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Notes
Transcript
서론
서론
홍수가 그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모든 생명을 죽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언약을 세우시고, 무지개를 그 증표로 주셨습니다.
무지개는 비가 온 후에 볼 수 있습니다. 홍수로 모두가 죽었다면 그 이후에 나타날 무지개를 볼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무지개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무지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증표이지, 사람을 홍수로 죽이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서 구원을 얻은 노아와 가족들이 이제 땅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들은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갑니다. 그리고, 땅을 경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청지기로 부르셨고,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라고 한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와 같이 일하는 존재입니다.
베르그송의 호모 파베르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그 노동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노아는 포도주를 경작하고 그 열매로 만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와인을 마시고 취한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뭐가 된다고 합니까? 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술에 취해서 벌거벗은 것은 인간답지 못하고 동물과 같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권면합니다. 다른 말로 바꿔서 말하면, 동물이나 짐승이 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그것이 본래 인간적인 것입니다.
짐승처럼 되면, 나타나는 주된 특징이 다른 것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인간의 특징입니다.
밭을 경작하고 농사를 짓는 것도 인간의 특징이고, 옷을 지어 입는 것도 인간의 특징입니다.
부모님도 못알아본다고도 합니다.
자기의 기분과 태도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멀리보지 못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서 함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건강한 자아를 추구하지 못하고, 자기를 올바르게 사랑하지 못하고, 거짓된 방식과 잘못된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있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 참입니다. 술에 취하면 진실을 말하기도 합니다만, 그 진실은 자신이나 상대방을 위한 진실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술을 같이 마셔보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술을 마셔서 모든 진실을 다 알아보겠다는 말이 아니라, 술을 마셨어도, 자신을 컨트롤 하거나 올바르게 행동하는 가를 알아보는 것이지요. 자기통제를 빼앗기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지. 술에 취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을 무슨 말하는지 들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노아의 죄는 그가 술에 취하는 바람에 짐승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짐승처럼 주변 상황을 살피지 못하고, 자기를 인간답게 대하지 못한 것이 그의 죄입니다.
아버지의 죄에 대한 아들들의 반응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 아들 중에 함이 먼저 아버지가 벌거 벗음을 보았습니다. 그 아버지의 죄, 혹은 그의 연약함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부족한 모습을 함은 자신이 덮어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은 아버지의 연약한 모습을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고 맙니다.
그리고, 다른 두 형제는 아버지의 하체를 가려줍니다. 아버지의 연약함을 덮어주었다는 것이지요.
노아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낸 함과 그의 아들을 저주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 복을 빌어줍니다. 물론, 이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한 것은 아닙니다.
노아가 기분이 상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연약함과 허물을 드러내는 일과 그것을 감싸고 덮어주는 일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연약함을 보듬어 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사랑으로 보듬고 덮어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시고 계시면 잘 하는 것입니다. 계속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찬양: 그 사랑.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그 사랑
<기도 제목>
용서하고 용납하고 포용하는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베네주엘라 지진 피해의 구조와 구호, 회복을 위한 기도
개인과 가정을 위한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