 생겨나 오늘 아침에도 아 진짜 잠시 후에 우리가 갈 그 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일까 여기에서 우리가 은혜만 받아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놀랍게 느껴지는데 근데 우리가 정말 그분을 가서 몸소 뵙게 될 때 우리가 얼마나 기쁠까 야 정말 기다려진다.
우리가 얼마를 살든지 간에 진짜 자기를 깨뜨리고 다른 특별히 이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시는 분들은 가슴에 이 얘기가 와닿아야 돼 안 와닿으면 짐승이에요.
와닿아야 돼 닿 닿아야 그래야 되는 거거든요.
참석자 1 1:38:31
그래서 결국은 은혜가 들어오게 되면은 영원한 것들의 사랑이 생겨요.
왜 그런지 가르쳐 드릴게요. 이제 왜 그러냐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우리의 지성에 비늘이 벗겨져요.
근데 은혜가 사라지면은 이 콩커플이 쉬워 그래가지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건데도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무슨 뜻이냐 하면은 어떤 여러분들이 어떤 물건을 잰다고 쳐요.
근데 여러분 자를 고무로 만든 자 보셨어요? 그런 거 없어요.
고무로 만약에 자를 만들려면 이게 물건을 팔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그대로 재주지만 그건 전혀 마음에 안 드는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면 그냥 재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잡아당겨서 크게 길게 잘라줄 거 아니야 자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이 지혜 위즈덤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사물을 재는 척도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사물을 재는 척도야.
참석자 1 1:39:44
그러니까 지혜가 있는 사람은 항상 그 척도가 분명해요.
눈으로 볼 때 굉장히 큰 것 같아. 그 자로 딱 재봐. 아 이거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게 뭐 울고 잃어버렸다고 해서 울고 불고 얻었다고 해서 그렇게 기뻐서 팔짝팔짝 뛰고 그럴 게 아니다.
이거는 자로 딱 재보니까 보이기에는 이렇게 커 보여도 이게 별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게 재는 거죠. 또 다른 것들이 들어와 그걸 자로 딱 재보는 거야.
이 굉장히 중요하고 큰 거야. 이게 굉장히 중요 사람들은 그까짓 게 뭐냐 이 사람은 기꺼이 눈에 보이는 좋은 것과 그 작은 것을 바꾸는 거죠.
이게 신앙이에요. 그리고 이런 거를 소유한 사람이 말하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야.
그 지혜를 안 가진 사람은 이 척도가 없고 그냥 눈에 보이는 거에 따라서 출렁거리는 거잖아.
그러니까 끊임없이 영원히 고통을 받는 거예요. 근데 이런 위즈덤 이런 사물을 그렇게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그 척도가 어디에서 오냐 하면은 진리로부터 오는 거죠.
참석자 1 1:40:51
진리 자체는 잠시만 통용되는 것은 진리라고 부르지 않아요.
진리는 영원하고 완전하고 불변하는 것을 진리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이것은 진리 자체는 영원을 지향하는 성격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영원의 빛을 대입하고 이렇게 들여다가 보면은 그러면은 이게 진짜 가치 있고 가치 없는 것인지 하는 것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거든요.
그 죽음의 빛 아래에서 인생을 생각하면은 우리가 헛간 짓을 하고 있는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게 된다.
이거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해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 빛을 통해서 영혼의 불빛을 받으면서 자기의 인생을 봐야 되는 거예요.
오늘 저녁에 하나님 부르시면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주 예수요 제가 갑니다. 그리고 가실 수 있겠어요?
아직 준비 안 됐다고요 언제 하시려고 그러는데요?
언제 하시려고 그러는데 언젠가는 불현듯 그렇게 될 거 아니에요.
참석자 1 1:41:53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사람 머무는 인생은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이에요.
근데 이제 소극적으로는 이런 영원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많은 분란과 다툼들이 생겨나는 영원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하나님의 나라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이 세상의 변화,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질서대로 살아가지 않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고통, 그들의 영혼을 어떻게 건져야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은 모두 영원에 속하는 거거든요.
근데 은혜를 안 받으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이것이 바로 교회의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교만과 이기심 때문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먼저 이 교만은 잘 들으세요. 이 교만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정의는 이런 거예요.
사물들의 질서에 대한 자기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태도예요.
참석자 1 1:43:12
뭔가 사물의 질서가 있는데 그것의 의미를 자기가 규정하고 판단을 내려 근데 자기 게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예요.
그게 바로 교만이에요. 이 교만은 탐욕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죄예요.
예를 들자면 분명히 하나님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그러시잖아요.
근데 그걸 한다 얘기예요. 그게 무슨 얘기냐면 나는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판단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아니라 그러시는데 그 판단보다 내 판단이 맞다.
적어도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 순간은 잠잠하고 계십시오.
이번엔 내가 내 마음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판단을 믿는 거죠.
이 교만이 이 교만에서 수많은 자식들이 나오는 거예요.
탐욕과 그 수많은 죄악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결국은 교회 분쟁의 원인이 되는 거죠.
참석자 1 1:44:08
그래서 무엇에 대한 판단을 사람이 내리는데 아주 정확하게 성경 진리의 빛을 가지고 판단한 것도 아니고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그 자기가 내리는 판단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판단이 내 그러면서 자기가 내리는 그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 교만은 수많은 분쟁을 낳는 원인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서 구해야 할 좋은 태도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자기 의견하고 사뭇 달라도 같은 것만을 계속 들어서는 자기가 살아온 대로밖에 살 수가 없는 거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는 않더라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아량과 태도를 가져야 돼요.
근데 이제 그렇게 안 하죠.
참석자 1 1:45:10
이 판단이 절대적이다 그래 자기가 내리는 판단에 의해서 모든 질서가 재편되기를 원하는데 이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좀 난데 여러 사람이 있어서 충돌을 일으키게 되면 이 교회에 많은 분쟁의 원인이 그래서 이것도 이제 십자가 앞에서만 못 박힐 수 있는 거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이제 이기심 때문인데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이 그다음에 이 자기 중심축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 그리스도께 합치되지 않은 자기 중심축을 고집하는 그것이 이기심이거든요.
그 이기심에 의해서 자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것에 의해서 모든 상황과 사물의 질서를 선악을 하나님을 중심축에 놓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축에 놓고 판단을 내리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판단이 될 수가 없는 거죠.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진짜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는 말이지 그 사람의 참여하는 세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참석자 1 1:46:24
그가 진짜 중심축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교회 안에서 그런 분쟁이 일어나서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 전에 그런 상황으로 간 교회에 대한 뼈저린 아픔, 그리고 자신이 그런 아픔을 가져온 지체 중에 한 지체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깊이 통회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런 사랑 자체가 교통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걸 가져오는 거죠.
그런 태도가 없이 옳고 그름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될 때 자신은 그것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이 모든 판단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 안에는 항상 자기 중심성과 자기 이기심들이 도사리고 있게 되는 거라는 거죠.
이것들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께 온전히 합치되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지만 여러분들 안에 예수의 형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죠.
예수의 형상이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잘 들으세요.
참석자 1 1:47:31
한 사람의 삶의 질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의 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알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믿음으로 자기를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진리에 합치시키려고 하는가에 의해서 믿음의 삶의 질이 결정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하겠어요. 한 사람의 삶의 질은 그가 진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식의 불량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진리에 자신을 합치시키려고 하는지 치열함과 믿음으로 자기를 그 진리에 합치시키려고 하는지에 달려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진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거기에 거의 합치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는 진리를 아는 양은 적어도 그 진리의 생명을 걸고 자기를 거기에 합치시키려고 치열하게 믿음으로 분투하는 사람이, 그래서 참여하고 깨어지는 사람이 훨씬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게 되는 거죠.
참석자 1 1:48:47
여러분들이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이 여러분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아요.
한 번 더 반복하겠어요. 여러분들이 다니는 교회가 진리를 정직하게 선포하는 교회라고 하는 사실이 그대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아요.
절대로 보상해 주지 않아요. 절대로 보상해 주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진리의 말씀을 많이 듣고 그리고 수없이 여러분들이 그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리고 열심히 교리를 공부해서 책과 테잎을 여러분들이 많이 습득하고 그것이 여러분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아요.
참석자 1 1:49:39
여러분처럼 그렇게 설교를 많이 듣고 깊이 있는 강의를 듣고 교리를 깊이 터득해서 치밀하게 배우고 그러지 않고 그냥 쬐끔밖에 진리를 몰라도 그냥 거기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매일 눈물 흘리는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시골 교회 할머니들이 훨씬 질이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보다 그리고 예수님께 더 많이 사랑받아요.
참석자 1 1:50:14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고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예요.
교회의 아름다움은 그 진리가 울려퍼지는 데 있다라고 하는 것을 그것이 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어요?
그처럼 교회에서의 설교는 중요해 그건 틀림이 없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참된 진리의 말씀이 심오하게 울려 퍼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에요.
참석자 1 1:50:54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생각으로서 진리를 찾는 것은 아무 비용이 들지 않아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비용이라고 생각 안 해요.
애들이 그 어려운 컴퓨터 게임 패키지 갖다가 컴퓨터에 꼽아놓고 며칠씩 연습을 하는 거 아이들이 노동이라고 생각합니까?
생각 안 해요. 어린아이들이 중학생들이 영어 영어 문장 외우라고 그러면 싫어해도 팝송 가사 새카맣게 적어가지고 그거 외우는 거, 그거 따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그랩으로 영어 가사 외우는 거 그걸 자기네들이 노동이라고 생각합니까?
노동이라고 생각 안 해요. 자기가 좋아하니까 생각으로 진리가 좋아서 생각으로 진리를 찾는 것은 희생이 아니에요.
아무 희생 없이도 그 진리를 생각으로 찾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진리의 가치는 그 사람이 그 진리를 통해서 베로 진실한 삶을 사는 데 있는 거죠.
참석자 1 1:51:56
그러나 생각으로 진리를 찾는 데는 아무 비용이 들지 않지만 그 진리 때문에 그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되어 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자신을 그 진리에 합치시키기 위해서 비진리인 자기를 칼로 찔러 죽이는 일이 반복되어야 된다 이 얘기예요.
그거 안 하면 여러분들이 진리를 위해 울려퍼지는 교회에는 아무 유익이 없는 거죠.
나는 있잖아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난 말을 하고 싶어요.
진짜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진리가 울려퍼지는 교회에서 하나님 진리의 말씀에 자기를 합치시키는 삶을 살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진리가 어쩌다가 한 번씩 울려퍼지는 교회에서 자기를 그 진리에 합치시키면서 살 수 있다면 난 거기로 가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한 번 반복하겠어요.
참석자 1 1:52:53
제 인생의 가치는 얼마를 하나님이 저를 여기에 주시든지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외치다가 가면 저는 만족이에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진리의 말씀이 울려퍼지는 교회에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는 심판을 더 많이 받을 사실이 되는 왜 다른 사람들은 변명 할 수 있어요 몰랐습니다.
안 가르쳐줬는데요. 다 알았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잖아요.
알고 행한 자는 더 많이 맞을 것이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구도의 삶이에요. 그래서 진리에 대한 많은 지식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에요.
지금 오늘 설교를 들은 여러분 가운데도 본인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 많이 있을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말씀의 옛날에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옛날에는 그 믿음 갖고 살았어요.
오늘은 옛날 믿음 가지고 못 살아요.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성실하심을 봄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살아가는 그렇게 하는데 오늘은 왜 일어나 그거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참석자 1 1:54:08
한 사람이 진리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진리를 소유한 것이 아니에요.
진리를 소유한 사람은 단지 진리에 대한 많은 지식의 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서 그 진리에 자기를 합치시키기 위해서 생사의 결단을 매일 하는 사람.
나는 죽고 예수는 내 안에 사시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이번에는 내가 예수 때문에 죽고 주님은 내 안에 사십시오.
이렇게 해서 매일매일 나는 죽고 예수는 다시 살아.
이렇게 되면서 이 교회 안에서 일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예요.
일치가 이루어지게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자기 깨어짐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일치를 이룰 수가 없는 너 나 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에 깊이 깨뜨려지고 내가 여러분들에게 설교는 모두 다 못 마쳤지만은 여기에서 교회는 오늘날 교회는 바깥에서 오는 핍박 때문에 고통받지 않고 안에 있는 지체들에게서 역설적으로 고통을 받아요.
참석자 1 1:55:32
수많은 다툼과 분쟁 속에서 핍박에 의해서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지체들이 찔러요.
팔이 칼을 들고 다리를 찌르고 다리가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를 발로 차, 이빨이 팔뚝을 물어뜯고 이렇게 하면서 교회가 만신창이가 되고 고통을 당하는 거야.
이게 결국 어디에서 오냐 하면은 진리는 제쳐 놓고 누가 옳으냐 싸우는 데서 오는 거예요.
거기에서 교만이 극대화되는 거예요. 이게 모두 주님 앞에서 자기를 죽이고, 그리고 정말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삶이 아니라 그 진리를 깨닫는 데는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고 그 진리를 깨달았으면 책임을 가지고 그 진리에 자기를 부합시켜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거야.
진리를 많이 깨달은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적게 깨달았어도 거기에 치열하도록 믿음으로 그 진리에 자기를 합치시키려고 할 때 합치시키려고 언젠가 교회가 평안하고 큰 어려움 모든 것이 잘 돼가는 것 같은 때였어요.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이 물으셨어요.
참석자 1 1:57:09
예 처음에는 그 음성이 가느다란 물처럼 들렸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폭포수처럼 폭포수 견딜 수가 없어요.
불 꺼진 교회당에서 울고 기를 내 너 나 위해서 살았니 예수님은 그거 물어보고 싶어 하지 않으시고 넌 내 흔적이 그때 제가 가슴에 깊이 깨달은 게 있어요.
마지막에도 예수님이 나한테 이렇게 물으시겠구나.
야 너 뭐 했어요? 집에도 막 많이 다녔고 밤잠 안 자고 책도 많이 썼고 신발 안 짜고 저짜고.
근데 하나님이 그런 대답을 내가 잔뜩 준비하고 있는데 주님이 비슷한 거는 안 물어보시고 넌 내 몸 네 몸 아 그렇구나.
내가 늘 설교했지만 아직도 내가 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그것도 안 남아 그때 깨달은 거야. 그렇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이 바로 이런 거예요. 기도하시겠습니다.
clovanote.naver.com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