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로 살게하는 능력

복음의 능력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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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복음의 능력 시리즈 설교 중에 있습니다.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고 있으십니까? 혹시 잃어버렸던 열정이 회복되고 계십니까? 복음으로 구원받은 감격이 회복되고 계신가요?
아니면, 여전히 그냥 그대로 이신가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또 다시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 도전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만큼의 가치로 나를 사랑하시고 귀중하게 여기신다. 이것을 여러분 마음에 날마다 선포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두려움과 수치심을 가져가실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복음의 능력 시리즈 설교를 다할 때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리즈 설교가 끝나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복음을 자신에게 날마다 선포하는 삶을 살아보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정말 여러분들의 삶을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주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의 능력 시리즈 5번째 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사명자로 살게하는 능력”입니다.
사명자라고 하니까, 좀 거리감이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명자를 풀어서 말하면,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좀 헷갈리는 사명과 소명을 좀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게될 때,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소명은 영어로 Calling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정체성과 자리입니다. 사명은 영어로 Mission입니다. 그 부르심 안에서 내게 맡기신 책임과 일입니다. 소명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사명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렇다면, 사명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사명자입니다.
어떤 이는 목사로, 어떤 이는 학교 선생님으로, 어떤 이는 비지니스를 하고, 어떤 이들은 직장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소명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 자리로 보내신 것이지요. 또 Calling이라고 한다면 우리를 그 자리에서 특별히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Mission, 곧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소명, 곧 부르심의 자리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으로, 어떤 사람은 직장으로, 어떤 사람은 교회의 직분으로, 어떤 사람은 사업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복음을 따라 살며,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한다는 근본 사명은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서리집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소명이라면, 그 소명에 맞게 섬기는 것이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살 때에 그 모습으로 세상에서 소명을 받은 사명자로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를 생각해보면, 지난 25년간 우리 교회가 흩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소명을 받아 사명을 지킨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사명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명자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앞 뒤의 구절들을 참고해보았을 때에 그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용기이고,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용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앞에서 잘 무너지는 존재입니다. 제가 몇 번 무기력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기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무기력은 무엇인가를 시도했지만 반복해서 실패하거나 좌절을 경험할 때,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이상 시도할 힘과 의지를 잃어버리는 마음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명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이기게 합니다. 무기력도 이기게 합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이 주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두려움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실패의 기억이 있어도 다시 복음 앞에 서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산다는 것은 “해봅시다”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작정 해봅시다라는 낙관주의가 하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며,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실 것을 믿기 때문에 다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다시 해보는 것입니다. 대단히 역동적이고 생동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믿음으로 사는 사명자는 육신은 후패해져 가더라도 활력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분명,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그 날에는 우리는 이러한 활력과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그 능력으로 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자격없는 자를 사랑하여 자격있는 자로 만들어 가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 주에 이미 말씀을 나누었고, 여러분들도 너무도 잘 아시는 것이기에 굳이 오늘 설명할 필요는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략하게 다시 말씀드리면, 구속적인 사랑으로 사는 것이지요. 자격없는 이,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 친구가 되서 맨날 쌈박질 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지만 사랑으로 서로를 포용해 가는 것이지요.
절제입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고 더더더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신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 입술을 제어하는 삶. 욕구가 탐욕이 되지 않도록 다스리는 삶, 양보하는 삶, 참아주는 삶.
절제는 단순히 욕심을 참는 정도가 아닙니다.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상황에 압도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맑은 정신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입니다. 사명자는 능력만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만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능력 없는 사랑은 쉽게 지칩니다. 사랑 없는 능력은 거칠어집니다. 절제 없는 능력과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사명자는 주를 증언하며, 이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입니다.

세상 속에서 주를 증언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단히 불편하고 거리끼는 일입니다.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었지요.
고린도전서 1:23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전하는 자를 공격하거나 피하거나 할 것입니다. 불편한 일이지요.
또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조롱하고 무시할 것입니다.
아마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가까운 사람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는 재빨리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고 할 것입니다.
또는 힘 있는 사람들이라면 단지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순한 사람이라고 간주하고 여러가지 처벌이나 제한을 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사명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삽니다. 그 길이 고난 받는 길이라 할지라도, 사명자는 주와 함께 고난 받음을 기뻐하면서 그 길을 걸어가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명자로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솔직히 말해봅시다.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로 사는 것은 내 힘과 의지로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에서 말합니다. 너희의 행위대로가 아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서 할 수 있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그 복음이 우리의 소명을 기억하게 하시고, 소명에 합당한 사명을 감당하게 만드신다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12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복음을 증언하느라 고난을 받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 자기를 구속하신 이를 알고 그가 끝까지 지키신다는 그 복음을 믿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우리를 구원받은 사람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사명자로 살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실패의 기억도 있습니다. “해도 소용없다”는 무기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도 여러분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그 은혜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지키신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는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분을 압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우리를 부르신 주님,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주님, 그리고 끝까지 우리를 지키실 주님을 압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능력에 힘입어 다시 일어나십시오. 여러분이 부름받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두려움으로 물러서지 말고, 사랑으로 사람을 품고, 절제로 자신을 다스리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명자로 살아가십시오.
복음의 능력으로 소명의 자리에서 사명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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