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9.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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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를 기억하라

창세기 1:1 NKRV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Lexham Hebrew Bible Chapter 1

1 1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한 친구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복음만 알면 되지 않는가? 율법이나 교리적인 내용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걸 알면 되지 않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것만 잘 알고 믿으면 되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우리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저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그저 나를 사랑해주고, 그저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로만 여기면서 여전히 그 삶은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사는, 이런 인본주의적 신앙으로 왜곡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심하고 분별해야 한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기도, 삶 속에서 정말 하나님 중심적인 고백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것처럼 성경에 가장 처음 말씀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여호와 신앙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신앙고백이다. 이것은 창조에 대한 대 선언일 뿐만 아니라, 실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본문에서 “태초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베레쉬트”라고 읽는다. 이 단어는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인 동시에 성경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단어이다. 히브리어의 문법적으로 이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관사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각자 성경책을 모아 가지고 이 중에서 자신의 성경책을 이야기 할 때 “‘이 성경책’ 혹은 ‘그 성경책’이 나의 성경책이다” 라고 특정지어 말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태초라는 단어가 정관사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특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모든 만물의 시작점인 ‘태초’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모든 만물과 시간의 시작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태초에’라는 단어는 본문의 주어를 수식하는 단어 즉, ‘하나님’을 수식해주는 단어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시작점에 계셨기 때문에 영원부터 존재하신 분이심을 확인하고 확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초월적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다고 성경에 가장 처음 부분에서 선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천지가 창조되었듯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사실 우리는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코스믹 호러’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이 말은 공포영화나 소설의 한 장르이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의 한 종류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나 우주적인 진실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미지의 공포를 핵심으로 하는 공포 장르이다. 정체를 알 수 없거나, 압도적으로 방대하고 강한 것에서 오는 공포를 포함하는 용어인데,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이 없이 그저 유일한 신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성만을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이 코스믹호러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더욱 놀랍고 은혜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만하도록 두지 않으셨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속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신다. 그렇게 하실 이유가 전혀 없으신 존재인데,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어가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성육신하시고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깊은 뜻과 크고 놀라운 사랑을 무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잊어버린채 그저 나에게 사랑만 주는, 나의 인생의 도움이 되는 도구와 같이 하나님을 왜곡하여 믿고 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보자.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셨고, 그가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창초 선포는 곧 우리 믿음,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에 성경의 무오함을 믿을 수 있으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가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를 필요로 하는 개혁주의 신학이 정립될 수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고, 많은 신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신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신은 없다. 이집트의 최고의 신 라와 아몬은 태양을 신격화한 것이다. 바벨론의 최고신 마르둑도 티아맛이라고 하는 물로부터 창조된 신의 후예이다. 한국에 많은 영향을 준 유교도 조상을 섬기고 있고, 불교의 석가도 사람이며, 부처도 물질로 만들어진 형상이다. 태초에 이미 존재하시고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스스로 계시며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모시는, 참된 종교를 가졌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순종함으로 그 복음에 감격하여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내 삶의 유익이 되는 도구와 같이 믿는 인본주의적인 신앙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 삶의 유일하신 왕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내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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