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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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찾아왔더라(8-16)
다 찾아왔더라(8-16)
오늘 본문말씀인 창세기 14장의 말씀은 아브람의 조카인 롯이 전쟁으로 인해서 사로잡히고, 그 재산까지 다 빼앗겼다가 아브람이 전투를 벌여서 그것을 되찾아오는 내용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말씀 8-9절말씀을 보시면, 두 진영이 서로 닻투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먼저 첫번째 진영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이라고 하는 도시 국가의 다섯 왕들이고, 다른 진영은 엘람, 고임, 시날, 엘라살이라고 하는 네 왕들이 속한 진영입니다. 본문말씀 앞에 등장하는 1-7절까지의 말씀에는 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라고 하는 왕을 다섯 나라가 속국으로 12년동안 섬기고 있었는데, 13년째 되는 해에 이들이 배신을 해서 전쟁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쟁을 벌인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 오늘날에도 도로를 포장할 때 쓰이는 아스팔트 같은 물질이 많이 나있었는데요, 아무래도 근동 지역, 오늘날에는 거의 중동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이 워낙 석유가 많이 나오니까 역청 구덩이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왕이 후퇴를 하다가 이 역청 구덩이가 많은 곳에서 빠지고 다른 세 왕은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세 왕은 나름 군사를 지킬 수가 있었는데 소돔과 고모라 왕은 그러지 못해서 완전히 전쟁에서 패하게 된거죠. 그렇다 보니까 그 반대 진영인 네 왕의 진영이 소돔과 고모라를 약탈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문제는 이 소돔에 아브람의 조카인 롯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 왕이 전쟁에서 패하니까 이 롯도 가족과 함께 사로잡혀가고, 재물도 다 빼앗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3절 말씀을 보시면 거기서 어떻게든 도망치는데 성공한 사람이 아브람에게 찾아와서 “당신의 조카인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이 전쟁에서 패하여 사로잡혀가고 재물도 다 빼았겼소!”라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브람이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집안에서 길리고 훈련된 318명을 이끌고 밤에 습격을 행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16절 말씀에[ 보시면, 롯과 그의 가족들을 다 구출하고 빼앗겼던 재물도 다 되찾았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롯을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말씀 14절 말씀에 보시면 집안에서 길리고 훈련된자 318명을 이끌고 습격을 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 장면은 굉장히 이상한 장면입니다. 먼저는 아브람의 집에 군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사람만 300명이 넘는다는게 참 이상해요. 아브람의 시대에는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제국은 이집트 정도였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작은 도시 국가가 많았습니다. 이런 도시국가들은 보통 인구가 5천명에서 1만명 정도 되었거든요. 그 중에서 아주 군사로 쓸만한 인구를 많아야 10% 정도만 두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도시국가에서 군대는 많으면 500명 정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의 집안에서 군사로 나설 수 있는 사람만 300명이라는 거는 거의 어지간한 도시국가의 군대에 맞먹는 숫자라고 볼 수 있는겁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본문말씀 1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아브람이 318명을 거느렸다고 하는데, 그 앞에 등장하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300명의 사람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길리다 라고 하는 말은 집안에서 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데, 이 길린 사람들을 훈련시켰다 라고 하는 것은 아브람은 거의 집안 사람 모두가 이런 일을 대비해서 훈련을 했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아브람이 롯과 그의 가족, 그리고 재산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아주 미리 대비해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대 로마의 군사 전략가였던 베게티우스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가족과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는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도록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말이죠. 아브람은 부랴부랴 전투에 나갈 사람을 고른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충실하게 대비했고, 이를 통해서 롯을 구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미리 전쟁을 대비하고 준비하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전서 말씀이 있는데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마귀가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 항상 근신하고 깨어있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근신하고 깨어 있냐면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이야기하죠. 믿음으로 준비하고 대비해서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여러가지 유혹들이 있을 것이고, 특히 베드로의 시대 때에 많은 이들이 순교할 만큼 로마의 박해가 심했는데요. 그 박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저버리고자 하는 유혹에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여 대적하라는 말씀을 하는 겁니다.
이런 영적 전쟁에 대비하고, 또한 승리했던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고아원을 운영한 전도사인 조지 뮬러라고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만 명에 달하는 고아들을 돌보았다고 하는데요, 오늘날에 그런 말을 듣는다면 “아 좋은 일을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이 있었고 그 신분때문에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만큼 좋은 신분이었던 뮬러가 천한 신분인 고아들을 돌보고 가르치는게 굉장히 비난받을 만한 일이었거든요. 좋은 일을 하고도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뮬러는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뮬러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는 신기하게도 누군가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을 달라고 요청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빚을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그랬더니 그가 요청하지도 않은 지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거에요. 어느 때는 아이들을 식탁에 앉히고 식사 기도를 하는데 식량이 다 떨어져서 식탁에 먹을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식사 기도를 마치자마자 빵집을 하는 사람이 빵을 가져오고 우유 배달을 하는 사람이 우유를 두고 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수십년을 고아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고아들을 버리고 그냥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잘 벌수도 있었는데, 굶주림과 가난에 함께 참여하면서 찾아온 많은 유혹들을 기도와 말씀으로, 믿음으로 극복해온 것입니다. 이 뮬러라는 사람은 그렇게 평생동안 만 명의 고아들을 돌보았고, 학교를 설립해서 10만명이 넘는 학생들을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다가올 영적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세입니다. 가난할 때나 부요할 때나 믿음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가족과 재산을 되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이 집안의 장정들을 훈련시킨 것이듯이, 하나님을 찾으며 믿음으로 무장하는 것은 필요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대비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1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할렐루야! 저희 삶가운데 유혹과 시련으로 찾아올 영적인 전쟁에 대비해서, 항상 믿음으로 준비하고 대적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십분의 일(17-20)
십분의 일(17-20)
본문말씀 17절 말씀 부터 보시면요, 아브람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서 소돔 왕과 살렘 왕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 살렘 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아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멜기세덱 왕과 아브람이 함께 식사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식사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평화로운 협정이나 합의를 맺을 때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의 자리에서 19절 이후에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축복을 할 때에 멜기세덱이 하는 언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멜기세덱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러이러하게 해주시기를 원한다”라는, 아브람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을 찬송하라”라고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말을 하면서 아브람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을 듣고 아브람은 어떻게 하죠? 자기가 전투를 통해서 얻은 재물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아시다싶이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가장 오래된 기원이 되기도 합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많은 이들이 십일조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십일조는 교회에다가 내는 것이라고 한다던가, 아니면 교회를 별로 안 좋아 하는 사람들은 목사한테 가져다바친다고 한다던가 그런 말들이 있죠.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도 가끔 십일조를 잘못 알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외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나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요, 외할머니가 “교회 가는데 헌금 챙겨야지!”라고 말씀하시니까 할아버지가 “아 그래. 점심 먹으니까 밥값은 내야지”라고 농담으로 이야기하셔서 할머니까 등짝을 후려치시면서 “말을 그 따위 식으로 해!”라고 화내셨던게 기억이 납니다. 물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시지만 실제로 교회에서 밥을 주었기 때문에, 혹은 좋은 말씀 들었기 때문에 십일조나 헌금을 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간혹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죠. 먼저 본문말씀에서는 어떻습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기는 하는데, 그 축복의 말의 대상은 철저하게 하나님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브람에게 “좋은 말씀”을 전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그 예배와 찬양에 따라서 아브람이 십일조를 준것이지, 멜기세덱에게 어떤 좋은 말씀에 대한 보답으로 십일조를 낸 것이 아닙니다
특히 출애굽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 중에서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면 더 그런데요. 민수기 말씀을 보시면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말씀은요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 사람들과 다르게 땅도 가축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가진 재산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철저하게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드리는 일에만 봉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축과 땅의 소산 중에서 십분의 일을 통해서 레위 지파를 지원했던 것입니다. 지금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본질적으로 그 십분의 일을 통해서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드리는 일에만 봉사하니까, 본질적으로 이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입니다.
또 레위인도 십일조를 따로 내었습니다.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 조차 온전히 레위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위인 조차 하나님께 십일조를 거제로 드리는 것을 통해서 이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된 십일조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목사나 교회 같은 어떤 사람이나 건물에 물질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행위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교회에서 봉헌할 때 드리는 헌금과 십일조 역시 물질적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교회에서 사용하고 일부는 목회자들의 사례비로도 쓰이지만 그 본질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봉헌이라는 것입니다. 이 봉헌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행위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2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할렐루야! 저희가 가진 것의 일부를 봉헌하는 것이 사람과 건물을 위해서 “돈을 내는 행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향해서 봉헌하는 것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말씀해주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고 봉사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21-24)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21-24)
본문말씀 21절말씀부터 보시면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말합니다. “전리품 중에 사람은 나에게 보내주시오, 그러나 재물은 당신이 가지시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전쟁 포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브람이 데려온 사람은 주로 롯과 그의 가족들인데 소돔왕이 뜬금없이 아브람의 조카를 원하지는 않겠죠? 전쟁 포로는 노동력으로서 활용이 되고 또한 소돔과 고모라가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서도 아마 사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브람은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22절부터 보시면 하나님께 아브람이 맹세하면서요 “당신에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도 내가 가지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24절에 나오는 젊은이들이 먹은 것, 군량이죠, 군량과 같이 싸운 다른 사람들의 몫만 제외하고는 모든 물자도 다 소돔 왕에게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23절에 아브람이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다른말로는 소돔 왕이 “물자는 당신이 가지시오”라고 한 말이, 다른 말로 “소돔 왕인 내가 아브람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라고 여길까봐 소돔 왕에게 돌려준다는 겁니다. 즉, 아브람이 풍요로워지고 부자가 된다면 그것이 소돔 왕의 공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맹세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아브람을 부유하게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이지 소돔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롯과 그의 가족들을 되찾고 그의 재산들을 되찾은 것 이외에 원래 소돔 왕의 소유였던 것은 소돔 왕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아브람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자신의 조카인 롯과 그의 가족과 재물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이지 지금 전쟁의 전리품으로 얻은 부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을까요 옳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로마 동전에 새겨진 가이사, 카이사르 곧 로마 황제의 것은 로마 황제에게 돌려주고, 다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돈과 재물, 그리고 경제는 사람의 것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사람이 쓰고, 그 말은 결국 어차피 지금 가지고 있어도 죽어서는 다 내려놓을 것들이고, 언젠가 우리의 손을 다 떠날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어떻습니까? 아브람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손들, 사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유대인들만 봐도 영원할 것처럼 그 약속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습니까? 사리지지 않고 영원히 남고, 또한 저희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라지는 재물들은 놓아주고, 또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저희는 사라지지 않을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합니다.
본문말씀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사라지는 재물을 탐내기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찾으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아브람의 찾음은 전쟁에 대비하여 항상 준비하는 것입니다. 롯을 되찾기 위해서 전쟁을 벌일 때에 항상 집안 사람들을 길리고 훈련함으로 승리했던 것처럼, 저희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항상 믿음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살면서 겪을 많은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으로 이겨낸 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합니다.
둘째, 봉헌은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봉사와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롯과 가족과 재산을 되찾은 이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께 봉헌한 것처럼, 저희 또한 저희가 봉헌하는 헌금이나 십일조가 단순히 교회에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봉사와 헌신의 행위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사람이 주는 복과 좋은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말씀을 갈구하며 그에 봉사와 헌신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봉헌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람의 찾음은 재물을 탐내기 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찾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찾은 소돔왕의 재물을 다시 소돔왕에게 돌려준 것처럼, 저희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의 재물과 재산을 탐내기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소망하며 나아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영적 전쟁에 믿음을 굳건히 하여서 준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봉사와 헌신으로 내어드리고, 사라질 재물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