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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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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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5장 25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추심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하라. AMEN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사랑하시는 주님의 몸인 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 경배하며 주님의 지혜와 사랑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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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 여기에 모인 사랑하는 죄의 자녀들을 복주시고 하나님이 이들의 아버지이시며 그리스도가 저희의 머리인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모든 진리의 말씀으로 저희를 그리스도에 아름답게 세우시고 그리스 주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유아실에 예배드리고 또 인터넷에서 전 세계에서의 말씀에 접촉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난 시간에는 사랑과 일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김 이 교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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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교리는 토투스, 크리스투스라고 해서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영어로는 Whole Christ라고 합니다. 즉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심지어는 거기에 안 믿는 불신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모든 보이는 교회에 모인 사람들을 일단은 전부가 그리스도의 몸 교리입니다. 이제 그 교리를 오늘 이 시간에 진술함으로써 우리들이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질의십니다. 우선 우리들이 이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신자는 중생과 함께 교회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접붙여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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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자기의 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접붙여지는 것을 감지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게 되는 거죠. 이 연합은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영적인 것이라는 것이고. 신비적인 것이라는 거죠. 즉 영혼이 성령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는 이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자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손에 만져지실 수 있도록 임재하는 것이 아니죠. 누구도 지상에 계실 때처럼 그런 모습을 가진 예수님을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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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보이지 하나님으로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죠. 그런데 그분도 영으로서 인간 인간이 인간의 영혼이 중생과 함께 영혼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께 연합되는 것이죠. 이것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부르죠. 주로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면서 그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연합되는데 이것이 모두 영혼이 성령 안에서 영혼이 성령 안에서는 영이신 하나님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연합되는 이 모든 영적이라고 하는 거죠. 또 하나는 이 일이 매우 신비한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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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신비하냐면 두 가지 점에서 신비한데 하나는 이 신비가 이제 지성적인 신비라고 하는 거죠. 왜냐하면,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된 것이 느껴져요. 이 세상에서 혼자 살 때 슬프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혼자 어렵고 힘들고 괴로웠는데 신자가 된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고 나니까 내가 시련을 당하고 어려워서 고난을 받으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느껴져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예전에는 나 혼자 즐거웠는데 주님이 내 안에서 지금 나와 함께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느껴져요. 어떻게 해서 내가 혼자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예수께 접붙여지게 되었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 하나님과 연합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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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말하자면, 사실은 분명히 경험이 되는데 이 지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심리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또 삼위 하나님과 나아가서는 연합이 돼서 그래서 교회가 삼위는 뭐냐 하면 그렇게 연합되는데 그 연합의 본질이 우리 바깥에서 성령께서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그냥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미와 연합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써 그 일을 하신다 이거죠. 그럼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의 영혼이고 미적이다 라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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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이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인의 과하시므로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연합이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미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게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이제 신자와 그리스도가 연합을 이루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여기에서 신자와 그리스도가 연합을 이룬다 라고 할 때 그런 말이 없이 일단 참으로 진실하게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에요.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에요. 그 사람만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것이고. 한 번 접붙여진 사람은 주님의 붙들어 주시는 은혜에 의해서 결코 또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다시 와서 붙고 붙은 사람이 다시 떨어져 나가고 그러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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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면은 접붙여진 것이다. 라고 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참으로 머리신 그리스도 예수께 부터세를 이루는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주 참으로 거듭나고 진짜로 회개하여 예수께 접붙여진 사람 그 사람들이 참으로 신자들이고 그 참으로 신자인 사람들만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야 된다 라고 하는 거죠. 보이는 교회 안에는 보이는 교회의 크기가 이만하다 그러면 항상 그 참된 신자들의 연합은 보이는 크기보다 항상 작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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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아직은 교회에 다니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고, 이제는 방금 교회에 왔기 때문에 아직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거듭나고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접붙여지지 못한 사람도 있고 자기는 굉장히 예수를 잘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속속들이 변화되어서 영혼이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적이 없는 그러나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교회 안에 존재할 수 있죠. 다양한 방식으로 사실은 그가 그 영혼이 근본적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어서 새 사람이 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죠. 아직은 몸이 되지 않았어요. 접붙여지지 않은 상태라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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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교회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보이지 않는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교에 덧붙여진 사람들은 그것보다도 소수의 사람이겠죠. 교회가 건강할수록 그 둘 사이의 격차는 작아질 거고, 건강하지 않을수록 둘 사이의 차이는 현저하겠죠. 천 명이 모였는데 진짜로 거듭난 사람은 100명밖에 안 된다더라. 그럼 10대 1 아니에요. 예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인제 어쨌든 아무리 좋은 교회에도 역시 그런 사람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그러면 인제 그리스도와 교회를 머리와 몸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게 어떻게 해서 이제 그리스도와의 규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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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이 되는 것은 성부의 사랑에 의해서 성자의 희생을 교통하시는 역사 안에서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와 그다음에 믿게 된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거죠. 그렇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은 점점 세상 끝날까지 커간다고 말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한 번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 사람들은 다시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죽어도 그 몸은 역시 천상으로 가서 다시 천상교회를 이루니까 그 몸의 몸은 계속해서 커진다고 말할 수 있죠. 그렇게 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 천상과 지상의 교회들이 연합을 이루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점점 커가는 거죠. 물론 이제 천상에 있는 교회는 천상에 있는 교회대로 하는 일이 따로 있고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지상에 있는 교회들끼리 하는 일이 따로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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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교회 하는 일들이 천상에 있는 교회 하는 일보다 훨씬 고달퍼 그래서 지상에 있는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불러요. 그리고 하늘에 있는 교회는 승리한 교회라고 불러요. 지상에 있는 교회는 늘 이렇게 전투한 솔직히 말하면 고달프잖아요. 그렇죠? 새벽에 나왔다가, 저녁 때 나오려니까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어. 안 자던 낮잠까지 자야 되고 말이지. 그러니까 이게 보통 힘든 게 아니죠. 이런 거를 한국 초대교회사에서는 새벽에 오전에 오후에 그리고 오후 늦은 시간에는 전도하러 다니고 밤에 또 모인 사람들이죠.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너무 한량한 공연을 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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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지간에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머리시고 신자들이 몸인데 그렇게 이루어지는데 그 관계가 어떻게 유지가 되느냐라고 하는 거죠. 우선 첫째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서 유지가 되는 거죠. 자 이런 경우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떻게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그랬는데 접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접합을 했는데 안 붙어버리는 경우 있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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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목이 잘라져서 그래서 펄펄 뛰는 팔목을 가지고 병원으로 뛰었는데 그래서 병원에서 근근이 이제 이 뼈를 잇고 수술을 했는데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수술을 했는데 그런데 기술이 모자라서 결국은 이러면서 서서히 썩어가서 결국은 이 손을 그냥 내버려두면 이 신체 부위까지 까지 썩을 염려가 있게 되는 경우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럼 할 수 없이 이 손은 붙여봤는데 결국 안 붙고 떨어지게 되잖아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지금 전 세계에서 아직 이렇게 손가락이나 이런 게 절단되었을 때 갖다 붙여서 기가 막히게 접합할 수 있는 나라들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래서 후진국 같은 데 가서 여러분만 죽어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그 후진국에 가서는 다치면은 하여튼 생각을 잘 해야 돼요. 판단을 잘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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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컨시어지 서비스라고 해가지고 그런 거를 보험회사나 이런 카드회사 같은 데 전화를 하면 여러분들이 잘 보험을 들어놓으면 아예 비행기를 보내준다고 그래도 싫어서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 치료받게끔 만들어줘요. 그런 제도들도 있어요. 그런데 어쨌든지 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아직 많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병인데 잘못 가서 수혈받고 그러다가 감염되고 해가지고 목숨을 잃은 경우 많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이게 손을 붙여놔. 그리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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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뭐냐 하면 여기에 있는 생명이 여기로 전달이 돼야 되는 생명이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가 몸이 쉬고 우리가 그분에게로서 접붙여졌는데 덧붙여진 지체들이 절대로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붙어있다라고 하는 것은 그분에게로서부터 생명이 계속 흘러들어온다는 겁니다. 이거는 우리 때문에 흘러들어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공급해주시는 그거를 통해서 머리와 몸의 관계가 유지되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항상 이렇게 또 얘기하고 싶을 거 아니야. 그러면 그거는 정말 땅 집고 헤엄치기네요. 일단 우리가 주님 몸에 덧붙여지게 되면 주님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하시고 우리와는 이런 노는 일만 남았군요. 그렇죠? 늘 그런 반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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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그다음에 얘기가 또 나와요. 그게 뭐냐면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해서 몸과 머리의 관계가 유지가 되는 거죠.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통치하실 때 그럼 어떤 방식으로 통치를 하시느냐라고 하는 거죠. 두 가지 방식으로 통치를 하시는데 하나는 은혜를 공급하심으로 통치하시고 두 번째는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통치하시는 거죠. 그럼 은혜를 공급하심으로 우리를 통치하신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한 여러분들은 항상 이런 질문하기를 좋아하더라고요. 목사님 한 번 구원받으면 취소 안 됩니까? 취소 안 되죠. 그러면 만약에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계속 세상에서 죄짓고 나쁜 짓만 하며 살았다면 그러면 그 사람도 천국 가는 거 확실하죠. 이렇게 질문을 해. 지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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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경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안 해요. 성경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안 하고 오히려 예수님한테 여쭤보면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실 거죠.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내가 대답이 됐죠. 한 사람이 있는데, 정말 거듭났구요. 취소될 수 없는 구원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죄를 지었어요. 그리고 세상에 빠져서 그렇게 살았어요. 그게 말이 안 된다. 이거죠. 그럼 뭐하고 똑같으냐면 예수님 나무가 아주 아주 건강한 뿌리를 가지고 있고 정말 싱싱하게 살아있거든요. 그런데 이파리도 안 나고 열매도 안 맺어요. 그래도 그 나무 산나무죠. 이렇게 물어보는 거랑 똑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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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런 질문 자꾸 하지 마요. 입만 아프지. 그렇게 바보 같은 질문을 해요. 그러니까 그가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라고 하는 거죠. 없다라고는 물론 인제 참으로 진실하게 거듭난 사람인데도 거듭난 사람인데도 죄에 빠지고 그다음에 세상에 빠져서 넘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제 차이가 뭐냐 하면 아 이거 얘기하면 또 시간 많이 가는데 차이가 뭐냐 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이게 죄를 지을 때 기쁨으로 그 주위에 동참해. 그리고 이제 이런 거를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 같은 사람 어떻게 설명을 했냐면요. 존 오웬 같은 분은 어떻게 설명을 했냐면 우리 선생님을 그렇게 사람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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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설명하셨냐면 교회 안에 있어도 불신자는 죄를 지을 때 단일한 의지로 죄를 짓는 거예요. 의지의 합치가 일어나서 한 가지 의지로 죄를 짓는 거 되겠다. 그걸 짓는 거라 해서. 그런데 그 사람이 거듭난 사람일 경우엔 복합 의지로 죄를 짓는다 그랬어요. 제가 죄에 대한 설명 가운데 아주 기가 막힌 의지론적인 설명이에요. 복합 의지라는 게 뭐냐면 거듭난 사람이 아무리 죄가 도와서 죄를 지을 때에도 이 사람 속엔 두 개의 의지가 공존해요.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라고 하는 강력한 의지와 짓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지어도 거듭나기 전에 분명히 그 죄를 지었는데 맛이 없어. 옛날 같지 않아 그 정도만 할게요. 얘기하면 또 길어집니다.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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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제 예수님께서 명령에 의해서 관계가 유지되게 하시고 두 번째는 은혜에 의해서 통치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해서 하는데 은혜의 통치예요. 그건 뭐냐면은 진짜로 그리스도 예수께 덧붙여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를 주셔야 돼요. 그 크기와 시기는 각각 다를 수 있어요. 또 같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쨌든 그에게 해주셔요. 그래서 통치를 이루셔요.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가 은혜를 안 받은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이 없어요. 왜? 자기가 왕이야. 자기가 원래 이게 자기 사랑이라는 게 자기 중심이잖아요. 그러니까 아주 굉장히 담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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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은혜를 받고 나면은 그러한 세속적 박력이 뚝 떨어져 진짜 거듭나기 전에야 펄펄 산 생선이고 그다음에 이제 거듭나 정말 박력이 넘쳐요. 그렇죠? 진짜 박력에 넘쳐 의미의 박력이 아니라 혈기적이고 육적인 박력이 있다. 이거죠. 그러다가 이 사람이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래서 그 은혜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돼. 그럼 뭐냐 하면 이 은혜 자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의 자녀들을 통치하시는 방법이에요. 은혜가 들어가면 그러면 자기를 자꾸 부인하게 되고 주님을 인순종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적인 박력이나 이런 것들은 업적이 없는 사람같이 그렇게 보이죠. 그러니까 세속적인 의미에서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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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은혜가 그를 통치하시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해요? 은혜가 떨어졌을 때는 혈기방지하던 사람이 은혜가 쑥 들어가고 나니까 그러니까 아주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하는 거죠. 신학교의 교수로 있을 때 학생 하나가 있었는데, 하여튼 무슨 데모든지 일어나면 그놈이 주동이야. 하여튼 혈기방자하고 뭐 교수들 뒤에다 님 자 붙이는 적은 아주 공 자 비슷하게 이게 이렇게 옆으로 이렇게 돌리면은 무슨 자가 되는지 알죠? 님 자를 이렇게 밑으로 이렇게 끌고 오면 교수 놈이 되잖아요. 그 정도만 아니면 다행이야. 혈기방자하던 친구인데요. 졸업을 하고 나서 한 4년 후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딴 사람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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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랬더니, 또 하나님이 신기해하지 그렇게 망나니 같은 놈을 교회를 개척을 시키셨어요. 개척을 시키셨어요. 교회를 개척을 시키셨는데 그 교회 하면서 이제 자기보다 강적 같은 교인들을 많이 만나요. 그러니까 이제 거기서 이제 불로 들볶이면서 이게 이제 볶인 거예요. 그런데 그래도 이제 옛날같이 이렇게 행동 안 하고 믿음으로 버텼던 모양이야. 그래서 연단을 주시면 그런 독기가 다 빠져나가고 그리고 교수님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아무 말 잘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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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지금 돌아와 막 삿대질하고 그러던 애가 어쩜 저렇게 수줍고 상상할 수 없이 변했으니 그게 뭐죠? 하나님이 은혜로 통치하신 그러니까 혈기 방자하던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은 흔한 사람이 되는 거죠. 흔한 사람은 그뿐만 아니죠. 그 외에 사람들이 용기가 없는 없기 때문에 사실 자기가 올바르지 않은 자리로 쑥 들어가 버리는 경우 많잖아요. 자기가 진짜 그렇게 사람이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닌데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순간에 그걸 아니오라고 딱 용기 있게 그런 기회가 항상 오는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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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라고 할 결정적인 순간에 아니오라고 해야 되는데 그걸 잘못해. 비겁하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은혜 통치가 딱 되면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거예요. 너희는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 하라. 그러니까 이제 거기서 딱 생겨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또 거품의 태도가 코너에 몰리던 사람들은 이제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지혜로운 용기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죠. 또 왜 괜히 이렇게 허영에 들뜨고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은혜가 싹 들어오게 되면은 그런 거 이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정말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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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쓸데없는 모시고 있던 목사님이 당신 지난날 하나님 없이 살았던 날이 얼마나 험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분이 그렇게 무서운 분인지 몰랐어요. 자유당 시절 때 당신이 한 가닥 했다고 그러시면서 그러면서 언젠가는 저보고 그러셔요.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인데 다리가 다쳐 가지고 이렇게 기부스를 하고 있대나 그런데 자기 똘마니를 시켜서 야 가서 그 다리 한 번 꺾어주고 와라 그랬대. 부하가 가가지고 그 다리를 확 꺾어놓고 왔대나 무섭더라고요. 그런 분들도 이제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 은혜가 그분들을 통치하죠. 그러면 아주 온유한 사랑의 사람으로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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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서 다스리시는 은혜로서 다스리시는 이게 당신의 몸인 신자들을 하나 내는 방법이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몸으로서 이렇게 다스리시는 은혜로서 그렇게 다스리시면서 그 몸을 하나님께서 키워가시는 거예요. 그래도 여러분들에게는 아직 의문이 안 풀렸죠. 그게 뭐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 있으면 생명을 계속 공급해 주셔서 그래서 우리들이 이제 주도토하란 말입니까? 그런데 이제 그게 비밀이 은혜에 있는 거야.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함께 연합을 이루실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만 누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연합시켜주신 거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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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단순히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연합이 되어서 생명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우리 몸에 접붙이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 생명은 주님께서만 이 풍성한 취소되는 법이 없지만, 이 풍성한 삶이라고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이제 우리가 주님 앞에 얼마나 성화의 삶을 사느냐에 달린 거예요. 뭐 의학적으로 제 설명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지 뭘 이해하십시오. 자, 손이 잘라졌는데 붙었어요. 그랬는데 피가 흘러 들어가고 피가 흘러 들어가고 생명은 있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활발하게 움직일 수가 없는 거죠. 여러분도 보면은 연세 들어서 풍을 맞는 반신을 잘 못 쓰시는 경우 나타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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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 어려우면 이쪽에 이쪽이 어려우면 어디 찌르면 아파요. 피나고 이것도 씻어줘야 되고 손톱도 자라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마음대로 잘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경우를 상상해 보시면 제 이야기가 이해가 될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서 생명은 가치에 의해서 계속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어떤 풍성함이 공급되지 않으면은 그런 식으로 예수의 몸에 겨우 붙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이시는 이유는 이유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를 그렇게 접붙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교회를 온전하게 하시고 굉장히 사실 우리의 가슴에 깊이 녹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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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붙여져서 교회가 온전해진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내가 접붙여지므로 내가 접붙여지지 않았을 때보다 이 교회가 더 온전한 교회가 되게 하시려고 주님이 나를 덧붙이셨다 생각해보라요. 저 같은 사람이 뭘 접붙여진다고 교회가 온전해지겠습니까? 안 되죠. 그건 겸손이 아니라 딴 때 겸손해지시고 발 뺄 때 겸손해지면 안 되지. 그렇게 우리가 접붙여져서 교회를 우리를 접붙이신 거야. 거기에 이바지 해야지. 그런데 이 은혜의 통치 끌고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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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거 없고 갈고리 다니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이거 이거 이러고 다녀.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덧붙이신 것은 나를 그리고 나를 통해서 교회를 또 교회를 통해서 나를 온전하게 하시려고 접붙이신 거고, 이게 첫 번째고요. 또 하나는 뭐냐면은 그 교회로 하여금 한 몸을 이루어서 하나님을 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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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교회가 접붙여져서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그렇게 이 동네면서 혼자 우리 혼자 믿었더라면 할 수 없었 하셨을 그 일을 교회가 계승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한 몸을 이루어서 세상에 섬기도록 파송하신 거예요. 그런데 가면은 그 사람들의 발을 씻겨야 되는 그 빨리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한쪽 빨리 가서 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될 텐데 뭘 흘리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그렇게 하게 하는 요인이 자기야. 그래도 내가 예수 안에서 일단 생명은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만족 만족할 수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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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일평생 동안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에 접붙여져서 이런 식으로 교회에 접붙여져서 겨우 생명은 누리고 있지만 그러나 인생 전체적으로는 이 교회의 그러니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질 않죠. 교회는 그것 사람도 짊어지고 가야 하죠. 그렇지만 그 개인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죠. 물론 이제 사람이 처음서부터 끝까지 그렇게 다 교회를 힘들게만 하는 것은 아니고 또 어떤 때는 은혜 받음이 되고 안 보탬이 되고 이렇게 이제 시기에 따라서 약간의 양상의 변화는 있고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잠시라도 그런 존재가 된다라고 하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너무 부끄러운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 이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서 생명을 누리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그다음에 어떻게 된 거죠?
31:56
충만한 그리스도에 의한 통치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충만한 은의 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고 내가 은혜가 떨어져서 바닥을 치면서 그러면서 비루하게 사는 것은 이 또 공동체의 사건이라 이제는 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떠날 수 없어. 그리고 너무 힘들면 교회를 옮기잖아요. 교회는 옮겼지만은 예수의 몸에선 떨어진 게 아니에요. 그럼 가서 영적으로 또 연결이 돼요. 그래서 결국은 양태에 불구하고, 결국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인 교회를 형이 간다고 안 힘들게 이야기해서 똑같은 수준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또 그리스도께서 머리와 몸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징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시는 거죠. 그리스도의 통치를 징계를 통해서 통치하시는 거죠.
32:56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대목이에요. 징계하시는 거죠.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분이거든요. 그런데 이 속에서 바로 참다운 교회의 일치가 나오는데 이걸 바르게 안 하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르게 돼 있는데, 사람과의 다만 좀 문제가 있다든지 사람과의 관계는 문제가 문제가 전혀 없고 하나님과의 문제가 좀 늦은 예 그런데 그거를 하나님께서 고칠 수 있도록 하시죠. 그러니까 이제 그때에 이제 교회의 중요성이 여기서 대두가 되는 거죠.
33:39
교회가 이제 이 사람이 신고하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다시 주님께로 나와서 주님을 붙들고 살 수밖에 없도록 그들을 일깨워야 되는데 이때에 이제 하나 그들을 교회가 많이 사랑해주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알아듣게 미끄러진 사람들도 하나님께 돌아와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애들을 키워도 마찬가지잖아요. 엄마 아빠의 생각에 동의를 안 하지만 내가 어떻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엄마 아빠가 사랑은 느껴져.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이야기할 때 폭언이나 폭력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어떡하든지 나와 대화하려고 그러고 하나씩 둘씩 나를 이해시키려고 해. 그러면 애가 물론 있지만 그러나 이제 가능성이 높아지잖아요. 교회도 마찬가지죠.
34:35
그런데 교회가 그런 것들을 그렇게 품어 안을 만한 사랑이 현저히 부족해. 너 잘라버릴 거야. 교회에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그런 교회 없지. 뭐 이렇게 잘 이렇게 알아듣게끔 가르쳐주지를 않아 하여튼 어쨌든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래 그러면 이제 힘들어지는 거지 이제 힘들어지는 거죠.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래도 그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죠. 그러니까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는 끊임없이 깨닫도록 만들어주시는 끊임없이 깨닫도록 만들어주시는 안 돌아와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되냐? 그 교회가 그 사람 때문에 계속 고통을 받을 것 아니야.
35:29
그 사람이 신앙에서 미끄러진 모든 교인들이 무슨 칼 들고 교회에 들어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교회를 아프게 한다는 것 자체를 교인들 비방하고 다니고 그런 것만 그거는 물론이지만 그것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미끄러진 상태로 교회 다니는 것 자체가 교회를 힘들게 포기하는 거라고 이러고 있는데, 아니 내가 은혜 떨어져서 무슨 당신이 나한테 보태준 거 있냐 그러는데 많지. 그거 달고 다녀. 얼마나 힘든가. 차라리 그 손 없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하나님께서 교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는 늘 곤고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 얘기 계속해서 깨달음을 보여주세요. 그런데 말을 안 들어. 하나님께서 한 대 치시는 거예요.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에요.
36:27
징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래요? 우리가 징계가 없으면 친자식이 아니라 사생자다. 우리가 주워온 아들이면 그럴 거다. 그런데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 친자식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를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치하시는 보여주는 그러니까 요령부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사는데 별일이 없어요. 신앙을 버리고 자기 잔재주 잔머리 굴리면서 살았는데 와 예수밖에 기쁨이 그런 상황이에요.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예수로부터 해방되었네. 그리고 씩씩하게 잘 나가.
37:26
그러니까 모두 불안한 눈길을 쳐다보는 거야. 아이고 저러다가 한번 이제 꿇어박는다. 바르게 이제 한번 넘어져서 고통받는다. 잘 자는 거야. 이게 인간 인제. 그런데 인제 말년에는 인간도 안 된다고 말년도 계속 영광이 충만한 거야. 죽을 때의 교통사고로 딱 죽을 거잖아. 죽을 때도 아주 깨끗하게 축복받은 심장마비로 쫙 웃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조문을 하고 부자니까 꽃상여에 쌓여서 나가. 그러고 이제 지옥으로 던져지는 거야. 진짜 그리스도예스크에 접붙여진 사람은 그렇게 살 수가 없어요. 한동안은 가 요나가 입증하잖아요. 다시 쓰러 가는 배를 딱 탔더니, 떠나기 전에 배에 시동이 꺼졌어요. 밑에서 무슨 물귀신이 올라가지고 뒤집었냐고요?
38:25
진짜 우리 상식대로 얘기한다면, 왜 고래가 그때야 나타나 떠날라 그럴 때 나타나서 배 옆구리를 들이받아 가지고 물이 들어가게 해야지 타이타닉처럼 침몰시켜야 되잖아. 그것도 요나가 잠들어 있는 바로 그거 들이받아가지고, 그래가지고 그놈을 물 먹여야 되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한참 가는 거야. 밀집 모자 쓰고 선글라스까지 띄고 디카 하나 걸고 제일 찔리는 사람 많겠다. 진짜 어 아 정말 예수 밖에 기쁨이네 주예수 밖에는 기쁨이네 결국은 하나님이 바다 위에 태풍을 대작시키시니 우리말 성경이 이렇게 나오거든요.
39:23
히브리 성경이 뭐라고 나오냐면 하나님이 바다 위에 폭풍을 발사하시니 제가 그 표현을 읽어보면서 하여튼 참 뱃살 주고 웃음 야 성경이 참 하나님이 폭풍을 바다 위에 발사하신 딴 데는 폭풍이 안 일어난 거야. 전 세계에 폭풍이 일어난 게 아니라 요나가 탄 배에 배가 이동하면 폭풍이 계속 그 배만 따라가 하나님 징계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태도를 바꾸기 전엔 그 폭풍이 지나가지 않아. 계속 따라와. 그럼 끝까지 안 바꾸고 끝까지 가는 거야. 끝까지 가는 거야. 그 하나님께서 통치하셔.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위로를 드리는 거야.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40:19
여러분들은 예수님께 발목을 잡힌 사람이야. 그래서 하나님이 가만히 안 내버려두시는 거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형벌 가운데 제일 무서운 형벌이 뭐라고 그랬어요? 내버려두시는 겁니다. 내버려두시는 겁니다. 어느 순간에 탁 내버려 두시면 그러면은 얘는 파멸로 가는 거예요. 간섭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때리고 징계하고 야단을 치시고 한다는 자체가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거거든. 도덕적인 목적을. 그러니까 거기서 이제 깊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거야. 이거. 그렇게 해서 이제 하나님이 치시는 거죠. 그렇게 해서 모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제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머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완전하셔요.
41:18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몸이 불완전해. 그렇잖아요. 그리스도 예수께 붙여졌다라고 하는 의미에서는 완전한데 이게 그냥 사는 신자도 있고 또 아까 얘기처럼 밀집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빨간 티셔츠 입고 디카 멀고 디카, 메고, 그리고 다시 쓰러 가는 인간들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폼새 없는 인간들도 있으니까 그리 완전한 교회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속에서 이렇게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특히 지상에 있는 교회는 들이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교회가 일치를 이루면서 교회를 세우신 삶을 사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교회 전체적으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어려워지는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의존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죠.
42:11
이제 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뜻이냐면은 그리스도는 교회가 있어야지만 교수가 되시는 분은 아니시죠. 그러니까 교회가 생기기 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동시에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잖아요. 그렇지만 교회는 틀려요.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가 머리이실 때만 교회는 겨우 교회일 수가 있는 거죠. 그리스도의 머리가 아니면 머리가 머리를 그리스도를 하고 있지 않으면 교회일 수가 없는 거죠. 이런 식으로 어떻게 의존하냐? 하면 교회가 맨 처음에 창조될 때부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되는 거죠.
42:58
물론 성부 하나님이 사랑으로 선택을 하셔서 그래서 그 교회를 세우시려고 계획을 구원 계획을 세우시지만 또 성령 안에서 그들을 믿게 하셔서 통해 사면안과 교통하게 하시지만 그러나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의 몸을 대속 제물로 주신 그 대속적 희생을 기초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교회의 터예요. 그게 교회의 터다 이거예요. 그게 기초다 이거예요. 그거를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를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교회가 창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럼 마치 똑같은 거죠. 만물이 창조될 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창조되었듯이 교회도 똑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창조된 거죠.
43:58
그것뿐만이 아니죠. 세워진 다음에 교회가 참으로 교회로 유지되는 것도 하나님이 다 관여하시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이 교회가 교회됨이 유지가 되는 거죠.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이 교회는 계속해서 수가 있다. 얘기죠. 이것이 가장 잘 이것을 가장 풍부현 해 주는 것이 뭐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 사역이에요. 그리스도 예수의 중도 사역은 도대체 중보자가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당시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가 올리는 것을 당신을 통해서 학계로 가게 하시는 거죠. 이 세상이 창조되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 창조된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세상을 존재하게 하시는 거죠.
44:53
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죠. 이런 중보의 창조에서만 이 모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교회 속에서도 모형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래서 교회를 창조하실 때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 창조하시고 그리고 또 창조하신 교회를 되게 하시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 하시는 거죠.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이 우리 중 어떤 사람을 구원해서 다시 예수의 몸에 접붙이셔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는 거죠.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공로를 보시고 선택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 몸에 접붙이시는 거예요.
45:41
또 여러분들이 그렇게 예수 믿으면서 살아도 겨우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졌는데 미끄러진 신자로 그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 주시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은 항상 예수를 통해서 경험이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에는 항상 그리스도 사랑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그리 예수는 하늘의 그 신령한 그 목표를 받는 열려진 창이에요. 그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거죠. 또 여러분들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카리타스가 하나님 안에 있는 아가페의 사랑에 비하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사랑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에 그 점이요. 잘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과연 하나님의 상에 올라갈 만큼 그렇게 완벽한 성김이에요. 완벽한 헌신이요.
46:34
완벽한 수고냐고를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 그 모든 흠도 없고 티도 없게 그 피로 씻어서 해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섬김을 받으실 때 하나님이 진짜 잘 섬겼다 진짜 그렇게 인정받을 만하지 그래 좋아요. 잘 잘했어. 그러면 안 되고 나의 섬김은 흠이 많았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바쳐졌습니다. 주님이 내 섬김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다면 모두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게 고백이 이게 교리적이고 성경적인 고백이란 말이에요. 또 그게 아메네예요. 그렇게 되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해서 교회에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그리스도는 교회 없이도 그리스도이지만 교회는 그리스도 없이 교회를 썼기 때문이죠.
47:31
이렇게 되면서 이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생각하게 되는데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신자의 연합과 똑같이 원리적인 연합과 그리고 실제적인 연합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야 돼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은 원리적인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먼저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요. 그러면 생명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신 것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요. 그런 것이 원리적인 연합이야. 원리적인 연합인데 그러면 그 원리적인 연한만 이루면 충분하냐?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것을 여태까지 지금 앞에서 계속 논증을 한 거 아니에요. 또 하나 뭐가 필요해요? 풍성한 삶이 필요하고 그걸 다른 말로 바꿔 얘기하면 충만한 은혜의 통치가 필요하다 이거죠.
48:30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에 왜 대답을 못해? 다시 너무 빨라서. 그렇죠?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신자 안에 당연히 있지. 그 사람도 신자인데 그 죄의 지배 아래에 있는 사람이 결국은 누구예요? 생명치에서 멀어진 사람이에요. 은혜의 통치에서 멀어지면 어떻게 한다고요? 죄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뭐야? 인간의 육체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질병에 가깝듯이 인간의 영혼은 은혜로부터 멀어질수록 죄에 가까운 존재가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바로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원리적인 연합이 이루어졌지만 그러나 우리가 부지런히 성화의 삶을 살게 되면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이루게 되는 거죠.
49:30
그래서 원리적으로만 연합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은혜의 통치가 사라진 가운데 죄의 지배 속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잘 느껴지지 그리고 계속 느껴질 때도 있지. 혼날 때 어이쿠 살아계시네. 아이고 아직도 살아계시네. 아직도 살아계시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아주 안식으로 확인을 하는 거예요. 불행하게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다음에 뭐 하냐.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부지런히 성화생활을 하고 죄를 죽여. 그러면 어떻게 돼요?
50:20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돼 날 사랑 왜 날 사랑 목사님 왜 예수님이 나 같은 이 쓸모없는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요? 눈물이 주르륵 흘러요. 그게 뭐예요? 실제적인 연합이 있는 거예요. 그 실제적인 연합 속에서 이제 교회도 똑같은 거예요.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가 머리시고 교회가 질문하겠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성자 성령 교제 속에서 끊어질 수가 있겠어요? 하나님은 그러실 수 없다고 그랬잖아요.
51:14
항상 삼위가 끊어질 수 없는데 그러면 두 번째 그럼 우리가 참신자가 되어 있는 몸에 접붙여졌는데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끊어내실 수 있어요. 내가 너희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며 너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렇게 붙어 있는 거 아니야? 그러면 결국은 무슨 얘기야?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이렇게 붙어있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그 생명이 계속 분유되고 누려지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원리적인 면에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와 이미 연합하고 있고 이 연합은 취소되거나 파기되거나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거죠. 그걸 기억을 해야 돼. 그런 경외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바라봐야 돼요.
52:04
시골에서 거의 쓰러져 가고 도시 교회에서 보내주는 보조금으로 근근덕신으로 유지되는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교회를 보면 하찮은 느낌이 들겠지만은 그리스도교에 접붙여진 몸이요. 그 교회의 머리가 예수라고 생각을 해 내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렇게 눈에 보이는 대로 교회를 하찮게 생각하거나 또 여러분들이 더 하찮게 생각할 때가 있죠.
52:39
목회자가 좀 얼빵할 때 공부도 별로 못한 것 같고, 그렇다고 무슨 유명한 것들도 아닌 것 같고, 그리고 그래도 설교라도 좀 잘하면 그것도 별로고 그런데도 도덕적으로는 너무 깨끗해 가지고 자기가 그걸 모르는데 지나 내나 비슷한 것 같고, 그럴 때에는 교회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교회만 생각하면 아이고 답답해. 니나 잘하세요. 니나 잘하세요. 그 교회를 주님이 그렇게 사랑하시고 그렇게 사랑하시고 주님이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그게 그런 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이게 성숙한 사람이에요.
53:39
그래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마차를 타고 동역자들하고 길을 지나가다가 저 멀리 교회가 보이면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그 옛날 영국에 사셨으니까 다행이지 서울을 그렇게 지나가셨으면 동역자들이 고달팠을 거예요. 기도합시다. 끝나고 또 있네. 기도합시다. 운전을 못 했겠죠. 그런데 그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움 저는 이런 진리들을 이제 작년 봄 알고 있던 진리들이지만은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진리가 다가오잖아요.
54:23
덕분에 연구도 좀 많이 했고 그러는데 쭉 사유를 하면서 그게 가슴에 이렇게 들어가는 게 이제는 이렇게 지나가는 이층교회나 지하 주님이 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교회에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옛날엔 그래서 아이고 목회를 똑바로 해야지 생각이 들었거든요. 솔직히 내 고백을. 그런데 이제는 아이고 좀 똑바로 하지. 아이고 그 장로들이나 집사들이나 그렇게 뺀질돼 가지고 그러니 교회가 저 꼴이지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여러분 다 그랬어요.
55:07
같이 그랬다고 그래야지 내가 좀 위로가 되지 어느 순간에 그렇게 아플 수가 그렇게 아플 수가 주님 혼자 그 개를 사랑하시는 경우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때 그 주님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눈을 들 곳곳마다 성에 탄식소리 들려온다.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이제 교회의 그리스도와의 원리적인 언제나 있는 것이고.
56:04
그런 점에서 모든 교회들을 볼 때마다 교회에 누추함이나 남루함 그다음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부족, 무지함 이런 거 보지 말고 아는 아 저게 머리가 주님이시구나. 주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이렇게 생각을 그리고 주님이 아직도 저 교회에 희망을 가지고 정말 그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러시는구나. 그거를 가슴에 깊이 이렇게 새기는 거죠.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은 힘이 없어요. 영국에 가면은 스펄존 목사님이 한창 목회하실 때 그 당시에는 교구나 이런 거 다 정해져 있는데, 6천 명 많이 모일 때 뭐 그 이상 모였다고 하는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난 거거든요.
56:57
100년이 넘는 옛날의 일인데 75년도에 제가 아는 목사님이 영국의 스플존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를 갔다 오고 나서 잡지에 글을 쓰셨는데 통탄하시는 거야. 50명 모였는데 추리닝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일날 테니스 라켓 들고 모였대요. 너무 마음이 아프셨다고 그러고 돌아오셨는데 최근에 최근에는 아마 더 모일 거예요. 영국에서는 이렇게 모이는 게 엄청난 거거든요. 그런데 5년 전에 그 교회가 500명 모여 다시 늘어났다 그래요. 피터 마이스터라고 하는 새로운 목회자가 왔는데 정말 불 같은 설교자가 왔어요. 교회가 확 살아나. 지금 아마 한 천 명 이상 모일지도 모르겠어요. 영국에서는 그게 거의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정말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구나.
57:57
스펄전 목사님이 하늘에서 얼마나 기도를 하시겠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교회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제 실제적인 연합인데 그러면 이제 이 실제적인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느냐 개인의 경우와 똑같아요. 그리스도와의 원리적에서 이루어지지만 실제적인 연합은 사랑과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는 것은 내가 나를 죽이고 자기 깨어짐 속에서 카리타스의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할 때 그때의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게 되는 거죠.
58:56
그렇게 하면서 순종을 통해서 그 일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첫째는 이런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기 위해서는 교회가 공동체 전체적으로 커야 돼요. 그런데 잘 보세요. 그러면 말이죠. 한 사람 한 그리스도를 제법 사랑하는 일.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고는 그들이 모인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할 거예요. 모였을 때는 주님을 사랑하고 흩어지면 각각 진실되게 그 참회를 통해서 사랑과 순종으로 그리친 연합을 이루면서 살아갈 때 그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주님을 사랑하게 되잖아요. 그러나 이제 이거는 이 원리는 틀림이 없는데 공동체적으로는 신경 쓸 거 없고 각자가 예수님 사랑하면 저절로 연합된다. 이건 무슨 얘기인지 아세요? 이런 경우 있을 수 있잖아요.
59:54
다섯 사람이면 뭐였는데 이 사람도 하나님 사랑해 이사를 하려고 그러는데 그 사람이 모인 그 모임이 저절로 하나로 합치가 되어서 설득 안 되세요. 설득 안 되세요. 하나님을 사랑해도 관심사는 각각 다른 것일 수 있잖아. 아주 좋은 비유가 딱 생각이 났다. 교회에 교회가 크질 않아서 다섯 명쯤 모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 다 각각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사가 다 달라. 한 사람은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데 주일날 관심이 많은 사람이야. 그리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 그 교회에 와서 예배는 드리는데 그런데 이 사람도 하나님을 만심은 찬양에 있어요.
01:00:52
어 그래가지고 또 이제 그걸 또 한 사람은 또 하나님만 막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은 훌륭해 그런데 교회가 공무원은 아니야. 그렇게 되죠. 그러면 그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두 가지 숙제가 주어지는 거죠. 어떻게 하면 한신자, 한신자가 진실한 자기 깨어짐 속에서 예수님과 시인 연합을 이루면서 살 것인가. 또 하나는 그렇게 하나님께 이루어진 개인적인 아름다운 헌신을 이게 개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 수업을 받게 되었다는 걸 일깨워서 그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공동체적인 관심사 속으로 끌어들이고 배우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성도들이 자기가 하나님 교회 속에도 그런 사람 있잖아. 그냥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나는 있지. 교회 가서 나 그런 거 나서는 사람들 정말 싫어.
01:01:48
나는 그냥 가서 그냥 가만히 자기 할 일만 하는 하면 되지 왜 그래? 이런 생각하시는 사람 많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큰 교회를 선택하는 거야. 작은 교회는 익명성이 보장이 안 돼. 한 번만 나타나면 수많은 사람이 뺑 돌려 싸서 어디 사시죠? 저기서 잡아당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게 싫은 거지. 큰 교회에 가는 거가 많아요. 그래요. 정말 사실 그렇게 되거든요. 익명성이 보장되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니죠. 그래서 공통된 관심사로 이렇게 뭉쳐줘서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른 지체를 보면서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체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오늘 장로님 기도하신 것처럼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멀리 떠나는데 미끄러지는데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수 없거든요. 그럼 누군가가 대신 기도해 줘야 되잖아요.
01:02:47
그게 사랑해. 예 그런데 다행히 아까 다섯 사람이 주님을 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한 사람이 하나님을 안 사랑하는 사람이 왔어요. 미끄러진 사람이 왔다 이거죠. 그럼 그 사람은 누구의 도움을 받겠어요? 이 다섯 사람이 다 관심사가 딴 데 있는데, 자기 혼자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교회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제 교회가 이렇게 감격을 느낄 때에서는 시원한 힘이 우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시는구나. 그러니까 이게 이제 그 원리적인 연합은 우리 모두 다 똑같이 누리고 있어도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는 종은 다 틀리다고 그랬잖아요. 그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는 것만큼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고, 또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거잖아요. 다 틀리듯이. 그럼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01:03:40
교회도 공동체적으로 깊이 회개하고 공동체적으로 일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향해서 하나님 생각해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어요. 지방에 내려가서 그때는 워낙 집회를 많이 다닐 때였지만 그런데 그 교회는 유독 기억이 나요. 바닷가에 있는 교회였는데 그렇게 크지는 않고 한 4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는데 집회를 갔는데 하여튼 나도 기이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게 은혜를 주셨어요. 그런데 그중에 어떤 자매, 여자 집사님이 편지를 보내세요. 그래서 편지를 이렇게 읽어보는데 그 속에서 뭐라 그러냐면은 자기는 말씀을 듣다가도 은혜를 받았지만 그 사경회 하는 기간에 교회 탁 교회 문을 열면 많지 않은데 교회는 꽤 컸어요.
01:04:32
그런데 이제 막 신도시가 들어오면서 사람이 빠져나가고 교회가 줄어든 교회였는데 자기는 태어나서 정말 신비한 경험을 했다는 거죠. 왜냐하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회개하고 이러는 것은 이해가 가는 내내 교회 마당에 발을 탁 들여 놓으면은 성형이 확 임하면서 그렇게 눈물이 정신없이 쏟아지더라는 거예요. 매번 발 들여놓을 때마다 그러니까 자기는 그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 처음이라는 거죠. 그때 제가 가슴에 깊이 새겨진 게 뭐냐 하면 이게 바로 하나님이 누구 개인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공동체를 잘하는 거야. 그 기간 동안에 그들이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공동체적으로 은혜를 확 베푸시는 거예요. 그의 마당을 딱 밟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그러면서 여러 지체들이 말씀을 듣지도 않았는데 딱 들어서면서 막 회개하기 시작하고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01:05:30
그게 바로 하나님이 공동체를 사랑해요. 그런 종류가 다 틀린 거예요. 다 틀린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똑같다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런 거잖아요.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을 그러면 그런 사랑받는 교회 찾아가야 되겠구나. 더 이상 토를 안 달게요. 그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게 되면 그러면 그다음에 그리스도를 순종하게 되면 그래서 순종은 사랑의 열매예요. 입증되는 거죠.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해요. 깊이 사랑해요. 그래서 큰 눈물이 있는 사랑, 감격과 기쁨이 있는 사랑, 감사가 있는 사랑 나만 그렇게 되지 말고 옆에 있는 지체들 여러분 예배 드리면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01:06:29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깊이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는데 옆에 지체를 줘라. 그런데 가슴 아프지 않아요. 그게 그렇게 깊이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게 예수님의 마음을 그러면서 그렇게 깊이 사랑을 해요. 그런데 이제 그다음에 어떻게 되냐면 순종을 하게 돼요. 순종. 그런데 이 순종이 개인적인 순종인 거예요.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요. 1인 100번은 불여. 100인 1번아. 한 사람이 백 발짝 가는 것은 탁월한 사람이 가끔 나오면 가능한데 백 사람이 똑같이 줄을 맞춰서 한번 옮겨 놓는 게 더 힘들다. 그런 뜻이에요. 1인 100번은 불여 100인 일보라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그게 굉장히 어려운 거죠. 우리는 뭐든지 혼자서는 잘해요. 그런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이 하라. 그러면 되게 불안해요.
01:07:28
우선 반장부터 뽑아야 되고 그리고 모든 문제는 위원 위원에게 옵니다. 항상 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담임 목사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우리는 폐하기로 동의합니다. 이러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제 그렇게 우리들은 무엇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무슨 얘기를 하려. 그러냐면 함께 모든 일은 쉬운 것이 아니죠. 나 하나만 하면 되는 게 아니죠. 나 하나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그중에 안 보낸 사람도 있죠. 그런데 이게 공동체로 하나의 다르시는 거예요. 촛대를 옮겨버리겠다. 너희는 날 버렸다. 그렇게 되면은 그중에 1~2사람이 잘하는 것이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로서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건 바로 그런 거죠. 그런 원리예요.
01:08:26
그게 말하자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책임을 지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 부르시는 거예요. 그런데 인제 문제는 뭐냐면 이 공동체의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일치 속의 순종이거든요. 그러면은 일치 속에서 이루어져야 되니까. 굉장히 어려운 거죠. 뭐냐면 지금 우리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이 선교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적으로 깨달아야 돼요. 그다음에 뭐냐면 반응이 똑같이 그것이 한두 사람이 이야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고 결국은 이 시점에 하나님이 우리 선교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에 마음을 합하자 할 때에 사람들이 그 순간에 모두 선교에 대한 관심사를 선교만 해. 구제도 해야지. 선교하고 구제면 주님의 일인가? 놀아.
01:09:23
아니 선교하고 구제하고 교육만 일해. 그럼 교도들이 친목을 해야지. 무슨 교육을 하든지 구제를 하든지 선교를 할 거 아니야. 뭔 팔다리 멀쩡한데 뭔 소리야? 우리는 자유인인데 감옥에 갇힌 사람 생각해 봐 하셨어? 옥에 갇힌 자들을 돌아보고 그러셨잖아. 그거 하나는 몸표 외도 아니야. 중요한 건 과부야. 성경 봐. 과부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그러면 고아우는 놀아 과부 밑에 고아도 나오는데 이러는 사람아. 그러니까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이야기가 다 맞지만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이끄실 때 어떤 때는 정직에 대해서 강력하게 도전을 받게 하시잖아요. 너 진짜 정직하게 살래? 너 왜 거짓말하냐? 너 진짜 너 축복 없다.
01:10:21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막 몰아세우실 때가 있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항상 그러시냐 하면 또 그리고 또 추천하님이 관심이 없으신지 너 그렇게 기도 안 할래? 기도 안 한 건 곧 영혼의 죽음이야. 네가 한번 어떻게 점철돼 있잖아. 기도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러면서 지도 제목을 계속 주시는 거예요. 지도 제목을 계속 주신다는 건 그냥 불러주신다는 게 아니라 사건이 자꾸 생기는 거야.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이렇게 이렇게 길을 가시잖아요. 이제는 정직은 끝났을 왔으니까 이젠 다시 부정직하면서 기도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 시기마다 하나님 그렇게 이렇게 인도하시는 게 있잖아요. 교회도 하나님께 그렇게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럴 때 아까처럼 그런 식으로 논쟁을 하면 안 된다. 이거예요.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서 하나님께서 그런 음성들을 자신들에게 전달해 주시고 순종을 기대하시는 거죠. 그래서 잘 들으세요.
01:11:22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를 그냥 다 모여라 니들이 다 알아서 할래? 모든 건 너희들한테 맡기게 그러질 않으시고 예수님 하나님께서 아예 처음서부터 교회의 머리는 예수거든.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다. 그리고 나머지는 니가 다 알아서 하는 거야. 그게 아니고 내 목사를 세울 거거든. 장로를 세울 거거든. 선교사를 세울 거거든. 선지자를 세울 거거든. 교사가 세워지거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질서를 정해 놓으신 분 친히 질서를 정해 놓으신 분 그래서 그럼 우리의 기도 제목은 뭐냐면 그 질서를 따라서 하나님이 자기 마음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01:12:21
자꾸 사람들이 저보고 설교를 어떻게 뭘 설교해야 될지 어떻게 정합니까? 그러고 물어보더라고요. 몇 사람이 물어봐요. 그런데 이 기회를 통해서 대답해 줄게요. 아마 이런 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어떻게 하냐면 대개 한 4가지 정도인가? 지금 다 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4가지 정도인가로 방식으로 정하는데 어떻게 되냐면 우선 첫째는 기도를 해요. 계속 하면은 그럼 하나님께서 뭘 설교하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요. 그런데 그건 항상 이렇게 주시지 않고 이렇게 해서 주셔요. 나를 대부분 물론 모든 설교를 그렇게 못할 때도 있죠. 그런데 그건 좀 잘못된 거죠. 그렇지만은 대부분 이렇게 나를 통해서 먼저 아프게 하시고 똑바로 살도록 고치고 피를 묻혀서 하게 하신 거예요.
01:13:18
그게 안 하고 이제 이렇게 할 수 있는 재료 나 많아요. 여태까지 계속 설교했는데 아무거나 하나 딱 빼가지고 와서 하면은 뭐 안 되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여기서부터 들어가서 이렇게 이렇게 통과한 아무것도 안 묻은 거예요. 그런데 이게 들어갔다 나오면 체액이 묻고 피가 나가는 거죠. 그리고 좋아하는 거죠. 그러니까 교인들이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목회자가 그런 유념하게 해줘야 돼요. 전념하게 좀 이렇게 교회 살림살이에 신경 안 쓰고 그거 전달하고 같이 하고 거기에 이렇게 여러분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어요. 그러면 이거는 무슨 목사는 무슨 아무 때나 가면은 피가 나와서 그거 묻힙니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알잖아요. 그런데 아니 뭐 1년에 한 번이나 아니면 봄, 여름, 겨울 한 번씩만 와서 설교를 하라. 그러면 또 가능성이 있어.
01:14:18
그런데 이거 매주 입만 열면은 막 토해 놓으라. 그러면서 그 전부 다 그런데 그게 그 피를 바른다는 게 그게 뭐야? 마음을 거기에 다 쏟아야 되는데 왜 온갖 거에 다 갈려가지고 벼의 빚은 어떻게 하나? 그다음에 왜 교인이 있길래 저렇게 저 사람들은 또 저렇게 은혜를 안 받고 저렇게 이렇게 자꾸 이렇게 시험에 드나 또 왜 저 사람들은 왜 또 저렇게 해가지고 또 요물당하고 이러나 이런 것들도 막 생각이 드는 그러니까 신경을 써야 될 일을 그대로 이렇게 하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목회자가 그런 일에 깊이 그거예요. 그러니까는 그게 바로 선조들이 해줘야 될 일이에요. 큰 집 주고 그다음에 사례금 많이 주고 그런 것만은 문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 거예요.
01:15:13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기를 다 바쳐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여유를 주고 그 마음으로 거기에 집중하게 해줘야 되는 거예요. 원고에 없는 이야기인데 오늘 나오네. 그렇게 깨닫게 되고 첫째, 두번째는 뭐냐면은 성경을 어느 순간에 그 진리가 딱 다가오면서 깊이 찌르는 거죠. 그러면서 나 자신의 부족을 보게 하고 결국은 설교자, 목회자의 부족이 교회의 한계거든요. 왜냐하면, 자기가 마음에 와닿은 것만큼 설교할 수 있으니까 설교 대신에서 제가 성경을 읽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러면서 깊이 부딪쳐 그 속에서 탐구를 해서 그래서 시리즈를 정하는 경우가 있고 2개 지금 2개 했죠. 그다음에 세 번째는 뭐냐 하면은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성도들의 삶을 보면 왜 저렇게 살까?
01:16:07
진짜 저 사람들을 저렇게 살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제 뭘 설교해야 인생의 행복을 묻는 그대에게도 그 누구를 그렇게 생각했냐면 그 사람들 그래도 또 2시간 하지만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은 그렇게 되는 게 마지막 네 번째는 뭐냐면 집중적으로 내가 의문이 나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가슴에 다가오지 않았는데 연구를 하면서 탐구하다가 가슴에 확 꽂히는 거예요. 그래서 가슴에 불을 지른 거죠. 그러면 반대로 그거를 보면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시리즈가 정해지는 거예요. 1년 치를 기도하면서 가는 거예요.
01:17:02
그런데 과거를 이렇게 돌아보면은 하나님이 항상 교회를 향해서 요구하시는 순종의 물결을 반영하지 못할 때도 있죠. 제가 영적인 상태가 좀 별로면은 인제 하나님은 어 그래라 그러는데 저는 아 그러면서 인제 자꾸 이중창을 할 때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냥 대체로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고, 성도들이 기도해주고 그러면은 이렇게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아파했는데 쫙 막 보니까 전부 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성도들이 막 걸리는 것들이 느껴지는 거예요. 정직 시리즈 같은 거 이런 거 그런 거. 그다음에 자기 자랑 시리즈 이런 거 그렇게 하면서 하는 거죠. 결국은 뭐냐 하면 아까 얘기했듯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 시기마다 질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01:17:50
그러니까 교회의 그래서 하나님이 그 질서 속에서 기도를 많이 하면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강단 아래에 있는 사람은 강단을 향해서 뭘 해달라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몇 분에 끝내십시오. 뭘 하십시오. 요즘 뭘 하십시오?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매정하다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 선도들은 뭐냐 하면 언젠가를 신방한다고 해요. 막 설교 시리즈를 시작을 했는데 신방한다고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자기가 확론을 했대요. 우리 목사님이 난 이 성경의 이 장을 전혀 모르겠는데 이 관계를 해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랬더니, 6개월 안에 그 시리즈가 시작이 되더래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면서 질서를 되도록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신 거예요. 그런 사랑과 순종을 통해서 교회는 어떻게 돼요? 그리스도께. 그리스도께 공동체적으로 함께 일치면서 연합을 이루게 되는 거죠.
01:18:47
그러면서 그리스도와의 결속이 가득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에 황 뜨겁게 사랑하시고 안아주던 때가 있고 오셔서 교회를 이렇게 이러시는 때가 있는 거죠. 많이 안아주실 때는 막 회심의 역사 이런 것들이 막 일어나는 거예요. 교회는 영혼들로 꽉 차고 모인 영혼들은 하나님으로 꽉 차서 돌아가고 그리고 막 그냥 1부 예배 끝나면 휴지 1통 사라지고 2부 예배 끝나면 휴지 1통 사라지고 얼마든지 사줄게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이죠.
01:19:23
그러니까 그런 속에서 되어가도록 그러니까 성도들이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교구의 목회자들이 그때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거기에 일치한 코드를 가지고 우리를 지도할 수 있도록 당회에 그런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그래서 다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자기는 깊이 엎드리면서 질서를 사용하셔서 그 일을 해주시도록 경건하고 정숙하게 엎드리는 거예요. 그때 이제 그렇게 함께 모두 일치를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자기가 판단하는 사물들의 질서만 옳다라고 하는 교만한 생각을 꺾어야 되거든요. 그러면서 뭘 생각해야 되냐면은 이 옳고 그름도 문제가 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나 이 모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가 이런 새로운 변수를 생각해야 되거든요.
01:20:18
그게 이제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은 아주 굉장히 힘이 느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신을 죽이면서 그렇게 그냥 한번 불쑥 나타나서 이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데 하나님 저 사람의 뜻이 없어서 너무 돌아가는 거지 너무 돌아가는 거고, 너무 힘들죠. 여러분들 목회할 때도 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당신 뭐가 문제인지 내가 얘기해 줄까? 이렇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강대에 엎드려서 하나님 하나님한테만 얘기하는 거죠. 제 생각엔 저 사람이 이런 문제 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주십시오.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깊이 승복하게 해주십시오.
01:21:12
그리고 우리는 기다려줄 수 있도록 참을 수 있도록 우리 그렇게 해주십시오. 기도하는 거죠. 돌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에서 많은 힘든 것이 사실은 그 힘든 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연합을 이루어가는 이 계기로 삼는 것이 이 하나님의 아주 탁월한 지혜예요. 탁월한 지혜예요. 여러분들이 계속 신앙생활 안 하고 제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면 제가 죽기로 더 가까이 다가가요.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계속 개겼더니, 우리 목사님이 금년에 많이 성화되셨구나. 식사 접대 한 번 안 해주실라나? 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01:22:08
내가 개겨서 우리 목사님을 성화시키지 않으면 누가 하랴 그런 생각 안 해도 돼요. 그거 말고도 많은 그런 새로운 거를 주실 거야. 새로운 거를 주셔서 가슴 아프게 하셔서. 그래서 가는 거니까 나는 미래에 대해서 기대하는 거 없어요. 그냥 그렇게 살다 죽는 마당에 앉아 있는데, 어느 후배 목사님이 와서 목사님 생명력 있는 목회의 비결이 뭡니까? 내가 뭐라 그랬더라고요? 죽음. 아주 짧게 죽음. 목회자의 죽음입니다. 죽음입니다.
01:22:45
날마다 죽어서 예수 죽음의 기운이 뼈를 타고 핏줄에까지 그 죽음의 기운이 검은 그림자가 안개처럼 쭉 퍼져나갈 때 그때 차라리 힘줄이 끊어지는 게 덜 아프고 힘줄이 잘리는 게 덜 아프고 뼈가 망치에 의해서 부서지는 게 덜 아프고 심장이 산산이 터져버리는 것이 덜 아파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돼요? 또 참고 참아요. 참고 또 참아요. 연이 있잖아요.
01:23:38
바람 부는 강변에 가서 연을 많이 그러면 막 연이 하늘 높이 바람을 받아서 쫙 오를 때 연줄이 팽팽해지잖아요. 심하면 이게 끊어진단 말이죠. 팽팽하면서 연이 생각하는 거야. 아이씨. 왜 이렇게 줄을 땡기는 거야? 좀 풀어. 그럼 내가 저 하늘 높이는 할 수 있는데, 소원을 들어줘요 끊어버려요 그러면 연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일치를 이루는 게 너무너무 힘이 들어요. 그렇지만 그거를 통해서 그거를 통해서 그거를 통해서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하늘 높이 날아오는 나의 날아오르는 성화 생활의 여인이 되는 거야.
01:24:38
이 지점에서 잘 들으세요. 이 지점에서 그 사람이 보여주시는 거예요. 제법 하나님을 자신이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깊이 사랑에도 다 차이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주님을 향해서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고통 속에서 이 자기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이 몸의 일부인데 어? 일부인데 그러면서 거기서 하나님 앞에 그 힘든 가운데 자기가 그 몸의 일부라는 걸 배우는 거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고난을 자기의 육체 속에 채운다고 한 사도 바울에 관한 거야.
01:25:34
거기에서 피 엎드려질 때 예수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거야.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이 속에 스며들어오게 되는 그때에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스며들어올 때 그걸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신 그 고난의 깊이와 넓이와 의미를 깨닫게 되는 스며들어오면 그런데 그 고통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느끼는 것과 유사한 그런 고통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고통을 느낄 때에는 동시도 없어요. 아무도 혼자 벌판에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아무도 없고 하나님 한 분 앞에서 당하는 거야. 그러면서 깊은 고독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하시는 거야.
01:26:32
그러면서 깊이 들어와. 그런데 그 예수의 죽음의 기운이 들어올 때 신기하게 자기도 알지 못하던 자기 안에 있는 수많은 정욕과 탐욕들을 하나님이 함께 죽이시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를 본능성적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도바울이 얘기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권한을 육책감 예수님께 무슨 남은 권한이 있겠어요? 예수님이 충분히 우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죠. 그러니까 이 남은 권한이라는 건 뭐냐 하면은 우리의 구속을 이루기 위해서 모자라는 남은 권이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계셨더라면 고난을 받으시면서 살아야 됐을 텐데 그거를 이제는 당신이 세우신 교회에 맡기신 거예요.
01:27:24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교회가 일치 내가 사실은 자기만 잘못한 게 원래 교회 공동체 다 잘못했는데 자기가 마치 교회와 그리스도 사이의 중간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주님한테 나아가서 깊이 죽임을 당하는구나. 예수의 기운이 스며들어오는구나.
01:27:49
그 사람을 보실 때 모두들 웃고 떠들면서 돌아가고 텅 빈 예배당 한구석에서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 교회의 아픔을 한 몸에 쓸어안고 그리고 뼛속까지 스며들어오는 예수 죽음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러면서 그 가슴 아파 그 사람을 보시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거죠.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남는 고난을 체험한 비교를 해보세요. 그런 사람과 에이씨 골치도 아픈데 집어치우자 이러고 보따리 싸는 사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 두 사람의 차이를 한번 비교해 보라. 내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얘기해요.
01:28:49
즉흥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교리를 묵상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에요. 여러분들은 정말 진리를 사모해서 열린교회에 온 사람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그런 만족을 못 주었던 여러분들의 이전의 교회에 많은 상처를 주었을 수 있어요. 여러분들의 아픔도 물론 많았겠지. 그런데 이제는 한 번쯤은 깨끗이 회개하고 지우고 지나가야 돼. 그리고 용서를 빌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빌고 그리고 이제는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돼요. 그런 식으로.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렇게 교회 와서 등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그런 식으로 교회와 헤어지는 것은 지난번 교회가 하지만 여러분들이 일생 동안 이 교회 다니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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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도 있고 선교 갈 수도 있고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상황이든지 간에 이게 교회가 실제적인 연합을 누리면서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받는데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 돼야 된단 말이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