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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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헛되지 않은 믿음
본문: 고린도전서 15:12–19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공동묘지'를 영어로 'cemetery(세머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헬라어 '코이메테리온'에서 왔습니다. 그 뜻이 놀랍습니다. '잠자는 곳', '기숙사'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헬라 세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그 무덤을 처음으로 '잠자는 곳'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무덤을 침실처럼, 기숙사처럼 부른 것이지요.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고 '아침이 오면 깨어날 잠'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아주 이상한 말부터 시작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고린도 교회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여겨서, 몸이 다시 산다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바울이 묻습니다. 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되었거늘, 어찌하여 부활이 없다 하느냐."
그러고는 무서운 가정을 하나씩 쌓아 갑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13절,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14절, 그러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너희 믿음도 '헛것'이다. 15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거짓말한 거짓 증인이 된다. 17절, 너희 믿음은 헛되고, 너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 18절, 먼저 잠든 성도들도 다 멸망했다. 그리고 19절,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여러분, 여기서 두 단어를 붙잡으십시오. 14절의 '헛것'은 헬라어로 '속이 텅 빈'이라는 뜻입니다. 알맹이가 없다는 거예요. 17절의 '헛되고'는 또 다른 단어인데, '효력이 없다, 결과가 없다'는 뜻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 믿음은 속도 텅 비고, 결과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영수증이거든요. 부활이 없으면 그 영수증이 없는 거예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어둡게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2절의 '살아나셨다'는 이 단어가 헬라어로 현재완료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상태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한 번 살아나고 끝난 분이 아니라, 지금 이 새벽에도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20절에서 바울은 단숨에 뒤집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사." 12절부터 19절까지의 그 모든 '만일'이 와르르 무너지고, 정반대가 됩니다.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 믿음은 텅 비지 않았습니다. 우리 죄는 사함받았습니다. 잠든 성도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가 아니라 가장 복된 자입니다.
오늘 이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기에, 우리의 믿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두 가지 삶의 자리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의 소망이 '이 세상 안'에만 갇히지 않게 하십시오.
19절은 "이 세상의 삶에만 소망을 건다면 가장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40명이 넘는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살률이 2011년 이후 가장 높았고, OECD에서 1위였습니다. 특히 40대에서 자살이 사망원인 1위로 올라섰습니다. 일터에서 가장 치열하게 달리는 세대가, 이 세상에서 쌓을 수 있는 것에 모든 걸 걸었다가 그것이 무너지자 함께 무너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사람은, 이 땅의 성적표가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무너지는 자리에서도 한 걸음 물러설 땅이 있습니다. 오늘 내 소망이 이 세상 안에만 갇혀 있지는 않은지, 주님 앞에 점검합시다.
둘째, 죽음을 '잠'으로 바라보는 가정이 되십시오.
우리나라는 작년 12월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였습니다. 그만큼 사별과 죽음이 우리 가정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나 18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을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무덤을 '잠자는 곳'이라 불렀던 겁니다. 부모님의 노년을 모실 때, 장례식장에 설 때, 우리는 소망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아침이 오면 깨어날 잠으로 바라보는 부활의 가정이 됩시다.
여러분, 부활은 단지 옛날 옛적에 일어난 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속이 텅 빈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정말로 사함받았고,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 너머까지 닿아 있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 잠들어 아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 복된 부활의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