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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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생명의 길을 걷는 복 있는 사람
매일성경 7월과 8월은 시편과 이사야서를 살펴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너무나 익숙한 구절입니다. 성경암송대회 단골 같은 범위로 제시되고, 이사나 개업심방 때 선물로 드리는 액자에 빠지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토록 사람들은 시편1편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짧은 6절의 시가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우리 인생의 길을 잘 요약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길을 두 개로 정의합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걷는 사람이 복이 있을까요? 당연히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어디가 생명의 길인지, 사망의 길인지를 잘 몰라 그 복을 놓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생명의 길을 걷는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첫 번째 시를 통해그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있습니다.
2.복 있는 사람
먼저 복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것을 단절합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기자가 말하는 부정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①악인들의 꾀 ②죄인들의 길 ③오만한 자들의 자리입니다. 그냥 읽다보면 놓치기가 쉬운데 사실 이 부정적인 것들을 단절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혼자가 아니라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원문에서 복 있는 사람은 단수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은 어떻습니까? 복수입니다. 혼자 싸우는 것과 여러 명이 싸우는 것, 누가 더 힘이 들겠습니까? 혼자 싸우는 것은 버겁습니다. 그리고 외롭습니다. 악인들의 조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부정적인 것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불안정하고 삐뚤어진 자들입니다. ‘죄인들’은 과녁에서 빗나간 자들, ‘오만한 자들’은 냉소적으로 선악의 기준 자체를 비웃는 자들입니다. 악인들에서 죄인들로, 죄인들에서 오만한 자들로 넘어갈수록 부정적인 영향력이 더 깊어지고 강해집니다. 그런데 만약 이들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이들이 머무는 곳에서 벗어나지 않고 서 있다면은요? 시간이 흘러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기까지 한다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그만큼 더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음으로써 부정적인 것들을 단절합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친 것처럼,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의 진미를 거부한 것처럼 말입니다.
대신 복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것에 참여합니다. 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악인들과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이 한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방법들을 동원했겠습니까? 처음에는 달콤하게 유혹을 하고, 그래도 꿈쩍을 안하니까 온갖 핍박과 고난으로 넘어뜨리려 했을 것입니다. 밀고 당기기의 귀재이기 때문에 오감을 자극하며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복 있는 사람은 그 부정적인 것을 단절하고 긍정적인 것에 참여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긍정적인 것, 선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은 ‘오직’으로 시작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길이며, 생명의 길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그 말씀으로 인해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즐거움, 부요함과는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악인들과 죄인들,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며 비웃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얻습니다. 이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고,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며, 내가 평생에 앉아야할 자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워할 수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3.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기자는 이처럼 복 있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비유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스스로 그곳에서 자랐을까요? 자연적으로 물줄기가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던지, 아니면 누군가가 이 나무를 그 시냇가에 심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이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흐르는 시냇물처럼 끊임없이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더위가 오고, 가무는 해에도 잎이 청청하며 그 결실이 그치지 않는 나무처럼, 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4.악인들의 겨
반면에 악인들은 어떨까요? 시인은 그들을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합니다. 겨는 타작마당에서 알곡을 걸러낸 다음 모아둔 쭉정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겨가 한 곳에 많이 모여 있다고 한들, 이것들은 사람의 입김 한 번에 다 흩날리고, 작은 바람에 흩어질 만큼 가벼운 존재들입니다. 이 말은 앞서 살펴 본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사람들의 결말은 형통이 아니라 멸망입니다. 마지막으로 5절과 6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5절과 6절을 보면 드디어 ‘의인들’ 복수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심으신 복 있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의인들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걷는 믿음의 길은 외롭고, 힘이 들고, 고난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려고 하면 할수록 세상과 부딪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구별되어 살다가, 우리의 삶을 다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며 의의 면류관을 씌어주실 것입니다.
그 날을 고대하며 오늘 하루도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것은 단절하고, 긍정적인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복 있는 사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아침저녁으로 묵상하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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