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의 신앙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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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는 새롭게 단장한 이 공간에서 첫 예배를 드립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분들이 땀 흘려 수고하셨고, 그 수고 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이 첫 예배를 앞두고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본문을 우리에게 주셨을까’ 고민하며 기도했을 때, 제 마음에 떠오른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존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24장에는, 다윗과 사울이 한 굴에서 마주치는 긴장된 장면이 펼쳐집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온 사울이, 하필 다윗과 그 부하들이 숨어 있던 바로 그 굴로 혼자 들어옵니다. 다윗에게는 원수를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기회 앞에서 손을 거둡니다. 그리고 도리어 굴 밖으로 나가 사울 앞에 자기를 드러냅니다. 그 한 장면 속에 ‘존중의 신앙’이 무엇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닮고자 따르는 우리가 이 존중의 신앙을 함께 배우기를 원합니다.

대지 1. 다윗의 사람들 — 아직 자라야 할 신앙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 날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두고 ‘네 생각에 좋은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사기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의 말이 바로 그 소견의 신앙입니다.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 내 감정에 시원한 것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되갚음이 아니라 용서, 이것이 우리가 배운 신앙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다윗이 믿는 하나님이 좋아서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거듭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앞서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하자고 했을 때에도 반대했고, 이제 사울을 만났을 때에는 죽이자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성도를 함부로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아직 미숙한 것입니다. 미숙하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라야 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사람들의 태도가 좋게 느껴지는 분은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내 감정으로는 사울을 처단하고 왕위를 빼앗는 것이 당연하고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이 세우신 질서는 나의 감정과 같지 않습니다.

대지 2. 다윗 — 인격이 아니라 직분을 존중하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 24:6)
사울은 누가 보아도 왕으로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처단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옳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왕이라는 직분을 받은 다윗이, 같은 왕의 자리에 세움 받은 사울을 존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무엇을 보고 사울을 존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인격을 보고 그가 왕이 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직분, 그 직분 때문에 존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직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존중은 침묵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의 존중은 그저 입을 다물고 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지만, 굴 안에 가만히 숨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굴 밖으로 나가 사울을 향해 소리쳐 부르고, 자기 손에 들린 옷자락을 들어 보이며 진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삼상 24:11)
보십시오. 존중은 불의 앞에서 비겁하게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내게는 왕을 해할 마음이 없습니다’라는 진실을 분명하게, 그러나 공손하게 사울 앞에 내어놓습니다. 존중은 할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바른 태도로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진실을 자기 손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판단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삼상 24:12)
이것이 존중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진실은 분명히 말하되, 보응은 내 손에 쥐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 다윗은 사울을 향해 할 말을 다 했지만, 사울을 심판하는 자리에는 끝까지 앉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재판장 되신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설명해 주는 말씀 —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1)
교회의 직분뿐만 아니라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니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행하는 어떤 불의에도 무조건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보여 준 것이 바로 그 균형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잘못된 행동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고, 자신이 받은 부당한 일에 대해 분명히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를 자기 손으로 해하지 않았습니다. 직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을 세우신 하나님의 질서를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 늘 감사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 성도분들도 많이 부족한 저를 ‘목사’라는 직분을 맡은 자로서 존중해 주시고,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저를 ‘목사’로서 존중해 주십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태도입니다. 반면 교회 밖에 계신 분들이 제가 목사인 줄 알면서도 하대하시는 것은 그러려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시는 분 중에서도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하거나 하대하시는 분을 보면, 그분의 신앙이 아직 자라야 할 부분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사람들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대지 3. 존중의 신앙은 겸손과 순종으로 자란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고자 따르는 우리가 배워야 할 존중의 신앙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바로 ‘겸손’과 ‘순종’입니다. 사울에게는 이 겸손과 순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외면하시고 다윗을 세우신 것입니다. 직분을 맡은 자는 겸손해야 하고, 직분을 맡은 자에게는 순종해야 합니다.
첫째, 겸손입니다.
직분을 맡은 자가 겸손한 것은, 내가 상대방보다 못나거나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덕을 본 사람들이기에 늘 겸손할 뿐입니다. 예수님 덕에 직분도 받고, 예수님 덕에 이렇게 먹고, 예수님 덕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과 초범이 전과 2범에게 자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겠습니까?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둘 다 그냥 죄수이고, 갇힌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둘째, 순종입니다.
직분을 맡은 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 사람이 순종할 만한 대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직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윗의 순종은 사울의 악에 동조하거나 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부당함에 대해 할 말을 했습니다. 다만 그를 자기 손으로 심판하거나 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순종이었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사울을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죽음이 코앞에 있었고, 갖은 고초를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보응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사람을 향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그 직분을 세우시고 또 친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무너집니다
다윗의 이 존중 앞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이 소리 내어 울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삼상 24:17)
다윗이 칼로 이루지 못했을 일을, 존중이 이루어 냈습니다. 원수의 마음을 무너뜨린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손을 거둔 존중이었습니다. 존중의 신앙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칼보다 강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로 — 이 공간에서 배우는 존중

이번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안수집사님과 집사님들을 자주 뵈었습니다. 안수집사님은 동준건설이라는 건설사의 대표이시고, 임창선 집사님과 김양기 집사님이 함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대표님이시니 어찌 모든 부분이 다 마음에 드시기만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한 번도 그런 내색 없이 늘 잘 서포트하시는 두 분을 보면서 참 훌륭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수집사님과 집사님들이 정말 제가 ‘목사’라는 이유로 너무 잘 도와주시고 정중하게 대해 주시는 모습이 매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존중의 신앙입니다.
우리 교회는 본래 갯벌이었던 지역이라 지반이 약해서 건물이 살짝 기울었습니다. 수평을 잡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이 교회를 30여 년 전에 지을 때, 목사님과 성도들이 직접 벽돌을 나르며 정성으로 지으셨지만, 전문가들이 지은 건물이 아니다 보니 기초공사가 지금처럼 되지는 못했습니다. 처음 부임해 교회를 보고, 또 공사 때마다 기울어진 부분을 볼 때마다 ‘왜 기초공사를 제대로 안 해서 교회가 기울었을까’ 하는 생각과 불평이 마음에 올라왔습니다. 그것이 너무 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볼 때마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짓는 것이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참 애쓰셨다. 자기 시간과 노력과 재정을 들여 이렇게 교회를 세우신 것이 대단하다. 지금도 쉽지 않은데, 30년도 더 전에 이렇게 하셨으니 정말 대단하시다.’ 그러자 이제는 그 기울어진 부분을 볼 때마다 도리어 마음이 숙연해지고, 고개가 숙여지고, 경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평이 존중으로 바뀐 것입니다.

결론

다윗이 보여 준 존중의 신앙은 얼핏 보면 사울을 살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존중은 결국 다윗 자신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살렸습니다. 사람의 눈에 손해처럼 보이는 존중이, 하나님의 손에서는 모두를 살리는 길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한 달 동안 수많은 분들이 애써 이 공사를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 수고를 먼저 마음 깊이 존중하고 감사합시다. 함께 세워 가는 일이기에, 더 좋게 다듬어 갈 부분이 보이면 그것 또한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누면 됩니다. 존중은 불만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먼저 두고 사랑 안에서 진실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이 교회를 세워 갈 때에, 서로서로 존중하며 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 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도 사울처럼 묻지 않고 스스로 확신하며 살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자리와 그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할 말은 바른 태도로 하되, 갚으시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 존중이, 오늘 이 새로운 자리에서 우리 교회를 살리고 세워 가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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