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37:1~6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Notes
Transcript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신 묵시록 입니다. 현재 남유다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중에 그를 아주 마른 뼈들이 많이 있는 골짜기로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뼈들이 살 수 있겠는가? 묻자 에스겔은 하나님이 아십니다.라며 답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뼈에게 하나님께서 생기를 넣으시리니 살아나리라하고, 힘줄과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겠다고 선포하게 하셨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은 마른 뼈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성실하심은 지금도 택한 자기 백성을 향하여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탁월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발견하고 선하신 주님을 송축하는 백성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포로중에 있던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이끄셨습니다. 그 뼈는 사람의 뼈인데, 한 무더기만 아니라 골짜기를 가득히 채울 정도의 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뼈의 상태를 보니 아주 말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뼈가 된지 꾀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그 많은 뼈가운데로 이끄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황폐함괴 도무지 회생할 수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현재 마음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37: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어진 포로의 생활과 그들 생각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완전히 버리실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으며,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전혀 멸망에 대비하지 않았던 그들에게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소망과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관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보편적인 우상과 하나님을 같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에서도 그들을 건지시고 광야에서도 함께하시며 가나안에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바벨론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다니엘을 통해서 포로 70년 후에 회복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낙심해 있었죠. 또 한 가지는 현재 자기들의 헛된 우상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서 포로가 됐는데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신세한탄만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은 포로 가운데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약속을 붙잡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곳곳에서는 포로 가운데 회개한 백성이 믿을 지킴을 잘 살필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모르드개, 에스라, 에스겔, 느헤미야, 스룹바벨 외 함께 귀국한 자들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아셨고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묻습니다. ‘능히’리고 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으로 라는 것이 아니라 ‘과연’이라는 것입니다. 뉘앙스를 쉽게 말씀 드리면 정답을 알고 있지만, 그 정답 외에 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뉘앙스입니다. 이에 선지자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답이시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달렸다는 것이죠. 다르게 표현하면 저 뼈들의 어떠한 권능으로는 살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으로써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철학이나 수학적인 공식이나 과학적인 증거를 대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이 어떻게 사람이 됩니까? 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을 누가 택하십니까? 살리실 것과 죽이실 것, 간섭하실 것과 내버려두실 것, 오늘과 내일의 시간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포로기 70년 후에 저들을 살리실 것이라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을 정하시고, 바벨론이라는 나라와 장소를 정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잠깐 신분을 포로라고 결정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6:23절에서 이미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고 그의 이름을 더럽혔으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다시 살리실 것을 선포하십니다. 에스겔 36: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회복하십니다.
3절부터 6절까지 회복하실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먼저는 “대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살리실 순서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대상은 마른 뼈들입니다. 그들에게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속에 생기를 넣으시는 순서입니다. 7~8절을 보니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대언할 때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생기가 아직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생기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시각적인 모습으로는 호흡을 의미하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호흡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그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야 비로소 시체가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은 창세기2장7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모든 육신은 성령께서 있으셔야 만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새 영을 자기 백성 안에둡니다. 그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는 육신의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부드러운 마음을 부어주십니다.
보이십니까? 구원할 사람과 구원의 과정과 구원의 결론과 구원받은 백성을 이끄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누구십니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구십니까? 우리 아버지시며,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 무엇도 우리의 공로를 찾아볼 수 없고 우리를 택하사 구원하시는 선하신 주님께만 모든 찬양을 돌리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 놀라운 약속을 이루십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를 자녀라 인쳐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대속하심으로 이루신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 됐습니다. 오직 우리주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니 죄를 짓자고 하거나 기도를 멈추자거나 전도를 멈추자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혼자서 하실 수 있으시나 누구를 통해서 대언하십니까?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포로 중에도 자기의 말씀을 선포할 선지자를 남겨두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 백성을 통해서, 시험기간 중에도, 고난 중에도, 게임의 유혹하고 중독의 유혹과 음란의 유혹 가운데서도 선지자를 두셨듯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안에서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도무지 소망이 없고 마른 뼈와 같은 심정으로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특정한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전삼아 함께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