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0장 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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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
제목: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
본문: 사무엘하 20장 1-13절
본문: 사무엘하 20장 1-13절
찬송: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찬송: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오늘은 사무엘하 20장 1-13절 말씀을 가지고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본문은 평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분열의 나팔을 부는 세바의 반역을 보여준다. 이처럼 안팎으로 밀려오는 세속의 도전 앞에서도, 하나님은 친히 세우신 주권과 은혜의 질서를 신실하게 수호하시다. 교회의 예표가 되는 본문을 통해, 분열과 불순종, 은밀한 죄악으로부터 교회를 방어하시고 지켜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1-3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야 함'을 말한다.
1-3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야 함'을 말한다.
"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본문은 반역의 우두머리인 세바를 가리켜 무가치하고 사악한 자라는 뜻의 불량배로 규정하며, 이는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거역하는 내면의 사악함을 고발하는 표현이다. 세바는 다윗과 유다 지파 사이의 소외감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다윗과 나눌 분깃과 유산이 전혀 없다는 말로 유다 지파와 나머지 지파 사이의 갈등을 부추긴다. 다윗을 낮추어 '이새의 아들'이라 부르며 하나님이 다윗 가문에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 주권을 전면 부정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님의 나라를 분열과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얄팍한 기득권과 사적인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의 정당한 통치에 불순종하며 교회의 하나 됨을 훼손하려는 사탄의 공격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본문의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장차 실현될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 성령의 거룩한 끈으로 묶인 교회는 세상의 빈부격차나 출신 배경과 같은 세속적인 차이에 의해 결코 나뉘거나 분열될 수 없는 영적 유기체이다. 바울도 에베소서 4:15-16 에서 역시 교회가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어 긴밀히 연결되고 결합하여 함께 자라가야 하는 생명 공동체임을 깊이 강조한다.
오늘 하루, 주님이 친히 머리가 되시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지체임을 선언하며, 내 생각과 고집을 꺾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겸손히 고개를 숙이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4-10절은 '불순종의 위험에서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4-10절은 '불순종의 위험에서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다윗은 세바의 반란을 신속히 진압하고자 새롭게 군사령관으로 임명한 아마사에게 사흘 안에 군대를 소집하라고 명령하지만, 아마사는 우유부단함과 나태함으로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고 기한을 넘기고 만다. 이에 다윗은 아비새에게 추격을 명하였고, 군대가 기브온에 이르렀을 때 요압은 마주 나온 아마사에게 안부를 묻는 척하며 비열하게 기만한다. 권력욕에 눈이 먼 요압은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붙잡고 입을 맞추려는 척하다가, 다른 손에 숨겨둔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잔인하게 살해한다. 고대 근동에서 남성의 영예인 수염을 잡고 나누는 입맞춤은 친밀한 우정의 표시였으나, 요압은 이 거룩한 인사의 형식을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위장된 살인의 도구로 악용하며 인류를 배신했던 가룟 유다의 추악한 입맞춤을 고스란히 연상시킨다.
타인의 생명을 한낱 소모품처럼 가벼이 여기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통치권에 도전하여 피를 흘리는 완악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에 가장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사실을 세상 속에 입증하는 유일한 방책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날마다 빚어지는 성결과 거룩함의 삶뿐이다. 마귀는 지상의 일터와 사역의 한복판에 요압과 같이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인생들을 심어놓아 끊임없이 교회를 더럽히고 무너뜨리려 공격하지만,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결코 악인의 훼방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하루, 세상의 불의한 방식과 타협하여 내 자존심을 세우려던 욕망을 과감히 꺾어버리고, 끝까지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순종하며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1-13절은 '은밀한 죄의 위험에서 교회의 순결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11-13절은 '은밀한 죄의 위험에서 교회의 순결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요압의 부하는 아마사 곁에 서서 외치며 요압의 살인 범죄를 다윗을 위하는 정당한 행위로 교묘하게 위장한다. 그러나 지나가던 백성들이 길 한가운데 버려진 피투성이 시체를 보고 가던 길을 가로막고 멈춰 서자, 부하는 급히 시체를 밭으로 옮겨놓고 옷으로 그 부끄러운 범죄의 흔적을 덮어 보려 애쓴다. 인간의 얕은 꾀로 피 흘린 죄악을 옷으로 덮어 은폐할 수 있다고 믿은 어리석은 태도이며,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고 사람의 눈만 속이면 완전범죄가 될 것이라 착각한 피조물의 비참한 위선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은밀한 골방에 숨겨두려 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영혼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제단을 더럽히는 가장 무서운 영적 수치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얄팍한 옷으로 가려놓은 모든 숨은 죄악과 내면의 동기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시고 선악 간에 불꽃 같은 눈동자로 명백하게 감찰하신다. 부끄러울지라도 세상이 짜놓은 교묘한 자기 합리화의 가면을 완전히 벗겨내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내 죄를 정직하게 자복하고 회개하는 영적 정결함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 하루, 사방이 막힌 갑작스러운 위기와 마음 아픈 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내 허물을 숨기려 거짓의 옷을 덮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아래 상한 심령을 정직히 쏟아놓는 순결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명성과 자리를 지키려던 요압처럼 대가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오직 거저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묵묵히 주님의 이름만 높일 때, 하나님께서 지친 성도들을 존귀하게 세우시고 마침내 승리의 새 아침을 주실 것이다. 이 평안을 품고 일상의 터전에서 끝까지 신실한 일상의 헌신을 완수하여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