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중에도 눕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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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시편 4편입니다. 시편 4편은 고난과 억울함 속에서 드리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은 단순히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는 탄식시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편은 곤란 중에 부르짖던 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얻고, 마침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라고 고백하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의 삶에도 곤란한 시간이 있습니다. 억울한 말이 들릴 때가 있고, 오해를 받을 때가 있고, 현실은 답답한데 사람들은 헛된 것을 붙잡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밤이 되어 누워도 마음이 쉽게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염려는 커지고, 내일이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4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성도는 그런 밤을 어떻게 지나가야 합니까? 불안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평안히 잠들 수 있습니까? 다윗은 그 답을 환경의 변화에서 찾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정에서 찾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드시고, 들으시고, 안전히 살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성도는 곤란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곤란 중에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붙드심을 믿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습니다.
1. 전형상화: 곤란 중에 부르짖는 믿음
1절을 보겠습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내 의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자랑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기 의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언약의 하나님, 자기 백성을 의롭게 판단하시고 억울함 가운데서도 바르게 세우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의는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의입니다. 신약의 빛에서 보면, 우리의 참된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공로를 의지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다윗은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이끌어 주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곤란은 마음을 좁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고난은 사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좁은 곳에서 우리를 넓게 하십니다. 상황이 당장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고 믿음의 호흡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현재의 기도를 드립니다. “전에 나를 건지셨던 하나님, 오늘도 내 기도를 들으소서.”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은 막연한 긍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과거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2절에서 다윗은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 말합니다. 그들은 다윗의 영광을 욕되게 하고, 헛된 것을 좋아하며, 거짓을 구합니다. 이것은 단지 다윗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죄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헛된 것을 붙잡습니다. 진리를 거부하고 거짓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욕망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3절은 다윗의 확신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다윗의 평안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세상이 나를 오해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흔들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붙드십니다. 성도의 안전은 사람들의 평가에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안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기 것으로 삼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바로 이 은혜의 확실성을 붙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든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흔들릴 수는 있어도 버림받지는 않습니다. 넘어질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2. 형상화: 불안한 밤, 무엇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가
4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다윗은 이제 마음이 흔들리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분노할 수 있습니다. 두려울 수 있습니다.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죄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쉽게 말로 죄를 짓습니다. 판단으로 죄를 짓습니다. 원망으로 죄를 짓습니다. 불신앙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라는 뜻입니다. 밤에 자리에 누웠을 때, 사람에게 쏟아내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새벽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보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놓기 위해서입니다. 내 감정이 나를 다스리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일까”라고 묻습니까? 6절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사람들은 묻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 줄까?” 이것이 세상의 질문입니다. 누가 나를 만족시켜 줄까? 무엇이 내 삶을 안정시켜 줄까? 돈이 많아지면 평안할까? 인정받으면 괜찮아질까? 문제가 해결되면 마음이 놓일까?
물론 현실의 필요는 중요합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도 필요합니다. 삶의 안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더 깊은 것을 압니다. 인간의 참된 기쁨은 풍성한 소유에서 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참된 평안은 하나님의 얼굴빛에서 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이것은 제사장의 축복을 떠올리게 하는 기도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성도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얼굴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해 은혜의 얼굴을 비추시는 것, 그것이 성도의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의 불안도 결국 이 질문 앞에서 드러납니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빛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고, 나를 붙들고 계시고, 나를 들으신다는 사실보다 사람의 인정과 상황의 안정만을 더 크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재형상화: 하나님 안에서 평안히 눕는 삶
7절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는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한 사람들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자기 마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입니다. 성도의 기쁨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심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조건적입니다. 풍성할 때 기뻐하고, 줄어들면 불안해집니다. 인정받을 때 기뻐하고, 거절당하면 무너집니다. 일이 잘될 때 기뻐하고, 막히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상황보다 깊고, 감정보다 깊고, 소유보다 깊습니다.
그 기쁨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빛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내 의의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기에, 성도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마지막 안전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8절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절정입니다. 다윗은 문제 없는 삶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안히 눕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이 완전히 정리되었기 때문에 잠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때문에 눕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잡니다. 하나님께서 안전히 살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평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믿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안전은 통장 잔고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건강검진 결과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사람들의 평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오직 여호와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 앞에서 세 가지를 적용하기 원합니다.
첫째, 곤란 중에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걱정이 먼저 나오고, 원망이 먼저 나오고, 사람에게 하소연이 먼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기도로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이 기도가 오늘 우리의 첫 호흡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밤의 자리에서 마음을 살피십시오.
잠들기 전 마음에 분노와 염려와 원망이 가득하다면, 그것을 그냥 품고 잠들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살피고, 죄로 흘러가지 않도록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리십시오.
셋째, 하나님의 얼굴빛을 가장 큰 복으로 구하십시오.
우리는 많은 것을 구합니다. 건강, 회복, 형통, 관계의 해결, 경제적 안정도 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은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은혜를 가장 큰 복으로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여러 염려를 안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염려가 없어서 평안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는 염려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평안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문제가 다 해결되어서 잠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잠드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고백이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이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곤란 중에 우리를 넓게 하시고, 불안한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안을 주시며, 우리의 삶을 안전히 붙드실 것입니다.
기도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곤란 중에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주 좁아지고, 현실 앞에서 흔들리며, 사람의 말과 세상의 평가에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안전이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다시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분노하되 범죄하지 않게 하시고, 염려하되 불신앙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밤의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살피게 하옵소서. 세상이 구하는 헛된 기쁨보다 주께서 마음에 두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셨사오니,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평안히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의 모든 자리를 안전히 붙드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이심을 믿고, 담대히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