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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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교회와 사랑의 확장
제 6장 교회와 사랑의 확장
Ch 1. 교회의 아름다움
Ch 1. 교회의 아름다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6장 교회와 사랑의 확장 01 교회의 아름다움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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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00:01)
제 6장 교회와 사랑의 확장
에클레시아 에트 엑스텐시오 까리스티스
교회의 진정한 영광은 교세의 확장이 아닙니다. 신자의 마음 안에서 지순의 사랑이 확장되는데 있습니다. 지순의 사랑으로 신자는 아름다워지고 그러한 신자가 많이 모일 때 교회도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교회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챕터 1. 교회의 아름다움.
교회의 아름다움.
교회의 최고의 섬김은 참된 교회로 전제하는 것입니다.이는 신자의 최고의 섬김이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려고 했던 그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다음에 세 가지로 (01:05)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첫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아름다움의 근거입니다. 또한 신자로 하여금 교회를 사랑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입니다. 그로 인해 무한히 아름다우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장 9절부터 11절.
(01:58)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다른 두 위격의 아름다움을 대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시편 8편 1절.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들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감격하는 신자로 가득할 때 삼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교회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신자의 아름다움.
둘째로 또한 교회는 신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므로 누구에게 덕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자의 아름다움은 그가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갖게 된 것입니다.
(02:58) 따라서 신자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마치 다이 스스로는 빛을 내내지 못하나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신자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의 최종 지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온전하게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신자 각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04:01) 이로써 신자 자신도 아름다워집니다. 사도 바울이 신자를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라고 부른 것은 바로이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 3장 3절.
연합의 아름다움.
셋째로 교회는 신자가 연합하는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아름답습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도 아름답지만 신자들이 영적으로 연합을 이룬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기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05:00) 시편 133편 1절부터 3절. 신자는 자신의 존재와 작용에 만족하며 거기에 머무르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은사를 따라 자신의 고유한 섬김을 감당하게 됩니다. 신자의 이러한 섬김은 하모니를 이루어 교회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신자는 각각 고유한 자리에서 다양한 직분으로 섬기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사랑 가운데 행할 때 이러한 연합의 아름다움에 기여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에베소서 4장 10절부터 12절.
교회의 아름다움의 일부로서 신자의 아름다움.
이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의 아름다움은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신자 개개인의 아름다움입니다.
(06:00)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의 일부로서 신자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 다음 사항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신자가 누구인가?
아름다운 신자는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신의 관점으로 아름다움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의 지위나 소유, 외모의 아름다움은 모두 전재의 한 양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오직 영혼의 아름다움만이 인간 존재의 번질적 가치와 관계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신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06:55)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 결국 한 인간의 가치는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영혼의 가치는 그가 가진 선한 의지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랑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은 죄와 악의 영향으로 창조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13장 23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잃어버린 그 아름다움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생과 한 번의 회심으로 그 아름다움이 완전히 불변하도록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07:56)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 있어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으로 감화받아야 합니다. 그때 그의 아름다움은 유지되고 확장됩니다.
아름다운 영혼, 순결한 사랑.
아름다운 영혼은 신자의 마음 안에서 순결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에서 순결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할 가치가 있는 궁극적인 한 대상을 향한 사랑으로 온 마음이 가득찬 상패를 말합니다. 아가서 4장 12절. 따라서 영혼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찬 아름다움입니다. 신자는 끊임없이 순결해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곧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만을 즐거워하고 그분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야 합니다.
(08:59) 그 아름다움 안에서 신자의 영혼은 전일성을 회복하여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살고자 하는 힘과 경향성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 영혼의 힘과 경향성은 하나님의 은혜임으로 자기 사랑을 삶의 동기로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향해 전적으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고 진리신 그리스도께 자기를 합치시키고자 갈망합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부터 11절. 그로 인해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것을 한없이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섬겨야 할 대상을 위해 봉사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 아름다움에 나타남, 마음에 달림,
교회의 아름다움은 신자 각 사람의 영혼의 아름다움에 달려 있습니다.
(10:03) 신자의 영혼의 아름다움은 그의 마음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음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신자의 영혼과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 안에 있는 사랑은 실제적으로는 영혼 안에, 기능적으로는 애성 안에, 작용적으로는 마음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재: 영혼 안에
첫째로 사랑은 실제적으로는 영혼 안에 존재합니다. 영혼은 비물리질적 실체입니다. 영혼은 공간 안에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테두리를 정할 수 있는 한정적 존재이지만 부피와 색 모양이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1:07) 또한 영혼은 존재의 시작점은 있지만 끝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덕을 입어 불멸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기능: 애성 안에.
둘째로 사랑은 기능적으로 애성 안에 있습니다. 영혼에는 사물을 아는 것과 관련된 지성과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애성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애성은 사랑과 사랑의 능력과 사랑 자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혼의 애상 안에 있는 사랑은 인간이 마땅히 사랑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타락 후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으로 가득한 채 태어납니다.
(12:04) 자기를 사랑하도록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를 사랑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악이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8장 21절. 거듭나기 전에 인간은 자기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면 인생의 중심축이 자기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의 영혼 안에 심겨지면서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그의 영혼은 아름다워집니다. 이러한 영혼은 그 안에서 모든 힘과 경향성이 선하게 질서 지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작용: 마음 안에
셋째로 사랑은 작용적으로 마음 안에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실제적으로는 영혼 안에 기능적으로는 영혼의 성 안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이 어
(13:09) 작용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잠언 3장 1절, 7장 3절.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는데이 둘이 만나는 곳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인에게 영혼을 돌이키라고 말하지 않고 마음을 돌이키라고 촉구합니다. 에스겔 14장 6절. 그러나 마음은 실제가 아니라 영혼의 기능입니다. 빛이 비출 때 빛은 실제이지만 사물을 보이게 하는 것은 기능이듯이 마음은 영혼의 기능입니다. 영혼과 육체의 경향성은 마음을 움직이고 어 움직여진 마음의 상태는 영혼과 육체에 다시 영향을 줍니다. 육체는 영혼을 직접 감지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상태가 투영된 마음을 통해 영혼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영혼의
(14:14) 상태는 마음에 영향을 주고 그 마음은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영혼의 아름다움과 마음의 아름다움, 삶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일치를 이룹니다. 따라서 사물에 대해 감각하고 인식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가 드러납니다. 영혼의 경향성은 마음의 성향으로 반영되고 마음의 작용은 영혼의 경향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신자는 끊임없이 어 자신의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아름다운 마음이 영혼의 올바른 경향성을 충분히 사용하여 영혼의 아름다움을 실제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 작용하게 해야 합니다.
(15:15) 성경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마음은 인간이 지켜야 할 중요한 것으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잠언 4장 23절. 우리의 마음에서 많은 악과 다툼이 나옵니다. 잠언 6장 14절. 인간의 가치도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판단됩니다. 잠언 10장 20절. 신자는 마음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하고 사랑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6장 7절. 신자의 죄와 사랑 모두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 사도행전 2장 46절.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신자의 마음은 사랑이 거하는 자리이며 또한 욕망이 거하는 자리라고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누가복음 24장 32절.
(16:12)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 사도행전 5장 3, 4절. 특히 악을 행할 때 성경은 그 마음의 움직임이 인간의 의지 안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부터 23절. 심지어 신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인간의 의지를 거슬러서 의지 없이 without 작용하지 않습니다. 의지 안에서 인지와 함께 역사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그러나 인간이 악을 행할 때에는 자신의 악함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죄를 억제하고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 없고 자신이 행한 선에 대해 공로를 자랑할 수 (17:18) 없습니다.
맺는 말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입니다. 영혼의 아름다움은 신자의 마음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노력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잠언 4장 23절 16장 32절. 그러나 신자의 마음과 영혼의 작용은 홀로 그는 시도사적 생활에서 입증되지 않습니다. 외적인 복종과 외식적인 의무 등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16절 23장 23절. 신자는 공동체와 함께 부끼면서 자신의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발견합니다. 로마서 7장 21절.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지체와 부딪히면서 미쳐 알지 못하던 자신의 영혼과 마음의 성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18:18) 하나님께서 신자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게 하신 것은 한편으로는 교회의 목양을 통해 사랑과 지식 안에서 온전한 신자로 자라가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의 공동생활 속에서 자기 영혼의 상태와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잠언 3장 7절, 사도행전 8장 21절. 교회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하고 혼합적인 성격 때문에 신자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신자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영혼과 마음이 어떠한지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아름다움은 교세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교회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19:14) 이를 위해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신자의 아름다움은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드러난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진리가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고 세상을 향해 선포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디모데서 4장 2절.
Ch 2. 사랑 안에서 자라감
Ch 2. 사랑 안에서 자라감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제 6장 교회와 사랑의 확장 02 사랑 안에서 자라감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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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00:01) 네. 챕터 2. 사랑 안에서 자라감.
교회의 확장은 사랑의 확장이다.
신자의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것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모든 영적 성장의 최종적 열매입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신자의 영적 성장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 에베소 4장 15절 말씀. 교회는이 사랑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확장은 지상 교회의 수적 증가나 물 건물의 확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의 교재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탁월한 방편입니다.
(01:00) 하나님께서 불순종과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당신의 통치를 이루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영혼 안에 있는 모든 부패한 본성을 사랑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차게 하심으로써인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신자의 마음 안에 심으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서 은혜로 당신의 통치를 온전히 이루십니다.이 통치는 세상에서 확장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이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때 교회의 확장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
교회의 사명.
(01:52) 교회의 사명은 안으로는 삼위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고 지체들이 서로 사랑으로 여러는 것입니다. 또한 밖으로는이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이 경배함으로써 참다운 인간의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교회는 구속 계획의 성을 통해 창조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세워진 교회는 세계의 재창조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와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 사이에 어떠한 긴장으로 어떻게 자기를 희생하며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성계하는지를 당신의 인격과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이 종이 되어야 하리라.
(02:47) 인자 온 것은 성교 받는 것이 아니요 도리러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마고복음 10장 43절에서 45절. 그리스도를 시작한 제창조의 역사는 교회의 헌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안에서 전개됩니다. 그러므로써 교회는 교회와 세계는 창조시의 선한 상태를 회복할뿐만 아니라 더 큰 영광으로 나아갑니다.이를 위하여 신자들은 하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매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 마음과 삶을 그리스도께 합질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당기까지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걸 통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이 세상에서 확장할 수 있습니다.
(03:40) >>
사랑의 정화와 풍성함 그리고 확장.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첫 조상의 타락을 통해 바뀐 것은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던 사랑이 자기를 향하게 된 것입니다.이는 이는 곧 하나님께서 피셔야 할 선악 판단의 기준 자리에 인간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사랑의 능력을 어떻게 극대화하느냐만이 아니라 그것을 오로지 어떻게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게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사랑은 정화되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자라간다는 것은 결국 인간 번성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해 정화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신자의 사랑은 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04:44)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은혜에서 멀어져 힘과 경향성이 기록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네. 238조 맨비 태출입니다. >> 네. 사랑의 정화는 영혼의 정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참매와 자기 깨어짐을 통해 마음이 정결하게 될수록 마음 안에 있는 사랑도 순결해집니다. 이런 마음의 변화와 세시는 그 영혼을 더욱 깨끗하게 합니다. 영혼의 정화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입니다. 영혼히 실제이기는 하나 물리적 실제가 아니라 영적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혼의 정화는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이질적인 힘과 경향성에 제거되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찬 상태입니다.
(05:46) 이러한 사랑은 점점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사랑의 풍성함이란 하나님 이외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빠져나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은혜와 성향이 마음에 가득찬 상태를 말합니다. 그때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 자신을 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랑이 풍성할 때 신자는 고난이 와도 견딜 수 있습니다. 하늘 사랑은곧 생명이고 생명은 그를 참 자람답게 살게 하는 힘이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신자답게 살아갑니다. 사랑에 풍성함에는 이런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소원도 다음과 같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06:44)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온 마음으로 사랑함.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부족한 자에게 진리와 은혜를 베풀어 점점 더 온전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진실로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걱정함으로써이 땅에서 자기의 사명을 온전히 이어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심자 개개인의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확장을 뜻합니다. 사랑의 확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담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에 대한 응답.
첫째로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사랑이 확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빼놓고는 신자의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07:42)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신자가 되고 그 사랑을 소유함으로써 참된 신자가 되며 마지막날 그 사랑 안에서 완성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의 요체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과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그 지혜를 깨닫고 그 사랑을 본받아 사는 있습니다. 즉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창조의 목적들로 사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를 진리를 통해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자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봅니다.이 하나님의 모든 아름다움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 알려집니다. 그 아름다움을 본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08:33)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사랑은 참이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는 진리에 대한 응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통해 지혜를 얻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 신자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진리에 자신을 합지시킵니다. 그러므로써 참으로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의 삶에 외치는 열매입니다. >>
사람들을 향하여: 용서 나눔.
둘째로 사람을 향한 신자의 사랑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지혜를 통해 하나님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분을 사랑하게 된 신자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신자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교회의 지체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찢겨 나간 형제와 자매도 포함됩니다.
(09:23) 이란에 빠진 사람들은 한두 번 군면 후 끊어야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때로는 도덕적 이유에서 출결을 당한 사람에게도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릇된 교훈을 쫓아다 분리된 경우 그들이 그릇된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그들을 사랑으로 끝까지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모본입니다. 또한 신자는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도움과 헌신을 베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과 사랑으로 교통하고 싶어하는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베풀어야 하는 사랑을 많이 가진 자가 남에게 작성하든 거만하게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10:14)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기까지 낮아지신 그 사랑입니다. 거기에는 항상 자기 자신 어 자기 생이 동반됩니다. 타인을 향한 성김은 용서와 나눔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용서
먼저 용서입니다. 용서는 자신에게 악을 행하거나 잘못한 사람들의 책임에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용서는 소극적으로는 자기가 입은 손해에 대해 보복하지 않는 것이지만 적극적으로는 그들과 다시 사랑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자신이 입은 손해와 고통보다는 자신의 용서를 통해 새롭게 이루어질 그들과의 관계의 복을 바라봅니다.
(11:14) 사람을 용서하려면 언제나 희생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자신은 죽고 그 사람을 살게 한 것과 같습니다. 신작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분묘하게 입증하는 때가 바로 자신이 사랑하던 자를 죽일 때입니다.이는 이는 곧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하시지 않은 않는 질서를 사랑하고 그것에 집착함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자신을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실 때이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12:1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스데반 집사님의 마지막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이 말씀을 하고 자니라.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정신을 세상에서 실현하는 훈련이 됩니다. 신자는 지체를 통해 죄를 용서받는 것과 자기에게 죄지은 사람들의 용서해 중으로써 사랑의 교통을 입증합니다. 신자는 지체로 용서함으로써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그리고 이로써 자신이 공동체적으로 결속된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13:14) 그러나 용서는 교회 안의 지체와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마땅히 교회 밖의 이웃을 향해서도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하려고 하고 그들을 위해 더 손해 보아도 괜찮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신 것처럼 참으면 견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면서 말입니다. 그러한 삶의 실천을 통해 그는 결국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어갈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와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무난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14:15) 마태복음 5장 46절에서 48절 말씀
나눔.
또한 나눔입니다. 신자 안에 있는 사랑은 그 자체가 교통적 사랑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있는 좋은 것을 사랑의 대상들과 나누고자 합니다.이 나눔은 두 지평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리스도의 머인 교회 공동체와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입니다.이 나눔은 창조시 만물 사이에 존재하던 상호 연관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서로에게 존재를 의존하며 각각 고유한 작용으로 다른 사물들의 존재와 작용을 돕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해 세어졌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회복을 이루고 있습니다.
(15:11) 그리고 마지막 날에 완전하게 회복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교회 안에서 미리 경험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 사이에서 실현되는 나눔입니다. >> 나눔은 세상 사람들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나눔은 운성의 빛 안에서 이루어지는 양심의 기능입니다. 이에 비하여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자의 나눔은 지체간의 사랑의 연합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눔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나타남입니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으로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나눔은 유한한 지상 자원뿐 아니라 영적 자원을 서로 나누어 가져 그리스도의 모인 교회의 언어 지체도 부족한 것이 없도록 돕는 것입니다.
(16:10) 그리하여 교회와 신자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실현하며 살도록 섬깁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질심도 각신자에게 주어지는 지상과 하늘의 자원을 골고루 가지게 합니다. 어느 한 지체도 절대적 부족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전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이 이루리니 자신의 존재와 자에 요구되는 것 이상의 자원을 서유하고자 하는 것은
(17:15) 탐욕입니다. 그것은 나눔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나눔을 가로막는 것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자기 혼자만 나누려는 욕심입니다. 신자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자신만의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많은 물질, 시간, 재능, 건강 등을 주셨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바지해야 합니다.
맺는 말.
신자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를 불켜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입니다.
(18:14) 이 세상은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받은 하늘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 감격하며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분을 바라보으로써 그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합니다.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살아갑니다.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9:05)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35절. 그래서 그의 사랑은 교회에 있고 그의 생명도 교회에 있으며 그의 자원의 공급도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것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고 교회의 제자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는 교회를 통하여 사랑을 배우며 지체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또 자기에게 잘못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지상과 천상의 자원을 나누는 법을 배웁니다. 일 또한 신자는 교회 경륜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봅니다. 자신의 존재 목적을 교회의 그것에 일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기여합니다.
(19:58) 그것을 교회와 함께 이루어 갑니다. 그에게 소망이 있다면 자신이 살아 있음으로 인해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며 이미 창조된 세계 안에서 다시 창조될 세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다시 튀는 사람. 그가 바로 가슴이 튀는 가슴이 뛰는 사람 그가 바로 신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입니다. >> 아멘. 250쪽 읽겠습니다. 250쪽입니다.
책을 닫으며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20:58) 완전한 만족, 완전한 기쁨이 하나님께서 주의들에 살게 하신 사람에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들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니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질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65편 4절. 다윗이이 시를 쓸 때 주의 뜰은 성전에 염두해 둔 것이었습니다. 다윗 시의 성전은 고정물의 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기시해 준 그 장막이 성막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청막형 성전이었습니다. 그 안에 각종 보석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결코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았습니다.
(21:50) 배달의 가죽으로 만든 불과 18평 정도의 작은 천막으로 오랫동안 비를 막고 해피시 찌들어 거무 뒤티했을 것입니다. 그곳 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성마에 나온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속죄의 제사가 있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자기를 묶어 바치는 헌신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임가 있었습니다. 조라 성막 위에 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 집은 특별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 삼으셨습니다.
(22:40) 그리스도의 몸에 젖붙여진 눈에 보이는 지역 교회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역의 교회에서 보편 교회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지하실 수 있고 허름한 건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겉모양 때문이 아닙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것, 교회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들 그 교회와 관계를 맺고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교회는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곳의 회심을 경험합니다. 주님을 만난 눈물이 우리의 우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험한 세상에 이길 수 있는 하나는 은혜를 공급받았으며 죄로 인해 맡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개의 눈물과 용서의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23:34) 우리는 이곳서 주님이 누구신지 배웠고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렸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을 세웠고 기도와 헌신으로 그들을 도았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그곳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났고 사랑하는 사람들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죽음 저폰으로 떠나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자금 성김을 통해 귀하신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본 것도 바로 그곳 우리의 작은 교회였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교회가 없었다면 지체의 교재가 없었다면 우리를 이끌어 주신 목회자의 섬김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랜 전에이 험한 세상에서 엎드려졌을 것입니다.
(24:24) 교회가 있었기에 마라와 같은 쓴물을 먹음어야 하는 인생길에도 주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쓰였던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상키려 올 때에도 죽은 너머에 있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소망하며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거하는 곳에서 본향을 사모함
지상의 교회는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살다의 일시적인 거주를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이는 성도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하늘 집의 모형일 뿐입니다. 지상에서의 하나님과의 친교는 더 없이 소중하지만
(25:26)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무한하고 완전한 복에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이곳에서 경험한 용서를 통한 관계 회복은 그곳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하나님과의 영광스러운 교재의 그림자이며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던 성도들과의 교재는 하나님 나라에서 맛볼 완전한 성도 간의 교통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행복을 미리 막봅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이 땅에 있는 교회를 사랑하지만 교회에 넘어 있는 영원하고 완전한 하늘 교회를 사모합니다.이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교재를 맛보면 맛볼수록 하늘에서 보낼 스모함은 더욱 기뻐집니다.
(26:35) >> 믿음의 선조들이 스스로를 본양을 찾는 자라고 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는 잠시하는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맡겨 주신 자리에서 모든 힘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러나이 땅에 있는 것들이 자신에게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과의 교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될 그날을 사모하며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에 맞추고 살아갑니다. 아버지 눈에 그러한 자녀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 아멘.
(27:30) >> 아멘. am
한눈에 보는 6장 교회와 사랑의 확장 Ecclesia et extensio caritatis
I. 교회, 창조의 모상
교회는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하실 세계의 모상임
A. 두 창조
1. 첫 창조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당신의 신성의 충만한 것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셨는데, 성령 안에서 창조된 만물의 상호교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를 볼 수 있었음
2. 재창조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첫 창조의 아름다움을 재창조를 통하여 회복하고자 하셨는데 교회가 재창조 계획의 종자 씨임
B. 두 창조의 연관
1. 재창조는 실패한 첫 창조의 완성을 지향
a. 재창조의 목적은 단지 첫 창조의 복원이 아님
재창조의 목적은 첫 창조의 목적을 계승하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 첫 창조가 목적하였던 아름다움과 영광의 증진을 지향함
b. 오히려 첫 창조의 역동적이고 전진적인 목표를 계승함
재창조의 완성의 영광은 첫 창조의 영광을 시발점으로 삼기에 첫 창조의 영광을 능가함
2. 이러한 창조세계의 재창조의 완성을 위한 씨앗이 교회임
재창조의 세계는 만물이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로 이루어진 세계이기에 교회는 이러한 사랑의 질서를 선취적으로 경험하는 곳이며 또한 재창조의 완성의 씨앗이 됨
Ⅱ. 교회의 확장, 사랑의 확장
A. 교회의 사명: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
교회의 사명은 삼위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이루고 지체들, 세상 사람들과 사랑의 교통을 이루도록 속죄의 대업을 완수함
B. 하나님 나라의 확장, 하나님 사랑의 통치의 확장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신자들의 까리따스 사랑의 확장임
Ⅲ. 신자의 영혼과 마음의 강조
교회의 까리따스 사랑의 충만함은 신자 각 사람의 까리따스 사랑의 충만함이므로 그 사랑이 거하는 자리인 신자의 영혼과 마음이 강조되어야 함
A. 보이는 교회의 아름다움 : 신자의 영혼에 달림
지상교회의 아름다움은 신자의 영혼의 아름다움이며, 그 아름다움은 삼위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 덧입는 아름다움임
B. 그 아름다움의 나타남 : 신자의 마음에 달림
그 아름다움은 열매를 맺고 싶어 하기에 신자는 진리를 통하여 마음 지키어 영혼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도록 하여야 함
C. 사랑 안에서 자라야 할 신자들
신자의 영적 성장은 지식과 사랑의 성장이며 이것은 정화됨과 풍성함으로 나타남
1. 정화됨purifiedness
신자의 사랑은 참회를 통하여 순결하도록 정화되어야 힘
2. 풍성함abundance
신자가 정화된 영혼과 마음 안에서 순결한 사랑을 가질 때 그 사랑은 풍성합을 갖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랑으로 이루어짐
D.공동체적인 자기 깨어짐을 통해 일치가 촉진됨
교회는 공동체적인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이기적 자기사랑을 버리고 영적 일치를 이룸
1. 참된 까리따스
공동체적 자기 깨어짐은 참된 까리따스를 동반함
a.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에 대한 응답 responding to Veritas
신자의 까리따스는 진리에 대한 응답이며 그 진리에 자신을 합치시키게 하는 동기가 됨
b. 사람들을 향하여: 도움으로써 헌신함helping
사람들을 향해서는 진리에 자신을 합치시키는 자기희생을 통한 사랑으로 나타남
1) 용서forgiving
참된 까리따스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끔 하는데 이것은 자신만의 질서를 사랑하는 자아의 죽음임
2) 나눔sharing
까리따스의 사랑은 교통적 사랑이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함
2. 공동체적 지평에서 입증되는 영혼의 아름다움
한사람의 영혼의 아름다움과 마음의 온전함은 그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입증됨
IV.교회의 아름다움
교회의 가장 홀륭한 섬김은 교회 본연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임
A. 온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함
교회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과 교회 자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임
B. 신자는 그 아름다움의 일부임
교회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신자의 아름다움, 그리고 신자들의 연합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짐
1.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삼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교회의 아름다움의 근거가 됨
2. 신자의 아름다움
신자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근거한 파생적 아름다움이며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함
3. 신자들의 연합의 아름다움
신자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다른 지체들의 조화로운 보편적 질서 속에서 가지는 완전성의 아름다움으로서 재창조에서 이루어질 만물의 보편적 질서의 아름다움의 모상이 됨
4. 교회의 아름다움의 일부로서의 신자의 아름다움
a. 아름다운 신자가 누구인가?
아름다운 신자는 영혼이 아름다운 신자로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임
b. 아름다운 영혼, 순결한 마음
아름다운 영혼은 온전함을 회복한 영혼으로 힘과 질서가 하나님을 향해 정위되어 있고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을 가짐
V.결론
6장 함께 나누어 봅시다.
1."교회와 사랑의 확장" 설교를 듣고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2.두 창조라는 구도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봅시다.
3.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무엇이며 이것을 교회의 사명과 관련하여 설명해 봅시다.
4. 사랑은 영적 성장의 최종적 열매이며 그러므로 한 사람의 신앙은 공동체적 지평에서 펼쳐져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가 사랑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5.재창조, 즉 구속의 종국과 관련하여 교회는 아름다움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그리고 신자의 아름다움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해 봅시다.
6.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공부를 마치며 ‘교회의 교회됨' 은 어떤 것인지 함께 나누고 우리 교회와 조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