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교회와 사랑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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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개정판 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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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00:14
신약성경 에베소서 제5장 에베소서 5장 25절 하반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맙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처럼 복된 사경에 불러주시고 저희를 주님의 귀한 사랑으로 지혜로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여기에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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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고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짧은 인생을 주님의 말씀에 합치하게 살아서 주님에게 기쁨이 될 수 있을지 깨닫게 해주옵소서 성령님께서 이 시간에 오셔서 우리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실 지난 시간에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김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끝까지 설교를 못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가서 끝까지 설교를 못하고 이제 아무 데나 서나 끝나진 않았고 끝나도 좋은 데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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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이제 그 남은 부분을 하면서 계속 이어서 교회와 사랑의 확장이라는 이런 교리를 가지고 우리들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제 그렇게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교회가 함께 연합을 이루면서 그러면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참된 예수의 몸으로서 이게 일치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되겠는데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는 불완전한 혼합이다. 하는 거죠. 불완전한 혼합이다. 교회 자체가 불완전한 혼합이기 때문에 사실 이 일이 굉장히 어렵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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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에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고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성령 안에서 한 아버지께 경배한다는 신앙 고백을 가지고 우리들이 진리를 중심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러나 인제 이 교회 안에는 모두 참신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크게 세 종류의 신자가 포함되어서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죠. 이 사람 모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에요. 신앙 고백자들이 이제 신앙 고백자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데 그 고백자들이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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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크게 분류하면 참신자와 그다음에 부패한 신자와 그다음에 거짓신자 이렇게 세 종류의 신자가 모여서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죠. 둘로 나눈다면은 참신자와 거짓 신자로 나누게 되는데 참신자는 다시 둘로 나뉘어지게 됐는데 상태가 좋은 신자, 맛이 간 신자 이렇게 나누게 된다. 얘기예요.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되는 사람이 누구냐 그러면 이제 이런 거죠. 참신자는 아주 분명하게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사람이에요. 접붙여진 사람은 어떻든지 간에 참신자야. 참신자인데 참신자라고 해서 모두 진실한 신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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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죄를 죽이고 은혜 생활을 잘하면 이게 건강한 신자가 되어서 진실성이 많은 신자가 돼요. 그런데 요즘 무슨 망령이 들었는지 기도도 안 하고 뜻을 세웠어요. 이제 안 하기로. 그리고 말씀의 은혜도 안 받고 예배 시간은 맨날 늦게 오고 그리고 끝나고 가다가 주차장에 서서 대판 싸우고 이런 식으로 교회를 다녀요. 그 사람은 분명히 거듭났는데도 상태가 안 좋아. 여러분 몸이 항상 똑같은 상태 아니잖아요. 뾰두루지라도 하나 생기면은 그 주위가 다 굶으면서 인제 그 부분이 몸의 구슬을 제대로 못하잖아요. 엉덩이에 뼈두루지가 나면 앉을 때도 이렇게 엉거주춤하게 앉고 하여튼 이렇게 많은 고통을 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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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상태가 안 좋은 신자예요. 그래도 그 사람은 이제 넓은 의미에서는 참신자야. 왜? 그래도 예수 예수의 몸에 접붙였으니 접붙여졌으니까. 그런데 이제 거짓 신자는 아예 교회 나오긴 하는데 접붙여지질 않았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 신자이긴 하지만 사람이 워낙 교양이 있고 품위가 있어서 교회 점잖게 다닐 수 있고 참신자지만 워낙 교양이 덜 돼 있어요. 교양 떨어진 사람은 은혜가 덮고 있을 때 진짜 겨우 버티지 은혜가 뚜껑을 딱 벗어버리면 그다음에 본래의 모습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 쭉 보면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는 옛날 모습이 어땠는지 잘 연상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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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냥 그냥 그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뭐 그냥 이렇게 신앙생활 잘하니까 그런데 이제 은혜가 떨어지면 이제 연상이 다 돼요. 아 그랬겠구나. 옛날에 그랬겠구나. 그리고 이제 목회하는데 참고가 되죠. 정말 두고두고 참고가 됩니다. 그렇겠구나. 그래서 한 번씩 은혜가 떨어져 보는 것도 목회에 참 도움이 돼요. 그래서 저 사람이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구나. 이제 그 속에 저런 기질들이 있었구나. 그런데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 속에 덮여서 살아왔구나. 은혜의 뚜껑이 열리니까 이제 저렇게 되는구나. 그걸 깨달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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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 사람은 저런 면에 있어서 많이 돌봐줘야지만 사람이 고쳐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물론 이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게 되면서 이제 사람이 성장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서 신앙생활을 하거든요. 이게 그러면은 이제 접붙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거짓 신자고 그다음에 또 참신자이긴 하지만 상태가 안 좋은 신자는 교회에 고통을 주는데 이 상태 안 좋은 신자들이 이렇게 고정되어 있으면 방이라도 따로 만들어서 이렇게 분리를 하겠는데 그런데 이게 돌아가면서 상태가 안 좋아지거든요. 돌아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그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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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렇게 규칙적으로 돌아가면서 그러는 건 아니죠. 그래서 이제 신앙이 좀 부족해도 워낙 사람이 침착하고 주님께 붙어 있으려고 하는 꾸밈이 성격이 있고 이렇게 열심히 내고 하면 덜한데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이 좀 나아졌나? 그러면 또 저 사람이 뚜껑이 열리고 저 사람이 뚜껑이 닫혔냐 하면 저 사람이 열리고 하면서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그렇게 가는 거예요. 계산 끝날까지. 이게 바로 종말까지의 교회의 특성이에요. 그런데 특별히 이 중에서 참신자와 거짓 신자가 함께 섞여 있는 것은 교회에 더 많은 고통을 주는 거죠. 더 많은 고통을. 그러니까 회심하지 않고 예수께 덧붙여지지 않은 사람은 실상 정말 그 교회의 회원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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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제 그렇게 회심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 있게 될 때 문제가 없을 때는 그냥 가만히 있지만은 그러나 이제 문제가 생기게 되면은 이제 굉장히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그 분량이 없어요. 분량이라는 건 뭐냐 하면은 왜 이렇게 사람도 이렇게 살다 보면 기본적인 인간성을 갖추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륜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아무리 억울하거나 잘못된 상황을 맞이해도 넘을 수 없는 어떤 선을 가지고 있잖아요.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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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간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많이 약해지는 적도 있지마는.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기가 넘어야 될 선과 넘지 말아야 될 선을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지 않은 사람들은 한 번도 그 사랑에 녹아보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이 없다고 뚜껑이 잘못 열리면 이 선이 없이 넘나드는 거예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자연적인 본성에 있어서 이 사람이 교양이 있고 인품 자체가 아주 뛰어나고 절제나 이런 것들이 쭉 있어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막 가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이게 그런 거를 어느 정도 지켜요. 그런데 그런 것조차도 없어. 그러니까 사람을 향해서도 그런 게 현저히 교양이 떨어져서 부족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을 향해서는 거듭나서 예수께 접붙여진 적이 없으니까 그 하나님 앞에 경계선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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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인제 하게 될 때 교회는 말할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되는 거죠. 그러면 그러면 이제 오늘 우리가 어저께부터 우리가 배우는 교리가 소위 얘기하는 토토스 크리스투스라 그래서 이걸 라틴어인데 모두를 그리스도 예수의 몸으로 여긴 그런 뜻이거든요. 좀 길어요. 그러면은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 그 사람이 예수의 몸일 수 있어요. 거듭나지도 않았죠. 때로는 교회를 막 아프게 하죠. 아까 얘기했듯이 사람을 향해서도 경계가 없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경계가 없어서 지멋대로 넘나드는 이런 사람을 예수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있냐 이거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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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예수의 몸으로 생각해야 되는지는 조금 이따가 하고 그런데 이렇게 참신자와 거짓 신자가 넓은 넓게 분류를 해서 참신자와 거짓 신자가 섞여져 있는 것은 이게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교회의 모습이에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완전 구별이 불가하다는 우리는 그런 것들을 구별하려고 노력은 하죠. 노력을 해서 어떡하죠? 그런 사람들은 세례 주면 안 되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교회에 큰 직분을 주고 이렇게 되면 교회가 언젠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 장로시키고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회심의 여부 잘 확인도 안 하고 억지로 권하다시피 해서 세례를 주고 이렇게 되면은 결국은 나중에 교회가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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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구별을 하지만은 그러나 완전히 나뉘어지는 것이 불가능한데 종말까지의 교회의 특성이라는 건 이미 이제 어디에도 나타나냐 하면은 말이죠.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은 한 밭에서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자라는 거죠. 주인이 그거를 만약에 가라지를 뽑아야 되겠다. 그러고 밭으로 뛰어들어가면은 그러면 심어놓은 작물이 망가지는 거죠. 또 그물을 하루에 비유도 어부가 나가서 그물을 쳤는데 그물을 쳐서 일단은 그물을 친 것을 다 고기를 가지고 와서 이제 먹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고기들을 갈라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게 그물 그 자체가 교회라면 보이는 교회라면 마지막에 그걸 분류하는 작업은 다 낚은 다음에 나중에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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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은 특별히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는데 노아가 방주를 짓고 거기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육축들을 보존하고 싶으셔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짐승들을 집어넣으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 정결한 짐승, 이미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있잖아요.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쌍씩 집어넣고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집어넣으라 부정한 짐승은 두고두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피해야 하는 물건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이상하게 부정한 짐승 거기다 집어넣으라고 그러신다고요. 구원의 방주 속에 집어넣으셔. 나중에 이제 이게 두고두고 문제가 되죠. 그래서 너희는 나한테 제사 지낼 때 이런 부정한 음식, 부정한 짐승은 제사 드리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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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부정한 짐승들이 먹으면 안 된다. 이런 부정한 짐승들이 만져도 안 된다. 그러면 결국은 상종을 안 할 부정한 짐승인데 그냥 홍수로 다 쓸어버리시면 뛰어다니는 건 뭐든지 잡아서 먹어도 되고 나한테 제사드리면, 된다. 내가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만 남겨뒀거든. 왜 그렇게 안 하시고 손도 대면 안 되고 먹으면 안 되고 제사진도 지낼 수 없고 늘 피해 다니면서 조심해야 하는 그런 부정한 짐승을 살려두시느냐 이거죠. 왜 그랬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섭리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이 부정한 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는 진짜 그들이 정결해지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하시는 거죠. 부정한 짐승이 있기때문에 그들이 진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도 내게 순종하면서 제사를 드리나 하나님이 확인하실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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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뛰어다니는 거 아무거나 잡아 그러지 않고 가서 하나하나 살펴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주님께서 보실 수 있고 시험할 수 있는 거죠. 이거 부정한 것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번성을 막 해나갈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부정한 짐승들을 보면서 저건 하나님께서 금하신 부정한 짐승이다. 보면서 정결함에 대한 말하자면은 관념, 개념들이 분명하게 생겨나잖아요. 이게 하나님께서 교회의 거짓 신자들을 두게 하시는 이유예요.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을 향해서 좋은 감정을 안 가지고 있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 않으면 안 나오면 되잖아요. 그런데 정말 잘 나와요. 꾸준히 역사와 전통의 빛나며 꾸준히 그렇게 교회 나와요. 교회 나오다가 지옥으로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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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그런 사람들을 교회 안에 남겨두세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정결해지게 되는 거죠. 교회도 마찬가지로 참된 신자들을 그러한 거짓 신자를 교회 안에 남겨 두심으로써 참된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의 고통도 당하게 하시지만 참으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참과 거짓 두 개가 보이는 교회 안에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참된 것에 대한 더욱더 사모하는 동경을 갖게 하시는 거죠. 우리가 은혜가 떨어지면은 죄 짓고 이러는 사람들 보면 아이고 나도 한번 좀 한 다리 끼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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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옛날에 나 한 가닥씩 했는데 이런 마음이 들지만 상태가 좋으면 그런 걸 이렇게 볼 때 정말 진짜 정신 차리고 살아야 되겠구나. 진짜 제대로 신앙생활 안 하면 저 꼴이 되겠구나. 하고 각성하면서 마음 생기잖아요. 하나님이 그런 죄를 통해서 우리를 오히려 성결하게 살도록 만들어주신 거죠. 이래서 하나님께서 교회에는 이 거짓 신자들 하나님께서 항상 있게 하셔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보이는 교회 안에 있으면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거룩함이 손상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생각하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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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순결하게 해야 되는데 거기에 신앙은 고백하지만 사실상 예수께 접붙여지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서 온갖 부도덕한 일을 하고 교회를 아프게 하고 또 죄를 짓고 이렇게 하게 되면 그러면 교회의 거룩함이 더럽혀지지 않습니까? 그러는데 아 더럽혀지지 않아요? 더럽혀지질 않아요. 왜 더럽혀지지 않습니까? 그 사람 어차피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요. 더럽혀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지 않은 사람이 교회 안에 와서 많은 악을 행하고 그럴 때 교회는 고통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된 교회의 거룩함은 손상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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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들은 보면서 저 인간도 교회에 소속해 있으니까 아이고 저 교회는 형편 없구나 이렇게 말하자면은 그 사람들의 평가를 떨어뜨릴 위험은 있지만 성결한 의미에서 교회의 그리스도와의 공동체적인 실제적 연합을 파괴하거나 실제적 연합 어저께 말씀드렸잖아요. 공동체적인 실체적 연합 말씀드렸죠. 원리적으로는 예수께 접붙어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랑과 순종으로 예수께 잘 붙어 있으면 그러면 이 실제적인 데서 연합이 이루어져서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전해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런 데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는다는 거죠.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는 겁니다. 절대로 교회의 거룩함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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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에게 궁금한 게 남겠죠. 뭐가 남냐면은 그럼 아까 얘기한 제3의 사람 맛이 간 교인들, 참신자이긴 하지만 맛이 간 상태가 안 좋은 교인들이 부패할 경우에는 그래서 악을 행할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럴 경우에는 이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거룩성이 손상을 입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실제적인 연합이 이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사람에 의해서 악이 행해지니까 그리스도의 교회에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에 흠집이 가기 시작하고 교회의 거룩함에 말하자면, 이제 파괴가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여기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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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께에 덧붙여지지 않은 사람의 매우 커다란 악도, 참된 교회의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에 손해를 끼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신자의 부패한 신앙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의 참된 일치나 건강을 위해서 거듭나지 않은 거짓 신자들은 책임이 적지만 그러나 참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예수께에 접붙여진 사람들은 책임이 아주 많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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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령의 이름 속으로 세례를 주노라. 그러면 그 사람이 세례를 통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속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게 거듭나며 구원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생각할 때 야 신난다 예전엔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그리고 와 정말 그 죄에 젖은 멍에를 지고 무겁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예수님이 날 위해 돌아가시고 나를 이제 이렇게 믿기만 하니까 하나님이 세례 주셔서 예수께 덧붙이게 하시고 그 예수를 통해서 사미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게 하셨으니 야 이제 진짜 고생 끝 행복 시작이구나. 그게 아니라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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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접붙여진 것은 물론 이제 옛날의 그 고통스러운 죄의 멍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이렇게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이 돼서 한 몸이 되고 그 한 몸이 된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면 그다음에 이제 그분만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이 명하시는 모든 지혜와 사랑을 따라서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거예요. 이게 약속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그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속으로 딱 세례를 받고 나면 죄의 지문 하나님이 다 벗겨주셨는데 성경을 한 권 주시는 거예요. 이제 죄의 짓만 벗었으니 이제 이건 죄보다 훨씬 가벼운 멍에인데 네가 이 말씀을 대로 살아야 한다. 그걸 딱 짊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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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놀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놀게 하리라 먹게 하리라 퍼지게 하리라 그러지 아니하시고 내가 주는 멍에는 그 이제까지 네가 지고 온 멍에보다 훨씬 가볍다 나와 함께 그 멍에를 지고 이 멍에를 진다는 말이 예수님 시대 때의 맥락에 의하면은 선생과 스승이 된다는 뜻이에요. 기술자 같은 데. 그래서 같이 기술을 배워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멍에를 지자.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묶이는 거죠. 그런데 그거 안 해요. 구원에 대한 이유와 이해가 아주 매우 잘못돼 있는 거죠. 예수님 믿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아주 모든 것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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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안 해. 그럼 뭐냐? 내가 기쁨이 있을 동안에 예수께 봉사하고 사라지면 알 수 없는 거고,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공경이 적선적인 공경이 되는 거예요. 내가 알아서 조금 보태드리면,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거고, 이런 식으로 사니까 교회에 접붙여졌는데 계속 굶은 신자로 남는 거예요. 10년째 계속 굶아. 20년째 계속. 곪고 좀 아무는가 하더니, 물집 진물 제일 진 나고 그러는가 하더니, 그다음에 막 그 곪는 기운이 뿌리를 내려가지고 저 밑에까지 파고 들어가서 가끔 위에다가 고약을 발라도 위만 아무는 듯한 타지 또 저 밑에서는 계속해서 그러는 거죠. 은혜를 좀 받으면 겉은 나물어서 좀 정신 차리고 다니나 그러는데 저 속이 이미 썩었어요. 저 속이 너무나 오래됐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속에서 계속해서 고름이 올라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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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그냥 멀쩡해도 속에서 계속 욱신욱신 쑤시고 이런 상태로 계속 사는 거예요. 그런 시각을 가지고 한번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한번 보세요. 교회가 이렇게 있는데, 교회마다 다 또 작게 보면 하나하나의 몸이잖아요. 그리스도의 몸 이렇게 보세요. 그렇게. 교회가 모습이 다양할 거란 말이죠. 어떤 교회는 말이지. 건강하게 착 돼서 군살 하나 없이 착 딱 해서 정말 아름다운 청년의 몸과 같이 무엇이든지 시키시면 달려가서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탄탄하게 근육질로 말이지 이렇게 잘 돼 있는 그런 몸인데 어떤 몸은 말이지? 배만 잔뜩 나와가지고, 그냥 배가 땅에 끌릴 정도로 돼가지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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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관절염이 걸려서 그저 설설 기면서 다니는 그런 교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교회는 몸은 그래도 배도 안 나오고 그저 제법 볼 만한데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없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종기가 참 잔뜩 나가지고 도대체 뭐 어디가 눈인지 뭔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그러고 고름 냄새를 풍기면서 살아요. 여러분들이 속한 교회는 어떤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번 생각해 보신 적 있어요? 그래서 이제 참신자가 부패하게 될 때 교회의 거룩함에 손상을 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거야. 그래서 이제 교회에 많은 아픔을 주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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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를 은혜로 통치하시고, 또 은혜로 안 되면 징계로 통치하시고 이렇게 하시면서 글을 고치시긴 하지만 그러니까 자신에게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그 마음의 평안이 있겠어요. 그렇게 힘들고 그다음에 교회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거죠. 그게 한번 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떤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교회가 그렇게 거짓 신자에게 거짓 신자들이 악을 행함으로 고통을 당하고 참 신자들이 악을 행함으로 교회가 말할 수 없이 아픔을 겪고 이러면서 교회에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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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죽는 법은 없어요. 우리의 인간의 목숨도 말이죠. 어떻게 보면 파리목숨도 같지만 참 질기거든요. 다리 같은 건 막 턱으로 수술하는 턱으로 뚝 잘라서 꺼내도 살고 머리도 이렇게 해서 뚜껑을 탁 열었는데도 뇌를 막 파내고 이랬는데도 또 살고 굉장해요. 굉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생명력을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셨어요.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 교회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거예요. 아직 버리지 않아요. 사람들은 다 버리고 떠나가도 주님은 홀로 그 교회에 계셔 그래서 그 사람들로 연합을 이루게 하시고 그래서 다시 그들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시. 많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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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인간들이 내가 아니면 이 교회를 어떻게 하냐? 그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돼요. 누가 하겠지? 이건 더 나쁘지만은 누가 하겠지? 제가 옛날에 교회 건축할 때 아주 깊이 깨달은 교훈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나는 맨 처음에 감동받았거든요. 목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다 해주시죠. 다 해주시오. 그러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두 종류인데 믿음이 너무 좋아서 자기를 다 헌신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 참말이에요. 목사님 우리가 많이 결국은 주님이 이루시죠. 이런 뜻이고 자기가 안 바치고 그런 말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모두 하십니다. 딴 사람이 모두 합니다. 그 얘기거든.
30:36
그게 똑같더라고. 그러니까 감동이 달라요. 누가 얘기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지켜주셔. 그걸 여러분들이 인제 볼 수 있으면 제법 성숙한 사람이에요. 눈이 뜬 사람이에요. 눈이 뜬 사람 마치 여러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또 대학 다녀도 용돈 조금 주면 집에서 나올 때 발길로 문 차고 오고 그리고 막 엄마한테 심술부리고 나 학교 안 다녀버릴 거야. 창피해 안 다니면 뭐 누가 손해인데 이런 식으로 협박하고 저도 참 많이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중에 그러던 애가 언제쯤 되면은 우리 엄마가 우리 기르느라고 얼마나 많이 고생하셨을까?
31:31
그리고 그 엄마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아릴 때가 있어. 지가 시집가가지고 저보다 못된 자식 낳아가지고, 고생을 좀 해봐야 돼. 그러면 이제 엄마 마음을 깨닫게 되겠네요. 그때에 비로소 인간으로서 철이 드는 것처럼 성도도 교회의 몸에 덧붙여지긴 했는데 이게 뭐가 뭔지 모르고 까불고 다녀. 그러다가 어느 때쯤 말씀을 많이 먹고 성숙해져서 그래서 이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교회의 몸인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가 얼마나 아플까? 그러니 몸이 이렇게 아프니 예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내가 그 아픔의 원인이 되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비루한 사람인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32:29
그때 그 사람이 대피 이제 성숙하게 되는 철이 들게 되는,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진짜 그리스도 예수의 몸의 일부로서 지각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제 경험에 의하면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참다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잘 가르쳐 주어야지만 성도들이 겨우 깨달을 수 있는 성숙한 경건이 바로 이 교회를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게 되는 그것이 바로 아주 성숙한 신자의 표준 중의 하나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33:13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생각을 많이 해야지 생각을 안 하고 살면 머리 허얘서 늙어 죽을 때까지도 결국은 몸 둘, 자기 몸 하나 둘 교회 없이 그리고 이리저리 유리 방황하면서 인생을 살아요.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에 얼마나 고통을 주고 부끄러운 것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그리고 떠돌이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이제 그것은 정말 실패한 인생을 사는 지름길이에요. 지름길 정말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그럼 왜 이렇게 그 교회 안에 거짓 34:03 신자들은 속히 회심시켜서 돌아오게 하시고 못 차리는 신자들은 빨리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안 주시면 은혜를 잘 못 받으면 한 차례 때려서 괄호 열고 나는 빼고 괄호 닫고 그렇게 해 주시지. 왜 하나님이 그렇게 두고만 보시고 그래서 거지 신자들이 계속 교회 찌르고 다니고 부패한 신자들이 계속 골문대로 붙어 있게 만드시고 떨어지지도 않고 그 몸에 붙어 있어서 그래서 그냥 옆에 사람도 아프게 하고 그 고름 냄새 풍겨서 결국은 전체적으로 교회의 품격이 떨어지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에서도 멀어지게 만들고 왜 이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실까? 왜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실까 이런 생각 들 때가 있거든요. 예 자기가 잘 못 살 때에는 그런 생각이 잘 안 들죠.
35:03
하나님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은 1차례씩 한번 정신 차리게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데 좀 때려주시지. 그런 생각을 잘 안 하죠. 자기가 또 신앙생활을 잘 할 때도 그런 생각 안 해. 은혜가 너무 충만하니까. 그러니까 어떤 때 그런 생각 하냐면 상태가 안 좋은데 자신은 좋다고 착각할 때 그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하시거든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면서 그러면서 교회의 몸에 보이는 교회에 가짜 신자와 곪은 신자가 섞여있게 하시는 섞여있게 그 왜 그러실까? 하나님이 왜 그러실까? 여기에 하나님의 아주 깊은 경륜이 담겨 있어요. 지혜가 있어요.
36:03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교회의 이러한 모습, 가짜 신자가 섞여서 보이는 교회가 찔림을 당하고 또 참된 신자 중에 부패한 자가 있어서 굶은 상처 때문에 이 그리스도의 몸이 아파하고 이 과정을 이런 모든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참된 신자들에게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그 거짓과 불의를 보게 하시는 거예요. 거짓과 불의를 보게 하시는 거예요. 잘 보세요. 교회 안에 교회가 순전하게 하나님을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구원받았잖아요.
36:55
교회가 순전하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향해 그 사랑을 나타내고 그런 카리타스 곧 지순의 사랑 속에서 살아야 될 존재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살아요. 그러면서 교회가 그 속에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냄새나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성결해지기를 바라지만 실체에 있어서는 병원하고 비슷한 곳이에요. 사람을 고치긴 하지만 그런 죄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병균이 많은 병원과 같이 그런 곳이 바로 교회예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거를 자기가 신앙심이 없이 그걸 들여다보게 되면은 짜증이 나는 집단이에요.
37:50
그리고 무슨 생각 하냐면 아이씨 골치 아픈데 한번 옮겨 한번 두 번 옮겼는데 세 번 못 옮기겠어 그리고 옮길 생각을 한다. 이거야. 물론 이제 하나님이 때가 되면 이사를 간다든지 직장을 옮긴다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하나님이 목사도 교회를 옮기는데 신자들이 왜 교회를 못 옮기겠어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교회에 상처를 내지 않고 첫째는 상처를 내지 않고 그리고 일체의 온유함과 진지함으로 주님 앞에 인도를 구하며 그러면서 교회를 옮기는 경우에는 문제가 덜 되는데 그러질 않고 에이씨 골치 아파 갈아보자.
38:45
그리고 이 교회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뭔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구나. 저 안 굶은 교회 어디 있나? 그거 한번 뒤지는데 그 눈에 그런 게 보이겠어요? 이미 벌써 이렇게 상태가 안 좋아서 상한 눈이기 때문에 분별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구별해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교회에 가는 거예요. 그 교회에 접붙여지는 순간에 그 교회는 고통이죠. 기도제목이죠. 왜냐하면, 이 사람은 다른 사람 보고 썩었다 그러고 떠났지만 다른 사람 보고 썩었다 그러고 사랑이 그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이미 거기에 감염돼서 같이 썩은 사람이에요. 썩은 거의 종류는 틀릴 수 있어요. 같이 썩은 사람이에요.
39:43
그리고 그 사람이 가서 저 교회에 가서 털썩 붙었어요. 그 교회는 그 순간부터 이제 아파하기 시작한 거예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죠. 그래서 스펄존 목사님한테 어느 교인이 찾아와서 그랬대요. 목사님 요즘 교회 정말 썩었습니다. 저 정말 순결한 신앙생활 하고 싶은데 그런 좋은 교회 있으면 좀 소개시켜 주십시오. 그러니까 스펄전 목사님이 그런 교회는 없는데 혹시 발견하거든? 그 교회는 절대 가지 마십시오. 왜요? 그러면 당신이 가는 즉시 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결국은 이제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캐 들어가 보면 어떻게 되냐면은 자기 사랑이에요.
40:37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모인 교회가 아픔을 당하고 있는 것보다 자기가 아픔을 당하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지금 보세요.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거든요. 왜냐하면은 교회에 속하는 성도들만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도 잘못할 수 있고 또 목회자만이 아니라 교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잘못할 수도 있어요. 또 그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에 전체적으로 자기 빼놓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예 물론 그렇죠. 그때에 이제 그 신자는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죠. 처음부터 그 사람이 그런 상황에 대해서 열받고 복수심에 불타고 다 때려치고 떠나고 싶다. 이런 생각 갖지는 않았겠죠.
41:36
그렇지만 그런 점에서는 이제 그 사람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죠. 왜냐하면, 정말 교회답지 않은 교회도 많고 신자들답지 않은 신자도 많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인정이 되는 거죠.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이 사람의 마음속에 뭐가 있어야 되냐면 잘못하는 그 교회의 일꾼들 신자들, 목회자들 이렇게 벌써 개별적인 존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의 그 고민이 까리타스 안에서 일어나는 고민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는 그런 식으로 다루어질 수가 없는 거라는 거죠.
42:26
뭐냐면 그것이 그렇게 다가오면 안 되고 그 속에 이렇게 잘못된 사람들이 섞여 있어도 결국은 그 사람들과 자신 때문에 예수의 몸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몸의 고통이 전해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몸의 고통이 전해질 때 그것이 몸 전체의 고통으로 전해지면서 그 몸을 위하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 몸을 아프게 한 어느 지체에 대한 이글거리는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는 것은 이거는 카리타스의 사랑이 아니에요. 혈기예요. 여러분 한번 보세요. 아주 오늘 설교를 준비하다가 기가 막힌 비유가 떠올랐어요. 여러분이 교회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 많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교회를 염려해요.
43:24
그런데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사람들의 잘못과 부패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보통 올바르게 사유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사고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교회를 향한 염려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그 교회 이해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에 불타게 되는 거죠. 그때에는 몸을 향한 사랑이 사라진 뒤예요. 다시 한번 반복할게요. 맨 처음에는 교회를 염려하는데 교회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요.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들을 미워하게 된 때에는 몸 전체를 향한 사랑은 사라진 때예요.
44:22
왜 그러냐 하면 예수의 몸인 교회에 대한 사랑은 카리타스의 사랑이에요. 이 사랑은 교통적인 성격이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을 이미 미워하고 분노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됐든지 간에 그 순간에는 이미 카리타스의 사랑이 없는 이 부분이 아주 미묘한 부분에서 이 지점에서 굉장히 교회를 사랑하던 많은 성도들이 넘어져요. 그리고 결국은 사단의 도구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거예요. 일단 생산하면 그런데 이게 옳지 않다고 하는 걸 제가 비유를 통해 들어줄게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아요. 여러분이 여러분도 몸이고 교회도 몸이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몸은 여러분들의 몸이잖아요.
45:20
하다가 상처를 입는다든지 해가지고 막 곰고 상하고 문제가 막 생겨요. 심지어는 몸이 이상해가지고 가서 X-ray 찍었더니, 암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에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이 만약에 간암이 걸려서 지금 생명이 위독하다 그러면 간에 대한 막 미움이 생겨요. 이놈의 간 다 후겨 파버려 잘라버려 나쁜 자식 이런 생각이 드느냐 얘기예요. 가다가 딱가닥 하고 다리가 삐었어 골절이 돼 가지고 부러져 가지고 몸을 못 움직이겠는 거야. 그때에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들어요? 병신 같은 다리 저거 아니 똑바로 걸 왜 너 때문에 나까지 고생하잖아. 이러면서 몽둥이를 들고 그 부러진 다리를 두들겨 패느냐고요. 자기 몸은 그렇게 안 하잖아. 자기 몸은 그렇게 안 하잖아. 부러지면 어떻게 돼? 큰일 났지.
46:18
그리고 분명히 머리는 직장에 가 있고 지금 손으로는 글을 써야 되는데 다 쉬면서 온몸의 기관이 다리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다리를 끌고 데려다주는 사람 없으면 자기가 목발을 짚고라도 병원에 가는 거예요. 돈 없으면 꿔서라도 갖고 가서 치료를 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다 날 때까지. 그래서 처음에 동기는 사랑하는 것일 수 있는데, 이게 사단의 개교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을 미워하고 물고 뜯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시작은 참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으로 시작한 일이 육체로 번지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 인간을 향한 독한 미움 그런 것들이 이 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결국은 카리타스의 사랑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복수심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할 수 없이 상처를 받게 되는 겁니다.
47:15
쉽게 얘기하면 처음에 굶은 상처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그걸 짜본다고 까불다가 오염이 돼가지고 거의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이게 몸을 다루듯이 교회를 다뤄야 되는데 푸줏간에 고기를 다루는 것처럼 교회의 몸을 다루는 거죠. 그러면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거죠. 하여튼 이 부분은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그런 식으로 다루면 안 된다라고 하는 거죠. 카리타스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뭐냐 하면은 마지막까지도 잃어버리지 말아야 될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모든 사람이 잘못해도 주님은 교회를 지키신다.
48:12
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데려가시고 정말 정말 안 되겠으면 하나님이 생명을 거둬가시고 그래서라도 하나님이 이 이해를 성장하게 하시는 거죠. 실제로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이 있는데, 참 신실하신 분인데 청빙을 받아서 교회를 가셨는데. 너무너무 힘들어하셨어요. 장로님들이 여러 분 계신데, 그중에 한 장로님이 늘 선두에 서서 교회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48:47
그래서 목사님이 안식년이 돼서 이제 한 6개월인가 얼마를 쉬고 오셨는데 늘 목회하면서 그 장로님 때문에 힘들어하고 몇 번을 교회를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으셨고 목사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많은 힘없는 성도들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데 6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이 장로님이 완전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은 6개월 목사님이 안식년인가 하시는 동안에 하나님이 이 장로님을 지옥 문 앞에까지 데려갔다 나오신 거야. 죽음 그 끝에까지 데려갔다 나오신 거야. 그래서 이분이 완전히 생각이 달라진 거야. 내가 악하게 살았구나. 내가 꼭 교회에서 잘못했다기보다도 내가 악하게 살았구나. 나의 목숨은 주님의 손끝에 있구나.
49:42
이제 내가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일일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교회를 지켜주셔요.
49:57
그 점에 있어서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선을 넘지 않고 나머지를 주님의 손에 맡기게 될 그리고 깊이 기도하고, 그 그리스도의 몸의 아픔이 진짜 처음처럼 몸의 아픔으로 느껴지고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아픔의 그 교회를 그렇게 아프게 했던 그 내가 바로 그 상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 교회에 있는 아픔들을 자기 몸에 난 아픔처럼 객관화할 수 없어야 되는 여러분 객관화할 수 없어. 너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이건 객관화야.
50:46
그런데 자기 이렇게 간암 걸린 걸 보고 에이씨 딴 기관은 다 멀쩡한데 왜 넌 바보같이 뭘 처먹어서 간에 걸려서 말이지 확 잘라버릴 거야. 그렇게 안 하잖아요. 그 더러운 놈의 간, 괜히 붙어가지고 말이지 안 그러잖아요. 객관화 못하잖아요. 결국은 그 간과 함께 아파하다가 그 간과 함께 죽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교회를 바라보는 것이 이게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들의 말하자면은 성화의 모습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늘 부족하잖아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바르게 해주시더라고요.
51:36
곤란한 힘 앞에 기도하고, 그래서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이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교회와 아파하고 이렇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말죠 뭘 외우게 되냐면 그렇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하고 너무 비슷한 거예요. 교회 안에는 아무리 썩었어도 그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가 세워주신 자리라고 생각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하나도 없는 교회는 없어요. 정말 놀라워요. 어쩜 그런지 몰라요. 심지어는 어느 정도냐면 예배라고 할 수 없는 예배를 드려요. 진짜 목격했습니다. 온교인이 다 자요. 정말이잖아. 그런데 그런데 교회가 필요하다 그러면 말씀을 듣고 눈이 초롱초롱 살아있는 교인들보다 더 많이 헌신해.
52:35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그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아닐 거야.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진리의 말씀 조금밖에 못 깨닫고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 많아도 그 속에는 진짜 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하고 진리는 많이 모르지마는 조금 알고 있는 진리의 자기를 철저히 합치시키기 위해서 아파하며 기도하는 교인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물론 그런다고 해서 예배 시간에 많은 교인들이 조는 게 정당화되지는 않지만은 정당화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함부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결국은 뭐냐면 그 속에서 그 교회의 병든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게 됩니다.
53:27
그래서 이제 교회를 깊이 사랑하고 카리타스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면은 교회의 그런 병든 모습을 볼 때 그 마음이 에스라같이 되는 거예요.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범죄하고 타락했다. 그랬을 때 칼 빼 들고 나온 게 아니라 비느하스처럼 칼 빼 들고 나온 게 아니라 성전으로 달려가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기 문턱에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함께 울었어요. 그게 왜 그랬냐면 하나님 너무 죄송합니다. 자기의 죄악인 것처럼 토설하고 아파하는 거야.
54:06
그걸 에 카리타스의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면 교회가 부패하고 지체들이 막 잘못하고 그리고 옳지 않은 일이 일어나서 막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그때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그래서 이거는 저 인간 때문이다, 저 자식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자기 몸에서 상처가 일어났을 때 그런 식으로 생각을 안 하는 것처럼 이걸 어떻게 하나? 나도 너무 아프다. 이 몸이 아프지 말아야 될 텐데 생각이 드는 거예요.
54:44
그래서 결국은 아프면 자기가 당하고 지체들은 지켜주고 자기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지체들의 명예는 보존하고 자기가 쓰라린 권한의 아픔을 당해도 지체들은 아프지 않게끔 보호하고 자기가 상처를 많이 받고 짓이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는 상하지 않도록 자기를 다 던져서 보호하는 왜? 왜 그래야 돼요? 왜 그래야 돼? 예수의 몸이잖아. 예수의 몸이잖아. 우리는 우리 몸이고 몸이잖아요. 우리가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이 평안하고 안녕을 누리는 그것이 이 교회의 모습이잖아요.
55:45
그렇게 할 때 신자의 삶은 굉장히 힘들게 고통스럽죠. 이루 말할 수도 없죠. 그런 속에서 아파하는 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혹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중보자가 된 것 같이 기도해 보신 적 있으세요? 그때에는 마치 깊이 들어가면 어느 정도냐 하면은 나는 그냥 껍데기일 뿐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기도하시고 그냥 가신다고 기도가 끝나고 나면 탈진하는 저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내가 용서를 비는 거야. 하나님 얼마나 용서해 주세요. 저 사람이 빌어야 할 기도를 나를 통해서 다 토설하게 하는 그때에는 그 기도를 받는 사람을 향한 어떠한 미움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56:44
그렇게 하면서 그게 중보기도의 정수예요. 중부기도의 정수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뼈저리게 계속 매일 기도하게 그런데 사실은 그런 걸 가끔 경험하지만은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그 마음으로 교회의 모든 지체들 심지어는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허튼짓하면 교회에 계속 고통을 주는 망나니와 같은 부패한 신자들도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더니, 그거를 바로 지혜를 가지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가르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에 의해서 행사가 된다. 그랬어요? 사랑에 의해서. 그렇지?
57:34
그렇게 행사를 하는 그게 바로 예수의 모습을 본받은 사람의 신앙생활의 모습이고 그런 속에서 자기는 많이 고통을 당하죠.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백을 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나의 육체에 채우노라 나의 육체에 채우는 많은 고난이 교회 때문이고 그리고 그 고난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당하셨을 그 남은 고난이라 그러면서 자기가 당하는 모든 권한이 공동체를 위한 권한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그래서 어려운 말로 하면 성례전적으로 그 고난을 통해서 예수께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거예요.
58:23
그래서 사회에서 사회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하던 것과 같은 똑같은 방식을 가지고 교회에서 하면 되는 거예요. 여기는 전혀 다른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란 말이죠. 이 사람들을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고 사랑하여야 할 이유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뭐냐면 상태가 안 좋은 신자는 비록 상태가 안 좋지만 예수의 몸이기 때문에 또 예수의 몸에 덧붙이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택하신 양일 수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냐면은 내게는 우리 안에 들지 아니한 또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서 그들도 인도하여야 할 터이다.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시죠.
59:19
우리 안에 아직 안 들어왔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양이라고 이미 부르시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이 세상에 있어도 우리들이 가서 선교할 텐데 그 사람이 교회에 오게 되었으니까 사실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선물이죠. 우리들이 선교를 나갈 때 그 사람들에게 좋은 대접, 기독교에 대한 예의, 바른 태도 교회의 질서에 대한 엄격한 존중, 목회자에 대한 겸허함, 성도에 대한 예의 이런 거 우리가 기대하면서 전도 나가요. 그럼 아파트 전도하다가 그런 아파트 전도하러 갔는데 잡상인 출입금지인데 여기 왜 들어가요? 그러면 가만히 있어.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겨 가지고 땅에다가 한번 메치고 오지 우리는 그런 거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면 당연한 일이 일어났구나.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아우 전 예수는 안 믿지만 들어오세요.
01:00:15
이 추운 날에 그러면서 손을 문을 열고 두 손을 잡으면서 아이고 이 손 봐. 이렇게 추워서 어떻게 해? 난 예수는 안 믿지만 어쨌든 들어오세요. 내가 하여튼 믿을 마음이 있으니까 들어와 보세요. 이러면 아이고 제대로 된 인간이 있어. 없구만 우리 그렇게 생각하냐? 이게 어째 이런 일이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불신자고 거짓 신자라고 하더라도 가끔 곤조부리고 그러면 당연한 일이 일어났구먼 이러고 얌전한 만약에 교회 다니면 어이구 왠일이셔 이렇게 하면서 사랑해줘야지 선교지가 교회 속으로 들어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주 편한 거죠. 사랑하고 그렇게. 그렇게 하면서 이제 그가 진정으로 변화되고 새로워질 날을 기대하는 거죠. 그때는 이제 다 와서 미안하다 그런다고 그때는 정말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깨닫는 거죠.
01:01:15
그런 거예요. 그러다가 보니까 어떻게 되냐면 신자의 영혼과 마음이 강조가 되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죄송합니다. 이제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되냐면 그러면 이제 이렇게 해서 사랑하는 것이 바로 어저께 이야기했던 토투스 크리스투스 보이는 교회 전체를 예수의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거란 말이죠.
그러다 보면 그다음에 무엇을 우리들이 생각하냐면 교회가 확장된 된다는 게 뭐냐? 쉽게 얘기하면 교회가 성장한다는 게 뭐냐? 우리가 교회가 성장한다 그러면 대개 몇 가지 이런 요인들을 꼽잖아요. 예를 들자면 우선 교인이 많이 모이는 거 교인이 계속 줄어드는데 성장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어떤 말이냐? 교인이 계속 늘어나는 거 성장이죠. 그렇죠?
01:02:11
학방같이 쬐끄만 데 볶다 그러고 5부, 6부 예배 드리다가 큼지막한 예배담을 지어서 가는 것도 우리가 성장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또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조금밖에 안 늘어났는데 헌금이 계속 늘어나서 그것도 성장이라고 얘기하죠. 또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정신 차리지 않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서 또 어쨌든 가정도 평안하고 이렇게 다 된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성장이라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전자의 3가지는 양적 성장이라고 그러고 후자는 우리들이 질적 성장이라고 그러잖아요. 사실 이런 구분 자체가 뭐 별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없죠.
01:02:55
왜냐하면, 교회의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수가 영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모두 좋은 신자라는 전제조건이에요. 거짓 신자나 상태가 안 좋은 신자가 많이 섞여 있게 되면 이게 늘어날수록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선교에 걸림돌이 되는 거죠. 무슨 얘기인지 알죠? 여러분도 이렇게 보다가 저 사람은 진짜 좀 예수 믿는다고 말을 안 하고 다녔으면은 굉장히 좋겠다. 말로는 우리가 못하지만은 사실 그런 생각 우리도 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여러분 자신을 포함해서 그렇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01:03:51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라는 성장, 교회의 확장이라는 게 뭐냐. 교회의 진정한 확장은 참된 의미의 선교예요. 그 선교를 통해서 그 복음화되는 것이 교회의 진정한 확장인데 교회의 확장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확장이에요. 사랑의 확장. 사랑을 확장해요. 사랑의 확장이라는 게 뭐냐면 하나님이 이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을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교회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셔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를 태어나게 하시잖아요. 이게 종자 씨로 택하신 거죠. 이 씨를 사방에 퍼뜨려서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을 회복된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01:04:44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이제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문제는 종자씨가 이게 신통치를 않아. 그럼 갖다 뿌려놓으면은 이게 이게 잘 그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야 될 텐데 그게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시가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런데 이제 만약에 씨가 좋아진다면은 교회가 모판이 되어서 모를 다 찢어서 그래서 인제 모내기를 다 하게 되면은 몇 달 지나고 나면 막 그 그 벼로 가득한 논밭이 되고 가을이 되면은 막 누렇게 벼가 익어서 황금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밭이 되었어요. 모판은 요만한 거 하나였는데 그걸 가지고 다 찢어서 모를 내니까 그냥 들판 전체가 누런 곡식이 출렁거리는 그런 말하자면, 황금 물결에 논이 된 거예요.
01:05:40
그런 것처럼 세상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된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뭐냐 그게 결국은 뭐냐 하면은 예전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사랑의 질서를 따라서 일이 이루어져 있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거의 천편일률 쪽에 유사해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사람이 각각 조금씩은 틀리지만 자기 사랑의 말뚝을 박고 원을 치면서 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틀리거든요.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 말뚝을 박고 사는 거죠. 그러니까 신자가 부패하거나 거짓 신자라서 그렇지. 참되고 진실한 신자는 대개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거죠. 여러분 얼마나 비슷해요. 여러분들 중에 어떤 사람은 돈 많이 벌어서 한번 뻥텅거리고 살아봐야 되겠다. 아니면 내가 지금은 성화되는 시간인가?
01:06:38
좀 참았다가 성화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내가 가서 한번 타락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없다. 이거죠. 모두 다 비슷하게 생각을 하면서 원을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은 이 보이는 교회는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보이는 교회라고 하는 건 지상에 있는 교회요. 나눌 수 있는데, 사도들의 경우와 우리들의 경우로 나눌 수 있어요. 사도들의 경우에는 교회가 보이질 않고 예수님만 보이는 거죠. 예수님은 살아계시니까 예수님은 눈으로 보고 교회는 믿음으로 봤어요. 그러니까 사도들도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다음에 성령이 임하셔서 세워질 그 교회의 맛을 예수님을 통해서 본 거죠. 그것이 제자들에게는 이 교회를 어떻게 교회되게 이끌어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원천이 된 거죠.
01:07:37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 택하신 의도가 일하게 하시려고 먼저 부르신 것이 아니라 먼저 부르신 것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거예요. 그래서 그들을 불러서 함께 있게 하고 복음도 전하게 하고 이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을 부르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항상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다니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앞에는 종종 나타나셨지만 항상 열두 제자와 함께 따로 다니셨어요. 그런 이유 뭐냐 하면 그 열두 제자 안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그 속에서 이미 교회의 모형을 이루면서 어떤 어떻게 머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그 가르침을 따라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을 아주 몸소 체험하도록 예수님께서 시범을 보여주신 거죠. 그런 정신을 성령 오신 다음에 교회가 세워졌을 때 그대로 구현해 간 거예요. 사도들이.
01:08:34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고 그다음에 교회는 어떻게 하냐? 안 보여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죠? 예수 그리스도는 보고 그다음에 교회는 믿어야 됐어요. 믿음으로 볼 수 있었다. 이거죠. 그런데 우리의 경우엔 틀려. 이제 예수님이 안 계셔요. 부활 승천하시고 그리고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어요. 어디 예수님이 여기 계세요. 지금 사람들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 모두 이렇게 진리를 깨닫고 새해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려고 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보면서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우리 모두 봐요. 그러니까 이번엔 어떻게 되는 거죠? 눈으로 교회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중요해요.
01:09:26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를 보여주실 때는 흠이 없고 완전한 모습이었어요. 그러니까 사도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지성의 한계는 있지만 어쨌든 성령 오신 다음에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실 때의 그 교회의 모습을 성령 오신 다음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그런 교회를 만들고 싶어 했던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 그렇게 안 되고 우리는 그렇게 안 되고 이제 예수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의식을 못 해요. 그런데 이거를 보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 무리를 보고 예수님을 알게 되는데 교 이런 무리들인 교회를 보여준 예수님은 완벽하신 분이었는데. 이 완벽한 예수님을 보여줄 이 교회는 현실적으로 불완전한 교회예요.
01:10:21
그러니까 이제 거기서 뭐가 나타나냐면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똑바로 살면 사람들이 이 교회를 보면서 빨리 예수님을 생각하는 거예요. 빨리 빨리 생각하고 제대로 똑바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상태가 안 좋은 신자들이 많고 거짓 신자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눈에 보이는 교회가 이게 자꾸 이렇게 부패하고 곰고 냄새나고 상하고 절뚝거리고 이러는 그다음에 이렇게 장애가 일어나 가지고 괜히 손이 머리를 쥐어박고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발이 괜히 발이 배를 못 차지 자기가 발이 괜히 등을 차서 말이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계 체조하는 사람 차서 등뼈를 부러뜨리고 이렇게 하면서 이제 마치 망가진 로보트처럼 이러는 거를 보면은 사람들이 인제 이 예수님이 생각이 안 되는 거죠.
01:11:22
생각이 안 나는 게 몸이 정상적으로 일치하게 음지하지 않는 걸 보면서 여러분들 뭘 생각하세요? 뇌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든지 이렇게 생각할 거 아니야. 그 생각 없이 막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 보고 우리 가끔 그러잖아요. 너 뇌가 없냐?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심지어는 그렇게 엉터리 같은 교회를 이렇게 보면서 없네. 예수님 없네. 그 예수님 믿고 예수님께 접붙여진 사람들이 사는데 일관성도 없고 지들끼리 내 방거리 물고 뜯고 싸우고 법정에 고소하고 말이야. 치받아가지고, 막 그냥 하고 그렇게 하면서 막 욕지거리하고 심지어는 주먹이 오가고 말이지 그러고 말이야. 돌아다니면서 막 비방하고 말이야.
01:12:14
이러는데 없네 없네 이 사람들 모인 데가 우리 모인 데하고 뭐가 틀린가 없네 없어 에이 없어 있는데, 그러고 막 떠들면 없어. 아주 확신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전도하다 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불교 신자, 다른 종교 믿는 사람보다 더 어려운 게 예수 믿다가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 여러분들 전도하기 너무 힘들어요. 그 사람들은 뭐냐 없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에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이 계셔도 안 믿겠다고 그러는 사람이에요. 그럼 굉장히 선교가 어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안 보이고 교회는 보이는 거죠.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여주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삼위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그 삼이 하나님을 보고 와서 그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그 삼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게 인간의 본분이거든. 이게 무슨 첫 문? 첫 번 단추서부터 이게 안 꿰어지는 거죠.
01:13:13
그러면 이제 그 교회가 이제 하나님이 자기들을 부르신 그 교회의 사명을 감당을 못하는 거죠. 그러면 거기에 덧붙여져 있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자기를 구원해낸 하나님의 뜻대로 못 살게 되는 거죠. 영혼의 안식이 있고 인간의 행복이 있고 거기에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는데, 그렇게 살지를 않으니까 내적으로는 수많은 갈등과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고백을 하면서도 실제 삶에 있어서는 아주 불의를 저지르고 악하게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예수를 믿은 보람이 거의 없는 그런 핍절한 삶을 살게 되는 거죠.
01:14:06
그러니 이 모든 것이 교회의 상태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숙제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자신이 어떤 교회 어떤 모습을 보여줄 때 그 교회를 통해서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또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불신자들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거였거든요. 첫째는 뭐냐 하면 까리타스로 충만한 자기 자신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죠. 까리타스로 까리타스는 지순의 사랑이잖아요. 지순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이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01:15:01
자기 아들을 굳이 사람을 입어 이 세상에 내려보내지 않으시고도 우리를 구원하실려고 마음을 먹으셨다면 구원하실 수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내려보내셨어요. 또 한번 양보해서 그게 아니라 예수님이 반드시 사람의 몸을 입고 죽으셔야 했다고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내려오시자마자 말구유로 가지 마시고 바로 십자가로 가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시고 33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에 멸시와 욕을 당하면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면서 33년을 살게 하셨어요. 솔직히 33년 예수님 사시는 동안에 예수님이 한 번이나 당신 자신의 존재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아보신 적 있어요. 그런 보람 있는 생애를 사신 적 있어요?
01:15:58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하면 반역하는 자들이 생겨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생명 주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죽일 궁리하는 사람들이 가득했잖아요. 그런데도 사람의 몸을 입으셔서 이 세상에 내려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아요? 그게 우리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몸을 입은 예수님으로 실제 우리와 똑같은 세상에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사시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주님이 본보기가 되도록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거를 이 책 속에 깊히 담으시고 그거를 몸소 본 사람들이 교회에 터를 놓게 하신 거예요. 사도들이에요. 그 터를 놓게 하신 거예요.
01:17:00
그래서 사도의 자격은 예수님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어야 돼서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많으면 떠오르는 거죠. 만약에 예수님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그런 식으로 보내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그런 생각 못하는 거죠.
01:17:15
우리가 상태가 좀 안 좋을 때에도 우리가 정신이 들게 되면 그런 생각을 지금 내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이렇게 안 하셨을 텐데 또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 고통이 자기를 너무나 찔러 그럴 때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런 고백 못할 거 아니에요.
01:18:13
그 속에서 우리들이 얻는 통찰과 위로가 얼마나 큰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 주님도 고난을 당하셨는데 주님도 고난을 당하셨는데, 멸치와 욕을 당하셨는데, 시련과 아픔을 당하셨는데 그 은혜로 구원받은 내가 아무리 나를 소진하며 살아도 예수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주님도 그러셨는데 이 할 수 없었을 거 아니에요. 보여주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카리타스의 사랑으로 가득 찬 자신을 이 세상에 보여줄 때 보이는 교회를 통해 안 보이는 예수님이 믿어지는 거예요.
01:19:06
그 카리타스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예수사랑 예수사랑 예수 사랑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줄 때 되는 거죠. 그 어떤 불신자가 있었대요. 전도 대상자인데 아마 그 사람이 믿는 사람 집에 초대가 됐던 모양이죠. 아이들을 뭐 2인가 3을 데리고 갔는데 안 믿는 사람도 마음이 너무 답답하면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인제 이 얘기, 저 얘기 털어놓는데 둘이서 이야기에 푹 빠져서 얘네들이 돌아다니면서 온 집안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심지어는 그 뭐야?
01:20:01
변기에다가 뭘 집어넣어 가지고 도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이렇게 해야죠 굉장히 난리를 쳐 그러니까 그래도 다 교육받은 사람들이니까. 이치를 알잖아. 정신이 얘기에 정신에 빠져서 얘기는 했지만, 그 집에 너무 많은 손해를 입힌 거야. 그게 좀 미안해가지고 몰라 하는데 구김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그 집 부인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집에 있는 딸까지만 나중에 온 딸까지 이렇게 다 위로하면서 아무 상관없다고 그 불신자가 그거를 보면서 야 진짜 자기하고 비교를 하는 거죠. 나라면 이 상황에서 저럴 수 있을까? 못하지 오늘의 결론 예수 계시네 그 사람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못한다. 예수 있네. 어디?
01:21:00
저 사람 안에 있네. 그러니까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이게 믿어지는 거잖아요. 믿어지는 거죠. 놀라 제가 언제도 한번 그런 이야기 들었잖아요. 어떤 형제가 부동산을 감정하고 하는 그런 사람인데 하러 갔더니, 업자가 1500만 원을 다 낡은 돈으로 가방에서 꺼내 놓으면서 탁 주더래요. 우리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 사람이 사인 하나만 잘해주면은 돈을 몇십억씩 더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럼요. 잘 해드려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어려우세요. 제가 있는 힘을 다해서 잘 해드릴게요. 그 대신 이거 예수 믿는 사람이거든요. 그 순간 그 사람들은 예수 있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있네. 왜? 지금 있잖아.
01:21:54
이게 저렇게 젊은 사람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돈을 그걸 밀어 놓으면서 잘해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해드릴게요. 돈 받은 것보다 더 잘 해드릴게요. 그런데 받을 수 없어요. 왜? 나도 받고 싶은데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거든요. 그 인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거예요. 인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사강 들고 교회에 와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는 그 사람들이 인내 이렇게 얘기를 안 하는 거죠. 왜냐하면, 그거는 자기도 시어머니하고 싸우고 속상하면 부엌에 가서 우니까 그러면 안 하는 거죠.
01:22:34
그러니까 인내 그렇게 얘기를 하려면 뭔가 자기 안에 있는 그 놀라운 평안 그게 바로 그런 그 충만한 까리따스로 충만한 자신을 이 교회가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랑의 질서를 확장시키는 선교의 대의예요. 그걸 그게 뭐냐면 여기서 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제일 촌스러운 게 우리 교회에 가서 목사님 설교 한번 들어보라고 얼마나 시시한 전도예요. 그게 뭐예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자기 안에 살아계신 예수를 보여줄 수 있어야지 그걸 보여주세요.
01:23:33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을 사람들에게 그걸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때 그 예수의 사랑이 확장되어 가는 거거든요.
이렇게 또 하나 보여줘야 될 것은 뭐냐면 일치로 충만한 자신을 보여줘야 돼요. 일치로 그게 뭐냐면은 이제 존재의 목적이 통일되게 나타나야 되는 거죠. 예를 들자면 이러잖아요. 설교하다. 목이 말라. 그러면은 잘 보세요. 목이 말라. 그래서 물을 마셔야 되겠잖아요. 그런데 이게 온 기관이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눈이 여기 물이 있구나 봐요. 그리고 그다음에 손이 이렇게 나가죠. 손이 이걸 탁 들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컵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쫙 느껴지면서 전달하는 거예요. 이게 뜨거운 물이 아니라 찬물이다. 이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01:24:30
그러니까 호루룩 호루룩 마실 준비를 입이 하는 게 아니라 쫙 마실 준비를 하는 거죠. 불어서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이 목이 물을 기다리는 거죠. 들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올라가는 거죠. 그리고 고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쭉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들어오면 벌려요. 쫙 벌려. 이러고 있는데, 물 갔잖아. 이 사람아 입 벌려. 그렇게 안 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일어나. 이거는 모두 슬로우 비디오로 일어난 거죠.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게 슬로 비디오고 순간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이게 그냥 일치예요.
01:25:30
온몸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쫙 계속 움직여서 하나도 손 가 뭐 그다음에 입 벌려 고개 내밀고 자라처럼 빼 이렇게 안 하고 그냥 그래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는 거죠. 그걸 통해서 뭐냐 하면 이 사람이 정상적인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이는 거죠.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도 보는데 사람들이 볼 때 그렇게 움직일 때에 비로소 이게 뭐가 일치하게 움직이네 그런 생각을 하게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이게 중구난방으로 막 움직여서 일치된 목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될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 없네. 그게 딱 결론을 내리는 거죠.
01:26:24
사람들이 모여서 그냥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 조기 축구 하듯이 그냥 예수 좋아하는 사람들 예수 동호회라고 이렇게 모여서 이렇게 그냥 이렇게 취미생활 하듯이 그렇게 하는 거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이제 제가 목회를 하면서 재밌는 게 뭐냐 하면은 한 집안의 회심의 역사가 거의 동시에 일어날 때 너무 재미있거든요. 대개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래요? 한 집에 예를 들자면 네, 식구가 사는 거야. 제일 먼저. 남편이 가서 말씀을 듣고 그 몇 달 교회를 다니면서 완전히 변해서 새 사람이 된 거예요. 그러면 온 가족들이 야 니네 아빠 요새 좀 변하지 않았냐.
01:27:24
아들이 밥 먹다가 왜요? 그러니까 매일 저녁 일찍 들어오시지 않냐 하긴 그렇네요. 맨날 술 먹더니, 요새 술도 안 먹고 그 둘째가 있다는 거야. 그것만 아니야. 아빠 요새 매주 교회 가잖아. 전에는 요새는 빠지는 때가 거의 없어. 옛날엔 갈 데가 거의 없었는데 진짜 그렇네. 사람이 아주 진중해지고, 그다음에 기도하고, 성경 읽고 이게 그 모습이 되게 보이는 거죠. 그 모습이 이렇게 보이는 거야. 그때는 이제 그때는 이제 식구들이 아빠를 이렇게 원숭이 보듯이 이렇게 보는 거죠. 아이고. 그리고 이제 다들 그러죠. 부인도 며칠이나 이제 이러죠. 그러다가 이 남편이 은혜를 받아서 점점 깊어져요.
01:28:20
그러더니, 둘째, 애가 가가지고 변화 받고 와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엄마 나 예수님 만났거든? 이러는 거지. 엄마는 이제 불안해 기적하는 거야. 그러다 첫째까지 가가지고 뒤집어지고 수련회에 와가지고 엄마 엄마 정신 차려 엄마 이렇게 살면 큰일 나 엄마 정말 정신 차려 그리고 여보 우리 예배 드립시다 그러니까 아 예배는 뭐 지금 테레비 하는 시간인데 그리고 테레비에 벌렁 누워가지고 저기 침대에 벌렁 누워서 띵 하고 리모컨을 켜고 한창 연속극 뻗어가는데 읽어가는데 거실에서 말이지 셋이서 울면서 기도를 하는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이제 이게 두렵기 시작한 거죠.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 두려움일까요? 살아계시네. 거기서 오는 두려움이에요. 하나님이 진짜 있구나.
01:29:16
하나님이 없다면 어떻게 저런 대식구들이 저렇게 순식간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게 생기는 거죠. 그러나 당신 예수 믿어. 예수 안 믿으면 큰일 나 너 예수 믿어서 성공한 사람 다섯 사람 안 믿어서 망한 사람 한번 얘기해 줄까? 그런 얘기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이 부인이 물어보는 거죠. 여보. 진짜 예수님 계셔? 여러분 당신 진짜 변화되니까. 그러면 어떻게 돼? 그게 마음이 어때? 이거 물어보는 겁니다. 그게 가장 훌륭한 선교예요. 정말 훌륭한 선교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저는요 잘 모르지만요. 우리 남편 보니까 확실히 하나님 살아계셔요. 그러면 그게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01:30:11
믿는 사람 그렇게 되는 거냐 그런 일치를 보여주도록 되는데 이 일치라는 게 뭐냐 하면 기계적인 일치가 아니에요. 기계적인 일치라는 게 뭐죠? 획일화하다는 거예요. 이북 사람들이 되게 획일화잖아요. 그렇죠? 계속 획일화 방송할 때 아나운서가 자꾸 바뀌는데 목소리는 똑같아. 그 왜 그렇게 하는지 난 이해가 안 가요. 똑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획일화예요. 그래서 교회에는 그런 교회의 일치는 그런 일치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도 이렇게 볼 때 일치를 생각할 때 항상 그런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일치를 생각하는 거죠.
01:31:06
예수 믿는 사람은 어때야 되고 어떻게 행동해야 돼? 이렇게 딱 규격을 갖춰서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치가 아니라 이 일치는 그런 일치가 아니라 하모니의 일치예요. 하모니아의 일치라는 게 뭐냐면은 악기가 여기에 수십 개가 있는데, 악기를 연주할 때에는 그 악기가 다른 악기 하나를 정해놓고, 그 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지 않아. 피리는 피리 소리 내고 그다음에 컨트라베이스는 컨트라베이스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소리를 내고 그것도 First Violin, Second Violin 각각 다른 소리를 내. 그리고 심지어는 작곡자가 작곡할 때에도 똑같이 안 가고 다 틀리게 해. 그러면 각자 자기 가는 거야.
01:32:03
그런데 그거를 다 엮어가지고 하모니를 연출하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만약에 그렇게 연주하시고 똑같이 연주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군대에서 부르는 군가처럼 들리겠죠. 그렇게 아름다운 하모니가 나는 게 아니라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음악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남자들이 한 8명 내지 한 20명이서 부르는 그 복사중창 그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주 신비할 정도로 팔려 들어갈 정도로 인간의 목소리가 정말 최상의 악기예요. 그게 바로 하모니예요. 같은 소리를 내 가지고는 사나이로 태어나서 행진하면서 부르는 군가밖에 안 나와요. 그런데 그 하모니가 울려 퍼지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거죠.
01:32:55
교회에는 사람들이 생각이 다르니까 왜 너는 왜 나처럼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그렇게 경건한 사람이면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위로 들고 얼굴을 땅에 대고 그렇게 기도를 해야지 그러고 너는 왜 그런 기도할 때 이렇게 나처럼 말이지 이렇게 성경에 보면 부르짖으라 이렇게 돼 있는데, 소리도 그렇게 못 내고 혼자서 그렇게 기도하냐? 너는 왜 기도할 때 분명히 마음을 토해놓으라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기도를 해야지 너는 왜 그렇게 글짓기 하듯이 예쁜 글 읽듯이 그렇게 기도를 하니 사람들 자꾸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러니까 그 다양성을 다 인정하는 그러면서 하모니가 되는 거죠.
01:33:41
그러니까 내게 부족한 것을 그 사람들이 채워주면서 교회 전체적으로 하모니가 되어서 온 사람들을 꺾지 않고 그리고 온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주는 단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카리타스를 가지고 그것들을 구현하게 하고 저 사람이 나와 다른 뭐가 있으면 항상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도움을 받겠구나 우리 우리 교회가 부족한 것을 저 사람 때문에 버틸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교회 너같이 튀는 사람 필요 없어. 그러면 안 되죠. 튀면 어때? 천장이 좀 낮아서 걱정이지만 튀어도 괜찮아. 그렇게 해서 얼마나 좋아. 그러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교회가 만들어 가는 거죠. 이런 일치를 교회가 보여줄 때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믿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01:34:37
그러면서 이제 결국은 신자의 영혼과 마음이 강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교회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아름다움이 문제가 되는 거죠.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세상에서 사실 높은 산이 에베레스트 산이라는 건 동의를 하지만 그게 제일 예쁜 산이라 그러면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죠.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아도 그 산보다 예쁜 산 참 많고요. 오히려 작은 산들 중에 아름다운 산들이 참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찬가지죠. 그런 웅장한 강이 제일 아름다운 강이다. 그렇게 말할 수 없고요. 큰 것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어요. 오히려 독일 속담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속담이 있어요. 작은 건 뭐든지 아름답잖아요. 예를 들면 팔뚝만 한 쥐. 느낌 어때요?
01:35:35
오, Beautiful 그래요? 느낌이 어때요? 팔뚝만 한 쥐. 둘은 너 낮잠 자는데 내 배 밟고 지나가다 이거 어때 얘기냐면 그런데 우리 옛날에 어렸을 때는 쥐가 천장에 늘 많았거든요. 이렇게 어느 어느 친구네 집에 가서 자는데 자는데 뭐가 툭 떨어졌어요? 봤는데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 금방 태어난 빨갛고 예쁜 쥐. 이게 한 다섯 마리가 떨어졌어요. 다 달렸어. 발도 달리고 눈도 달리고 귀도 달리고 다 달렸어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하는 거예요. 검지락 검지락 검지락 검지락 검지락. 그러더니, 우리가 자고 나오니까 그 집의 동생이 그걸 실 묶어서 논다고 또 그거 모개들한테 다 실 묶어서 자기가 키운다고 말이지. 얼마나 귀여워요. 그렇지?
01:36:32
배 밟고 지나간 팔뚝만한 쥐보다 훨씬 낫잖아. 얼마나 귀여워요. 그러니까 작은 게 오히려 아름답잖아요. 크고 작은 건 우리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교회의 가치는 크다 적다라는 걸 획일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면은 또 그 사람들을 잘 돌봐야 되니까. 교회도 넓히고 의자 석수도 크게 많이 만들고 이렇게 해야 되겠죠. 그렇죠? 그리고 또 교회가 그렇게 커져서 건강하기만 하면 큰 몸이 되니까.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교회가 이렇게 해낼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나름대로 유익이 있죠. 우리가 결정할 건 아니지만은 그러나 이제 기본적으로 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아름다움에 두어야 되는 아름다운 교회인가?
01:37:29
그러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추루하고 큰 교회를 원하느냐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를 원하느냐 그러면 곧 1초라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거죠. 작더라도 아름다운 교회가 참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영적인 스승이 되시는 조누앤 목사님이 자기의 책 속에서 교회의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그저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교회는 200명에서 500명 정도 사이즈면 가장 좋겠다. 그렇게 썼어요. 그런데 저는 그것도 많은 것 같아요. 500명도 그러고 싶어요. 저는 정말 그래서 정말 그러고 싶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교회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저도 있었어요.
01:38:24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아름다운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럼 교회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뭐냐? 건물의 아름다움이나 이런 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교회의 지체들의 영혼의 아름다움에는 그 이룬 연합의 아름다움에는 영혼의 아름다움 그러니 영혼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어떻게 돼야 되겠어요? 영원히 끊임없이 세 가지 삼위일체적 삶을 얘기했잖아요.
01:39:03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고 그다음에 쇄신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그래서 영혼이 영혼됨으로 꽉 차는 변화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어나서 이것이 공동체적으로 모두 새로워지는 그래서 이 예배가 중요하고 함께 모여서 드리는 기도회가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뭐냐 하면 한 몸으로서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영혼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면서 순전해지는 겁니다. 그때에 이제 교회 전체적인 예배를 잘 드리고 나면은 영혼이 아주 맑고 깨끗한 영혼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계속 은혜를 주시잖아요. 그렇게 쇄신되어 가야 돼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밖에서 유혹하고 안에서는 부패성이 역사에서 우리가 그 영혼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하든지 잃어버리게 하는 거죠. 사단의 유혹도 있어요.
01:39:58
끊임없이 영혼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면 교회 전체적인 영혼이 아름답지 않은데 까리타스의 사랑이 깃들 수가 없잖아요. 까리타스의 사랑이 깃들지 않는데 성도들을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고 섬긴다고요.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그렇게 하냐? 이거죠. 안 한다. 이거죠. 자기 사랑이 꽉 차는데 누가 그러겠어요?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죠? 교회 전체적으로 이게 병들고 추루해지게 되는 거죠. 그러면 교회 전체적으로 실제적인 연합이 끊어지는 거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공동체가 모여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요. 그리고 신자의 삶이 각기 병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교회가 시험에 들어가요. 거기에 매달리는 성도들이 다 시험에 들기 시작해요. 시험에 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교회의 영혼의 아름다움. 아름다움, 그거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면서 그러면서 자신의 영혼의 추루함이 교회의 아름다움을 해치지는 않을까?
01:40:58
노심초사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그게 진짜 예수의 몸에 덧붙인 듯한 사람이 가져야 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 나타나면 그 교회가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은 신자의 마음을 통해서 그걸 보여주는 거죠. 그러니까 신자가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이 노력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거죠. 마음 지킴이라는 교리 책 속에서 이미 제가 다 밝혔어요. 그런 마음을 자기가 끊임없이 지키면서 그러면서 분투하고 싸워서 그 마음이 까리따스의 사랑을 언제든지 사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것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 사랑 안에서 성도들이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 사랑 안에서 성도들이 계속해서 자라가는 이것이 진정한 영적 성장이에요.
01:41:57
그럼 이렇게 그렇게 성도들이 그런 사랑 안에서 자라간다고 하는 것이 결국 뭐냐? 하나는 정화됨이에요. 정화됨에 무슨 뜻이냐 하면 영혼 안에 이게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과 경향성들이 이런 것들이 자꾸 흐트러지고 이질적인 경향성들이 생겨나는데 이런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온 영혼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꽉 차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정화되는 겁니다. 풍성해진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런 사랑이 이런 사랑이 아주 충만하게 되어서 그래서 하나님 자신만을 향한 사랑으로 꽉 찬 상태가 되는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한 사랑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 겁니다.
01:42:51
그래서 또렷하게 하나님만 사랑하게 되는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교회를 섬기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게만 관심이 있어서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 자신을 봉헌하려고 하는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점점 더 집중될 때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사랑의 풍성함이라고 얘기합니다. 분산이 많이 됐을 경우에는 즐거울 때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데, 고난이 오면 때려치워요. 친다고. 그런데 주님을 많이 사랑하면 고난이 와도 그것을 참고 견뎌.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자신의 안위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주님이 없는 삶을 자기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한 분을 향한 사랑으로 사랑의 대상의 폭이 점점 더 집중되는 거예요.
01:43:49
그때의 그 사랑을 우리들이 풍성해진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게 될 때에 이제 이 교회는 점점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생각해 봐야 될 것은 뭐냐 하면 이러한 신자의 영혼과 마음이 강조가 되지만 이제 신자의 영혼의 마음이 영혼과 마음이 강조가 되고 그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되지만 또한 동시에 공동체로 한 몸을 이룬 교회가 어느 시점에서 같은 생각과 마음을 품어야 된다는 것을 어제 장 시간에 걸쳐서 여러분들에게 논증해 보였죠. 그렇죠? 그래서 제가 예를 들었잖아요. 이것저것 모두 해야 되지만 어느 시점에서 우리 개인에게 너 왜 요즘 기도 안 하냐. 또 시간이 지나가면 너 요즘 왜 이렇게 정직하지 못하냐.
01:44:47
또 시간이 지나가면 너 요즘 왜 이렇게 게으르냐 이렇게 때에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메세지들 있잖아요. 그러면 이 교회를 향해서도 그런 게 있다. 이거죠. 너희들은 그냥 같이 모이기만 했지만, 사는 거 그냥 니네 알아서 각자 살아라 그러시질 않고 교회가 한 몸으로서 뛰는 거죠. 이런 것들을 전달해 주는 것이 바로 이 강단의 사명이에요. 그러니까 자꾸 요구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얘기가 바로 그거예요. 기도하면서 항상 그런 분별력을 교회의 질서를 따라서 주시도록 하면서 그러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듣고 싶은 설교 주제가 있으면 기도를 많이 하세요. 그럼 제 마음을 움직여서 글로 갈 거예요. 왜? 그 메시지가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에서는 교회를 향해서 그냥 순결해지도록 강력하게 요구하시는 거예요. 그때 모두. 모두 자기가 불결하다는 것을 회귀해요.
01:45:43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는데 깨달음도 별로 없이 어떻게 회개가 되긴 됐는데 이 사람은 직장 떨어져서 서로 울고 저 사람은 성경 안 읽는다고 울고 저 사람은 자식이 속 썩인다고 울고 이런 식으로 되면 아무리 울고 나도 이게 일치가 안 돼. 그런데 어느 순간에 숨겨놔라. 이것밖에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메세지가 중요하게 주어지고 순결하게 살기 위해서 고난받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막 위로하시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다른 거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자신의 문제로 떠오르는 거야. 맞아. 내가 지금 이런 문제, 저런 문제 다 있지만 이거 결국은 내가 순결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야. 그리고 떠오르는 거야. 이게 수면 위로 다 사람은 각각 처한 상황은 다른데 그거를 중심으로 다 떠오르는 거야. 그래서 회개를 하는 거죠. 하나는 내가 순결하지 못했습니다.
01:46:36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적 순결을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부정한 것에 대해서 순결하지 못했다고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말해서 잘못한 것에 대해서 순결을 회개하고 학생들은 학교 가서 컨닝한 것을 회개하면서 순결을 해오고 이렇게 하면서 결국 각자에게는 다르게 적용이 되는 거죠.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같은 메시지가 주어지는 거예요. 그때 어떻게 되냐 하면 교회 전체적으로 불결을 떨어버리고 예수의 몸인 전체의 교회가 순결하게 다시 거듭나게 되는 거죠. 이제 이해가 가죠. 그러니까 절대로 이 강단에서 선포하는 이 메시지는 너무나 보편적이기 때문에 나같이 아주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의 삶은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상담이나 통해서 다뤄질 문제지 이렇게 수천 명을 놓고 선포하는 이런 메시지 속에 내가 이렇게 보편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내가 너무나 유별난 상황에 있기 때문에 그건 안 된다. 그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생각이라 이거죠.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이거예요.
01:47:35
절대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얘기 있었냐면 제가 헌금 설교를 딱 두 번을 했어요. 12년 동안에 그 헌금 설교할 때 회심한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마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에는 지금같이 너 이게 예수의 몸이 이게 뭡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 나에게는 지금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사업이 문제인데 어떤 사람은 내 지금 사업도 문제가 아니고 교회도 문제가 아니고 지금 우리 애가 문제인데 우리 애도 문제가 아니고 나도 문제고 우리 지금 남편이 문제인데 이것도 문제고 저런 문제고 나는 지금 몸이 아파 죽겠는데 이런 식으로 다양한 상황을 가지고 왔는데 그런데 관계를 보는 거야. 그렇구나. 내가 사업에 계속 어려움이 오고 이랬는데 이게 교회와의 관계가 잘못됐구나. 회개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면 어느 쪽으로 들어가느냐만 차이가 있는 거지. 그 그쪽으로 말씀이 들어가서 글을 전체적으로 고치는 어느 한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에요. 전체.
01:48:34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고칠 때 약 바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근육 주사 넣고 어떤 사람은 혈관 주워 넣고 어떤 사람은 입벌리라 그래 가지고 속에다가 저기 뭐야? 물약 쑥 집어넣기도 하고 별 다 있잖아요. 그런데 그럼 다른 방식으로 들어가는 거지. 그래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예수의 몸인 하나의 사랑 하나의 교회가 하나의 사람이잖아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그 하나의 사람으로 다루시기도 하고 그걸 또 각자로도 다루시기도 하는 거예요.
01:49:13
그래서 교회는 바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개인이 그렇게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진실한 참회가 있어야 된다는 각자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예수님의 뜻에 자기를 부합시킬 때에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듯이 공동체적인 깊은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일치가 촉진이 되는 거죠. 여기에서 참된 까리타스가 이젠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그렇게 그렇게 참 진실하게 참회하게 될 때 그때에 교회의 몸을 더럽히고 힘들게 했던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게 되는 거죠. 동시에 함께 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개개인의 삶이 정결해지고, 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들으면서 같이 버리게 되니까. 교회의 몸 전체가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 거죠. 그걸 버리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몸 전체가 사랑을 받게 되는 거죠.
01:50:11
그러니까 신자 개개인의 사랑은 몸을 몸 전체가 받는 사랑 안에 있는 거라 이거죠. 왜냐하면, 내가 회개하기 전에 이미 예수의 몸을 접붙여지니까 접붙여지니까 그 몸 안에서 이루어진 거죠.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많이 잘못하고 있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그렇게 함께 뭐가 되는 것. 그거는 나에게 있어서 관심사가 아니에요. 문제는 뭐냐면 나 내 문제가 어려운데 나 나 계속해서 그러고 가는 거예요.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필요한 만큼 교회를 이용하다가 힘들면 사요나라 그러고 떠나는 거죠. 떠날 땐 이미 Karitas를 다 털어먹은 상태에서 떠나기가 13이에요.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상처 주고 이러면서 그래서 교회의 몸을 아프게 하고 떠나 떠났어도 그는 장소를 떠난 거지. 몸은 붙어 있는 거 아니야. 전체적으로 우주적인 교회에 붙어 있는 거 아니야.
01:51:08
그러니까 그 속에서 예수의 몸을 계속 찌르면서 자기는 복을 달라고 그러는 거죠. 자기 몸을 찌르면서 목을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그가 공동체적으로 깊이 함께 회개하고 나면 그러니까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것보다 100배는 더 중요한 게 공동체가 모두 모였을 때 한마음으로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이거는 100배나 더 중요한 거예요. 100배나 더 중요한.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이 공동체적으로 함께 생겨나게 될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함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한 형제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런 카리타스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때의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서 두 가지를 베푸는 데 있어서 충만한 자원을 소유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가 뭐냐면 용서. 두 번째가 뭐냐면 나눔이에요. 나눔. 용서와 나눔이 생겨나게 되는.
01:52:08
그래서 그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까리타스의 사랑 때문에 사람들을 용서하는. 왜냐하면, 그 까리타스의 핵심이 뭐냐 하면은 용서를 통한 까리타스의 경험이에요. 용서를 통한 아가페의 경험이 그래서 Karitas가 생겨난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은혜에 대한 깊은 감격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에게 죄짓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용서하는 과정이 아프긴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를 깨달은 바 진리에 부합시키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계속해서 변화되고 그 변화가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그다음에 또 마지막 하나가 뭐냐면 나눔이에요. 이건 뭐냐 하면 이기심이 사라진 데서 오는 나눔의 정신이에요.
01:53:01
이기심이 사라진 데서 온 나눔의 정신 그래서 신자가 탐욕을 버리고 이기심을 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러면 말하자면, 지체들의 죄가 나의 죄처럼 느껴졌듯이 지체들의 자원의 부족으로 말미암는 고통이 내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을 균등하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서 몸 전체가 골고루 누리면서 몸으로서 건강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그 몸과 함께 즐거워하는 큰 돈 없고 많은 재산 없고 부자 아니어도 그것 때문에 행복해하고 그 때문에 예수의 한 몸이 되어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
01:53:54
이것이 이것이 바로 사랑 이런 사랑의 질서를 확장해 나아가는 것이 선교하려는 거예요. 그것이 확장해 나가는 것이 선교예요. 그래서 결국은 결국은 결론을 내리자면 결국은 한 사람의 신자에 이 영혼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감격을 하거나 혼자 조용히 좋은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 사람 내 생각이라고 이렇게 똑같을까? 위인들의 간증집을 읽으면서 허 정말 멋있게 살았어. 나도 이런 순교의 순간이 오면은 이렇게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것을 통해서 영혼의 아름다움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에요. 영혼의 아름다움은 그런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타날 수는 있어요. 나타날 수 있는데, 여러분 자신이 너무 신뢰하지 마.
01:54:57
미안해요. 너무 실망을 줘서 별을 쳐다보면서 끝없는 우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에 대한 찬양이 가슴에 복받쳐 오른다고 해서 그대들 안에 카리타스가 꽉 차 있다고 나는 하나님밖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 그렇게 남들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얘기해도 스스로는 그렇게 믿지 말라 이거죠.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이 까레타스는 개인의 차원에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차원에서 입증되는 거야. 공동체의 차원에서 입증되는 거야.
01:55:33
그래서 그 공동체의 차원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한 번 사랑하기 위해서 한 번 죽는다고 할지라도 자기를 죽여서 사랑하고 자기의 소유를 털어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체제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 스스로 가난해지고, 스스로 고통받는 자리에 내려가고 좋은 것은 지체들에게 더 좋은 것은 우리 주님께 안 좋은 것은 자신이 짊어지고 그리고 교회의 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깊이 끌어안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가기 위해선 어떻게 되냐면 진리가 그를 계속 계속 비춰주고 있어야 돼요.
01:56:34
진리가. 그래서 인간이 이렇게 진리를 생각하는 것은 비용이 안 들어가. 그런데 그 진리에 자기를 합치시키는 것은 피 흘리는 고난을 통해서 합치되는 거죠. 합치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걸 일생 동안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을 드려본 적 있어요? 안 하네요. 이제는 저 이거 사랑 안 합니다. 드려보신 적 있어요? 일생 동안 못 고치 못 고치던 태도였고 아직도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태도인데 예수님이 아파하시니까 저는 이제 그것을 그만두겠습니다. 해보셨느냐고요. 그게 바로 진리를 합치시키는 거야. 별을 보고 명상하고 간증집을 읽으면서 눈물 흘리는 것은 그 까리따스 사랑이 충만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야.
01:57:30
그런데 고난을 받고 피를 흘리면서 예수의 형상 닮지 않은 자기를 진리 때문에 깎아버리는 것은 진짜 예수 죽음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예수의 환란과 오래 참음에 동참하려는 지수네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거예요. 수없는. 그래서 우리의 중요한 숙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에요. 많은 진리를 아는 것이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아요. 제가 일평생 설교자로 부름을 받아서 죽는 순간까지 진리를 연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외치기를 여러분도 고대하고 있죠. 그러나 내가 그렇게 소명을 따라 살아도 그대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않아요. 추호도 보장해주지 않아요.
01:58:20
왜냐하면, 그것은 설교자가 보장하거나 하나님이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 진리를 깨닫고 자기를 그 진리에 합치시키기 위해서 아무도 모르는 여러분만의 눈물의 길,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자기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거예요. 거기는 아무도 없어요. 외로운 구도의 길이에요. 그게 바로 구도의 길이에요. 예수님만 함께 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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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코로나 그러면서 끊임없이 깨뜨려지고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끊임없이 진리를 발견하고 그러면서 자기를 그 진리에 계속 합치시켜 가는 가끔 선배 목사님들이 이 세상에 목회처럼 행복한 게 없고 자기는 목회하는 순간이 그렇게 신이 나고 행복하다는 얘기만 들으면 저는 항상 주눅이 들어요. 난 아직도 이 목회 하는 게 남의 옷 입은 것 같고, 그래서 목회는 항상 내가 원하지 않는 가슴앓이이고 그리고 설교는 언제나 이국의 언어야 그러나 자기를 자기가 죽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야. 너무너무 어려워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똑같은 거예요.
01:59:50
그 길을 우리 각자각자 걸어가는 어디까지는 우리가 함께 가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각자가 예수님 앞에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단독자의 삶을 살게 되는 그 구도에 길이 있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주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물론 약할 때 있죠. 그리고 그러면 안 되지만 미끄러질 때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낙심이 되어서 이젠 한 걸음도 옮겨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고난의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구도의 길을 가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그 길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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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넘어져도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엎드려져 외로운 벌판에서 홀로 가슴 아프게 가슴앓이를 해도 그렇게 걸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사람들은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 예수의 몸에 사랑스러운 지체가 되어 가니 처음에는 불완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리 안에서 지혜를 배우고 그 사랑 안에서 카리타스를 배우면서 그런 사랑 그래서 자기를 이렇게 온전히 이 예수 오셔서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몸을 다 찢어 성찬으로 나누어 주신 것처럼 그 유사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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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리고 그 피로 나를 건지셔서 자기의 생명을 통해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신 그 예수 때문에 그 예수님이 지금 교회 와 계시기 때문에 그 예수 안에서 내가 한 몸 되어서 이 추루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 이 교회 안에서 삼위의 교통의 모상을 이루는 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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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지나는 인생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나를 위해 너희들이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을 믿으면서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으며 그렇게 걸어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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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이 그렇게 걸어가면 매 순간 쓰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미끄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내가 예수의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지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격려와 위로를 받으면서 일어나 오늘은 내가 아파서 사랑하는 지체의 위로를 받지만 내일은 저 지체가 아파서 내가 위로하고 그래서 정말 사슴처럼 함께 기대어 살게 하시기 위해서 어린 양들처럼 함께 목을 부비고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한 교회에 불러 그렇게 놀라운 예수의 사랑에 덧붙여 주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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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극한 예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목자 된 마음으로 내가 말할 수 없는 내 안에 있는 주님에 자비하심으로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권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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