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을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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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일을 사랑으로
본문: 고린도전서 16:1–24
4세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흔히 '배교자 율리아누스'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신앙을 버리고, 황제가 되자 옛 이교 신앙을 다시 일으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무지 꺽을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ㄷ,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지방의 이교 제사장 아르사키우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유대인 중에는 거지가 없고, 저 불경한 갈릴리 사람들은 자기네 가난한 자뿐 아니라 우리 쪽 가난한 자들까지 먹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우리 동족조차 돌보지 못한다." 그가 '불경한 갈릴리 사람들'이라 비웃던 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식구도 아닌 사람을, 심지어 자기를 미워하는 황제의 백성까지 먹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황제의 권력이 교회의 사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6장이 바로 그 사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고린도전서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첫 절이 뭐라고 합니까?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에 대해 말한 다음에, 곧 이어서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연보입니다.
연보(捐補) 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입니다. 직역하면 “내 것을 덜어내어 남을 돕는다”는 뜻입니다. 강조점이 수평적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어 형제와 교회, 특히 가난한 자를 돕는 행위에 초점이 있습니다.
헌금(獻金) 은 ’드릴 헌(獻), 돈 금(金)’입니다. “하나님께 돈을 드린다”는 뜻으로, 강조점이 수직적입니다.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헌신·봉헌의 측면이 부각됩니다.
즉 성경이 ‘연보’라고 부른 그 헌금의 본질은, 단순히 하나님께 돈을 바치는 행위가 아니라 ‘내 것을 덜어 곤궁한 형제를 돕는’ 나눔이었다는 점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연보의 원리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16장 1-2절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의 삶을 결코 헛되지 않게 하는 부활 신앙은, 연보를 통해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감정으로 두지 않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매주, 각 사람이, 번 만큼의 비율로, 미리 떼어 두라는 것입니다. 마음만 따뜻한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고린도전서 16: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여기 '남자답게'라는 말은, 원어로 '용기를 내라'는 뜻입니다. 남자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고, 믿음에 서고, 담대하고, 강건한 사람 — 그 사람이 결국 무엇을 합니까?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다면,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함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랑을 어디서 시작할까요.
첫째, 사랑은 결국 내가 가진 것에서 흘러갑니다.
바울이 연보를 부탁한 고린도 교회도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처방은 "많으면 하라"가 아니라 "번 만큼의 비율로 하라"였습니다. 이 말씀은 "여유가 생기면 사랑하겠다"가 아닙니다. 이번 주, 번 것의 작은 비율을 어려운 지체와 이웃을 위해 먼저 떼어 두고 나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결국 우리의 사랑은 섬김을 통해 실천됩니다.
바울은 편지 끝에서 한 가정을 칭찬합니다. 스데바나의 집입니다. 15절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작정해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교회를 섬긴 사람들입니다. 제일 힘들고 귀찮고 짜증날 수 있는 상황에서 먼저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이 진짜 리더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과 태도 속에서 사랑이 흘러나길 원합니다. 나의 섬김으로 우리 공동체 안에 사랑이 전염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진짜 부활을 믿는 자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부탁하신 그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연보를 부탁하신 그분이, 정작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한 연보로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다 쏟아 부으시고, 부활하셔서 죽음을 이기시고, 이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