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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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복 있는 사람
어제는 시편 1편을 통해 생명의 길을 걷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것을 단절한다고 했습니다. 부정적이란 것은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부정적인 것들을 단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소수와 다수의 싸움이고, 부정적인 영향력은 뒤로 갈수록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과감히 그 부정적인 것들과 절연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이켜 긍정적인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아침저녁으로 그 말씀을 묵상합니다.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그 소리를 들으며, 정말 그러한가? 곱씹어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합니다. 말씀이 삶에 녹아든 사람은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았으나 말씀을 통해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그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시편은 그런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빗대어 표현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스스로 그곳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곳에 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하여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하는 모든 일을 형통으로 인도합니다.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시냇물은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씀’입니다.
원래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시냇가가 아니라 황폐한 사막에 가시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눈과 귀가 닫히고, 마음의 문도 닫혀 있었습니다. 당장 풀무불에 던져져서 잿더미로 변해도 핑계 될 수 없는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어떤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택하셔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영안을 뜨게 하시고, 들을 귀를 열어주시며,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걷어주심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황폐한 사막에서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옮겨 심어주신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긴 자들은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소음이었다면 이제는 메말랐던 심령에 은혜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자들은 더위가 와도, 가무는 해에도 끄덕 없습니다. 이제 그의 뿌리가 말씀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하나님의 심판에 견디지 못할 것이며, 끝끝내 망하게 될 것입니다.
2.헛된 반역
이렇게 길게 어제 본문을 다시 말씀드린 이유는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편과 1편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공포, 추리, 코미디, 다큐와 같은 장르가 있는 것처럼, 시편에도 장르가 있습니다. 찬양, 탄식, 감사, 지혜, 제왕시 등 시편의 성격이 비슷한 시들을 묶어서 이렇게 구분 짓습니다. 그 가운데 시편 2편은 흔히 ‘왕의 시’로 구분됩니다. ‘왕의 시’라는 것은 고대 시대 왕이 즉위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시편 2편은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메시아 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 2편을 ‘왕의 시’, ‘메시아시’로 보는 것과 동시에 왜 이 시가 1편과 함께 시편 전체의 서론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편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2편은 ‘어찌하여..’라는 의문부사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경고를 했건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는 탄식이 섞여 있습니다. 1편에서 어떤 경고를 했습니까?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망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누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습니까? 이방 나라들, 민족들,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합니다. 이 또한 1편과 연장선에 있습니다. 1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복수가 단수를 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논리와 이치로 본다면 이것은 말이 안되는 싸움입니다. 지금 힘을 모으고 있는 복수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소위 세상에서 다들 한가닥 하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고 살 수 있는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일반 백성 한 두 사람이 싸운다면 그것은 당연히 바위에 계란치기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지금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겠노라 분을 내고, 헛된 일을 꾸미고, 나서며, 서로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꾸미다’는 동사의 원어인 ‘하가’는 복 있는 사람의 ‘묵상하다’와 의미가 같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열심을 내고 있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과연 하나님과 악인들의 싸움, 상대가 될까요?
3.하나님의 비웃음과 대응
4절과 5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들을 바라보며 비웃으십니다. 왜 그러시겠습니까?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사건을 떠올려보십시오. 시날 땅에서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탑을 높이 쌓아올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것은 가소로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자 백성들은 더 이상 탑을 쌓지 못하고 흩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대적들이 꾸미는 일은 헛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를 원한다고 발버둥 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비웃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 방통과 같은 책사들을 다 모아서 하나님을 대적한다 해도,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 작은 손실 하나 끼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하나님의 왕권
시편29편을 보면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하나님은 어떤 인간적인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대적자들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 땅을 사랑과 공의로 정복하고 다스릴 왕을 세우십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빼앗아 오기 위한 왕이 아니라 도리어 저들을 부끄럽게 만들 왕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열방에 많은 민족들과 군왕들이 기름 부음 받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리석다 말하며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권세는 능치 못함이 없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 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같이 대적자들의 견고한 진을 질그릇처럼 부실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누가 정말 걱정해야 되겠습니까? 헛된 일을 꾸미며 하나님과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대적자들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2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들에게 입 맞추는 것은 애정 표현이 아닙니다. 자신이 모실 군주에게 항복하고 충성을 서약하는 행위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을 나의 주군으로 모시고, 그분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5.결론
시인은 군왕들에게 지혜를 얻으라고, 재판관들에게 교훈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 지혜와 교훈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 우리가 살펴본 시편 1편의 그 말씀입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요, 오늘 2편이 선포하는 그 왕,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과 2편은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헛된 일을 꾸미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아들에게 입 맞추어 항복한,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까?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2편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로 끝을 맺습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말씀으로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시편 전체를 여는 이 두 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참된 복은 세상의 권력과 지혜와 반역에 있지 않고, 오직 말씀을 묵상하며 그 아들 앞에 무릎 꿇는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모략을 꾸미고 힘을 합쳐도 하나님 앞에서는 헛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 헛된 반역자 중 하나였던 우리를,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아들을 통해 살리셨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아들 앞에 나아가 입 맞추어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계획과 자랑을 내려놓고, "예수는 나의 주"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다스림 아래 온전히 엎드리는 것, 그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결단입니다. 그렇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약속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그 왕을 모시고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