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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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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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사랑과 일치
제 4장 사랑과 일치
Ch 1. 사랑으로 이루는 일치
Ch 1. 사랑으로 이루는 일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4장 사랑과 일치 01 사랑으로 이루는 일치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YmLaqpAVePU
Transcript:
(00:01) 4장 사랑과 일치
카르타스 에트 콘도르디아 죄송합니다. 제대로 읽겠나 모르겠네.
교회의 본질은 사랑의 교통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 신재는 하나님 하나가 됩니다. 진리를 통해 이루는 이루는 이 일치를 통해 교회는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한 섬김을 충실히 감당하게 됩니다.
챕터 1. 사랑으로 이루는 일치.
두 시대
두 시대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교통을 통해서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교회 일치는 신자들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교회 존재 목적과 하나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 이러한 일들은 개교회 안에서 어 교회에서 보편 교회
(01:05)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회 하나됨은 아주 자연스러운 원리입니다. 건강한 몸은 머리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이처럼 신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을 향해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온전하게 되는 과정은 곧 온전한 일치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일치를 이루어 궁극적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이 세상에 보내줍니다. 사도 시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이 세상에 하나님의 경을 이루어갑니다.
사도시대.
사도시대.
사도시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보았습니다. 다시
(02:10)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눈으로 볼 수 있었으나 그의 몸인 교회는 믿음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래에 세워질 교회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지상생애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아직 온전하게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통해서 앞으로 세워질 교회가 어떤 모습일지가 알려졌습니다. 그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나누신 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선택하되 단지 이을 하기 위한 도구로만 부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선적으로 당신과 함께게 하기 위해 선택하셨습니다. 이에 열두를 세우셨으니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로 하며 전도도 하며 귀신을내쫓는
(03:15)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하신 것, 곧 당신 안에 살게 하신 것은 그들이 일하는 것과 하나였습니다.이는 제자들을 세우실 때 그리스도와의 교재로 부르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뜻은 교회 설립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이는 또 다른 보회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여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이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교재가 교회와 그리스도가 누리게 될 교통임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04:08) 그 교재는 사랑의 교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생애를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교회가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누릴뿐 아니라 지체들이 함께 사랑의 교통을 누릴 것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
우리 시대
우리 시대
우리 시대에는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즉 교회는 우리 눈을 보이지만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몸인 교회는 눈으로 볼 수 있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한 지체이나 그도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교회를 봄으로써 그리스도를 더욱 잘 알게 됩니다.
(05:00) 교회의 일부인 신자도 그 몸을 바라보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면 그분의 몸의 일부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욱 그 그러하겠습니까?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니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볼 줄 몰라도 교회를 볼 줄 압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지체들과 교회 밖 사람들 앞에서도 아름답고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모습.
교회는 미담을 조성하거나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회 개혁을 위한 매체도 아닙니다. 혹시 교회를 통해 그러한 효과가 나타났다면 그것은 교회가 참으로 교회된 결과이지 그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05:59) 이는 이는 마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거룩해질 때 그의 삶이 덕스럽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자는 도덕적인 삶 자체를 위해서 애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하여 힘씁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일치되는 인격과 삶을 가져옵니다. 거기서 도덕적인 삶이 나옵니다.이 이러한 교회 교리적 사실에서 우리는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합당한 존재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할 의무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를 통해서 세상이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실제적으로이 세상에 보여줘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사랑으로 충만함.
사랑으로 충만함.
(06:54) 교회는 지순의 사랑으로 충만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순의 사랑은 신자 개개인이 어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아가페 사랑을 발견함으로써 소유하게 된 것으로 그의 인격과 삶의 토대입니다. 그 사랑의 감화를 받은 신자를 통해 교회 내어의 신자와 이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러한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이 세상에 오신 이유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07:47)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생애 동안 보여주신 긍휼과 섬김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우리와 함께 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지순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은 그리스도의 부활 성천 이후에 세워진 교회가 마땅히 개승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이 세상에 있었다면 했을 일을 교회가 개성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에 이보다 더 본질적인 사명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개인의 개인적 차운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타내도록 힘써야 합니다.
(08:42) 만약 교회가 이러한 사랑으로 충만해진다면 교회의 지체와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될 때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됨.
사랑으로 하나됨.
또한 교회는 사랑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일치된 교회의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교회가 일주를 이룰 때 교회는 다음의 것들을 세상에 보여주게 됩니다. 첫째로 교회 일치이신 머리 교회의 일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탁월한 지혜를 보여줍니다. 교회의 각 부분만을 보았을 때는 그것들이 무엇을 위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없습니다.
(09:35) 그러나 교회의 여체가 서로 다른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죄 탁월함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 둘째로 교회 일치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 육체 어느 지체도 다른 지체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손이 발에게 명령하지 않고 귀가 배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다릅니다. 머리는 지체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를 보면서 사람들은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의 일치는 교회 안에 독특한 존재 목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10:34) 교회에 속한 신자조차도 교회의 통일적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을 일을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사람들은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일치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사회 그 이상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루는 일치
사랑으로 이루는 일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한 베드로에게 찾아와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음 안에 지순의 사랑이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11:27) 그 사랑이 있다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뿐 아니라 그분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양떼도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는이 사랑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신자들이 모여 일치를 이룹니다. 수많은 신자는 각자의 고유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일치를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신자는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에 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이 일치는 폐일화를 이루는 위한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나 각자 개별적인 본성을 가진 채로 한 몸을 이루 이루고 있습니다.
(12:21) 자기 개발 자기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우고스티누스는 교회가 이루어야 할 사랑의 일치를 가리켜 사랑의 하모니라고 불렀습니다. 음악에서 하모니를 생각해 보십시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여러 가지 악기가 모두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악기는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작곡자의 의도를 따라 따를 때 그 모든 의미를 이루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서로 다른 악기가 각자의 소리를 질서 없이 낸다면 그것은 단지 소음일 뿐입니다. 다른 악기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도 결코 좋은 연주가 될 수 없습니다.
(13:15) 모든 악기는 자기의 고유한 소리를 내지만 하나의 하나로 좋아되게 하는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자기에게 진정한 소리를 냅니다. 그럴 때 은주는 아름다운 하무니를 이룹니다. 교회의 일치도 이해와 같습니다. 이것은 결코 회화가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모든 신자가 목사가 될 필요가 없으며 어떤 사람의 신앙의 양태를 절대화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 삼지 않아도 됩니다. 신자는 각자 자신의 은사와 분량에 따라 부름받은 대로 존재하되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하여 아름다운 하머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신자는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일치 이루고 그 안에서 자신의 본분을 따라 교회를 섬깁니다.
(14:09) 그때 구현되는 하머니는 어떠한 종류의 회기라보다 더욱 아름답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지체들을 각 특성과 은사들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과 그들 사이 다름으로 인해서 영광받으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여기서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실제적인 교훈은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성으로 인하여 그들과 함께 이루는 보편적인 질서 안에서 비로소 자신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자는 마땅히 다른 신자의 다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만약 신자가 교회 안에서 다른 지체와 다름을 놓고 우열을 겨룬다면 다툼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4:57) 그것은 교회가 지녀야 할 교통하는 사랑의 정신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각 지체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그 다름 때문에 공동체를 더욱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능력이 곧 사랑의 깊이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비롯됩니다. 아멘.
맺는 말
맺는 말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에 떨어진 거리도 다르고 별의 크기와 밝기 빛깔도 모두 다릅니다. 그들은 각기 자신의 광명을 밤낼 수는 없습니다. 다른 달의 광명으로 수많은 별은 자기만의 빛으로 얻음을 밝힙니다. 서로 다른 별들이 서로 다른 빛을 바람으로 더욱 아름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만물을 다르게 창조하셨고 다름으로 창조 세계 자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15:59) 인간도 그렇습니다.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얻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미암아 자신이 온전해지기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네. 그럼 제가 마저 읽겠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하여 이기심과 탐욕이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다름은 서로를 싫어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거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인간은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의 사랑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랑의 일치를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가 서로의 다름을 섬김의 기회로 여기기를 바라십니다.
(17:04)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의 목적과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서 오는 아름다운 조화, 다양한 사이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일치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신자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아멘.
Ch 2. 신자와 교회의 일치
Ch 2. 신자와 교회의 일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4장 사랑과 일치 02 신자와 교회의 일치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YiM-6Q7k0s
Transcript:
(00:03) 예. 예. 챕터 2죠. >> 네. 그렇습니다. 목사님 주세요. >> 네.
신자와 교회 일지.
교회의 일치.
교회의 일치.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신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하기 위함입니다. 공사장에서 한 사람이 삽으로 퍼서 옮긴다면 하루 종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작은 양이 흙밖에 옮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골짜기는 골찾기는 한두 번의 움직임으로 한 사람이 하루 종일 할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일을 합니다. 사역적인 측면에서 교회는 이와 같습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교회라는 공동체는 능히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없는
(01:07)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고 한 사람이 전할 수 없는 구원의 소식기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되어이 일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지순의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님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님
교회에 일치한 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분쟁과 다툼과 분쟁이 없는 상태는 교회가 일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쟁이 없는 것이 곧 화목한 것은 아닙니다.
(02:00) 어느 한쪽이 힘의 우위로 승리했거나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함으로도 분쟁이 없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기적이지만 분쟁으로 인한 손해보다 욕망을 억제하여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바른 관계와 온전함.
바른 관계와 온전함.
교회 일치는 바른 관계와 온전함을 추구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삼이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지체들 사이에서 바른 관계를 수립해야 할뿐 아니라 교회 자신의 온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
바른 관계 추구
바른 관계 추구
첫째로 교회 일치는 바른 관계에서 비록됩니다.
(02:54) 다른 관계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다른 대상과 어울려질 어울어울어질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지정된 자리에서 존재의 목적에 합당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두 대상과 관련됩니다. 먼저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전도가 그 관계를 새롭게 어 맺게 하는 것이라며 목양은 그 관계를 심어하고 지속하게 하는 성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온전하고 바른 관계를 통하여 일치를 이하과의 온전한 관계는 사랑 안에서 이어집니다. 따라서 교회 일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03:50) 하나님을 상한 지식과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때 비로소 신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교회 안에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랑 안에서 진리로 말미암아 하나된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일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뜻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사람들을 향해서 올바른 태도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신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정하신 질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한 질서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올바르게 사랑합니다. 자기의 욕망에 따라 그 질서를 전복하지 않습니다.
(04:43) 그러나 신자는 여전히 죄인이고 지상의 교회도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질서가 깨뜨려질 때도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어집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용서와 사랑입니다. 신자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 교회는 일체를 더 온전히 이루어 갑니다. 사랑은 정의를 폐제하지 않고 정의는 사랑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
온전함을 추구함.
온전함을 추구함.
둘째로 교회 일치는 교회 자신의 온전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에만 만족해서 안 됩니다.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05:37) 신자 각 사람의 온전함을 위한 추구는 곧 교회 공동체가 온전해지도록 애쓰는 것입니다.이 이 일은 온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신자가 온전하게 되고자 하는 동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교회의 불일치 원인
교회의 불일치 원인
교회가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다툼 때문입니다. 다툼 때문에 교회는 은혜받는 신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존재 목적을 향해 힘 있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교에서 다툼이 일어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극적: 영원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
소극적: 영원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
소극적인 차원에서 다툼의 원인은 영원한 것들에 대한 신자의 무관심 때문이니라.
(06:31) 자 안에 있는 영원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은 세상의 자랑과 영광을 추구하게함으로써 교회의 일체를 깨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은혜 임하는 은혜는 우리의 영혼을 순전하게 하고 지성을 밝게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같이 있는 것인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합니다. 사물에 대한 분명한 가치를 삼단할 수 있는 지혜의 축도는 진리로부터 옵니다. 진리는 완전하며 영혼을 지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걷게 하시는 길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것들을 향해 걷게 하십니다.
(07:22) 분께서는 신자가 세상적인 것에 대한 소명에서 벗어나 영원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기를 바라십니다. 신자가 은혜를 많이 받으면 관심의 대상이 세상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옮겨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영원한 것을 사모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임을 스스로 선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잠시 있는이 세상에 골물하른 신자를 끊임없이 일켜 영원한 곳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ধ্য으로써 교회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죄가 영원한 곳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개인의 신인 계획에 인의 신재가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갖고 헌신한 것을 의미합니다.
(08:20) 이것은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눈을 돌려 영원한 가치에 대한 거룩한 소원으로 불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무관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됩니다. 교회의 머리신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도 영원합니다. 그분의 영광과 권세는 영혼에 속한 것이며 그분의 위격도 영원합니다. 그분의 백성 역시 영원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니 영원한 영혼과 영원한 것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우리 목사님
적극적: 교만과 이기심.
적극적: 교만과 이기심.
적극적인 차원에서 다툼의 원인은 신자의 교만과
(09:24) 이기심 때문입니다. 신자의 교만과 이기심이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킵니다. 1.
교만.
교만.
교만은 사물들의 질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판단이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수많은 분쟁에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대한 탐욕이 없어 보이는 신자 사이에서도 수많은 다툼이 일어납니다.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욕망은 없을지 모르나 사물 질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 묻지 않게 더러운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판단만을 신뢰하며 고집하는 것 가장 큰 세속적인 욕망 곧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10:22) 모든 즐거움과 만족의 궁극적인 목적과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만 점에서 교만은 모든 악덕의 아비입니다. 교만은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게 하고 자신의 뜻을 쫓게 합니다. 이러한 교만으로 인해 교회는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분쟁과 다툼에 휘말립니다. 따라서 신자는 끊임없이 상물들의 질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그리스도와 성경의 증신에 부합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진리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삶을 개혁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공동 교회 공동체적으로 사랑의 질서를 재편하는데 일치된 방향을 갖게 됩니다.
이기심
이기심
이기심이란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자신의 중심 축으로 삼아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행복과 안영의 기회해야만 해야 할 것이냥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11:25) 신자가 이기심이 가득할 때 교회는 인치를 해주지 못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각자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선악의 판단을 내린다면 교회는 치열한 다툼의 장이 될 것입니다. 신자가 교회 안에 있는 것들을 두고 자기 자신의 헛된 유익을 위해 끊임없이 다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기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 사랑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버틸 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만이 하나님 앞에서 그릇된 자기 사랑을 깨뜨립니다. 이것이 신자가 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일치가 이루어지는 방식
일치가 이루어지는 방식
이제 교회 안에서 어떻게 올바른 일치가 이루어지는지 생각해 봅시다.
(12:20)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자 간의 일치는 원리적인 일치와 실제적인 일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이도 일치는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첫째로 원리적인 일치입니다. 원리적인 일치는 신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모든 신자는 원리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으므로 그 누구도 교회 일치 밖에서 복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그리스도께 젖붙쳐진 신자로서 함께 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지체와 공동체로 존재합니다.이는 이는 지상에 있을 때뿐 아니라 천상에 이른 후에도 계속될 영적인 연합입니다.이 >> 연합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13:14) >> 이러한 원리적인 일치는 어떠한 때에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일치의 본질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불변하는 영적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실제적인 일치입니다. 실제적인 일치는 그리스도를 향한 신자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자 각 사람이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는 가운데 교회는 일치를 도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 개개인의 성화의 진은 곧 교회의 일치를 촉진합니다. 상교회가 하나님을 섬길 때 실제로 것은 바로 실제적 연합의 일치입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위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랑의 질서가 재편됨으로써
사랑의 질서가 재편됨으로써
실제적인 일치는 사랑의 질서가 재편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14:13) 교회는 원리적으로는 이미 일치를 이루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온전히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온전히 진리를 붙들지 못하고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제적인 일치를 이루려면 사랑의 질서가 재편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어 놓으신 질서를 신자 개개인이 마음 안에서 버렸을 때 일치가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의복과 몸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의복은 몸을 위해 있습니다. 그런데 의복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의복을 사랑하면 올바른 삶의 질서는 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질서를 올바르게 올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15:06)
개인적으로: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사랑의 질서는 개인적으로 신자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 재편됩니다. 죄가 참된 일치를 이루려면 자기를 중심으로 삼는 사랑의 제서가 깨뜨려지고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는 사랑의 질서를 이루어야 합니다.이 일은 신자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회개: 자기 사랑의 질서를 버림
첫째로 신자는 회개를 통하여 자기 사랑의 질서를 버립니다. 자기 사랑의 질서 한가운데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인데 말입니다. 인간의 자기 사랑은 사물의 질서에 대한 자기 중심속으로 나타납니다.
(15:57)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사물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항상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선 것을 누이치게 합니다. 신자는 자기 깨어짐의 경험 안에서 부당한 자기 중심성에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죽음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신 십자가의 죽음이 자신의 영혼과 본성 안으로 들어오는 실화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런 경험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다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6절.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2천년 전 십자가의 죽음이 성령을 통하여 현재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16:51) 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것이 자신의 자신 안에 있는 죄 때문에 절감하는 것입니다.이 사실 앞에서 신자는 철저하게 회개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성령께서는 신자의 죄의 성향을 죽이십니다. 예. 목사님 신자의 본성이 죽는 그만큼 신자 안에 새생명은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신자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현재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자기 중심성과 자기 사랑이 깨어질 때 진자는 비로소 자신이 설정한 사물들의 질서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회개 안에서 경험되는 자기 깨어짐은 곧 죄에 대한 사랑과 자기 의에 대한 사랑이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7:52)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기쁨과 감격 가운데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자기 죽음의 경험은 신자의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성취되는 과정입니다. 자기 깨어짐을 경험함으로써 신자는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게 됩니다. 신자 개개인이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을 증진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세운 사랑의 질서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받아들일 때 교회는 공동체적으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의 진실한 회개는 필수적입니다. 진실한 회개 없이는 어느 누구도 자기 중심적 교만과 이기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18:43) 그리고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교회는 각 사람이 세운 사랑의 질서 안에서 분쟁에 휩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신적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임
둘째로 신자는 믿음을 통해서 신적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자기 깨어짐 속에서 자기 사랑의 질서를 버릴 때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과정이 항상 신자에게 이성적으로 납득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신자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많은 사랑의 질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를 따라 사람과 사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지정하고 있습니다.
(19:42) 신자는 비록 자신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깨달아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어진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보다 더 완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함으로써 자신보다 더 완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함으로써 신적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단지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사랑과 신뢰 표현입니다. 표입니다. 그리스도 이외 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굳게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
공동체적으로: 교회의 목적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랑의 질서는 공동체적으로는 각 신자가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자신의 인생의 목적으로 받아들림으로써 재편됩니다.
(20:43) 교회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복종을 교회 전체의 목적을 구현하는 일에 드림으로써 일치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명과 사역의 질서를 사모함.
교회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따라 기능하고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질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이 질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사역의 질서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생명과 사역의 질서를 사모해야 합니다. 먼저 생명의 질서입니다. 신자는 교회의 지체로서 하늘 생명을 받습니다.이는 하나님의 생명적인 은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신자에게 보어진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21:43) 신자는이 생명을 사모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떠나 그분 밖에서 얻는 생명 곧 참 생명과 유사하나 사실은 참 생명이 아닌 것을 삶의 온동력으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이 결심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생명을 그리스도를 통해 충만히 부어 주실 것이라는 신뢰를 표현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가이 생명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라며이 생명의 질서를 사모합니다. 다음으로 사역의 질서입니다. 교회는 >> 그리스도께서이 땅에 있었으면 하셨을 그 사역을 뒤 있습니다. 따라서 사역의 질서는 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성김을 실천하 필요한 교회 자신의 질서를 가르킵니다.
(22:36) 이 이 질서는 능률과 효율의 효율성의 질서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려면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지상과 천상의 자원을 주십니다. 그것으로 죄와 마귀를 이기게 하시고 그릇된 질서를 버리고 하나님 사랑의 질서를 세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능력은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원들을 함께 나누고 나누어진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때 교회는이 세상을 고치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힘 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역의 질서를 능과 효율성과 연관짓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함
교회는 생명과 사역의 질서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23:28) 그 질서를 함으로 사모할 때 교회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구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신자는 생명과 사역의 질서를 사모함으로써 자기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고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자기 홀로 믿었다면 행할 수 없는 섬김을 공동체적으로 감당할 감당하게 됩니다. 사도행절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남아 있던 제자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그의 필요한 질서를 사모했습니다.이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예고하신 성령이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24:18) 그래서 그들은 기도에 힘쓰며 그 질서를 사모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쓰더라. 사도행전 11장 14절.뿐만 뿐만 아니라 핍박을 받아 위기에 처할 때에도 교회가 교회의 존재 목적을 따라 섬김에 적한 질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험을 굽어 보시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기를 >> 다음에 모인 것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25:16) 사행전 4장 29절에서 31절.이 이 기도는 지금도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늘 큰 능력이 나타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실제적인 일치는 또한 하나님과의 교를 통해서 이룹니다. 이로서 교회의 일치는 각 신자가 삼과 얼마나 풍성한 교를 누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이 이러한 교리적 사실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들을 숙고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증진
하나님과의 교제 증진
하나님과의 교재를 통해서 교회는 실제적 일치를이 더불어 이로서 교회의 실제적 일치는 하나님과의 교재의 증진을 가져옵니다. 교회의 실제적 일치는 단지 교회 자신과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26:16) 교회는 이러한 일치 안에서 하나님과 더 깊은 교재를 누립니다. 하나님과의 교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누리게 합니다. 그 지식과 사랑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깊은 교재로 들어가게 합니다. 지식과 사랑이 교재의 깊이를 더하고 더 깊은 교재를 통해 지식과 사랑이 증진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사랑의 확장입니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교재에서 무어진 사람들을 그분과의 사랑의 교재 안으로 불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을 설득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이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7:14)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아멘.
지체와의 교제 증진
지체와의 교제 증진
삼위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는 교회의 지체간의 교재도 풍성하게 만들어집니다. 신자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에서 자라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지식과 사랑 안에서 지체를 섬기고 사랑하게 됩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재의 본질은 사랑이고이 사랑은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체도 사랑합니다. 요한 사도가 자신들의 교재 중심에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김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김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28:13) 우리가 이것을 쓰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교는 교회는 신자가 태어난 곳으로 그의 출생과 함께 파고든 어머니의 품입니다. 신자의 어머니로서 교회는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모든 선한 일을 하한 사람이 되도록 돌봅니다. 그 돌봄 안에서 신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지체와의 관계 안에서 날마다 발견합니다. 그리하여 혼자 믿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사랑으로 지체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진리에 합치됨으로 이루는 일치
진리에 합치됨으로 이루는 일치
신자의 교제의 중심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교회의 일치는 단지 제도나 교율에 의한 사율적인 일치가 아닙니다. 교회의 참된 일치는 진리와 사랑의 일치로 그것의 유일한 초점은 진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29:17) 그리스도는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일치를 세상에 보여 주려면 끊임없이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진리와 일치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 없는 교회의 모든 일치는 허위입니다. 진리가 먼저이고 일치는 그다음에 따라옵니다. 진리가 있고 그 진리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하나되게 합니다. 교회의 일치는 결코 진리를 폐제하는 방식으로 추구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찾고 추구하는 신자의 마음과 영혼의 움직임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단순한 솔직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진리와 합치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과 행동, 그 사람의 전 존재가 진리와 끊임없이 일치를 이루려 하고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30:20) 그 진실 안에서 신자는 진리를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들과 연합을 이룹니다. 그 연합 안에서 일치됨을 기뻐합니다. 그 일치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사물의 질서를 사랑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자신의 존재 목적과 합치시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은 그가 얼마나 많은 진를 알고 있는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 있는 지식을 마나치열하게 자신에게 합치시키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진리의 자신을 확치시키는 일은 진실로 자기 죽음을 필요로 합니다. 단지 진리를 알뿐 거기에 자신을 합치시키지 않는 삶으로는 결코 진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31:14)
맺는 말
맺는 말
지금 이 순간에도이 땅에 있는 교회들은 세상에 의해 고통받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지체들에 의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세상에 가르치고 그 영원한 것들로 인하여 즐거워해야 할 교회가 세상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충돌과 분열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을 절대적인 것으로 것이라고 생각하여 교회는 갈등을 겪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아름다운 손되고 신자의 영혼은 추루해집니다. 잡히 시날 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32:12) 요한복음 17장 11절. 그리스도의 간절한 소원은 교회가 하나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세상의 집단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이 세상의 새로운 삶의 질서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사랑과 진리를 중심으로 하는 질서입니다.이 일을 위해 신자의 삶은 하나님 사랑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사랑의 질서로 이루어진 나이고 교회가 보여줘야 할 일치가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야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신자는 늘 진실한 자기 깨어짐을 경험해야 합니다. 해와 믿음을 통해 존재의 질서와 가치를 그리스도께 두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33:02) 사람이 영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질사 아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참된 행복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교 안에서 터가는 지식을 통해이 세상을 위한 지혜자가 됩니다.이 지혜의 빛 아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안의 복음은 세상에 영향을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진리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 아멘.
6. 지상교회의 일치의 이상적인 상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이것에 비추어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