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도자는 어떻게 기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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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기도자는 어떻게 기도하는가
[서론]
시편에는 다윗의 시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다윗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표제에 나오는 “다윗의 시”라는 말이 반드시 다윗이 직접 쓴 시만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과 관련된 시, 다윗에게 헌정된 시, 혹은 다윗 왕조의 전통 안에서 불리던 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편에 다윗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참 많은 고난을 겪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밧세바와 관련된 큰 죄를 지은 죄인의 자리에도 섰습니다.
또한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당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두려움, 억울함, 탄식, 분노, 회개, 감사, 기쁨, 찬양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지 고난을 많이 겪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께 피했고, 억울할 때 하나님께 호소했고,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시편 5편은 바로 그런 다윗의 기도입니다.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참된 기도를 배울수 있습니다.
[본론]
첫째,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깁니다
1–3절입니다.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나의 탄식 소리를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사정을 모르시기 때문일까요? 다윗이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다윗의 형편도 아시고, 마음속 깊은 탄식도 아십니다.
여기서 신음소리는 원어로 보면 ‘말없는 묵상’, ‘마음의 읊조림’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속울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말로 모두 표현할수 없어 속으로 끙끙대며 주님을 부르는 탄식입니다.
기가 막혀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때 그냥 주님만 부르며 신음하는 것도 주님은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께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려는 것입니다.
기도는 화려한 말의 나열이 아닙니다.
자신의 억울함과 두려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음까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의심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신뢰의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까 봐 불안해서 외치는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참으로 들어주실 분이라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자신도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더 높은 왕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은 자기 인생의 최종 결정권자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 뜻과 억울함과 사정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다윗은 아침에 기도합니다.
새번역에는 새벽이라고 나와있지만 아침이 좀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벽이나 아침이냐가 아닙니다.
시간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의 시작을 누구 앞에서 여느냐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 사정을 아뢴 것입니다.
자기 판단으로 움직이기 전에 주님의 뜻을 기다린 것입니다.
세상의 소음이 내 영혼을 사로잡기 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 사정을 맡기고, 내 뜻을 내려놓고,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 앞에서 열어야 합니다.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둘째,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4–10절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둘러싼 악인들의 거짓과 모함과 폭력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이 단순히 자신의 억울함만 토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4절은 원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는지 근거를 말합니다.
그 근거는 자기 억울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악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악인은 주님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다윗은 악인들의 거짓과 모함과 속임수가 단지 자신을 괴롭게 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거짓과 불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죄악을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은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7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집으로 나아갑니다.”
다윗은 악인을 고발하지만,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주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주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주님께 나아갑니다.
여기서 은혜는 히브리어로 ‘헤세드’, 곧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변함없는 인자하심을 뜻합니다.
참된 기도자는 악을 분별하지만 자기 의로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악을 악이라고 말하지만, 자신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임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집으로 나아간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로 열어 주신 은혜의 길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악인들만 정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입에도 진실하지 못한 말이 있었고, 우리 마음에도 악한 생각이 있었으며,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보다 내 감정과 내 뜻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의 은혜 없이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공의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내 앞에 주님의 길을 환히 열어 주십시오.”
다윗은 원수들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원수들 앞에서 자신이 주님의 길을 걷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풀리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길입니다.
거짓에 물들지 않는 길, 분노에 삼켜지지 않는 길, 악인의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 길입니다.
9–10절에서 다윗은 악인들의 말을 고발합니다.
그들의 입에는 진실함이 없고,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으며, 그들의 혀는 아첨만 일삼습니다.
그들의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음과 파멸로 이끄는 말입니다.
우리도 직장에서, 혹은 삶의 자리에서 이런 말의 공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를 무너뜨리는 거짓말들, 뒤에서 들리는 수군거림 앞에 우리의 마음은 무덤처럼 황량해집니다.
그때 다윗은 똑같이 진흙탕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악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고스란히 맡깁니다.
10절에서 다윗은 자신들의 꾀에 스스로 빠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는게 아닙니다.
그들의 악한 계획이 성공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의 악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직접 복수하지 않습니다.
악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처럼 참된 기도자는 악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복수하지도 않습니다.
악을 악이라고 말하되, 그 악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깁니다.
셋째,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습니다
11–12절입니다. 시편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그러나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뻐하고, 길이길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다윗은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여전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억울함도 남아 있고, 원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현실을 부정하는 기쁨이 아닙니다.
억울한 일이 아무렇지 않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윗은 악을 분명히 악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짓과 모함을 하나님께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악인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모두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큰 방패처럼 은혜로 둘러 지켜 주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고, 큼직한 방패처럼, 그들을 은혜로 지켜 주십니다.”
여기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의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지켜 주십니다.
작은 방패가 아니라 큼직한 방패처럼 은혜로 둘러 보호해 주십니다.
시편 5편의 시작과 끝을 비교해보십시오.
분명히 탄식으로 시작하지만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원망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복수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의 기도는 결국 기쁨과 신뢰로 마무리됩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시편 5편은 우리에게 참된 기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습니다.
가족이나 친구간의 오해의 말로 상처받습니다.
또는 SNS에서 하는 거짓과 모함 때문에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내 감정을 하나님께 쏟아놓되, 하나님의 성품 앞에서 그 감정이 정돈되게 해야 합니다.
악을 악이라고 말하되, 직접 대응하려 하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사람을 큰 은혜의 방패로 지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수 있도록 그 은혜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주님께 나아가오니, 주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님을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할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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