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5장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낭독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낭독

제 5장 그리스도와 지체

Ch 1. 그리스도와 교회: 머리와 몸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5장 그리스도와 지체 01 그리스도와 교회:;머리와 몸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mMt7G7YFpe4
Transcript:
(00:01) 예. 제가 먼저 읽으면 >> 되는 거죠? 네. >> 몇 페이지인가요? 180 3쪽 >> 3쪽 예 183쪽네 읽겠습니다. 제 5장 그리스도와 지체 투토스 크리스토스의 교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 여기라고 가르칩니다.이 이 교리를 이해하려면 이중의 연합 곧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원 그리스도와 교회 머리와 몸
교회와 신자의 연합
교회의 일치를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교리가 있습니다. 바로 투토스크리투스의 개념입니다. 투토스크리투스의 문자적인 뜻은 전체 그리스도입니다.이는
(01:05)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에 일부러 여김을 가르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영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붙여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러한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의 교재에 배제되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그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야 합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더 자세히 알려면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
신자는 거듭나는 순간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02:05) 이것은 그의 도덕적인 삶과는 상관없이 성령의 은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이 연합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영적임
신자와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영적입니다. 그 이유는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의 영혼이 성에 의해서 그리스께 접붙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감각으로 알 수 있게끔 교회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만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은음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그래서이 연합은 영적입니다. 다음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영적 자원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02:57)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를 통한 삼위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입니다. 진짜는 이 연합 안에서 하나님께 영적 자음을 공급받습니다. 성령의 사과 성자의 은혜, 성령의 위로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이 연합 안에서 실제적으로 영적 자원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가르킵니다. >>
신비적임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신비적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비의 당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지성의 신부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본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영혼과 연합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연합을 실제로 경험합니다. 신자는 시련과 곧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04:01)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분명히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성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삶은 그리스도의 연합의 신비한 비밀에 대하여 더 많이 깨닫고 누리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내주의 신비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영혼이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인데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이 신비합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일하시는 방식은 인간의 영혼을 기능에 파괴하거나 침해하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그려워하던 고향에 온 것 같은 평안함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우리의 영혼과 성령의 뒤새끼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과의 영적 교통을 말합니다.
(05:00) 성령의 내전심에 대해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은 그분의 본질이 물질처럼 장소와 크기를 가지고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실제 아 실체로서의 영이 아니라 실체적인 교통의 관계로서의 내주를 말합니다. 즉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
신자는 구원받는 즉시 그리스도께 젖붙여집니다. 이것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인 교회에 젖붙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자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원이 단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05:58) 신자는 자신의 구원이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공동체 속으로의 구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이는 이는 마치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가족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가족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가족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가족은 숙명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존재의 기반이며 자라나야 할 환경입니다. 그는 그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도리를 배웁니다. 교회와 신자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신자는 영적인 출생과 함께 영적인 교회에 연합되어 지체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참된 신자는 영원히 교회와 결합되고 그 교회는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몸과 머리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06:52)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에 한번 젖붙여진 신자는 그 몸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몸에서 떨어진 신자가 다시 그 몸에 젖붙여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젖붙여진 연합은 영원하고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이 확고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머리와 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이 비유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생명과 유기체적 자 작용을 중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머리와 몸의 비유를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신자의 영적인 연합인 교회는 그분의 몸입니다.
(07:50) 이 비유는 몸이 없는 머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는 교회 없이도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머리와 몸의 비유가 보여주는 강조점은 머리 없는 몸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머리와 몸의 비유가 보여주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의 유기체성.
첫째로 머리와 몸의 비유는 교회의 유기체성을 보여줍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 사이에는 떨어질 수 없는 유기체적 성격이 존재합니다. 교회의 유기체성이란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와 작용 목적에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교회의 그것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필연적 관계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08:49) 마치 인간의 몸이 모든 구성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의지함으로써 하나로 연결되어 살아 있는 육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의 유기체성은 다음 두 관계의 지평에서 설명됩니다.
그리스도와 신자.
먼저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입니다. 교회의 유기체성은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토대로 합니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끊어질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신자 안에 영원한 생명으로 거하심으로써 신자를 돕고 가르치며 중보하십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계실 것이라는 약속을 보정받습니다.
(09:40) 이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신자는 서로 마음을 공유합니다. 신자는 성령을 통하여 성경의 진리 안에 담긴 그리스도의 생각과 의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신자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그 기도 속에서 그리스도와 교통합니다.
신자와 신자.
다음으로 신자와 신자의 관계입니다. 신자가 다른 지체가 갖는 신적 연합의 유기체성은 자기 자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누림으로써 다른 신자와의 유기체적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보이는 교회 안에 있으나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신자와 영적인 열을 가질 수 없습니다.
(10:37)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는 곳에는 사람들 사이의 연합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자와 신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사랑의 연합은 신자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실제적인 연합에 비례합니다. 신자의 연합이 복음적일수록 그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이 깊어지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신적이고 유기체적인 연합을 통해 일치를 이루려면 신자 각 사람이 끊임없는 참회와 자기 깨어짐 그리고 사랑과 순종으로서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자가 신자 개계인이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연합을 통해 신자 사이에서 사랑의 연합을 이룰 때 교회의 유기체성은 실제적인 일체를 이루게 됩니다.
(11:33)
교회의 통일체성
둘째로 머리와 몸에 비유는 교회의 통일체성을 보여줍니다. 참된 교회를 이루는 신자 사이에는 통일체성이 있습니다.이 이 통일체성은 제도와 규일이 아니라 진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교회의 외형적인 질서나 제도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번질적인 것입니다. 교회의 통일체성은 지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동일한 진리의 터 이위에서 있음을 고백하서 나옵니다. 그것은 마음의 규칙과 삶의 교훈을 주는 진리의 터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통 된 신앙 고백을 통해 표명되는데 이러한 표명을 통해 교회는 자신들이 하나되게 하는 근거가 진리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12:32) 이러한 통일체성은 다음에 의해의 유지시대입니다. >>
생명에 의해
교회의 통일체성은 생명에 의해 유지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그리스도를 통해 부여받음으로 통일체성을 이룹니다.이 생명을 누림으로서 하늘에 있는 교회나 땅에 있는 교회 모두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이 신적 생명의 참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젖붙여져 있는 그의 몸의 일부이며 그분으로부터 생명이 계속 흘러 들어오는 몸입니다.이 이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교회는이 생명을 통해 교회 다움을 유지하며 교회 자신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선교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13:29) 교회는 스스로 생명을 얻거나 유지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를 통해 한 생명을 누리며 교통합니다.이는 이는 마치 우리 몸에 여러 지체가 있으나 한 생명에 의해 움직이고 교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창조되지 않은 원천으로서의 생명이고 교회가 누리는 생명은 부여받은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교회에 부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교회를 통해이 세상에 구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지체는 서로가 서로를 경의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는 각자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았을뿐만 아니라 그 생명의 교통 안에 있도록 지정된 필요물이기 때문입니다.
(14:21) 모든 현실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른 지체를 바라볼 때마다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치에 의해.
교회의 통일체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해 유지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몸의 모든 기관이 머리의 다스림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의 모든 지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히 구원받은 신자를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자와 이룬 연합을 교회의 연합 안에서 영원히 지속하시는 것은 곧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5:08) 하나님께서는 그 통치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이 세상에 펼치십니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후에 이루어질 온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미리 보여줍니다. 물론 지상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과 천상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천상 교회는 오류 오류가 없는 교회이며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제거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지상교회의 신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죄를 지울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입니다. 교회는 완전하게 설립되었으나 교회의 지체는 불완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로서 그들을 향한 통치를 향 통치를 지상 교회에 구현하십니다.
(16:00) 이 통치는 은혜와 징계로서 이루어집니다. >>
은혜로써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은혜로서 교회를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한 의지를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든 신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신자를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뿐만 아니라 더 풍성히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풍성한 삶은 상화의 삶에 달려 있습니다. 신자 안에 역사하시는 은혜로 인해서 하나님의 생명은 신자 안에서 더욱 풍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의 통치에 의해서 점점 더 거룩한 신자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는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16:48) 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의 분명에 따라 필요한 은혜를 베푸심으로이 통치에 복정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은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게 됩니다. 그분의 통치는 우발적이거나 계획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통치의 어떠한 모순이나 충돌도 없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각 신자에게 은혜로 역사하심으로써 교회 전체를 당신 뜻에 따라 통치하십니다.
징계로써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징계로서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순종하 둔하고 왕고한 사람들을 고난으로 훈련시키심으로 통치 의지를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서지 특권을 부여습니다. 외적 신분과 내적 심령의 자유 하나님의 후사로서의 명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 고난을 통한 징계가 그것입니다.
(17:51) 하나님의 자녀만이 그분의 징계를 징계를 통해 그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때 신자는 순종과 믿음과 순종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데 이것이 징계로 신자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징계는 그 당시에는 고통일 수 있으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작용이며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 신자를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적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징계받는 것 자체가 특권입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18:43)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는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완전한 머리와 불완전한 몸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함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그 무엇에 의해서 끊어지거나 파괴되지 않습니다.이 연합이 갖는 한구적인 성격에 대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공고나 박해나 기근이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실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례일이나 능력이나 높임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 35절에서
(19:46) 39절.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가 완전한 머리와 불완전한 몸의 관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시장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머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의존을 잠시라도 놓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향해 곧바로 전진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는 어찌할 수 없는 불완전함을 다음에 두 가지 방법으로 극복합니다.
그리스도를 의존함.
첫째로 교회는 그리스도께 의존함으로써 불안전함을 극복합니다. 교회는 성립될 때부터 그리스도를 의존하며 태어났으며 유지할 때도 그리스도를 의존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실 때만 교회는 교회 닦습니다.
(20:39) 교회 아름다움은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과 만물 위해 뛰어나사 뛰어나사 독립하심으로써 아름답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을 의존함으로써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는 무한한 우주를 운행하는 수많은 천체보다 당신을 의지하는 한 인간의 마음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습니다. 그것은 단지 교리적이고 원리적인 면에서 의존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의지하는 것을 가르킵니다. 교회는 실제적으로 교회의 존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으며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는 그분의 은혜가 진실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1:28) 진짜 개계 인해 온전한 삶은 그가 실제 삶 속에서 얼마나 간절히 그리스도와 동행하기를 원하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이러한 갈망은 단지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적인 지평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한신자의 영혼에 영혼에 살아 있으니 그리스도를 향한 끊임없는 의전 속에서 입증되듯 교회의 공동체에 살아 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공동체적 갈망을 통해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연합을 누림.
둘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연합을 누림으로써 불안함을 극복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도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처럼 원리적인 연합과 실제적인 연합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2:24)
원리적 연합: 교회 안에 항상 거하심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인데 원리적으로 이러한 관계는 영원하며 불변하고 완전합니다. 교회 영적인 상태와 상관없이 이러한 영적 연합은 결코 사라지 않는 것이며 무엇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는 것입니다.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에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교회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상 교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고 안 될 때까지만 존재합니다. 지상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의 미랄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의 교회 곧 참으로 중생하여 그리스도께 접어 어 젖붙여진 모든 신자의 연합된 보편 교회는 영원합니다.
(23:27)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 영원히 거하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이는 이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명백히 논증될 수 있습니다. 먼저 교회의 생명적인 관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존재를 교회에 의존하지 않으지만 영원히 교회와 함께 하시기를 약속하셨습니다.이는 삶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랑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연합에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구원받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연합에서 끊어질 수 없다는 사실만큼 분명합니다. 또한 성령의 내주하심 때문입니다. 번질적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연합된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입니다.
(24:15) 신자가 구원을 통해 각기 그리스도에 맺은 연합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연합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내조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다시 분리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도 마지막 날이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주셔서 신자가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늘지지 않는 것을 보증하십니다. 이처럼 교회의 머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교인이 몇 명 모이지 않는 시골 교회에서도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한 목회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도 이런저런 일을 흔드리는 교회에서도 다 쓰러져 가는 건물 위에 세운 교회에서도 그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5:10) 그런 교회를 우리가 함부로 대한다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실제적인 연합, 사랑 안에서 누림.
실제적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처럼 가변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로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 연합을 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적인 연합의 효과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증진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누려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존재가 되어 합당한 작용과 섬김을 하게 됩니다.이 세상을 고쳐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게 됩니다.
(26:00) 교회는 그때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마치 신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이 세상을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도록 섬기는 봉사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와 원리적인 연합에서 끊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없는 것이므로 이제 마음 놓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영원히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교회가 그분을 갈망하지 않게 하는 구실이 된다면 그분의 은혜를 헛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26:50) 그러면 교회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연합의 증진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이는 이는 교회를 이루는 각 지체의 사랑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함.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 실제적인 연합이 증진됩니다. 실제적 연합의 결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사랑함으로써 실제적인 연합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그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계명을 지키고 그 순종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 개개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할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와 함께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봉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27:40) 이것이 하나님께서 목회자와 성숙한 신자에게 양떼를 돌보게 하신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신자 개개인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공동체적으로도 그분을 향한 섬김이 당연히 깊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자들 사이의 관심사가 서로 다르면 공된 공동체적 일치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유하신 고유한 사랑을 감당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각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부유하신 교회의 존재 목적에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교회를 향한 신자의 사랑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신자는 자신의 몸처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교회의 존재 목적을 성취하는데 열심을 냅니다.
(28:36) 그 과정을 통해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에 젖붙여져 지체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갑니다. >>
그리스도께 순종함
실제적인 연합의 증지는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은혜의 작용으로 신자는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 안에서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 작용의 주체는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 의지 사이에는 말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순종은 지순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뜻을 사랑하는 대상에게 합치시키는 데서 옵니다. 그래서 외적인 순정은 내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순종을 통해 각 사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29:25) 신자는 이중적인 관계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합니다. 한편으로는 신자 개인으로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합니다. 후자는 전자 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전자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후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영향에서는 순종하는 것 같아도 교회 전체가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고 그 뜻을 모르면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강조되어야 할 것은 교회의 일치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누리는 실제적인 연합이 공동체적 지평 속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도록 지지체들과 화합해야 합니다.
(30:14) 신자 개개인이 순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교회가 공동체적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면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자신의 존재 목적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자가 개인적으로 누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도 위협할 것입니다.는 >>
맺는 말
우리의 구원은 단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사고관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머리 되시고 예수님께 젖붙여진 자는 마치 자기 한 명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공동체적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이미 예수님께 젖붙여져 있던 교회 공동체에 젖붙임을 받은 것입니다.
(31:09) 그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머리가 되십니다. 신자는 자신의 신앙을 공동체 지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멀어진 채 개인의 신앙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하늘 위에 연이 줄을 끊으면 더 높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더 높이 오르지 못하게 붙들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 줄 때문에 여는 하늘높이 떠 있는 것입니다. 일평생 왕고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배와 기도, 교재와 봉사 안에서 무지를 깨우치고 진리를 아는 지식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이미 은혜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지체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사람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32:05) 순종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은 불순종하는 자신의 불행한 삶과 대조를 이루면서 그리스도께 돌아갈 용기를 얻게 합니다.이 모두 신자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얻은 유익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혹시 자신이 교회에서 받은 도움보다 교회가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바로 그런 마음의 짐 곧 교회의 부족한 점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서 그는 자신 안에 예수의 흔적을 지고지니게 됩니다.
(32:57)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자신의 몸에 새겨진 장자국과 못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끄러운 고난의 상처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 보여줍니다. 그분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이 세상에 왔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십자가의 권난이 크면 클수록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먼저 보여준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시련을 견디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안에 새겨진 고난의 흔적은 부활의 몸에 빛나는 영광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33:52) >> 아멘. >> 아멘. >> 아멘.

Ch 2.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5장 그리스도와 지체 02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p6fFwYjKgvc
Transcript:
(00:01) 챕터 2.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
참 신자와 거짓 신자.
지상 교회 안에는 참된 신자와 거짓된 신자가 함께 있어서 교회는 불완전한 혼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더욱 신자들도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며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풍부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별은 불가능함.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 비유는 지상의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더니 싹이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도라.
(00:52) 주수 때에 내가 주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을 모아 내 곡간에 넣으리라 한 마태복음 13장 24절부터 30절 이러한 사실은 그물의 비유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함에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 버린이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일을 갈리라 마태복음 13장 47절부터 50절 밭은 두 식물에게 양분을 공급합니다. 그물은 두 종류의 물고기를 바다에서 모두 더어 옵니다.
(01:43) >> 그날이 절대까지 밭에 있는 식물은 농부의 돌봄을 받으면서 자라고 그물에 담긴 물고기는부에 의해 소중하게 끌어올려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이 되면 최종적인 선별이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2절부터 33절. 그 선별에 따른 상벌을 주인이 베풀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착오나 실수가 없습니다. 지상 교회는 온갖 물고기가 함께 낚기는 그물과 같고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밭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는 참된 신자와 거짓된 신자가 함께 있습니다. 의도된 거짓 신자도 있지만 의도되지는 않았으나 실질적으로 거짓 신자의 사람들도 있어서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불안전한 혼합일 수밖에 없습니다.
(02:38) 교회는 그들을 구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2절, 계시록 2장 2절. 하지만 완전히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거짓 신자를 가려내는 것은 교회가이 땅에서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과업이 아닙니다.
종말까지 계속될 교회
현실적으로 불완전하고 혼합적인 교회의 성격은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회의 불완전한 혼합의 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과연 불완전한 혼합 속에서 교회는 거룩함에이를 수 있을까요? 불완전한 혼합으로 인하여 교회가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러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노아 방주의 예표
교회의 신자와 거짓 신자가 섞여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노아 홍수에서 예표되었습니다.
(03:30) 홍수로 인한 멸제를 피하기 위해 방주에 태운 생물은 선별된 몇 종이 아니라 모든 종류였습니다. 창세기 6장 19절부터 20절.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함께 배에워 생명을 포존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시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네 개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시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세기 7장 23절. 하나님께서 부정한 짐승을 정결한 짐승과 함께 살려 주신 것은 생태학적인 고려인 동시에 종교적인 폐례였습니다. 부정한 것이 없으면 정결한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둘은 각각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04:15) 이는 마치 삼리 속에서 악이 존재하도록 하여 선이 무엇인지를 인간에게 가르치시는 것과 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짐승을 지면에 보존하게 하여 부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부정한 것을 피하고 정결한 것을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도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8장 20절 레위기 10장 10절 부정한 것을 피하는 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정결해지기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부정한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정결해야 할 본을 자각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륜의 지혜,
교회도 불완전한 혼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익을 줍니다.
(05:03) 먼저 거짓된 신자가 존재함으로써 참 신자는 참된 것을 동경하고 사랑합니다. 참신자는 거짓에 촉촉하는 고통을 깨달을 때 참신자와 나누는 교재의 복됨을 알게 됩니다. 추함을 발견함으로써 오히려 진리를 사모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고 살아가는 행복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회 안에 불완전한 혼합적 성격으로 신자는 자신 안에 있는 도직과 불의를 보게 됩니다. 보이는 교회 안에 불안전함의 혼합의 성격은 신자 안에 있는 새 사람의 성품과 옛사람의 성품 사이에 갈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4절. 신자는 불완전한 혼합으로 인해 고통받는 지상 교회를 봅니다.
(05:52) 그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갈등이 자신 안에 존재하는 죄와의 갈등임을 깨닫고 겸비해집니다. 고린도서 11장 28, 29절.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자는 교회의 부족함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봅니다. 불완전한 교회의 헌납 속에서 신자는 자신 안에 죄와 은혜가 함께 있음을 깨닫습니다. 로마서 7장 20절 요한일서 1장 8절 이때 그는 교회의 허물과 상처를 보면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새 사람을 살리시는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영적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신자 개개인의 이러한 성숙은 결국 공동체적으로 교회의 온전함에 기어하게 됩니다.
(06:39)
교회의 거룩함,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는 교회에 끊임없이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거룩함을 잃지 않습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교회 안에 있는 거룩 거짓된 고백자를 남김없이 축출함으로써 축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교회의 평판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 때문에 거룩함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4절. 참된 교회는 외형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07:24) 실제로 중생하여 그리스도 예수께 붙여진 신자들의 연합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지상 교회의 부신자는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 있지만 참된 교회의 이론이 아니므로 교회의 거룩함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악을 행하면 교회의 거룩함은 위협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실제적인 연합에 흠집이 가고 교회에는 고난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있죠. 하지만 교회의 고난은 교회를 정화하는 수단이 됩니다. 교회는 교회 내의 악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을 갈망하게 되고 거짓 신앙을 통하여 진실한 신앙을 더욱 사모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불리를 보면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고 서로 미워하는 것을 보면 주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08:12) 오류를 보면서 진리의 가치를 깨닫고 전쟁을 통하여 일치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는 불완전한 혼합 속에서도 자신의 순전함을 유지합니다.
토투스 크리스투스
토투스 크리스투스라는 교리의 핵심은 지상 교회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혼합일 수밖에 없지만 신자는 교회 안에 들어온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계십니다. 교회 안에는 신자와 불신자가 같은 고백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불신자 중에는 스스로 거짓되기를 의도하여 교회에 침투한 자도 있으나 아직 중생과 회심에 이르지 못해 그리스도께 젖붙여지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08:59) 갈라디아서 2장 4절 유다서 1장 4절 교회는 최선을 다해 가만히 들어온 거짓 신자를 가려내고 아직 회심에 이르지 못한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2절. 그러나 신자는 교회 안에 참신자와 그 신자를 완벽하게 가려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 안에 들어온 모두를 그리스도와 몸을 이룬 사람들로 간조해야 합니다. 불신자는 아직 중생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저기와 반감으로 그분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신자는 보이는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09:41) 이때 신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넓은 의미의 교회가 토투스 크리스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0장에서이 교리에 관한 주요한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또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한복음 10장 16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울타리 들어 있지 않은 양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당신 곁에 있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초월해서 보면 그들 모두 그분의 양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았던 가론 유다를 통해서도 우리는 배웁니다.
(10:29)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대할 때 다른 사도들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을 팔려는 유다에게까지 예수님의 살인 떡 살인 떡과 피인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7절. 이처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외형적으로는 그분께 속했으나 참으로는 속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사랑하셨습니다. 보이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사람으로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주셨을뿐만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속 보여 주셨습니다.
(11:18)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9절.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 있으나 아직 불신자인 사람들도 사랑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이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는 아직 회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양일 수 있습니다. 택하셨지만 아직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이 그리스도께 사랑을 받았다면 교회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택하셔서 보이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 이끌려진 장들은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보이는 교회에 들어온 때와 보이지 않는 교회에 들어온 때가 일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보이는 교회에 들어왔으나 보이지 않는 교회에 접붙여지지 않은 시기가 있습니다.
(12:06) 그렇다면 교회는 그들 중 어떤 사람이 대교자로 드러날 개헌성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가려내기 위해 있음으로써 참으로 사랑해야 할 선택된 지체를 사랑할 기회를 잃어버리기보다는 그들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입은 지체로 간주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9절. 둘째로 그들이 선택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도 교회는 이미 받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위하여 눈물을 흘리신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생에서 보여주신 차별없는 사람은 분별력의 부족해서 기인한 것이 아닌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2:5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을 위해서 죄사함을 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이는 이는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를 사랑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의 지평에서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페르툴리아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거기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이십니다.
(13:34)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고 안아줄 때 우리가 안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며 우리는 그분께 기도를 올립니다. 이와 똑같이 형제들이 우리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성부께 자비를 구하는 분이십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욕하고 부끄럽게 한다면 실상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 교회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나닐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하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교회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4:16) 그러므로 신자는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 모든 지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 사랑해야 합니다. 발곡과 축정이를 가르는 마지막 심판은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위탁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0절. 우리는 누가 알곡이고 축정인지 가르기를 힘쓰기보다는 오히려 그날이 올 때까지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을 섬기고 사랑하는 쪽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의 빛과 은혜의 열정은 모두이 일을 위함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좋은 것은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들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의 섬김으로 지상의 교회가 조금이라도 더 온전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5:02) 보이는 교회에 속한 지체를 사랑하기 힘들 때마다 신자는 진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교회의 온전함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온전해지는 것은 사람의 힘에 달려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께 젖붙여진 몸으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골로새서 2장 19절. 이처럼 교회 안에 신자와 거짓자 성숙한 자와 미성숙한 자가 함께 섞여 있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불완전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입니다.
맺는 말.
보이는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들은 처음에 교회를 염려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욕심을 따라 교회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5:51) 교회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자기도 모르게 신자 안에 자리잡습니다. 그때는 이미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뒤입니다. 예수의 몸인 교회를 향한 사랑은 교통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뿐만 아니라 보이는 사람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4장 8절. 따라서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게 분노한다는 것은 그에게 이미 그 사랑이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한데 교회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이 지점에서 무너졌습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서 불완전한 혼합을 이루는 거짓 신자도 사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온 세상에까지 미쳐야 할 교통적 사랑입니다.
(16:39) 교회는 벌신자는 물론 이교도들까지 사랑하도록 요청받습니다. 교회가 택한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는 택한받지 못한 사람들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다물며 교회 안에서 교회를 아프게 하는 신자야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실로이 교리를 자신에게 적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 밖에 거듭나지 않은 영혼들을 보며 눈물을 흘는다면 보이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참된 구원에 이르지 못한 거짓 신자를 위해서는 더 많이 통곡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41절. 세상 끝날까지 신자는 이러한 정신으로 교회의 모든 지체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눈에 보는 5장 토투스 크리스투스 Totus Christus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든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로 간주하고 받아들이는 것’ 임
I.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A.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연합이며 지성적 신비와 인간 본성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는 신비함을 가진 신비적인 연합임
B.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
교회의 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생각할 수 없음
1. 신자와 교회의 연합
신자는 중생을 통해 영적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지는데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 교회와 연합하는 것임
2.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언약의 불변성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됨
II. 그리스도와 교회: 머리와 몸
A.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머리이며 교회는 몸이라는 비유는 교회의 유기체성과 통일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임
1.교회의 신적 유기체성
a. 그리스도와 신자
교회의 유기체성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신자의 유기적 연합임
b. 신자와 신자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신자 간의 유기체성은 신자 각 사람의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연합에서 비롯됨
2. 지체들의 통일체성
교회 안에는 지체들의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진리를 통해 이루어진 통일성임
a.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각 지체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분여 받은 피조물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지체들의 통일성을 찾아야함
b.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해
지체들의 통일성은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남
1) 은혜로써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의 본성 안에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순종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주시는 은혜의 작용으로 통치하심
2) 징계로써
은혜의 작용을 받아들이기에 둔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징계하심으로 통치하심
B. 완전한 머리와 불완전한 몸
1. 교회의 의존성
교회는 출생과 존재를 그리스도께 의지하는데, 원리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도 그러함
2. 교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a. 원리적 연합: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항상 거하심
교회와 그리스도의 생명적 관계 때문에, 신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원리적으로 영원함
b. 실제적 연합: 교회의 사랑 안에서 연합을 누림
1)그리스도를 사랑함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의 사랑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교회의 존재목적에 합치시키게 하고 이로써 교회는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게 됨
2)그리스도께 순종함
사랑에서 비롯된 순종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실제적 연합을 누리게 되는데 공동체적인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일치가 필요함
C. 가견적 교회의 경험
1. 사도들 :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봄
사도들은 교회가 아직 세워지기 전인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기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를 볼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는 사도들과 나누신 사랑의 교제에서 그것을 보여주심
2. 우리들: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봄
우리는 보이는 몸인 교회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봄
3.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자신
a. 까리따스로 충만한 자신을 보여줌
세상은 교회의 까리따스의 사랑을 통해서야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음
b. 일치concordia로 충만한 자신을 보여줌
사람들은 교회의 몸의 일치를 통하여 머리, 즉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는 진리와 사랑을 통한 일치를 보여야 함
III.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는 불완전의 요소가 없으나 교회 구성원들 중에 존재하는 거짓 신자들 때문에, 그리고 신자 안에 남아 있는 부패한 죄성 때문에 지상 교회는 불완전함
A. 고백자: 참신자와 거짓 신자
1. 구별하기를 힘쓰나 완전 구별은 불가함
2. 종말까지 계속될 교회의 한 특성
a. 노아 방주의 예표
교회의 불완전한 혼합의 상태는 노아 방주를 통해서 예표되었는데 참 신자는 거짓 신자들을 통해 참 진리를 사모하게 하고 자신들의 복됨을 깨닫게 하심
b. 교회의 거룩함
참된 교회는 외형적인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신자들의 연합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짓 신자가 있다고 해서 교회의 거룩함을 상실한다고 여기지 않으심
c. 교회를 버리지 않으심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불완전한 혼합 상태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유지하심
3. 이러한 경륜의 지혜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공존하는 교회와 모습은 새사람의 성품과 옛사람의 성품이 공존하는 신자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겸비하게 함
B.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
교회 안에 존재하는 거짓 신자들은 하나님께 반감과 적의를 가진, 중생치 않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고 사랑하여야 함
5장 함께 나누어 봅시다
1.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김" 설교를 듣고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2.신자의 이중적(이면서 하나인) 연합에 대해서 설명해 봅시다.
3. 그리스도와 교회를 머리와 몸으로 표현한 비유에서 보여주고자 한 요점은 무엇이며, 완전한 머리와 불완전한 몸의 연합에서 살펴볼 수 있는 교
리는 무엇입니까?
4. 가변적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모습에 대해 설명해 보고 조국교회를 위한 기도제목을 나누어 봅시다.
5.그리스도께서 가견적 교회 안에 불완전한 혼합의 성격을 남겨두심으로써 우리에게 교훈하고자 함은 무엇입니까? 이와 관련하여 개인의 삶 가운데서의 깨달음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6. 토투스 크리스투스 교리와 이 교리를 받아들이는 이유를 설명해 봅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