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주파수를 맞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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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6-27
로마서 8:26-27
아무것도 알 수 없을 때
아무것도 알 수 없을 때
신앙생활은 네비게이션에 의존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가는 여행객의 발걸음과 같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기에 어디가 위험한지, 어디가 바른 길인지 잘못하면 헤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에 살때를 떠올려보면,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이 찾아오실 때가 있습니다. 손님 맞이를 하다보니, 제가 식사대접을 해야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손님들이 밥도 얻어먹는데 운전까지 맡길 수 없다며 본인 차로 가자고 합니다. 저는 불안감이 급상승합니다. 왜냐하면 한강에 있는 다리들을 건너서 그 다음 길들로 이어져 들어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도 성화를 하면 어쩔수 없이 제가 조수석에 탑니다. 제 기억에 길을 잘못들어 가장 많이 한강을 넘나든 분은 8번까지도 하신 일이 있습니다. 결국 한쪽에 차를 정차하고 제가 운전해서 목적지에 갔습니다.
네비게이션 볼 줄 압니다. 운전도 할 줄 압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요? 딱 하나입니다. 대략적이지만 전체적인 도시의 도로흐름이 머릿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매번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어려워하고, 힘겨워 할까요? 저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로드맵이 머릿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는 것이 잘못되었느냐고 되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노력을 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를 태워주시던 분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헤매였나요? 아닙니다. 그분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문제는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목적지와 방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헤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격는 신앙의 진통도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틀어진 방향의 수정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때에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도우시는 분
도우시는 분
사도바울은 그 해답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 누구라고 말하나요? 맞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바울의 편지 내용은 우리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는 내용입니다.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겠는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어렵고 힘들면 기도가 안됩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도 기도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이러니 무슨 역사를 경험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우리는 우리만 바라보며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22절에서는 피조물이 탄식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절에서는 성도가 탄식합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이 탄식의 연장선에서 성령이 그 상황과 우리 삶을 보며 함께 탄식으로 공감하고 공명하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의 깨어진 환경과 마음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슬픔을 하나님의 언어로 쏟아내시는 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지점이 바로 성령이 비로소 기도를 이끌기 시작하시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 나는 이제 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때가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멈춰선 내 기도와 내 인생을 짊어지고 달리시기 시작하는 시작점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분 뜻대로 마음대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마음을 살피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오직 성부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다윗에게 기름 부으실 때에 스스로를 소개한 장면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인 성령의 생각을 바로 바로 파악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모를 때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슬피 울며 탄식하십니다. 그 탄식을 성부께서 친히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 외에 이러한 유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대단한 모습의 기도를 보이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참담함 속에 눈물만 흘리고 있어도, 성령을 통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상황을 깊이 살피시기에 기도의 자리는 생명줄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십니다.
아무리 우리 생각을 살펴주셔도 그분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신다면 이건 정말 헛수고입니다.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으로써 하나님의 생각 가장 핵심을 꿰뚫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인도는 완전하며 온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뜻을 알겠습니까? 더욱이 어떤 신이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살피겠습니까? 오직 성령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이 일을 적용시켜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내 사정을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은 그 때에, 멈춰 서서 주파수를 맞춰봅시다. 성령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면 그분께서 우리 삶을 인도해나가실 것입니다. 성령과 교감하고 교통하며 공명하는 인생, 그분의 사랑과 긍휼을 누리며 사는 인생, 우리 모두가 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